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석 선교사.

종교개혁자 불링거(Johann Heinrich Bullinger, 1504-1575)는 존 칼빈(1509-1564)보다 시대적으로 약간 앞서며 더 오래 살았다. 그는 스위스 취리히의 종교개혁자로서, 40년 이상 교회를 효과적으로 이끈 탁월한 지도자일 뿐 아니라 신학자요 설교자요 역사가였다. 그는 모든 면에서 상담과 위로를 베풀었고, 도시에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 헌신적 노력을 다했다. 아주 적은 수입으로 과부, 고아, 이방인, 망명자들에게 그들이 어떤 신앙을 가졌든지 상관치 않고 음식, 의복, 돈을 나누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영국 메리 여왕의 폭정 때문에 대륙으로 피신해 온 개혁자들을 극진히 대접했다. 또한 돌아간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그는 동료들에게서도 극찬을 받았다. 베자(Theodore Beza, 1519-1605)는 불링거를 “모든 기독교 교회들을 돌보는 만인의 목자”라고 했고, 글로스터의 주교 후퍼(John Hooper, 1495-1555)는 불링거에게 보낸 서신에서 “존경하는 아버지이자 안내자”라고 경의를 표하였다.

불링거는 일생 동안 12,000통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편지를 썼으며, 이는 영국의 헨리 8세와 에드워드 6세, 에드워드식 개혁의 수많은 지도자들에게 미쳤다. 불링거는 엘리자베스 시대에는 다수의 영국 고위 성직자들과 만났는데, 이는 그가 이전에 메리 여왕의 박해를 피해 대륙으로 왔던 다수의 개신교 지도자들을 환대했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여왕 자신도 교회 일과 관련해 보다 엄격한 칼빈주의자들보다는 불링거에게 더 많은 조언을 구하였으며, 1570년에 이르러 교황 피우스 5세가 영국교회와의 단절을 선언했을 때, 그에 대한 답을 불링거에게 준비하도록 요청했다. 영국은 불링거가 별세한 날을 공공 재난일로 선포하고 애도할 만큼 그를 존경했으며 사랑했다.

1. 불링거와 이슬람

이슬람 세력인 터키와의 전쟁이 종교개혁 시기의 다양한 배경을 형성하였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특히 합스부르크 왕가와 오스만 제국 사이의 다툼은 불링거의 목회 배경을 형성하고 있다. 8세기 초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그리고 대부분의 북부아프리카는 이미 무슬림들에 의하여 함락당했으며, 711년에는 스페인도 이슬람권에 편입됐다. 13세기에 칭기즈칸의 서진(西進)으로 말미암아 이슬람 제국의 형성이 와해되는 듯 보였으나, 오스만(Osman, 1258-1326)에 의하여 이슬람 세력들이 재정비됐다. 이후 그와 그의 후손들이 터키를 중심으로 오스만 투르크라는 이름으로 기독교권인 유럽에 진출하게 된다. 이슬람 군대는 1500년에 알바니아(Albania)를 정복했는데, 그 4년 후에 불링거가 태어났다. 그리고 루터가 34살의 나이로 종교개혁의 기치를 들었던 때, 불링거는 13세 소년이었다. 이후 터키 이슬람 군대는 술탄 슐레이만(Sueleyman, 1520-1566)과 그의 후손들에 의하여 서유럽의 동부 경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1541년에는 헝가리에 대한 그들의 지배를 공고히 하였으며, 1546년에는 몰다비아의 전부가 터키에 의하여 지배당하게 됐다.

2. 이슬람에 대한 불링거의 견해

다음은 조직신학자 김성봉 박사의 논문 “이슬람에 대한 종교개혁자 불링거의 견해”를 요약한 내용이다. 불링거의 견해는 한 마디로 ‘이슬람은 기독교 이단’이라는 것이다. 그가 1566년에 펴낸 것으로 추정되는 「제2 스위스 신앙고백」을 보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고백하면서 이슬람의 가르침을 잘못된 것(Irrlehren)이라 하였는데, 이는 이단이라는 뜻이다. 그 단락의 마지막에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하시고 예배 받으실 만한 삼위일체 하나님을 모독하는 유대인들과 무슬림 등 모든 이단자들을 정죄한다”고 했다. 그는 아랍어에 능통한 취리히 신학자 테오도르 비블리안더(Theodore Bibliander, 1506-1564)에게서도 전문적 지식으로 도움을 받아 꾸란을 읽었으며, 불링거의 성경 주해를 보면 이슬람을 적그리스도의 나타남으로 판단했다.

