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석 선교사.

‘원리주의’란 기독교 용어로서, ‘근본주의’(Fundamentalism)라고도 한다. 원리주의는 1920년 미국의 복음주의자들(Evangelical) 가운데 과격한 일파를 지칭하는 데 처음으로 사용됐다. 이후 1940년에 등장한, 전통적이면서도 과격한 무슬림을 ‘이슬람 원리주의자’(Islamic Fundamentalist)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용어는 어디까지나 비(非)이슬람 세계, 특히 영어권에서 이들에게 붙여 준 이름이다. 실제 이슬람 세계에서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라는 용어를 기분 좋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신에 주로 이슬람주의(Islamism) 혹은 이슬람주의자(Islamists)라는 말을 더 선호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모든 무슬림들은 원리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어떻게, 어느 정도까지, 이슬람을 현대에 적용하는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1. 이슬람 원리주의의 정의(定義)

이슬람 원리주의는 꾸란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는 운동이다. 이슬람 사회가 서양 사회에 예속된 원인을 이슬람의 타락으로 보고, 초기 이슬람의 순결한 정신과 엄격한 도덕으로 돌아감으로써 재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슬람은 초기에 정교(政敎)일치의 지도이념으로서 움마(umma, 이슬람공동체)라는 강력한 정치체제의 근간이 되어 왔다. 그러나 강력했던 이슬람 공동체 내부의 분열과 함께 서구의 이슬람권 진출과 이에 따른 서구 사상의 유입으로, 이슬람 세계는 서구의 가치를 따르는 정치이념이나 아랍 민족주의 같은 세속적 정치이념에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과거 찬란했던 이슬람 세계가 최근 유럽 열강들의 정치적·경제적·군사적 지배 하에 놓이게 되면서, 서구 사상과 제도의 영향으로 무슬림 공동체가 이교적 경향과 세속주의 풍조로 변질되어 가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고 여겼다. 그래서 무슬림 선각자들은 무슬림 세계의 몰락과 쇠퇴 요인이 진정한 이슬람에서 이탈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본래의 순수한 이슬람’으로 돌아가는 것이 무슬림 공동체를 회복시킬 수 있는 길이라고 여기며, 과거 찬란했던 이슬람 세계의 부활을 외치고 있다. 이러한 운동을 ‘이슬람 원리주의’라고 한다.

2. 원리주의 운동의 역사

정치적 세력으로서의 이슬람 원리주의는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메디나(Medina)로 이주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무함마드 사후에도 이슬람 안에서 쇄신과 개혁, 개선을 외치는 운동은 지속적으로 일어났는데, 이러한 운동들이 비록 순전히 정치적인 목적으로 진행된 것이라 할지라도 대개는 종교적 대의를 앞세우며 전개됐다. 주동자들은 대의명분의 원천을 꾸란과 무함마드의 순나(Sunnah, 무함마드의 관행)에 두었으며, 그 궁극적 목표는 ‘순수 이슬람으로의 회귀’이고 ‘올바른 이슬람의 부활’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이슬람 정화(淨化)운동으로서의 원리주의는 9세기에 시작됐다. 

9세기 초에 아흐마드 이븐 한발(Ahmad ibn Hanbal, 780-855)의 이슬람 정화운동이 있었다. 이슬람이 성장하면서 새롭게 정복된 국가의 토속종교와 섞여서 그 원형이 변질되어가자, 이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운동이 살라피 운동(Al-salafiyya)이다. 살라피 운동은 꾸란과 무함마드가 남긴 말들을 원문 그대로 이해하고, 결코 은유적 해석을 하지 않으며, 이슬람 초기 시대의 살라프(Salaf, 先祖)들이 남긴 관행을 그대로 좇자는 운동이었다. 살라프들은 꾸란이 계시된 것과 예언자의 말과 행동을 직접 보거나 전해 들은 사람들로, 꾸란과 순나의 가르침을 첨삭 없이 순수하게 실행했던 사람들로 인식된다. 그래서 이들이 남긴 관행들도 어느 시대의 무슬림에게나 꾸란과 순나 다음으로 누구나 존경하고 따라야 할 이슬람의 근원적인 지침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슬람의 원초적인 부활을 외치며 꾸란과 순나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러한 원리는 18세기와 19세기를 걸쳐서 진행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븐 한발의 사상은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의 기초가 되었다.

