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

날짜 : 2016년 06월 19일
본문 : 히브리서 11:1-3

<서론>
‘나는 믿음의 사람인가’ 이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크리스천을 믿음의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도 믿음이 무엇인지 그 뜻을 알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믿음은 영적 그릇을 뜻합니다. 영적 그릇을 준비하고 하나님께 기도 드리면 하나님이 그 그릇에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령한 사람으로 확실히 하나님께서 부어주실 수 있도록 크고 작은 그릇을 예비하고 나아가 기도드리고 구해야 응답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옛날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을 때 영국 총독부에서 인도의 지방 부호들에게 자동차를 선물했습니다. 그런데 이 부호들이 자동차를 받기는 받았는데 어떻게 쓰는지 알지를 못 하겠습니다. 바퀴는 네 개가 달렸으니 땅에서 구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튼튼한 소 두 마리를 구해가지고서 자동차 앞에 묶어서 선물로 받은 기념으로 군중들 앞에 그 차를 몰고 다녔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는 선물로 믿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주셨는데 믿음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사용하면 태산을 옮길 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믿음을 어떻게 사용할 줄 몰라서 자기 힘으로 낑낑거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미래를 현재 있는 것으로 마음에 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참 어렵게 생각되지만은 장차 올 것을 ‘나는 시간을 뛰어넘고, 공간을 뛰어넘어 현재의 내 가슴속에 받았다’고 품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조상들이 나오는데, 노아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7절에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나니라’ 노아가 얼마나 오랫동안 방주를 만들었는지 그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방주 크기를 볼 때 수월치 않게 시간이 걸린 것 같습니다. 방주의 길이가 축구장보다 길고, 높이가 7층 건물정도라니 그 당시에 망치 하나로 가지고서 만드는 배인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입니다. 비 한 방울 오지 않는 날씨에 수십년동안 매일 망치질을 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노아를 미쳤다고 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3차원에 속한 사람들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브라함도 보십시오. 아직 자녀가 하나도 없는데 나이 든 할머니, 할아버지가 만국의 애비요, 어미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미쳤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분인 것입니다. 없는 것을 지금 있는 것처럼 부르시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아들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아들이 있는 것처럼 만 민족의 조상이라고, 그 아내가 아기를 낳아본 적도 없는데 여주라고, 자식을 많이 가진 주인이라고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 오지 않는 미래를 현재의 것으로 품을 수가 있어야 믿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을 사용하면 우리의 삶이 상상 이상으로 큰 기적을 체험하면서 살아갈 수가 있는데, 사람들이 믿음을 분별하지를 못합니다. 믿음은 먼 훗날에 내가 모르는 곳에서 이루어질 것을 기다리는 것, 그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아무리 훗날의 일이라도 그것이 오늘 내 속에 일어난 것을 바라보고서 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인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바라는 것이 실제로 이루어졌고, 보이지 않는 것이 믿음 그 자체가 보이는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1. 언제나 미래를 현재의 것으로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
