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주 목사
▲이상주 목사(하나로교회)

지난번에 생각한 말씀을 이어서 생각하겠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교회가 이 땅에 형성되면 그리스도의 지도를 받아서 성장한다는 것을 생각했지요? 한 개인도 마찬가지인데,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아 교회에 연합하면 그리스도께 연합한 교회와 함께 그리스도의 지도를 받아서 성장합니다. 예수 믿으면 그만이 아니고 교회가 성장한다는 것, 거기에 속한 구성원들이 자란다는 것, 지식부터 자란다는 것이 중요하게 생각할 일입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지도하고 자라게 하실 때 무엇으로 하시지요? 어떻게 교회를 그리스도께서 성장하게 하시는가요? 무엇으로 하십니까? 말씀과 성령으로 하신다고 했지요? 근거 구절이 어디에 있지요? 뭐, 꼭 근거구절, 명문화된 구절을 찾아야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근거 구절이 있는 것은 알고 있는 것이 좋지요?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를 다스리고 교회를 양육하여 성장케 한다고 했는데 그 근거 구절을 어디에서 들 수 있을까요? 하나 생각할 것이 로마서 10:17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라고 하지요? 여기 "들음"은 '들려오는 것', 들려오는 것인데, 들려오는 것이 뭘까요? "그리스도의 말씀"인데 그리스도의 말씀이 어디에서 들려옵니까? 성령께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시는 교회이지요? 교회에서 들려지는 것이 곧 '설교'이지요? 여기 "들음"은 '들려오는 것' '설교'인데, 성령께서 우리를 불러 모으셔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체적으로 자꾸 듣도록 하심으로 인식이 서고 인식체계가 서감에 따라 교회 전체가 교회답게 됩니다. 교회는 이렇게 지식부터 자꾸 축적이 되어서 자라갑니다.

이 말씀, 로마서 10:17 말씀 이전에 이미 구약 시대에 약속하신 말씀이 있는데 이사야 59:21입니다. 거기 하나님께서 "나의 신과...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영토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 神이 계속 교회에 임하도록 하신다는 약속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있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신과 하나님의 말이 교회에 계속 있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이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또 66권의 성경의 완성으로 1차 성취되었지요?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로 계시면서 말씀과 이 성령으로 교회를 다스립니다. 말씀을 하시고 또 성령의 능력으로 다스립니다. 말씀을 하시는 것을 쓰셔서 각인들에게 인식을 전환시키면서 깨우치시고, 성령께서 깨우치시고 그래서 지식부터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처럼 생각하도록 양육하십니다. 하늘의 그리스도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자꾸 양육을 시켜서 성숙시킵니다.

○'은사'에서 몇 가지 생각할 점

말씀과 성령으로 이렇게 교회가 자라도록 하실 때 그럼 어떻게 하시는가? 예수님께서 교회를 성장하게 하실 때 무엇으로 하십니까? 말씀과 성령으로 하시는데, 어떻게 하십니까? 예수님께서 직접 오셔서 '아, 이렇게 하자! 이런 생각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음성을 드려주시는 것이 아니지요? 그분의 음성을 대언하는 '사람'을 세우시지요? 앞에서 본 로마서 10:17에 "...들음은" '설교'는 "그리스도의 말씀"이라고 하지요? 그리스도께서 직접 오셔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사람을 세워서 대언하게 하시지요.

또 그리스도의 말씀을 설교하기만 하면 저절로 다 깨달아서 그리스도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지요?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아니지요? 성령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쓰셔서 조명하시고 깨우쳐 주셔야 깨닫게 되지요. 깨우쳐 주시고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래서 깨닫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습니까? 그래서 말씀과 성령은 항상 같이 붙어 있는데요, 이 성령께서 우리 모두가 더욱 더 잘 깨닫고 성장하도록 가르치는 은사인 목사를 세우실 뿐 아니라 각양 은사를 성원들에게 다 주십니다. 가르치는 은사도 세우실 뿐 아니라 서로 봉사하는 은사를 각각 다 세웁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베드로전서 4:10. 여러 지체가 한 몸으로 이루고 있는 것처럼 우리 모두가 다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다는, 몸체를 이룬다는 것은 성령께서 주신 은사를 취하고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모든 지체들이 다 은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를 성장케 하려고 우리를 다 참여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은사를 잘 배워야 하지요? 은사를 잘 알아야 하지요.

