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호 박사(홀리랜드대학 구약학 및 유대학 교수).
▲정연호 박사(홀리랜드대학 구약학 및 유대학 교수).

영적 개안(開眼)의 길 - '시기'케 하라

사도 바울 역시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영적 소경이었다. 그는 로마서에서 자기 동족 유대인들에게 영적 소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한 가지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이방인들로 하여금 유대인들을 시기나게 하는 것이었다(롬 11:11-14). 그러면 시기나게 한다는 말은 무엇인가? 롬 11:11의 '시기나게'에 대한 헬라어 '파라젤로사이'(παραζηλῶσαι)는 '시기나게 하다, 질투나게 하다'는 뜻을 지닌 '파라젤로오'(παραζηλόω)의 부정사다. 이는 유대인들의 눈에 개와 같이 부정한 존재로 보였던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가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풍요한 영적 복을 누리는 되는 놀라운 변화를, 유대인들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말이다.

이처럼 부러운 마음을 불러일으키면 유대인들도 그런 놀라운 복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길이, 다름 아닌 그들이 버렸던 메시아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영적 눈이 열리게 된다. 그것이 바울의 '시기나게 함'이란 표현에 담긴 유대인 구원의 비밀이었다. 이는 바울의 간절한 자기 동족 구원의 열망-그의 열망은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고 말하고 있는 롬 9:3에 잘 나타나 있다-에 대한 주님의 응답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동족 구원의 간절한 열망을 이루는 방편으로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고, 이방인의 사도됨을 영광스럽게 여겼던 것이다(롬 11:13).

자긍하지 말라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복음을 전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그가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고(고후 11:24 이하) 온갖 환경적인 어려움(강, 바다, 광야 등)과 사람들(동족, 이방인, 거짓 형제들)의 어려움과 추위와 배고픔과 옥고 속에서도 기뻐하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힘의 비결은, 이방인들이 자기 동족 유대인들을 시기나게 할 것이며 그로 인해 동족 구원의 열망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에 있었다고 할 것이다.

사도 바울.
▲사도 바울.

그런데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이러한 사명을 기대하면서, 또한 그들에게 엄중한 경고를 하였다. 그것은 '자긍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인간은 잘되면 자기가 잘나서 그렇게 된 줄 착각하는 죄성의 존재임을 꿰뚫고 있었던 까닭이었을 것이다. 이방인들이 그런 복을 받게 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요 또한 유대인 덕분이었다. 인간의 죄성과 교만을 너무나 처절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바울은, 이방인들이 혹시라도 유대인들에게 잘난 척하고 교만할까 봐 "자긍하지 말라"(롬 11:18)고 경고했던 것이다. 그런데 바울이 분명히 경고했건만, 돌감람나무였던 이방인들이 자기 주제를 모르고 참감람나무요 원가지인 유대인들을 무시하고 학대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반-유대주의(Anti-Semitism)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에 대한 이방인들의 비난과 그에 따른 구체적인 핍박의 모든 내용은 '반(反)유대주의'라는 용어로 정리될 수 있다. 우리말로 '반유대주의'는 영어로 '안티-쥬대이즘'(Anti-Judaism)으로 표기되어야 하겠지만, 실제로는 흔히 '안티-세미티즘'으로 표기된다. '안티-세미티즘'이란 용어는 독일의 정치선동가 빌헬름 마르(Wilhelm Marr)에 의해 처음으로 창안된 것이다. 그는 유대인에 대한 기존 기독교의 편견과 증오심을 정치적으로 더욱 부추기기 위해, 1879년 9월 26일 유대인의 대속죄일에 '반유대주의 연맹'(Anti-Semitic League)을 창설하면서 처음으로 이 단어를 만들어 쓰기 시작하였다.

차별 배지를 단 유대인.
▲차별 배지를 단 유대인.

굳이 '안티-쥬대이즘'과 '안티-세미티즘'을 구별한다면, 전자는 유대인에 대한 종교적 편견과 증오를, 후자 인종적 차별과 핍박을 의미한다. 그러나 '반유대주의'가 '안티-쥬대이즘', 즉 유대인에 대한 기독교의 종교적 편견에서 출발하였지만, 중세에 이르면 유대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핍박으로 이어져 사실상 '안티-쥬대이즘'과 '안티-세미티즘'은 같은 의미로 쓰인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19세기의 빌헬름 마르 이후로 '반유대주의'는 일반적으로 '안티-세미티즘'이란 용어로 표기되고 있다.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자긍하지 말라'고 했던 예언적 경고는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서구교회의 귀에 전혀 들리지 않았고,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에 대한 교회의 '반유대주의', 즉 신학적 편견과 미신 숭배, 그리고 핍박의 결과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를 '저주의 이름' '원한의 이름'으로 각인시키고, 유대인들을 예수님에게서 더 멀어지게 하는 장벽을 만들게 된다.

정연호 박사

히브리대학 성서학 박사
홀리랜드대학(University of the Holy Land) 구약학 및 유대학 교수, 아시안 학생처장 및 부총장
이메일: johnchung@uhl.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