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ever happened to the soul? 진규선

Whatever happened to the soul?
Nancey Murphy 편저 | Augsburg Fortress Publishers | 272쪽 | 18.33달러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이란 책이 한때 우리나라에 소개돼 많이 회자됐다. 모든 학문의 교류와 통합이야말로 진정 학문이 나아가야 할 방향임을 주장한 책이다. 물론 저자의 특성상 생물학을 우위에 두는 뉘앙스는 지울 수 없었지만, 그 명제 자체는 충분히 받아들일 만하다. 그렇다면 신학은 어떠한가? 신학이 다루는 분과 중 가장 학문적으로 '핫'할 만한 주제는 '인간론'이다.

본서는 조직신학, 진화학, 유전학, 신경과학, 인지과학, 신약신학, 심리학, 철학, 윤리학 등 각 분야 전문가들에게, 그 영역이 정의하는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지를 각 장에 할애하고 있다. 비록 1998년 출판된 책이라 최신 학문은 아니더라도, 논쟁적 이론보다 이미 정설이 된 토대 위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담론을 진행해 나가므로, 올드(old)하다는 이유만으로 마냥 버릴 필요는 없다(국내에 출판된 말콤 지브스의 최신 서적 「마음 뇌 영혼 신(IVP)」도 여기 실린 기고문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낸시 머피는 논의를 개괄한다. 흔히 신학에서 '영혼(soul)'이라 부르는 것이 지금은 '뇌'의 기능으로 보인다는 것이 중점 사안이다. 이성, 감성, 도덕, 의지, 나아가 신과 관계성을 맺을 수 있는 영성까지 '뇌'로 환원될 수 있다는 것이 오늘날의 주장이다.

우선 낸시 머피는 고대 철학에서도 이원론과 일원론의 대립이 있었음을 주장한다. 플라톤이 이원론임은 분명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론은 이원론이라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물론 영-육에 대한 개념은 있었지만, 언제나 질료와 형상이란 개념으로 동시적으로 존재했으며 선재, 초월 등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 혹은 인간론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기독교 교부들도 플라톤을 따르는 전통(어거스틴),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르는 전통(아퀴나스)으로 나뉘었다. 그러나 근대 들어 획기적 변화를 맞는다. 데카르트는 영혼과 육체의 관계를 설명하려 했지만, 당대 물질주의자였던 토마스 홉스는 사고(thinking)란 그저 머리에서 일어나는 일, 감정이란 가슴에서 일어나는 일 정도라고 치부했다. 이 외에도 정신물리학적 평행론, 에피페노메널리즘(epiphenomenalism, 정신현상은 육체현상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정신현상수반설精神現象隨伴說-편집자 주), 논리 행동주의가 근·현대 들어 이어졌다.

그럼에도 오늘 현대 과학은 정신-뇌 동일성 이론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인간 본성에 대한 논의는 각 분야에서 조금 더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인간과 동물 사이의 연속성을 찾는 것도 하나의 생물학적 관심사이며, 이는 유전학에서도 특히 중요시 여겨지는 것이다. 그리고 신경과학, 인지과학, 인공지능 등의 분야도 인간 본성에 대한 실마리를 주는 중요한 연구다. 신학 자체도 발전했다.

구약학자인 휠러 로빈슨(H. Wheeler Robinson)에 의하면, 인격에 대한 히브리 개념은 헬라에서 주장하는 육체를 입은 영혼(incarnated soul)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몸(animated body) 그 자체다. 앵커바이블 사전도 이제 영혼(soul) 자체의 항목을 갖지 않는다. 낸시 머피는 이렇게 개괄 후 우리에게 네 가지 대안이 있다고 한다.

1. 급진적 이원론: 영과 육은 완전히 구분되어 있다.

2. 총체적 이원론: 인간은 영과 육이란 구별된 실체의 혼합이다. 그러나 전체인 하나로서 기능한다.

