정연호 박사(홀리랜드대학 구약학 및 유대학 교수).
▲정연호 박사(홀리랜드대학 구약학 및 유대학 교수).
리차드 써든(Richard W. Southern)이 자신의 책 <중세의 서구사회와 교회(Western Society and Church in the Middle Ages)>에서 지적하고 있듯, 중세의 교회와 사회는 하나였고 중세의 교회 역사와 세속 역사는 동전의 양면과 같았다. 이 시기의 근본적인 교회 정책은 유대인의 삶을 추락시키고 유대인들을 기독교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버리시고 크리스천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유대교는 악의 그림자로 조롱을 받고 신성모독으로 정죄를 받았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교회의 유대인에 대한 적대감을 먹고 자랄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교회의 신학적 렌즈로 유대인들을 바라보았고, 따라서 유대인들을 기독교에 대한 가장 큰 죄인으로, 짐승으로, 악의 모델로 보았던 것이다. 이런 암흑의 시대에 유대인들에게는 교활한 장사꾼들 내지 고리대금업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세익스피어가 쓴 <베니스의 상인> 등장인물인 샤일록은 모든 유대인이 고리대금업자이며 악한 존재임을 입증하고 있다.

사탄의 삼위일체: 악마, 적그리스도, 유대인

중세교회는 유대인과 관련하여 사탄의 삼위일체 교리를 만들어냈다. 사탄의 삼위일체는 악마, 적그리스도, 그리고 유대인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여러 세기 동안 교회의 반유대적 선동은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거리에서 유대인들을 만날 때 신화에 나오는 악마와 동일시하게끔 했다. 폭력적이고 미신적인 중세시대 교회의 반유대적 가르침이 유대인에 대한 편견과 학대와 살인을 부추킨 것이다. 그 결과 중세 유럽인들의 의식 속에는 악마로서의 유대인에 대한 잠재된 분노가 있었고 주기적으로 공격성향이 표출되었던 것이다.

정연호 칼럼
▲“나는 유대인들과만 관계하기 때문에 이 주변에서 가장 큰 돼지이다” 라는 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
악한 유대인과 관계하지 말라

유대인의 본질이 악이며 사탄이라고 본 중세시대 교회는 유대인을 기독교인으로부터 격리시키고자 했다. 악하고 더러운 유대인들이 거룩한 기독교인들을 오염시키고 타락시킨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엑스터(Exeter)회의는 1287년에 기독교 여인이 유대교의 가정에서 일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악(유대인)과 관계하면 선(기독교인)이 악에 오염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황 베네딕트 12세는 1338년에 유대교로부터 개종했지만, 유대교의 관습으로 다시 돌아가는 개종자에 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유대인이 과거의 잘못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개가 그 토한 것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유대인과 성관계를 갖거나 결혼하는 것이 짐승과 관계를 하는 수간으로 정죄를 받았다: "유대인과 성관계하는 것은 마치 돼지와 성관계를 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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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의 상인> 표지.
천년왕국적이고 거룩한 유럽 사회의 "공공의 적"

중세교회의 반유대적인 입장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이라는 천년왕국적인 기독교의 믿음에 의해 한층 강화되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와 천년왕국으로서의 유럽왕국을 성결케 하기 위해 기독교의 울타리에서 악(유대인)을 제거해야 할 당위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제거하는 방법은 악(유대인)을 선으로 바꾸거나-즉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키거나-추방하거나 멸절하는 것이었다.

성직자들은 반유대주의적인 설교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반유대적 미신을 믿게 하고,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대한 폭력을 부추겼다. 사실 반유대적 미신은 이미 교부시대 때부터 내려온 것으로, 존 크리소스톰은 유대인들이 크리스천 자녀들을 죽여 저주받은 마귀들을 섬기기 위한 피의 제의를 행했다고 했다. 교회는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를 죽인 자(deicide)라는 죄목에 악마와 돈을 숭배하는 자들이란 죄목을 뒤집어씌웠다. 그 결과 유대인들은 기독교 사회에 가장 악명 높은 공공의 적이 되었다.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

반유대적 선동이 점점 더 강렬해지고 효과적이 되면서 유대인들은 기독교 사회에서 살아가는 자유시민으로서 어떤 천부의 권리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들은 교황과 기독교 통치자들의 아량에 의존해서 살았다. 그 아량은 오직 유대인의 사용가치에 의해 결정되었다. 만일 통치자들에게 유대인들의 사용가치와 효용성이 줄어들게 되면 유대인들의 삶과 소유물들 또한 박탈당했고 추방되었다.

12세기 위대한 영적 위인인 클레르보(Bernard Clairvaus)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유대인들보다 더 비참하고 심각한 노예는 없다. 그들은 어디를 가든지 그 노예의 신분을 지고 간다. 어디에 가든 그들은 주인을 만난다." 1179년 제 3차 라테란 공의회(Lateran Council) 교회법 24조는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또한 라테란 공의회법 24조는 "...누구든지 기독교인보다 유대인을 편드는 자는 파문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 아래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중세 신학자들 중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13세기의 도미니칸 수도회의 토마스 아퀴나스조차 유대인들은 교회의 종이라고 했다: "유대인들은 교회의 식민이다. 교회는 세속의 왕들이 그랬던 것처럼 유대인들의 재산을 빼앗을 수 있다. ... 유대인들은 왕과 제후들의 노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