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본철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역사신학/성령운동연구가)

세계화 시대를 맞은 한국교회는 성령론의 새로운 과제를 부여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곧 과도한 체험중심주의에서 복음의 본질을 확고히 하는 일이다. 그 이유는 현대인들의 의식이 이전 세대에 비해 기존의 교리를 신뢰하거나 논리적 귀결을 따르기보다는 감성이나 직관, 그리고 자신이 체험한 현상에 더 의존하는 경향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성은 오용될 경우 복음의 내용을 손상시킬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하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지침을 마련하는 일은 복음적 성령론을 확립해 가는 데 있어서 필수적 과제라고 본다.

최근 들어 영성운동의 일각에서 '쓰러지는 집회'가 유행하고 있는 점은 큰 문제라고 본다. 분별력이 없는 이들은 어떤 인도자가 기도해 주어서 자기가 쓰러지면, 그 인도자를 대단한 능력자라고 느낀다. 그러나 자기가 쓰러지지 않으면 그 인도자에게 별 능력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문제의 근원은 이들이 복음의 본질은 보지 못하고 현상에만 미혹된다는 것이다. 쓰러지는 현상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현상이 있다고 해서 능력이 있고, 현상이 없다고 해서 능력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귀신 추방 사역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집단에서는 귀신 추방할 때 기도 받는 자가 반드시 쓰러지도록 유도하곤 한다. 그러나 이런 체험적 현상에 너무 치중하다 보면, 본질적인 귀신 추방 사역의 내용을 간과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기도 받는 자가 다음에는 더 강도 높은 체험적 현상을 기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해로운 것은, 기도 받는 사람이 쓰러지지 않으면 사역자 스스로도 귀신을 완전히 추방한 것이 아니라고 오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소위 '치과 기적'이라고 해서 치아가 금이빨로 변한다는 소문이 돌았던 영성운동도 있다. 한국교회에 큰 소요를 일으켰던 이 사건도, 역시 복음의 본질보다는 체험적 현상에 호소했던 결과라고 본다. 설령 남미나 어떤 외국에서 진정한 치과 기적이 일어났다 할지라도, 그러한 기적 현상이 지구상 어디에서나 똑같이 일어날 것이라고 강조하는 인도자들의 의식도 역시 큰 문제가 되었다. 

'성령의 불'에 대한 잘못된 교훈도 교계 내에 많이 퍼져 있다. 기도나 예배 중에 몸이 뜨거워지거나 전류가 흐르는 듯한 경험을 성령의 불을 받았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그러나 원래 성경에 나타난 불의 개념은 정결과 사랑과 능력의 상징이다. 그리고 진정한 성령의 불 체험이란 마음의 정결과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사역의 능력을 위해 영혼을 충만케 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체험과 현상을 과도히 자극하는 영성운동은 경계해야 한다. 성령의 권능이 부여될 때 육감적 체험과 현상적 차원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러한 체험이나 현상이 성령의 권능 그 자체는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확실히 해야 한다. 성령의 권능은 우리 영혼의 본질에 접근하여 본질적인 회복과 변화 그리고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권능은 권능 받은 이후의 삶과 사역을 통해 뚜렷이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상적 차원은 현상 그대로 끝나는 것이지, 거기에 필연적인 본질적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처럼 세계화 시대 영성의 최대 당면 과제는, 극단적 체험과 현상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그리고 이를 위한 힘 있는 지침은 영성운동 속에 일어나는 어떠한 체험이나 현상이라 할지라도, 복음의 본질적 정신을 통해 마땅히 그 진위성(眞僞性)을 분별해야만 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