3. 비환원적 물리주의: 인간은 물리적 기관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사회 및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그 복잡한 기능은 도덕과 영성 같은 그 이상의 능력을 소유한다.

4. 환원적·소거적 물리주의: 인간은 물리적 기관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궁극적으로 물리적 학문들로 모두 설명 가능하다.

이 중 낸시 머피는 ①과 ④는 기독교적 가르침과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성급한 주장일 수 있다. 필자는 네 가지 대안 모두를 고려할 수 있는 신학이 필요하다고 본다.

본서 2장은 프란시스코 J. 아얄라(Francisco J. Ayala)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가르침과 진화학이 보여주는 인간과 동물 간의 연속성을 어떻게 조화시킬지를 다룬다. 그는 결국 진화라는 개념을 종의 문화에까지 확장한다. 인간이라는 종은 다른 동물과 달리 생물학적 진화를 초월할 수 있는 문화의 진화를 이룩한다는 것. 그 한 예가 바로 도덕성이다.

아알라에 의하면, 진화 용어로 설명될 수 있는 도덕 판단의 경향성은 그 도덕 기준이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 오히려 문화적 진화의 산물이다. 그는 이러한 종의 차이를 강조하며, 단순히 도덕이 종의 생존을 위한 것이라는 진화학자들의 의견을 반박하는 논증을 펼치고, 이러한 문화(종교를 포함)가 하나님의 형상임을 논한다.

3장은 인간 본성에 대한 '유전학적' 견해를 다룬다. V. 엘빙 앤더슨(V. Elving Anderson)은 인간 게놈 지노, 클로닝, 비만 유전자의 발견 등 최신 유전학적(1998년 기준) 견해 속에서, 인간 본성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있는지에 대해 논한다. 핵심은 유전자가 자체만으로 결코 인간 본성을 결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생물학적, 환경적 요소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인간의 중요한 것들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유전자는 인간 실존의 존재론적으로 필연적인 것이며 본성의 본질적인 것들로 간주될 만한 몇몇 중요한 것들을 포괄하지만, 절대로 본성의 충분 조건은 될 수 없다. 즉 그에 의하면 도덕이나 영적 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 것들에 어느 정도 유전적 요소가 개입하지만, 결국 개인의 고유한 선택은 전적으로 자신의 것이다.

4장은 어찌 보면 책의 핵심으로, '뇌, 정신, 행위'를 다루는 말콤 지브스의 글이다. 그는 정신과 뇌의 관계를 다루며, 뇌에서 물리적으로 현실화되지 않는 '정신적 사건'은 존재하지 않지만, 신경생리학적 분석이 결코 그 모든 사건들 전부를 설명할 순 없다고 말한다. 또 뇌의 특정 부위가 인지 과정이나 사회적 행동 과정에서 어느 부위에 반응하는지를 간략하게 얘기한다. 그러나 그것은 해석의 다양성으로 열려 있음을 지적한다. 어쨌든 그러한 뇌 연구는 자유의지나 인간의 책임성을 배제시키지 않는다.

5장은 인지 과학이 어떻게 영혼에 대한 이해에 기여했는지를 살피는 워렌 S. 브라운(Warren S. Brown)의 연구를 보여 준다. 그는 영혼의 실체가 없다면서, 기독교 전통에서 영혼에게 부여됐던 인간의 능력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는 전통적으로 영혼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자신과의 관계성, 타자와의 관계성, 신과의 관계성이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관계성의 능력은 언어, 일화 기억체계, 미래지향성, 사회적 행위에 대한 정서적 환기 등의 인지로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인지 능력들은 인간 종에서 발견되는 창발(emergence)이다. 이러한 창발적 속성들은 하위 레벨의 능력들에 의존하지만, 결코 그 하위 능력들의 총체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브라운은 이러한 인간의 관계성을 위한 창발적 속성이 곧 '영혼'이라고 주장한다.