지난번에 본문에 나오는 아홉 가지 은사를 생각했는데, 은사를 생각할 때 몇 가지 생각할 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성령과 말씀으로 교회를 성장케 하려고 우리를 다 참여시켰다는 것입니다. 본문 28절을 보면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하고 사도의 은사부터 방언에 이르기까지 당시 교회 안에 있던 은사를 대표적으로 말합니다. 여기 직분을 말하고 은사를 말하는 것은 직분도 은사라는 말이지요? 모든 은사는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쓰시기 위하여 세우십니다. '너희들끼리 한번 해보라' 하고 직분과 은사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쓰시려고 주십니다. 따라서 셋째, 은사와 직분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쓰시도록 겸손히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쓰실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아무리 은사와 직분이 잘 갖추어 있어도 주님의 뜻을 잘 몰라서 자신을 드릴 수 없으면 무용지물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연합한 모두에게 은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은사가 무엇인지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못 깨달으면 있으나 마나 하다는 거지요. 가령 목사의 은사가 주님의 말씀을 잘 받아서 전하는 일에 자신을 드리지 않으면 무용지물이지 않습니까? 다른 무슨 효과를 나타날지라도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서 가르치고 목회하는 일에 자신을 드리지 않으면 교회가 성장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을 알뿐 아니라 우리 각자 자신을 주님께 드린다는 게 중요합니다. 드릴 수 있으려면 인식이 바꾸어야 하지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은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계속 배웁니다.

우리나라 교인들 중에 '은사' 하면 무슨 병 고치는 은사나 방언이나 예언하는 은사 같은, 그런 것도 하나님께서 가르친 말씀에 근거를 두고 한 말이 아닌 그런 것을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래서 무슨 은사주의자들과 같이 행하는 그래서 은사집회까지도 있는 줄 압니다. 말씀을 전체적으로 잘 못 배워서 그렇습니다. 은사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주시기 때문에 은사와 직분을 주님께서 쓰실 수 있도록 반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이 쓰실 수 있도록 잘 반응하기 위하여 주님의 뜻을 알아야 하지요? 그래서 지금 은사에 대하여 계속 배웁니다.

은사를 생각할 때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할 점은 성경에 나오는 은사가 21세기를 사는 우리와 전혀 다른 시대에 주어진 은사라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은사도 고린도교회에 필요한 은사를 대표로 말한 것입니다. 좀 더 넓게 보면 사도 시대에 은사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사도들이 전하여 세운 교회 아닙니까? 지금도 여기 바울 사도의 지도를 받고 있고 지금 우리가 배우는 고린도전서 12장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앞에 보낸 서신이지요? 그러니까 21세기를 사는 오늘 우리와 전혀 다른 시대임을 생각해야 하지요? 유대인을 중심으로 이룬 예루살렘교회나 이방인을 중심으로 이룬 고린도교회 또 그 밖의 소아시아에 있는 교회나 다 그 시대, 동 시대의 교회이고 사도 시대의 교회이고 당시에 동일한 그리스도의 교회임을, 유대인들이 구성하고 있는 예루살렘교회나 이방인들이 구성하고 있는 고린도교회 또 여타의 교회와 똑같이 그리스도의 교회임을 확증하기 위하여 은사를 말한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의 은사나 예루살렘교회의 은사나 다 동시대, 사도시대에 있었던 은사인 것을 생각하고 봐야 합니다.