18세기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은 그 이전까지의 이슬람 팽창정책이 심각하게 쇠퇴하면서 무너진 ‘서구에 대한 이슬람의 우월감’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됐다. 아라비아반도는 이슬람이 시작된 지역이라는 과거의 찬란했던 영광에서 밀려나, 여러 부족으로 분열됐다. 구심점을 잃은 이슬람 사회는 점차 신앙심을 잃어 타락하고 부패한 사회로 인식되어, 종교적·사회적 정화가 요구됐다. 쇠퇴해 가는 이슬람 사회의 회복을 위하여 이슬람 신학자였던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하비(Muhammad ibn Abd al Wahhab, 1703-1792)는 지역 족장인 무함마드 이븐 사우드(Muhammad ibn Saud, -1765)와 동맹을 맺어 종교-정치 운동인 와하브주의(Wahhabism)를 창시했다. 이 운동의 추종자들은 이 운동이 선지자 무함마드의 지도 아래 7세기에 이슬람의 시작을 재현한 것이라고 믿었고, 이 믿음 안에서 아라비아 반도의 종족들을 통일했다. 비록 이 운동은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의해 점차 세력이 약화되었지만, 사우드가의 자손인 압둘 라지즈 이븐 사우드(1876-1953)에 의하여 오늘날의 사우디아라비아를 세우는 데 영향을 주었다. 

▲이슬람의 위협 속에서도 의연하게 서 있는 레바논 교회. ⓒFIM국제선교회

새뮤얼 헌팅턴(Samuel P. Huntington, 1927-2008)은 이슬람에게 있어서 이슬람 부활은 종교개혁과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고 본다. 이슬람의 부활은 정치적 영역에서 지하드를 가졌고, 완전한 사회에 대한 이상이 있고, 근본적 변화를 지향하고, 기존의 권력과 국민 국가를 거부하고, 근대적 개량주의자에서 폭력적 혁명주의자에 이르는 다양한 분파를 거느리고 있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그러나 더 좋은 비교 대상은 종교개혁이다. 이슬람의 부상과 종교개혁은 기존 제도의 침체와 부패에 대한 대응이라는 공통성을 갖는다. 그래서 모두 자기 종교에게 더 순수하고 엄격한 형태로 복귀할 것을 요구하고, 근면·질서·규율을 강조하면서 활력 있는 새로운 중산층에 점차 호소력을 얻는다. 

20세기에 들어와 현재적 의미의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을 대중적 바탕 위에 추진한 세력은 무슬림형제단(al-Ikhwan al-Muslimin)이다. 이집트의 청년 교사 하산 알반나(Hasan al-Banna, 1906-1949)가 많은 사람들과 이슬람 부흥을 토론하고 무슬림 사회의 개혁, 이집트 정치 문화의 개혁을 도모할 목적으로 1928년에 창설했다. 이 운동은 1940년대 이후 무슬림 세계의 여러 나라에 영향을 미쳐,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조직원 수는 100만 명에 이르렀고 조직은 5,000개의 지부에 달했다. 또한 그의 무슬림형제단은 오늘날까지 무슬림 세계 여러 곳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각종 원리주의 운동의 모체가 되었기에, 그를 20세기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의 효시가 되는 인물로 간주한다. 

그룹 내에서 이슬람 급진 사상을 더욱 체계적으로 정리한 사람은 사이드 쿠툽(Sayyid Qutb, 1906-1966)이다. 그는 공무원으로 재직하던 당시 미국에서 인종차별, 성적 자유, 친이스라엘 정책에 환멸을 느끼고 반미주의자로 돌아섰다. 결국 공무원을 사임하고 무슬림형제단에 입단한 그는, 서구의 자본주의나 공산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를 이슬람 이전의 무지의 시대(자할리야: Jahiliyah)로 규정하고, 이슬람이 그 대안적 이데올로기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나아가 쿠툽은 관용을 강조하는 꾸란의 지시는 이슬람이 정치적으로 승리하고 진정한 이슬람 국가가 세워진 후에야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무슬림들에게 예언자 무함마드를 모델로 하여 주류사회에서 떨어져 나와 지하드에 참여하라고 말했다. 비록 쿠툽은 1966년에 처형당했지만, 모든 수니파 원리주의 운동은 쿠툽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는 호전적인 지하드의 아버지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 그는 무슬림 세계 전역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급진 운동들의 세계관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며, 현대 이슬람 부흥주의의 순교자로 존경을 받고 있다. 