1) 그의 책 ‘터키(Der Tuergg)’

불링거는 1567년에 “터키(Der Tuergg)”를 출간했다. 여기에서 터키란 당시 오스만 투르크와 함께 그들의 종교인 이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 책의 제목은 “이슬람”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것이 이슬람에 관한 불링거의 가장 중요한 책이다. 그는 이 책의 표지에 요한계시록 9장 16절과 17절을 실었다. 그는 그 시대에 터키인들이 유럽으로 물밀듯이 쇄도해 오는 모습을 보며, 어떤 종말적인 분위기를 느꼈음에 틀림없다. 책의 첫 장 제목이 “터키인들의 신앙과 거짓 선지자 무함마드에 대하여”다. 그 책의 첫 문장은 “터키인들의 신앙은 무함마드의 신앙이다”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바로 이어진 문장에서 그는 무함마드를 교활하고(listig) 비열하고(dueckisch) 위선적(glychssnerisch)이라고 특징지었다. 둘째 장의 제목은 “기독교 신앙만이 참된 신앙이다”인데, 첫 문장이 “한 마디로 하나의 오래되고 참되고 거룩하고 의심할 여지없는 신앙이 세상의 시작부터 있었는데…”라며 기독교 신앙이 진리임을 천명하였다.  

2) 꾸란의 기원

불링거에게 있어서 꾸란은 고대 기독교 이단들의 모음집에 불과하다. 꾸란을 하나님이 아니라 무함마드에게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그는 무함마드가 자신의 계시와 비전(vision)을 고안했다고 주장하면서, 그 자신이 선지자라고 하는 무함마드의 주장을 거절한다. 불링거는 “꾸란은 기독교 이단 사제의 도움과 유대인의 조언이 함께 섞였으며, 아리안(Arians), 마케도니안(Macedonians), 네스토리안(Nestorians)과 같은 이단들에 의하여 부패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지성적인 사람이 어떻게 꾸란을 믿을 수 있는가에 대해 의아해했는데, 그가 보기에 꾸란은 진리의 왜곡, 우화, 꿈, 거짓말, 속임 등으로 가득 차 있는, 신성모독적 책이었다. 그가 보기에 무함마드는 예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성취한 사람이었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나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였는데, 어떤 다른 사람이 그 자신의 이름으로 오자 너희가 그를 영접하였다”(요 5:43) 그러므로 불링거는 꾸란에 대해 신적 메시지로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꾸란적인 신앙에는 거짓, 쾌락 추구, 정복 충동과 같은 부정적인 특성만 있을 뿐이다.

3) 꾸란의 가르침 -그리스도에 대하여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에 근거한 칭의인 데 반하여, 이슬람 신앙은 무슬림 개인의 선행에 근거한 칭의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계명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낙원의 쾌락을 추구하기 위하여 지하드에 참전한다고 보았다. 이런 종교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지 않다. 불링거에 의하면 꾸란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그리고 삼위일체와 같은 기독교 교리를 거절한다. 꾸란은 예수가 하나님의 선지자였다고 여기면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부인한다. 대신에 무함마드는 자신을 그리스도의 위치에 두었다. 불링거는 요한일서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인용한다. “아들을 부인하는 자는 누구든지 아버지를 모시지 아니한다”(요일 2:23) 꾸란은 또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의 유일한 중보자 되심을 부인한다.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이 같은 부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기독교 신앙의 주된 교리를 부정한다는 의미이다. 불링거는 무함마드가 금식, 기도, 구제, 지하드, 이슬람 때문에 전투에서 순교하는 것 등으로 죄의 용서를 얻는다고 여기는 길을 고안해 낸 데 대한 책임을 묻는다. 불링거에게 있어서 행함에 의한 구원에 대한 무슬림의 믿음은, 교황의 면죄와 마찬가지로 펠라기우스적(Pelagianisch)이다. 불링거는 펠라기우스 이단에서 이슬람과 가톨릭의 공통적인 특징을 드러내고, 그 둘 다에서 칭의의 결정적인 바른 이해가 결여되었다고 주장했다.