언제나 미래를 현재의 것으로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인 것입니다. 현재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고, 귀에는 소리 들리지 아니하고, 손에 잡히는 것 없어도 현재를 보고 탄식하지 말고, 장차 다가올 것이 시간을 뛰어넘고, 공간을 뛰어넘어 현재 내 품에 와 있다고 믿으면 그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항상 주님 도움을 받으러 나온 사람에게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 믿은 것을 우리 집안이 무병장수하고 평안할 것이라고 믿었으면, 그것을 그날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면 내일은 또 내일이 있고, 내일은 또 내일이 있고, 내일은 또 내일이 있고, 나중에는 죽는 날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한 것은 그렇게 무병장수하고 행복한 가정이 장차 다가올 것이 아니라 지금 다가왔다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 지금 현재 믿음대로 이루어지지, 가만 내버려두고 늘 탄식만 하고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 앞에 소원을 두고서 행하게 한다는 거예요. ‘소원을 두고’라는 것은 소원은 꿈과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꿈과 믿음을 가지고서 하나님께 바라면 하나님이 그것을 이루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꿈도 지금 내가 꾸는 것이고, 믿음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지금 받는 것이고, 참 놀라운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가슴에 품고 살면 말도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말하고 행동도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행동하고, 그러면 하나님의 창조적인 역사가 현재 그것이 나타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5절에도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 도다’ 소원을 현재 내 마음에 품고, 현재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하나님 성령이 그것이 이루어지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2. 물질적인 세계
우리가 물질적인 세계, 다시 말하면 일직선의 1차원, 평면의 2차원, 입체의 3차원은 모두 다 물질적이고 감정적인 세계인 것입니다. 그것은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세계, 3차원의 세계, 그 3차원의 세계를 뛰어넘으면 이제는 안 보이는 세계인 것입니다. 4차원의 세계로 들어 한 발짝 넘어가면 그곳에서는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 등이 있는데, 그 사실 보이지 않는 세계이므로 3차원을 너머 안 보이는 세계를 정의할 수 없어서 4차원이라고 불러보는 것입니다. 그런 신학적인 언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눈에 안 보이는 세계를 뭐라고 부르겠습니까? 과학적으로는 줄 그어놓으면 1차원이고, 이런 평면은 2차원이고, 입체적인 교회같이 입체적인 것은 3차원인데, 그 다음 그 차원을 뛰어 넘으면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이 있는데, 그건 어떻게 생겼는지 모릅니다. 생각이 어떻게 생겼는지 좀 가르쳐주십시오. 꿈은 어떻게 생겼고요. 꿈은 집에 가서 눈 감고 자 보십시오. 그것이 꿈입니다. 그렇게 설명될 수 없거든요. 믿음도 어떻게 생겼다고 말할 수가 없소. 말도 그렇지요. 그러므로 눈에 보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만질 수 있고 그러한 세계는 3차원의 세계고, 그 3차원의 세계를 뛰어넘어 안 보이는 영적세계로 들어가면 생각, 꿈, 믿음, 말 이것이 안 보이는 세계가 돼요. 하나님 성령도 안 보이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성령이 안 보이는 생각의 세계, 꿈의 세계, 믿음의 세계, 말씀의 세계에 들어와서 옷 입고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4차원의 영성을 개발하지 아니하면 성령은 와서 역사할 수 없습니다.

성령은 물질세계를 옷 입고 일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인간의 생각을 통해서 서로 대화하고 일하시는 것입니다. 꿈을 통해서 같이 일하고, 믿음을 통해서 같이 일하고, 말을 통해서 같이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고, 손으로 느낄 수 없는 이 세계를 4차원의 세계라고 이름을 붙여준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유대인의 스승인데, 예수님께 와서 대화를 했는데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한 마디도 못 알아들었습니다. 예수님이 4차원의 영성을 통해서 말씀을 하니깐 니고데모는 안 보이는 세계의 이야기를 전혀 못 알아들었어요. 예수님께서 니고데모보고 말하기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를 알 수 없다” 그래서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3차원의 세계에 통해서 살지만은 예수님을 믿고 한 발짝 전진해 나아온 사람은 4차원의 영성을 가진 사람은 성령과 더불어 살게 되므로 묵시의 세계, 기적의 세계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4차원의 세계는 묵시의 세계입니다. 묵시의 세계에 들어가서 성경을 보고 기도할 때 성령의 음성을 듣고, 그 묵시의 세계가 우리 영의 세계인데 영의 세계에서 받아들이고, 그 다음에 그 세계에는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역사하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4차원의 세계에서는 육신의 묵시가 있고, 기적이 따르는 것입니다.

