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주 목사(하나로교회)

○하나 되지 못하는 원인 - 죄

그런데 이 일이 무산이 되었지요?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습니다(롬 5:12). 분열이 왔습니다. 

이제 더 이상 한 몸이라고 하는 말이 맞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분열이 온 것은 바로 최초에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그 ‘죄’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마귀의 말을 더 솔깃하게 듣고 독립을 선언한 그것이 기독교의 죄입니다. 

죄라고 하면 일차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무슨 법규를 어기거나 국법을 어긴 것이 죄가 아니고 참 교회가 말하는 죄란?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을 따르지 아니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죄를 지금 우리나라 교회적 상황에서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순종치 않는 것이 죄라고 말해야 하는데, 이것은 말씀을 전하고 전체적으로 전하는 설교가 있는 데서 할 수 있는 말입니다. 

풍성하게 전하는 설교가 있는 데서 순종하느냐 안 하느냐를 말해야 성립이 되지요? 조금 전하고 편파적으로 전하고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옳은지를 분별할 수 있는 자료가 없는 데서는 판단 기준이 없어서 무엇이 죄고 아니다 하는, 순종이다 아니다 하는 것을 말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잘 몰라서도 못하지요? 

아무튼 기독교의 죄란 하나님과 ‘반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반목한 결과 인간 상호간에도 한 몸이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은 사람의 노력으로는 도무지 하나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말도 다르고 민족이 서로 다르고 성별이 다르고, 그래서 하나를 이룰 수 없습니다. 
인류 역사 이래로 끊임없이 통일을 이루려고 일치하려고 노력을 해 왔으나 번번이 실패했지요? 역사 이래로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모두 실패한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를 이루지 못하는 원인이 무엇이지요? 이사야 59:2에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랐다’고 합니다. 

하나님 사이가 갈라져 있으면 사람끼리도 일치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 되지 못하는 문제의 핵심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어 ‘반목’한 때문입니다.

○하나를 이루심 - 십자가의 피로

하나를 이루려면 결국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해결해야지요? 하나님 앞에서 죄를 먼저 해결해야 사람 상호간에 하나를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죄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근본 죄는 인간 스스로는 도무지 할 수 없기 때문에 영원의 세계에서 하나님께서 특단의 조취를 취하신 것이 바로 친히 일하셔서 죄를 없이하신 것입니다. 

한 곳을 찾아보지요. 로마서 3장입니다. 제한된 이 땅에 독생자를 보내셔서 죄 없이 하시고 그분께 연합시켜 주셨습니다. 로마서 3장 25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여기 “화목제물”, 우리가 잘 알지요? 무엇을 가리킵니까? “화목제물” 하면 우리가 연상되는 것이 무엇이지요? 얼른 생각할 수 있을 텐데요? 

“제물”, ‘히라스테리온’(i`lasth,rion)이란 단어가 신약에 세 곳이 나옵니다. 지금 읽은 이 로마서 3:25 하고, 요한일서 2:2, 4:10에 나오는데(히브리어, ‘카포레스’), 이 단어는 지성소에 있는 언약궤를 덮는 덮개를 말합니다.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양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서 그 법궤의 덮개에 일곱 번 피를 붓습니다. 그 피를 보시고 주님이 예배자의 죄를 사하시고 죄에서 해방시켜서 하나님과 화목합니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림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풀고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하셨습니다. ‘화목’이 무엇이지요? 화목, ‘화목’은 무슨 악수하고 ‘우리 서로 잘 지내보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화목이란 그리스도께서 성부의 ‘분노를 달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분노가 무섭지요? 사람도 분노하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지요? 조절이 필요합니다. 옛날에 임금이나 왕이 분노하면 참으로 무서운 일이 일어나잖아요? 이걸 달래야 합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노하시면 다 쓰러버리십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옛날에 그 대제국의 왕에게 진노하시니까 그 느부갓네살 왕이, 그 대왕이 짐승같이 되어서 7년을 그러고 지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입니다(잠 1:7). 

주님께서 어떤 때 분노하시죠? 죄가 있을 때, 그 죄를 돌이키고 회개하지 않을 때 분노하십니다. 느부갓네살에게도 심판을 보여주셨는데도 회개하지 않자 단번에 진노하셔서 늑대같이 울고 다니고 소같이 풀을 뜯었습니다. 

이런 주님의 진노는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주님의 분노를 달래주셨습니다.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그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은 주님께서 분노를 멈추고 화목합니다. 

골로새서 1:20에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존재도 없이 사라질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진노를 피할 뿐 아니라 진노하신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었습니다. 얼마나 큰 복입니까? 

에베소서 2:14부터 보면 “(14)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찾아보시지요. 에베소서 2:13~16까지 읽어볼까요? 14절부터 읽어보시지요. 14~16절까지.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15)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8절에는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라고 합니다.

여기는 죄로 막힌 담을 허시고 하나를 이루신 목적까지 말씀합니다. 하나를 이룬 목적은?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서 예배하는 것이란 겁니다. 

우리 개인이 어떻게 아버지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까? 도무지 불가능한데 주님의 분노를 달래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서는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다는 것이 이렇게까지 중요합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한 곳을 더 찾아보지요. 갈라디아서 3장입니다. 바로 앞에 있지요?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가? 3:26~28까지 읽어봅시다. 

“(26)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여기 “믿음으로 말미암아” 했지요?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위하여 희생되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말미암아”란 말입니다.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세례로써 표징하지요? 세례로써 하나님 앞에 객관적으로 확증하고 그리스도의 교회에 참여합니다. 

세례의 실질로 현재도 성찬 앞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합니다. 세례와 성찬이 이렇게 중요하지요.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보시고 노를 발하시나 그리스도 안에 딱 숨어서, 교회를 이루어서 주님 앞에 담대히 나아갑니다. 

이 교회 안에는 “(28)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한 자들이 연합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를 이루었으니까, 앞에서 말했지요? ‘한 몸’이면 어떻다고요? 무엇을 두고 ‘한 몸’이라고요? 삶의 목표하고, 삶의 목표를 이루는 방식이 같기 때문에 한 몸이라고 했지요? 

삶의 목표가 무엇이라고요? (세민이 삶의 목표가, 공부하는 목표가 뭐예요? 이하나 공부하는 목표가 뭐예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잖아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목표하고 살아가지요? 또 그것을 이루는 방식은? 그 방식은 주님의 말씀을 좇아서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고 나오는 자가 교회에서 행하는 세례를 받으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고 지체가 됩니다. 또 성찬의 한 떡에 참여하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룹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와 연합한 결과 다른 지체와도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룹니다. 이제는 삶의 목표와 그 목표를 이루는 방식이 같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합니다. 

성경에 철천지 원수 지간을 표현할 때 어떻게 표현한다고요? 유대인과 헬라인 사이라고 하지요? 그런 철천지 원수 지간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를 이룹니다. 

왜 그렇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자리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또 하나님의 계명을 배우고 그것을 행하여 살되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한 목표를 향하여 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려는 마음에서 서로 공존하고 긴밀히 협력합니다. 혼자 살지 않지요? 혼자 사는 게 얼마나 두려운가? 그래서 교회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