특히 또 첨부해서 생각할 것이 당시는 신약 성경이 없는 때이지요? 지금과 다르지요? 오늘 우리는 구약, 또 신약 성경이 완결되어 있고 이 성경을 통하여 말씀과 성령으로 다스리는 사실을 잘 알고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이루고, 각양 은사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신약성경이 아직 없던 때이므로 당장 그리스도의 복음을 분별해야 하는 때입니다. 지금은 어떤 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인지 성경을 잘 해석하기만 하면 금방 알 수 있잖아요? 그러나 당시는 분별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택할 수 있어야 그것을 힘주어 가르칠 수 있습니다. 아무 거나 가르치면 다른 영에 의해 가르칠 수 있으므로 그런 점을 분별하여 그리스도의 복음만 선별하여 가르쳐서 교회를 세워야 하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영들 분별의 은사가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요즘 은사주의자들이 신비하게 사람의 마음을 다 아는 것처럼 '너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하면서 사람 속을 다 보듯 하는 것이 "영들 분별"의 은사가 아닙니다. 성경계시가 없던 때에, 신약 성경이 없던 때에 복음의 말씀을 분별함으로 주어진 영들 분별 은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직접 관련이 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성경을 놓고 '이것이 성경적이다, 그것은 성경에서 벗어난 것이다!' 하고 분별하는 은사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벗어나면 성령의 은사일 수 없습니다. 성경 말씀과 성령은 같이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언의 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언이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지요? 당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은사자라야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여 전할 수 있기 때문에 예언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이걸 은사주의자들처럼 무슨 사람의 앞일을 미리 알려준다고 점을 치듯 하여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예언의 은사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은사를 주실 때 주님의 교회에 주시고 교회를 그리스도처럼 성숙하도록 주십니다. 개인이 무슨 점쟁이 노릇하라고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성령으로 교회를 다스린다는 것을 생각하고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것이니까 또 하나 외국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필요가 있기에 외국 말, 방언이지요? 방언의 은사가 필요했고 또 능력을 보여야 하기에 특히 사도임을 나타내 보이기 위하여 능력 행함이나 병 고치는 은사도 주셨습니다. 능력 행함이나 병 고치는 은사, 방언의 은사 역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밝히 드러내려고 주신 은사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잘 보고 해석해야 하지요? 주님께서 어떤 상황에서 계시하셨는지 고려하는 것이 없이 성경을 보면 자기 시대에, 그게 한국 사람이면 한국 시대 한국적인 정황, 인식, 학습된 인식체계, 또 그것이 일본 사람이면 일본 사람들 시대 그 사람들의 정황, 문화, 그런 인식 체계, 이런 자기 선입관으로 성경을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성경을 가지고 말하고 주장하면서도 결국 성경에서 벗어난 말이 됩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생각한 몇 가지를 상고하면서 은사를 생각하고 본문을 살펴봐야 합니다.

○사도

본문 28절 앞에 보시지요.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여기 첫째, 둘째, 셋째,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은사의 경중 때문입니다. 즉 어떤 은사가 더 중요하고 어떤 은사는 그다음이고 그다음인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먼저 '사도'는 "첫째는 사도요" 했듯이 첫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주님께서 교회를 건설하시기 위하여 쓰시는 제일 중요한 은사입니다. 그래서 "첫째는 사도요" 합니다. 사도는 예수님을 따르던 열두 제자들이지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천국 복음을 전하면서 사역하실 때 열두 제자를 먼저 택하여 세우시고 가르치셨습니다.

누가복음 6:13에 보면 예수님께서 "(13)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다"고 합니다. '사도'(使徒)란 '심부름꾼 사' 자에 '무리 도' 자로, '심부름 하는 무리'라고 할 수 있는데, 헬라어는 '아포스톨로스'로 '파견된 자', '보냄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보냈으니까 예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지요? 예수님께서 이들을 불러서 복음을 가르쳐서 사도라 칭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는 임무를 주시고 파송하셨습니다. 파송하실 때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40.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서 이 세상에 오셨고, 하나님을 증거하셨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도로 세우셔서 파송하실 때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과 사도들을 동일시 하셨지요? 사도를 이렇게 격상시켰지요. 사도를 영접하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신 것은 사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를 믿고 그들이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것이 그리스도를 받고 믿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예수님과 함께 동행 하면서 그분이 하시는 일을 보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배웠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 부활하신 것을 목격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가르친 복음을 믿고 영접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사도의 일

