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웅
▲정일웅 박사
2. 17세기 구라파와 현 21세기 시대적 상황의 유사성?  

17세기 코메니우스 당시와 21세기 현재의 시대적 상황은 400년 이상의 시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깊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 유사성은 코메니우스의 시대가 오늘 우리의 시대처럼 하나의 전환기였다는 점이다. 그 시대는 아직도 봉건주의적이며 농경 문화 중심적인 사회 체제와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의 절대적 권위에 의해 지배됐다. 그러나 17세기는 이제 그 시대를 마감하고 근세 시대로 옮겨가는 급변하는 과정의 전환기였다는 사실이다. 특별히 그 시대 상황에서 가장 큰 도전은 과학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의하여 중세 가톨릭교회가 규정했던 신학적인 표준이 거의 불신을 받고 무너지게 되었다. 이것은 세계관, 또는 가치관의 대전환이었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이제 자연과학자들의 소리가 사회적 가치의 권위를 대변하게 되었다. 특히 30년 종교전쟁은 가톨릭교회의 편에 서 있던 제후들과 종교개혁을 지지하는 제후들 사이의 투쟁으로 구라파를 황량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수십만의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고, 교회의 신앙적 가르침의 권위는 그 가치를 더욱 잃어갔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적 특징들은 세계관의 불확실성, 인식론의 불확실성, 세계 정치적인 불확실성, 그리고 종교적인 불확실성이 극단에 이르는 상황으로 발전되었다. 또한 17세기는 실로 모든 전통적인 가치관이 붕괴되고, 가치 혼돈의 위협을 경험하면서, 모든 것에 다시 질문이 던져지고 새로운 가치관과 가치 체계(질서)가 요구되는 시기였던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도 코메니우스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이제 막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로 진입한 뉴밀레니엄의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그동안 해석되었던 '모던'(Mo- dern)과 '포스트모던'(Postmodern)의 전환을 경험하는 시대에 이르게 된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근세 시대 이래로 오늘날까지 약 400년 동안 지속되었던 전통적 가치관(데카르트와 베이컨에 의하여 만들어진)은, 상대화되고 다원적인 가치와 문화가 공존해야 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면서 모던의 한계에서 포스트모던의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을 요청받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자연과학의 발전과 과학기술의 발전은 산업사회를 넘어 정보사회로 전환되었으며, 지금 세계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경제 이데올로기 대립에서 공산주의가 일방적인 파산함으로 정치적인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인간 삶의 가치 인식과 행동을 결정했던 전통적 가치는 대부분 상대화되고 그 표준을 잃어버린 채, 그야말로 가치 혼돈의 시대를 우리 모두가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와 그리스도의 교회도 마찬가지로 엄청난 가치 혼돈을 경험하고 있다고 할 것인데, 종교개혁 이래로 '종교의 자유'라는 명분하에, 그리고 각종 신앙고백들을 따라 수많은 교회와 교파들로 분리되어 갔으며, 이제 그 분리들은 전체를 묶어 줄 표준을 잃고 있으며, 한 분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의 모습을 상실한 채 다른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을 소개하는 혼돈을 겪고 있는 듯하다.

그 때문에 한국교회 역시 그 어느 때보다도 교회의 연합과 일치에 대한 가치가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할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가치와 경제 원리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삶의 전제조건이 된 이래로 인간의 인격과 생명의 존엄성은 여전히 주객전도되는 엄청난 모순을 경험하고 있으며, 심지어 다음 세대의 인간 교육을 책임진 공교육의 실체들도 올바른 인간성 교육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경쟁사회에 걸맞게 경쟁의 기술적인 도구만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우리 사회 공교육은 회의와 불신만을 가중시키는 상태에 처하여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의 공교육에 대한 불신은 대안교육, 또는 대안학교라는 새로운 처방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는 상태에 있다고 할 것이다.

여기서 필자가 역사적인 인물 코메니우스에게서 놀라고 감탄하는 것은, 바로 이 시대 지구촌 전체가 당면하고 있는 근원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내용을 코메니우스에게서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오늘 우리 시대의 문제들에 대하여 그는 17세기 그 시대에 여러 지성인들을 향하여 경종을 울려 주고 있었으며, 오늘날 전 세계가 겪고 있는 교육 문제들의 도래를 코메니우스는 그 시대에 벌써 예언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필자가 더욱 놀라게 되는 것은, 가치 혼돈의 상황에서도 코메니우스는 창조주 하나님은 스스로 그의 피조물들을 돌보신다는 것과,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사역에 근거하여 그의 나라를 세우며, 통치하게 되시리라는 것과, 바로 인간은 이러한 나라의 설립과 확장에 기여해야 하는 위대한 사명과 책임을 요청받고 있다는 사실을 그 시대적으로 분명히 일깨우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면서까지 그 일에 헌신하였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적 유사성의 맥락에서 코메니우스의 교육신학이 시사(示唆)하는 바가 과연 어떤 것인지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코메니우스가 그 시대 인류의 문제를 직시한 통찰이 과연 얼마나 정당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그가 제시한 철학(인식론과 범지혜)과 신학(성경 말씀과 실천), 교육 원리(범지혜의 교육)와 그것들의 이 시대적 적용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하여 질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의 통찰과 원리들이 과연 현대의 삶에 직면한 인류에게 시사(示唆)하는 바가 무엇인지 계속해서 밝혀보기로 한다. <계속>

*크리스천투데이는 본지 편집고문인 정일웅 박사(한국코메니우스연구소 소장, 전 총신대 총장)의 논문 '코메니우스의 교육신학사상의 현대적 의미'를 저자인 정 박사의 동의를 얻어 매주 금요일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