빌립이 예수님과 대화하는데 4차원의 세계를 갖지 못해서 못 알아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남자만 오천 명, 부녀자 기만명이 나왔는데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그 하나님의 계시적인 말로써 받아들여야지 돈이 없는데 어떻게 만 명 가까운 군중들을 먹여요? 예수님께서 먹이라고 말할 때 빌립이 영적인 세계를 안다면 “예. 예수님 말씀만 하십시오. 순종하겠습니다. 예수님이 먹일 수 있지 우리는 먹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고 예수님은 신령한 세계에 왔다갔다 마음대로 자유롭게 하시는 것이니깐 예수님은 기적을 베풀어서 먹일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4차원의 세계는 꿈의 세계요, 묵시의 세계요, 기적의 세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인간적인 지혜나 총명이나 모략이나 재능 가지고 해결을 못하고 벽에 부딪혔을 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가지고서 기도하면 묵시의 세계, 하나님이 말씀해주시는 세계에 들어와서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리라(예레미야33장3절)’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절에도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더라’ 지구를 창조할 때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어. 1차원, 2차원, 3차원의 세계가 파괴가 되어서 손댈 수 없는 처지에 있을 때 그 위에 운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의 영인 4차원의 세계인 하나님 영인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영이 오늘 우리 세계에도 운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생각과 여러분의 꿈과 여러분의 믿음과 여러분의 말을 통해서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기도하고 꿈을 갖고 믿음으로 의지하고 긍정적인 창조적인 말을 하고 나가면 성령께서 그것을 자켓 삼아 걸치고 다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영적인 세계에 좌우간 물질적인 세계를 통해서 역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를 통해서 기가 막히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브리서 11장 1 ~ 3절)’ 믿음으로 우리는 성령과 함께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도 하고, 수정하기도 하고, 보완하기도 하고, 모든 없는 것을 있게 하는 것은 4차원의 영성인 눈에 안 보이는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과 꿈과 믿음과 창조적인 언어를 개발하지 않고는 이 영적인 세계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을 읽어보면 엄청난 하나님의 세계가 사람들 앞에 전개돼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서 4차원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으면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하늘나라가 생각 속에 들어오고, 꿈을 꾸고, ‘믿습니다’를 외치고,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 창조적인 선언을 하고 하면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신령한 세계에는 교회에 오면 교회에 묵시와 기적이 있는 것이 살아있는 교회인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영적인 묵시가 없이 그냥 바짝 마른 율법이나 주장하고, 기적은 어림도 없다, 그거는 무식한 사람들이 미신적으로 하는 것이고 그건 있을 수가 없다. 그건 죽은 교회입니다. 주님이 살아계시면 우리 가운데 성령으로 역사하셔서 묵시를 얻습니다. 계시를 얻고, 그 다음에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것이 교회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고,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 가운데 있겠다’고 말씀하셨고, ‘내가 고아와 같이 너희를 버려놓지 않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하셨고, 하늘나라가 우리 속에 와 계시고, 우리가 하늘나라를 꿈에 품고 사는 것이 예배인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몇 천 년 전에 있었던 것이고, 수 말년 후에 나타날 것이고, 혹은 뭐 안 나타날 수도 있고.’ 그렇게 하면 그건 순 엉터리입니다. 하늘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못하는 게, 하늘나라는 내 안에 있느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중생한 사람 속에 예수님이 들어와서 계시고, 이 속에서 성경 말씀을 펼쳐놓고 묵시를 받으며, 묵시를 통해서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나고, 재미있는 신앙생활을 하고, 변화 받은 신앙생활을 하고, 기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래를 현재의 것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죽은 후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 1장 2~3절에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땅을 ‘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이미 너희에게 주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현재 온 때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온 천하 만물은 하나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이 아직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어도 “이미 내가 너에게 주었다.” 믿음이라는 것은 내 것도 아니고, 내가 손을 내밀지도 못할 것을 주님께서 “이것이 네 것이다. 내가 너에게 주었다. 믿어라.” 그러십니다. 그 믿으면 뭐 여러분 것이 되는 것입니다.