사도들을 좀 더 생각하면 이 사도들의 주 임무가 무엇이지요?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워서 깨달았으니까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전하는 거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사도를 제자로 삼으셔서 따로 세우시고 천국 복음을 전부 다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죽음과 부활로 성취하셨습니다. 이를 사도들이 다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사도들이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복음을 다 깨달았다는 것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원들에게 가르친 말씀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는데, 오늘 본문에서 앞으로 더 나아가서 15:3~4에 보면 바울이 '내가 받은 것을 너희에게 전했다!'고 하면서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합니다. 여기 "성경대로"를 반복하여 말하는데, "성경대로"는 무엇인가요? 당시는 신약이 없으니까 '구약성경'을 말하지요? '구약성경대로 죽고 부활하셨다'는 것은 아주 간단한 말이지요. 그 간단한 말인데 그 말 안에는 그리스도가 누구시고, 그분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핵심적으로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구약성경에서 말한 것을 다 성취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구약 성경을 잘 배우면 그리스도를 잘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 성취하신 그리스도를 설명한 계시 신약을 잘 배우면 그리스도를 훨씬 더 폭넓게 깨달을 수 있지요? 그런 깨달음을 사도들이 다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다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당시 제자들은 구약 성경을 잘 알았고 구약의 지식이 있었는데, 그리스도 안에서 다 성취되었음을 배워서 다 깨달은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이 사도들이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더 분명하게 가르치셨습니다. 지식으로 알고 있을 뿐 아니고 어떤 일을 할 것인지를 가르치셨습니다. 한 곳을 찾아보시지요. 마태복음 28장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인데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사도들에게 마지막 명령을 하신 내용인데요, 28:18부터 읽겠습니다.

"(18)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생각할 점은 첫째,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가라!'는 명령이지요? '모든 지역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오늘 우리와 다른 명령을 받았지요? 모든 지역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이 어디에서 일할지를 정해주셨습니다. '모든 지역'이지요? 사도들이 일할 지역은 '온 세상'입니다. 오늘 목사와 다르지요? 목사는 지 교회에 매여 있어야 하는데 사도들은 온 세상입니다.

또 둘째, 모든 지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이 명령에 따라 사도들은 어느 한 지역에 매이지 않았지요? 모든 지역에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모든 지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은 다른 말로 하면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은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모든 교회가 받아야 할 구원의 복음이란 말입니다.

사도들은 주님께서 깨우쳐 주신 복음을 다 전했습니다. 사도행전 20:27에 보면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합니다.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말하는데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했다"는 것은 구원의 기초 도리뿐 아니라 주님의 교회를 이루는데 필요한 모든 도리를 다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천당간다'는 도리만 가르치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했다"고 할 까닭이 없지요? 예수님께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안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셨는데, '세례를 주라'는 것은 '교회를 형성하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형성하라'는 것인데, 사도들이 '교회를 형성하라'는 말만 했을까요? 예수님께서 '너희는 교회를 이루어야 한다', 하실 때는 교회관도 다 가르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사도들도 그 복음을 전하여 여기저기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설해놓았습니다.

또 교회는 사람의 힘으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성령으로 세운다는 것을 가르치고, 그 교회에 은사와 직분을 주셔서 이끌고 성숙시켜 가신다는 것도 가르쳤습니다. 지금 우리가 배우는 내용 아닙니까? 또 이 교회에 참여한 자들이 제사장 사명을 부여 받아서 주님 앞에서 예배를 행하도록 한다는, 이 예배와 관계된 것도 가르쳤습니다.

