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경우, 수구주의자들은 자신의 이익과 명예와 목적을 위하여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일한다. 영적 지도자라는 사람들도 교회의 공적인 일을 "기도해 봅시다"라면서 사적으로 처리한다. 

나라의 지도자가 자신의 이익과 명예를 위해 편협된 생각으로, 권력과 직함을 이용하여 공적인 일을 사적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로 인하여 온 국민이 피해자가 되고 나라가 뒤처지고 역사에서 낙오자가 된다. 공적인 일을 사적으로 처리한 결과로 흔히 발생하는 일들이다. 

공적으로 일을 처리한다는 것은, 혼자만의 생각을 소통을 통하여 공동의 생각으로 만들어가는 조율 과정이다. 많은 경우에 이러한 조율 없이 혼자만의 생각을 옳다고 인정하고 고집하여 일을 망친다. 자만으로 인하여 서서히 망해가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을 수없이 많이 보게 된다. 

지난 역사 속에서 대표적으로 토목공사로 사대강을 온통 파헤쳤던 일, 많은 논란이 있었고 반론이 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밀어붙였다. 모든 일에는 공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봐도 그 결과는 지나치게 사심이 들어가 폐해가 엄청나고 손실이 더욱 많은 것은, 공적인 일을 사적으로 처리한 결과라고 할 것이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이 확실하다면서, 그 입장을 옹호하는 것만을 유일한 정치적 임무로 중요하게 여기는 행위다. 그래서 스스로 철의 장막 속에 갇히게 되고, 방어하고 변증하고 언론을 통하여 속임수를 쓰면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모두가 틀린 것이고 반대하는 행위라고 몰아간다. 

여기에서는 절대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타인의 의견에 귀를 절대 열지 않는다. 자기 고집과 오만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 결과는 시간이 알려 준다. 분열과 막대한 피해와 손실이다. 후퇴와 낙심과 절망이다. 한 지도자가 공적인 일을 사적으로 처리한 결과다. 

요즘 조선산업이 막장의 길을 걷는 것을 보고 있다. 수만 명의 생존이 걸리고 부산·경남 지방의 경제가 얽힌,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내막은 잘 모른다. 그러나 대략적으로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 역시 공적인 일을 사적으로 처리한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 아닐까? 조직을 사유화하는 일 말이다. 

개인적인 욕심에 얽매여 멀리 내다볼 수가 없었고, 권력의 힘으로 개인의 생각을 밀어붙이다 보니 결국에는 망하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세계적인 산업이라고 지금까지 말해 왔고, 한국 경제를 이끌고 나가는 견인차라고 생각하였던 것인데, 결국은 공적인 일을 사적으로 처리한 결과가 아닌가? 

세계적인 조선산업이 어찌하여 유람선 하나 만들지 못한단 말인가? 어찌하여 중요한 기술은 대부분 수입하여 쓴단 말인가? 우리나라 기술이 부족해서라고 말한다.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장기적으로 바라보면서 투자하거나 기술을 개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공적 업무를 사적인 일로 취급한 결과다. 

조선산업에 경쟁 국가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지 않았는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조짐이 나타난 것은 벌써 오래 전이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동산에 투자하여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재미에 취해 있다가 일은 하나도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소문도 듣는다. 이 정도의 소식은 이미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다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공적인 일은 공적으로 소통하면서 고민해도 실패할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도 없이 개인이 결정하고 일을 진행함으로, 많은 고통과 절망을 국민들에게 안겨 주고 있는 것이다.

공적인 일을 사적으로 처리하는 경우는 특별히 교회 목사들의 태도에서 많이 나타난다. 공동체의 일을 맡아서 진행할 때에, 사적으로 취급하고 혼자서 생각하고 계획하고 결정하고 나서 나중에 "따라오시오"라는 형식을 취할 경우가 많다. 종교적 업무상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것이나 전체를 계획함에 있어서 너무 사적으로 취급하지 않는가? 공동체 의식이 없어서가 아닐까?

"내가 이렇게 기도하면서 결정한 일이니, 그렇게 알고 '아멘' 하고 순종해 주시오"라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 권위가 아니다. 공동체가 병들어 가는 일이요, 서로의 연합을 막는 것이고, 지체 의식이 전혀 없는 교만한 행위다. 

선교 현장으로 가 보자. 현장의 복음주의 교회들은 오히려 장로회 정치를 따르고 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반드시 지도자 회의를 통하여 결정한다. 지역 대회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전체 총회가 중요한 일들을 결정해 나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어설픈 권위를 내세우는 것보다 훨씬 낫다. 

모든 일에는 절차와 방법이 있다. 좀 더디게 진행되고 답답하다고 여겨지더라도, 다른 지체들을 인식한다면 기다리고 의견을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목사들은 이러한 방법에 매우 서툴다. 혼자서 기도하면서 결정하고 진행하여 왔기 때문이다. 

성도들을 모두 순종 잘하는 지체와 양들로 만들었다고 자랑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오만이다. 스스로 제사장인 양 착각하는 것이다. 한 사람보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으면 더 다양하고 풍성해질 수가 있다. 공적인 일을 사유화하여 무너지는 일들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고 있다.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  

현장의 소리, 세르게이(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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