3.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의 세 가지 특성 

첫째, 원리주의자들은 정치와 종교가 하나인 정치이념을 제공한다. 즉 그들은 꾸란과 하디스(무함마드 언행록)에 근거한 샤리아(이슬람법)를 모든 정치·경제·교육·사회·가족 문제에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법체계는 ‘인간이 만든 것’인 반면에, 샤리아는 알라가 인간을 위하여 부여한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구의 세속주의로 인하여 그들의 가치관이 도전을 받고, 가족제도·시장경제·문화가 파괴되는 것을 전 이슬람의 위기로 보고, 이러한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그들의 가치관과 신앙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으로 나타난 것이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인 것이다.

둘째, 이슬람 원리주의는 폭력을 정당화한다. 지하드(jihad)는 폭력 사용 정책을 지지하는 이슬람 교리이기 때문에, 이슬람 원리주의의 조직체 수백 개 가운데 약 75%가 군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슬람 원리주의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명분은 ‘우주적 전쟁’(Cosmic jihad)이다. 이슬람은 선이고 타종교나 세속적 서구는 악이기 때문에, 폭력을 통해서 악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슬람 지하드는 폭력을 정당화한다.   

셋째,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선교활동에 적극적이다. 무슬림들에게는 종교적으로 이슬람을 세상에 전파할 의무가 있다. 꾸란 34장 38절에도 “우리는 너희를 모든 민족에게 파송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슬람의 다와(dawah, 선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그것은 비무슬림에게 이슬람으로 개종하라는 초청의 의미와, 무슬림으로 태어난 자들에게 더 나은 무슬림이 되라는 부름의 의미이다. 

그러나 모든 무슬림들이 이슬람 원리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실상 무슬림 가운데는 일반적인 무슬림(Secular Muslim), 종교적 무슬림(Traditional Muslim), 헌신적인 무슬림(Committed Muslims)이 있다. 더 세분화한다면 일반적인 무슬림 가운데 세속적인 무슬림과 무신론적인 무슬림이 있다. 이들은 전체 무슬림 가운데 약 70%를 차지한다. 그들은 종교에 관심이 크지 않다. 다만 문화적으로 이슬람 종교를 믿기에 자신을 무슬림이라고 말할 뿐이다. 종교적인 무슬림 가운데 전통적인 무슬림과 수피파에 속하는 무슬림이 있다. 그러나 비록 이들이 이슬람의 전통을 잘 따른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인 무슬림과 함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이들은 약 15%를 차지한다. 헌신적인 무슬림 가운데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도 약 15%를 차지한다. 헌신적인 무슬림 입장에서는 일반적인 무슬림이나 종교적인 무슬림도 세속적인 무슬림으로 본다. 

다양한 종류의 무슬림이 있다고 해도, 모든 무슬림은 “이슬람의 예언자인 무함마드에 의하여 지하드가 시작되었고, 지하드로 인하여 이슬람이 성장하였다”는 사실에 모두가 동의한다. 따라서 이슬람의 세력이 성장하면 할수록, 무슬림들이 무함마드의 삶과 꾸란을 알아가면 갈수록, 세계의 이슬람화를 위한 지하드는 점점 증가하게 될 것이다.

유해석 선교사는

총신대학교(B.A.)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equiv.)을 졸업하고, 영국 웨일스대학교 신학/이슬람학부에서 철학석사(M.Phil) 학위를 받았다. 또한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Ph.D) 과정을 수학했다. GMS 파송선교사로 오엠선교회와 협력해 이집트에서 사역했으며, 현재 FIM국제선교회 대표로 있다. 저서로는 ‘우리 곁에 다가온 이슬람’(생명의말씀사)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