○사도성

따라서 어느 교회든지 참 교회라고 자처하려면 사도들이 가르친 복음을 다 믿고 따라야 합니다. 물론 시작은 '예수 믿으면 천당 간다'는 도리부터 시작하지만 거기서 그리스도와 결합하는 것이고, 그렇게 결합된 교회가 말씀과 성령의 지도를 받아서 존재하고 양육을 받는다는 것, 주님께서 직분과 은사를 쓰셔서 교회를 양육한다는 것,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답게 세우신다는 것 등등의 도리를 전체적으로 자꾸 전해야 참 교회입니다. 한마디로 교회는 사도들이 가르친, 신학이지요? 사도들이 가르친 것과 사도들이 믿는 신앙 위에 서야 참 교회입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께서 땅에서 사역하실 때 목격했던 자들입니다. 또 땅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시고 하늘에 오르신 그리스도를 대변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을 말씀으로 부르시고 교회를 세우시는 분인데, 그 그리스도의 대변인이 사도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도들'을 '교회의 터'로 삼으셨습니다. 에베소서 2:20에 말하지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었다" 하고 교회를 말합니다. 사도들의 가르침과 신앙이 토대가 되지 않는 교회는 주님의 교회일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16:18에서 예수님께서 '내 교회를 세우리라' 하시고 사도들에게 임무를 주실 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가 주님의 교회인데 그것은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과 교훈을 떠나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무슨 외형을 잘 갖추었어도 사도들이 가르친 복음과 신앙을 다 받지 않으면 교회가 아닙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1:7에 '사도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이 없다'고 하지요? '만약 사도가 전한 복음 외에 것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8절)고 합니다. 교회가 아니라는 거지요?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사역과 모든 일을 다 전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직분은 열두 사도들이 세상을 뜬 다음에는 계승되지 않았지요? 예수님께서 단번의 희생제사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이루셨습니다. 구원의 일을 위하여 다시 무엇을 더 이루어야 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의 그 일을 사도들이 다 전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일을 또 더할 다른 사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교회가 다 믿어야 합니다. 한 마디로 사도성이 교회에 있어야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이런 점을 4세기 후반에 콘스탄티노플 공회에서 명확히 고백했습니다. 그것이 니케아 신경으로 고백한 것인데 거기보면 "우리는 하나의 거룩한 보편의 사도적 교회를 믿습니다."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교회, 그리고 사도적 교회여야 합니다. 교회가 사도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벌써 고대 교부들 시대에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니케아 고백을 받고 확정하여 사도들의 노선에서 성경을 부지런히 배웁니다. 교회는 사도성이 있어야 합니다. 즉 그들이 가르치고 믿고 나간 것을 따르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중심한 신약, 또 구약을 잘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교회답다'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사도의 터 위에 서는 것은 그들이 전한 복음을 잘 배우고 그리스도를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 가면 됩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교회를 성장케 하신다는 그 원리를 바로 인식하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말씀을 경청하고 복습하고 자꾸 깨달아 가면 사도성이 확보됩니다. 주님의 말씀을 떠나 느슨하면 점점 교회가 타락합니다. 우리가 사도를 보지 못했고 또 그들과 함께 하지 못하지만 그들이 가르친 복음인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서 믿고 점점 자라면 사도직을 계승한 교회가 유지됩니다. 이를 떠나면 교회가 아무리 보기 좋고 선하게 보여도 교회일 수 없습니다.

○선지자

본문으로 돌아가서 28절을 보면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하지요? 여기 선지자는 구약의 선지자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지요? 초기 교회에 주신 은사인데, 당시는 사도와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교회를 가르치고 다스렸습니다. 사도행전 13:1에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하고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합니다. 안디옥교회는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여러 명 있지요? 바나바도 있고 사울도 있습니다. 이들이 다 선지자와 교사입니다. 사울은 우리가 아는 바울인데, '사울'은 히브리식 이름이고(빌 3:5 참고) '바울'은 헬라식 이름입니다(행 16:37 참고). 이 바울은 사도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 '선지자나 교사'라고 합니다. 바울이 사도지만 선지자이고 또 교사도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한 사람이 여러 은사를 함께 가졌다는 말이지요?