3.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꿈꾸는 사람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꿈꾸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사람이 꿈을 꾸고 사는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매일 꿈꾸고 기도하고 감사하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꿈이 있는 개인이나 단체를 통해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요셉은 꿈꾸는 자였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창세기37장6~7절)’ 그다음 또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창세기3장9절)’ 아주 세상말로 환장할 소립니다. 임마가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다 나가서 양을 치고 일을 하는데 늦잠 자고 일어나가지고서 기지개 켜고 형들이 나에게 절할 것이라고 그러니까는 곱게 보이겠습니까? 그런데 형제들 중에 요셉만 그렇게 꿈을 꾸었는데, 여러분 잘 아시다시피 요셉이 고생은 많이 했지만은 그 꿈대로 다 이루어졌거든요.

창세기 37장 18절로 120절에 그들이 요셉을 죽일 기회를 얻어서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이미 꿈은 벌써 꾸었기 때문에 그 꿈을 마음대로 못 합니다. 꿈은 하나님이 주신 꿈이니깐 하나님보다 강하면 그 꿈을 없앨 수가 있지요. 이미 하나님이 요셉에게 말씀을 하셨고, 요셉이 하나님의 꿈을 꾸었는데, 형들이 문안 오는 그를 붙잡아서 “죽여 버리든지 애굽으로 팔아먹자”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한 자기들이라는 것을 나중에 깨달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4.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미래의 사건을 현재처럼
우리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미래의 사건을 현재처럼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을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생각해야 되고, 장차 일어날 일을 지금 이미 일어난 것으로 마음에 포옹해야 되고, 그 다음에 없는 것을 현재 없는데 있는 것처럼 말을 할 줄 알아야 된다. 현재 없는데 어떻게 있는 것처럼 말할 수 있냐. 말할 수 없으면 믿음의 생활은 못 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생각하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믿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말하는 것입니다. 몸에 병이 들어서 아픈 사람은 안수기도 받고 난 다음 아직 안 나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건강하다. 나는 튼튼하다. 나는 씩씩하다. 원수 귀신아 용용 죽겠지. 나는 건강하고 좋다.”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말하니까 그 말이 나와서 건강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집안에서도 가정예배를 늘 보고,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리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감사드리고, 애들이 “엄마.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엄마는 이루어진 것처럼 자꾸 말을 하냐.”고, “에이 잔소리 하지 말아라. 입 조심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이루어진 것처럼 말한 것이 믿음이다.

성경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했지요. 그렇습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말하고 시인하면, 하나님의 기적이 그 가운데서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3차원을 따라 사는 세계가 있고, 그곳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4차원의 영성을 가지고 생각과 꿈과 믿음과 창조적인 입술의 선언을 통해서 사는 세계가 있습니다. 세계가 두 가지 세계가 있어요. 그런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고, 생각하고, 꿈꾸는 믿음의 세계를 사는 사람은 어디 가도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줄 지라도 꾸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대한민국 교회가 깨어나서 성령 충만히 받고 믿음으로 살면 남북통일도 될 것이고, 눈부시게 성장발전을 계속할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 보면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야훼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미래의 사건을 현재처럼 말하는데 하나님은 ‘네 입술에서 말하는 그 말을 듣고서 그대로 시행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말을 해야 된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되는 것입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벽에도 귀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가득히 모시고 입술로 고백하면 젖과 꿀이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나니라(마가복음9장23절)’ 믿음의 환경을 만들어 드려야 주님이 기적을 행하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 마르다와 마리아가 얼마나 울었습니까. 예수님조차도 그들 슬퍼하는 것을 보고 통곡을 하고 탄식하고 우셨습니다. 나사로의 무덤가에 왔었을 때, 예수님께서 마르다를 보고 “무덤 돌문을 옮겨 놓아라.”, “예? 오라버니가 죽어서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데요.” 예수님이 “무슨 소리를 그런 소리를 하느냐? 