4) 꾸란의 가르침 -영생, 예배, 결혼, 일부다처

불링거는 영생, 예배, 결혼, 그리고 정부 등에 관한 꾸란의 내용이 근본적으로 기독교 신앙에 도전한다고 말한다. 꾸란은 영생을 제시하지만, 육체적인 방식으로 한다. 꾸란은 그것을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영예와 성공과 부를 여기서 받을 것이며, 나중에 육체적인 쾌락, 가장 좋은 음식, 질 좋은 음료, 그리고 아리따운 여자들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한다. 꾸란은 일부다처로 말미암아 결혼을 파괴하며, 무죄한 여인들을 남자들의 쾌락과 충동에 예속되도록 한다. 무함마드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꾸란을 멸시하는 자들을 핍박하도록 명하였다. 또한 터키인들의 비인간적인 잔인함, 여인들과 소녀들에 대한 부끄러운 처신, 그리고 임신한 여인들과 소년들의 사지를 절단하고 창자를 끄집어내는 일들을 기술하였다. 무함마드는 정복전쟁에 칼을 사용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명령을 어겼으며, 그런 면에서 무슬림을 뮌스터의 재세례파들과 비교했다.

불링거는 이슬람의 발흥과 성공의 이면에는 기독교인들의 악한 삶이 있다고 하였다. 불링거는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벌하시는 것에 빗대어 이슬람의 성공을 설명한다. 헝가리 개신교도에게 보낸 서신에서도, 헝가리와 동유럽에 대한 오스만 제국의 침략은 우리 모두의 죄악과 관련된 것임을 밝혔다. “…우리의 죄악이 (하나님의) 회초리를 벌었다.” 구약의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법에 머무르지 아니할 때에, 믿지 않는 이방인을 통하여 그들을 벌하셨다.

불링거는 이슬람을 세 가지 관점으로 접근한다. 첫째, 윤리적인 관점(경건의 형식을 부인하는 것, 일부다처, 폭력과 지하드)이다. 둘째, 신학적 관점인데, 기독론적 주제와 구원론적 주제에 대한 그의 분석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특별히 이 신학적 관점은 교황과 터키의 융합이 종말론적으로 이끌린다. 셋째, 이슬람에 대한 그의 흥미와 관심은 개념에 있어서 대단히 역사적이다.

3. 불링거가 주는 교훈

이슬람에 대한 종교개혁자들의 견해를 다루면서 우리가 받는 교훈으로는 다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겠다. 하나는 분별의 척도를 확보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그것을 근거로 경계할 것은 경계하되 그들에 대해서도 역시 선교의 대상으로 여기며 긍휼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이런 점은 특히 불링거에 있어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우리 시대에 이슬람을 보면, 기독교와의 유사성과 차이성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불링거에 의하면 이슬람은 기독교 진리를 심각하게 왜곡한 이단인데, 많은 경우에 있어서 불경건하고 잘못됐다. 무엇보다도 우리 신앙의 근간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고백인데, 이슬람에서는 유일신에 대한 고백은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에 대한 고백은 없다. 우리 신앙에 있어서 핵심적인 내용은 대속의 은혜인데, 예수의 주 되심을 부인하는 그들에게는 대속이 없고, 공덕에 의한 구원만이 있을 뿐이다. 이슬람이 기독교의 구원 진리를 심각하게 왜곡한 점에 있어서는 당연히 경계의 대상이다. 우리 시대에 그들이 아무리 평화의 미사여구로 접근해 올지라도, 그들의 정체를 바로 알고 경계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그들 또한 전도와 선교의 대상이란 점에 있어서 긍휼의 여지는 있다. 특히 이 점은 불링거에게 있어서 돋보인다. 이슬람에 대한 불링거의 평가는 극단적으로 비판적이지만, 그는 또한 하나님의 백성 밖에 있는 자들의 믿음과 삶에 대하여 보다 긍정적인 암시를 제공한다.

유해석 선교사는

총신대학교(B.A.)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equiv.)에서 공부했고, 영국 웨일스대학교 신학/이슬람학부에서 철학석사(M.Phil) 학위를 받았다. 또한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Ph.D) 과정을 수학했다. GMS 파송선교사로 오엠선교회와 협력해 이집트에서 사역했으며, 현재 FIM국제선교회 대표로 있다. 저서로는 ‘우리 곁에 다가온 이슬람’(생명의말씀사)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