지금 '선지자'를 생각하는데, '선지자'가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예언을 하는 사람이지요. '예언'은 '앞의 일을 미리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요.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예언자, 혹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입니다. 당시는 계시가 주어지던 때이고 기록계시는 구약뿐이니까 무엇보다 복음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확정해야 합니다. 아무 것이나 '이것이 복음이다' 하고 결정하면 안 되니까 사도들이 그런 일을 주도하여 합니다. 그때 선지자들이 함께 협력하여 했습니다. 사도들의 전한 복음을 선지자들도 동심협력하여 한 것입니다.

한 예를 들면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구원하는 일은 이런 것이다', 하고 분명하게 결정하는 것은 오늘 우리처럼 쉽지 않습니다. 물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일, 승천하신 일은 말할 수 있으나 그 사실을 믿는 자에게 어떻게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칭함을 받는지, 또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들이 확정한 충분한 복음의 내용이 성경으로 완결되어 있기에 구원을 확증하고 교회를 세우는 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성경 말씀을 전체적으로 전하고 배우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그 복음의 사실이 어떻다 하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12:6에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하라고 합니다. 여기 '믿음'은 사도가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가 전한 복음의 범위 안에서 예언을 하라'는 것입니다. 마치 오늘날 기록계시 범위를 넘어서서 무엇을 가르치면 안 되는 것처럼 당시는 사도가 전한 복음의 사실, 그리스도께서 땅에서 행하신 행적이나 가르치신 것, 십자가의 일과 부활의 일, 승천의 일, 이런 것을 넘어서서 무엇을 말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선지자들의 활동과 기여는 사도적 복음 안에 포함이 됩니다. 오늘 사도직을 계승한 참 교회는 사도와 함께 선지자들의 가르침도 받고 있는 거지요?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 전하는 자

또 그다음 여기 본문에는 없는데요, 에베소서 4:11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직분자를 세운 것을 말하면서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그다음에 "복음 전하는 자"를 말합니다. '복음 전하는 자'란 말 그대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를 말합니다. 사도행전 21:8에 보면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이라고 합니다. 빌립은 누구지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집사'이지요? 집사인데 '전도자'라고 합니다. 사도행전 6장에 보면 예루살렘교회가 처음 섰을 때 그 교회에 당장 구제와 관계하여 필요한 직분이 집사이지요? 이때 빌립이 집사가 되었습니다. 그 집사를 '전도자'라고 한 것은 교회에서 재정을 담당하는 일뿐 아니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에디오피아의 여왕 간다게의 내시에게 복음을 전한 일도 있습니다. 스데반이 죽은 다음에 사마리아에서 가이사랴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행 8:5~40).

빌립뿐 아니고 디모데도 전도자라고 합니다. 디모데후서 4:5에 바울이 디모데에게 특별히 부탁하기를 "전도인의 일"을 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빌립이나 디모데 같은 사람은 사도들과 함께 혹은 홀로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고 교회를 세운 자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전도한다는 전도인들과 다르지요? 아직 계시가 완결되기 전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성령의 능력이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지금도 성령의 능력을 힘입지 못하면 교회를 세울 수 없으나 당시는 특히 그렇습니다. 복음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하고, 분별한 복음을 전체적으로 가르쳐서 교회를 양육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벧전 3:15). 이런 점을 생각하면 오늘 전도자와는 훨씬 다르지요? 당시 복음 전도자는 구약의 말씀이 그리스도에게 성취된 사실, 그 복음을 가지고 전하여 교회를 양육하는 능력까지 갖추어야 합니다.