내가 조금 전에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하지 않았느냐?”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3차원의 세계에서는 죽은 자가 살아나지 못해요. 그런데 4차원의 세계에서는 죽은 자가 살아나는데, 4차원의 세계에서는 생각이나 꿈이나 믿음이나 말이나 하나님이 같이 할 수 있는 공통의 분모를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가 믿음만 제시해 주면 예수님은 그 믿음을 올라타고 나사로를 살려낸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유대인들은 위로하러 왔다가 예수님의 이 말을 듣고 머리를 흔들고 이제 완전히 절단 났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와 마르다조차도 무덤 문을 옮겨놓지 않으려고 했다가 예수님의 노하심을 듣고 할 수 없이 달려들어서 무덤 문을 옮겨 놓으니깐 주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만 보고 말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도 우리가 말씀을 듣고, 읽고, 믿음으로 서면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

제가 50년 목회를 한 동안에 참 옛날에는 우리 모두 다 가난했습니다. 헐벗고 굶주렸습니다. 직장도 없고, 사업도 못하고, 그런데 죽기 아니면 살기로 주의 말씀 받아들여 믿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시인하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말하고 행한 결과에 우리 잘 살게 되었습니다. 외국에 선교사도 많이 보내고, 지교회도 많이 짓고, 우리 본 교회도 이렇게 훌륭하고, 감사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백부장이 종이 병들어가지고서 죽어가니 예수님께 와서 좀 고쳐달라고 했었습니다.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마태복음8장8절)’ 백부장이란 군인의 대위쯤 됩니다. 부하가 병들어 죽어가니깐 예수님보고 고쳐달라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고쳐주마”하니깐 “아이 오실 필요 없습니다. 나도 군대 육군 대위쯤 되는데, 내 밑에 있는 종들을 보고 ‘오라’하면 오고, ‘가라’하면 가고 그런 권세가 있는데, 하물며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권세를 가지고 있는데 왔다 갔다 하실 분이 아니십니다. 말만 하면 병이 왔다가 갔다가 하고, 귀신이 왔다가 쫓겨 갔다가 하는 것이니깐 말만 한 마디 하소서” 그러니 예수님이 깜짝 놀라서 “유대인 중에도 이렇게 좋은 믿음을 가진 사람을 못 보았다”고 칭찬을 하시고 “네 종이 살아났다.” 그러니까는 집에 와보니깐 종이 살아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마태복음8장13절)’ 우리는 예수님 십자가를 바라보고, 우리의 희망이 이루어짐을,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길이 환히 열려 있는 것입니다.

꿈과 희망은 ‘장차 미래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크리스천이 말하는 꿈과 희망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아닙니다. 우리가 꿈과 희망을 가지는 것은 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가 당당히 소유할 수 있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갈보리 십자가 밑에 가서 십자가를 쳐다보십시오. 온 전신에 피를 쏟고, 피투성이가 되어서 계시는데, 하나님께 말씀하시기를 ‘저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로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도다(이사야 53장 5절)’ 저렇게 고통을 당하는 것은 너희 죄 때문에 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은 그 실제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 그런 큰 소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 죄 사함을 받은 것을 믿으면 이 죄 사함은 하루 이틀이 아니라 영원한 죄 사함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죄 사함은 영원한 죄 사함입니다. 우리가 몸에 때를 씻으면 하루에 일하고 난 다음 때를 씻고, 또 이튿날 또 물에 씻고, 사흘 또 그 물에 씻고 그와 같이 예수님의 용서는 영원한 용서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여러분은 영원히 의롭다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영원히 의롭다함을 얻고, 하나님 앞에 막힌 담을 헐어서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고, 그로 병 고침 받는 것도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질병의 고통을 다 담당했기 때문에 여러분 실제로 솔직히 말하면 이천 년 전에 이미 나았습니다. 나은 병을 가지고서 지금 시난고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법적으로 이미 나은 것이에요. 우리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생각하고, 믿고, 담대하게 일어서면 병은 한 길로 왔다 일곱 길로 도망을 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을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있습니다. 그러고 우리가 물질적인 가난도 그렇습니다. 