6장은 낸시 머피의 입장인 비환원적 물리주의를 논한다. 그는 첫째로 환원적 물리주의를 비판하는데, 이는 말콤 지브스나 워렌 브라운의 논의에 꽤나 의존한다. 또 과학은 이원론이 틀렸다거나 물리주의가 참이란 사실을 밝힐 수 없다고 주장하고, 영혼이란 기독교 전통에서 언제나 신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가리켰음을 강조한다.

7장에서 조엘 그린은 '성경에 나타난 인간의 본성을 재검토한다'는 제목으로 신약을 조사한다. 신약은 저자마다 다른 개념을 갖지만, 적어도 누가와 바울의 경우 이원론적 주장을 하지 않는다. 신약을 지배하는 인간론은 존재론적 일원론이다. 특히 신약은 구원론적인 전체론을 주장한다.

물론 신약에 보면 이원론을 주장하는 듯한 구절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마태복음 10장 28절(누가복음 12장 4절)일 텐데, 여기서 사용된 영혼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프쉬케'로서 육체를 떠난 영혼을 가리키곤 한다. 그러나 여기서 예수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순교자에 대한 위로이지, 인간 실존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서 사용된 프쉬케는 영혼이라기보다는 생명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리고 바울의 구절 중 고린도후서 5장 1-10절은 겉사람과 속사람의 대조를 말하는데, 이 역시 구원에 대한 종말론적인 설명일 뿐 인간 본성에 대한 설명적 구절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이 외에도 주요 개념들과 구절들을 다루면서, 성경은 본질적으로 일원론을 주장했음을 논한다.

8장은 다소 신학적 논문이다. 레이 S. 앤더슨(Ray S. Anderson)은 인간 본성에 대한 신학은 피조된 세계의 물리적 요소에서부터 등장한 인간의 생명을 다루면서, 사회 속에서의 타인에 대한 참여, 그리고 창조주의 영원한 생명의 공유라는 관점을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혼'이란 단어 사용을 재고할 것을 주장한다. 이는 단순한 실체가 아니라, 윤리적이면서도 영적 차원으로 성숙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9장은 실천적 논문으로, 영육 이원론은 기독교 윤리뿐 아니라 서구 윤리 일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노예나 여성의 열등한 존재를 정당화시키는 잘못된 윤리의 근거로 작용되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는 이원론을 버린 채 비환원적 물리주의로의 이행은, 기독교 윤리를 향상시켜 줄 것이라고 역설한다.

10장은 결론으로서, 각 장 저자들은 대체적으로 비환원적 물리주의를 주장했으며, 인간 본성에 대한 과학적 이해의 과정은 기독교 신학에 대한 해체나 반대가 아니었음을 보여 준다.

우리는 오해가 많다. 생물학은 인간의 문화적 가치를 폄하하고, 유전학은 결정론을 말하며, 오로지 과학은 물리적 환원주의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과학적 접근에 겁을 내곤 한다. 그리고 성경은 오로지 이원론만 주장한다고 종종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실제로 과학이나 신학에 대한 오해와 섣부른 성경 읽기가 인간에 대한, 특히 영혼에 대한 이해를 편협하게 만들었다. 인간의 영혼은 꼬마 유령 캐스퍼처럼, 투명하면서 공간을 통과하지만 형체를 갖는 그런 이상야릇한 무엇이 아니다. 과학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오히려 다른 종에 없이 인간만이 가진 독특한 혹은 우월한 무엇이다. 그리고 신학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본서는 신학이 말하는 인간의 영혼에 대해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많은 폐단을 불러일으키는 삼분설 대 이분설 논쟁 혹은 유전설 내지 창조설을 넘어서는, 시대에 맞는 인간론을 전개할 수 있도록 도와 줄 것이다. 원제 「Whatever happened to the soul?: scientific and theological portraits of Human nature」. 

/진규선 목사
번역가, 서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