○교량 역할을 한 전도자

성경을 보면 사도가 가는 곳마다 복음이 전파되고 그리고 교회가 서게 되었지요? 복음이 전해진 곳은 다 교회가 형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세우면 바로 주님께서 각각 은사를 주셔서 그 교회를 맡아서 가르칠 장로를 세우는데, 그 장로가 복음을 가르치는 일을 맡아서 하게 됩니다. 그런 장로가 곳곳에서 세움을 받았는데, 때로는 디모데 같은 전도자를 보내어 장로를 세우기도 하고 또 그들을 붙들어 교회를 잘 가르치고 다스리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복음 전도자'도 결국 초기 교회에서 주께서 복음을 확정하고 교회를 세우시는 일에 아주 비상하게 쓰신 은사입니다. 성경에 어떤 사람이 선지자고 어떤 사람이 복음 전도자인지 뚜렷하게 구분하여 말하지 않습니다. 또 전도자들이 무엇을 가르쳤는지, 복음을 전할 때 무슨 말을 했다는 것이 별로 나오지 않습니다. 전도자들의 활동이나 그들이 가르친 내용이 무엇인지를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것은 그들이 사도를 도와서 일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확정되어 가는 시기에 봉사한 자들이기 때문에 이들의 말과 활동을 따로 기록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들의 활동과 전한 말이 다 사도들에게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에서 열두 사도만 활동한 것이 아니지요? 선지자들이 사도들과 협력을 했고 또 복음 전도자들이 사도들과 함께 협력해서 일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들과 선지자들, 그리고 복음 전도자들이 함께 교회를 세우기도 하고, 복음이 확정되게 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별히 '이것이 복음이다' 하고 확정할 때 단숨에 다 알아서 확정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처음 교회가 설립된 때만 해도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회개하고 나와서 세례를 받고 교회를 형성하게 되었지요? 이렇게 순식간에 교회가 서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니까 많은 이들이 회개하고 교회가 형성이 되었는데, 사도들이 그 현실을 직접 보면서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훨씬 더 실제적으로 깨달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교회를 세우리라!" 하셨고 "세례를 주라"고 하셨는데 '아, 그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고 실제적으로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계시를 더 잘 수용하여 복음을 확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에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가 함께 활동하면서 기여했습니다.

이렇게 선지자나 복음 전하는 자의 활동이 사도와 어우러져서 당시 주님의 교회를 건설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런 교회가 계승이 되어서 지금 우리에게까지 왔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도적 교회로 서가야 하고, 그것은 곧 사도들이 전한 신약성경 말씀을 복음으로 믿는 거기에 사도직만 아니고 선지자직과 복음 전도자 직분도 다 함께 받는 것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주께서 교회를 세우실 때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세상 끝 날까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교회가 선다는 것이 유효합니다. 교회는 언제나 사도와 선지자들이 가르치고 믿는 터 위에서 섭니다. 거기서 그리스도의 교회로 든든히 서 갈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하시지요. 다음에 사도, 선지자, 복음 전도자, 이어서 직분을 생각하겠습니다. 현재도 유효한 직분이 감독, 혹은 장도들인데요, 이 '장로들'이 현재는 장로, 목사, 이렇게 나누어지는데 그리고 집사 직분, 이것이 성경 말씀에서 나온 것인지, 사람이 만든 것은 아닌지, 이것을 알면 현재 사도와 선지자 전도자의 직분이 없는데 이것은 왜 그런가, 하는 것도 좀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다음에 오실 때 고린도전서 12장과 에베소서 4장, 그리고 로마서 12장을 함께 읽고 오시기 바랍니다.

○기 도

자비하신 주님, 주님께서 구원하신 저희를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게 하셔서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들로 삼으시니 감사하옵나이다. 이렇게 주님의 상속자들이 된 저희가 이 땅에 남아 살아가는 동안 하늘의 그리스도에게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도록 양육을 받아 갈 수 있게 하시옵나이다. 성령의 은사를 주셔서 이것을 쓰셔서 저희를 그리스도의 몸답게 서 갈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을 저희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가르쳐 주시고 양육하여 주시니 감사하옵나이다. 저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이나 이렇게 주님께서 성령으로 깨우쳐 주시고 주님의 뜻을 말씀으로 인식하여 저희의 인식을 바꾸어 주시기에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따르고 성장해 가게 되옵나이다. 이로써 주님께서 저희를 구원하신 목적이 다 이루게 하실 것이옵나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