바울 선생이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저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가 가난하게 됨은 그의 가난하심으로 말미암아 부요케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아마 그렇게 돼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14절)에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였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했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선물로 받기 위함이라’ 그러므로 확실한 약속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을 받고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죽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부활한다는 것을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희망과 꿈이 터무니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지는 꿈과 희망은 십자가를 통하여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리는 것이라(마태복음 7장 7절~8절)’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 줄줄 알거든 하물며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지 않겠느냐(누가복음 11장 13절)’ 좀 더 여러분 가슴을 내어 밀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신앙을 갖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의학의 발달로 인간 기대수명이 점차 늘어나 이제는 평균수명 100세 시대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 100세 시대를 바라보니까 평균 60대 전후에 은퇴한다고 보면 인생의 절반 남겨놓고 은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은퇴 후의 삶을 준비합니다. 경제력도 갖추기 위해서 재테크를 하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운동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준비를 빼놓습니다. 그것은 꿈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길게 살면 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꿈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은퇴한 사람의 40%가 우울증을 겪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꿈이 없으니 무기력하고 우울할 것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몸이 좋지 않아서 은퇴한 분이 병원을 찾아가니까 “선생님, 머리가 아프고 입맛도 없고 눈까지도 침침합니다. 좀 보아 주십시오.” 그러자 의사가 진찰을 해보더니 “하하, 비타민 V가 부족하군요. 왜 비타민 V을 안 드십니까?” “처음 듣는 말인데요 비타민 V가 뭡니까?” “귀한 거지요. 비타민 Vision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비타민 꿈. 비타민 영양분 있는 알약만 비타민이 아니라 꿈을 가지고 있어서 비타민 V이니 꿈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뭐 머리가 아프고, 몸이 아프고 전신이 우울증에 빠지고 고통이 다가오지 않습니까? 비타민 V는 Vision 비타민입니다. 선생님은 다른 게 문제가 아니라 꿈과 희망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여기 저기 아픈 것입니다. 꿈을 잃으면, 몸도 아프고 나중에는 소망까지 잃어버리게 됩니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결론>
믿음의 세계는 물질세계를 변화시키고 창조하고 다스립니다. 여러분은 생각, 꿈, 믿음, 창조적인 언어 믿음의 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믿음의 세계를 가지고 살고 있는 몸담고 있는 물질적인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고, 창조할 수 있고, 다스리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이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여러분 우리가 물질적인 세계는 태어날 때부터 물질적인 세계에 태어나서 아담의 후예로서 물질의 지배를 당하고 살았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어서 예수님처럼 되었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영적인 4차원의 세계가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바로 성령께서 4차원의 세계의 근본이 되시기 때문에 여러분이 말씀을 통해서 생각을 긍정적으로 가지시고 꿈을 통하여 구체적인 미래를 가지시고 믿습니다를 외치고 긍정적인 말을 하고 그러면 성령님과 같이 교제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신님과 함께 교제하게 되면 없는 것이 나타나게 되고 기적이 일어나게 되고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게 되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애 속에 묵시가 언젠지 나타나게 되고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을 통해서 꿈으로서 맘속에 비밀을 말해 주는 것이 묵십니다. 그 다음엔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영적인 세계 속에서 예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고개 숙여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백성들을 부르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4차원의 세계 속에 들어오게 만들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신령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다 거듭나서 성령님이 집을 삼고 우리와 함께 거하여 계심으로 이제는 영적인 세계에 묵시를 얻고, 영적인 세계의 기적과 이사를 체험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 것을 믿음으로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하게 되었음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오늘도 성령을 부어주시고, 성령께서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나타나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