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중생과 성령님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예수님은 밤에 찾아온 바리새인 니고데모를 맞아 중생하지 못한 사람은 주께서 무슨 말씀을 하셔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8절에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바람은 눈에 안 보이니 앉아가지고서 바람소리만 듣고도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성령으로 난 사람은 하나님의 영으로 낳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을 받지 않은 사람이 성령으로 난 사람하고 이야기를 해봤자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 일은 우리감각의 대상이 아니므로 느낄 수가 없고, 이성의 대상이 아니므로 이성적 사고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신령한 일을 지상에서나 천상이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꼭 뭐와 같으냐하면 외국 나라말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외국인과 앉아서 서로 쳐다보고 아무 대화도 못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서로 쳐다보고 웃고 손 놀리고 해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지 않습니까?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 믿는 사람들과 앉아서 이야기를 하면 정말로 절단강산입니다. 하늘의 일과 땅의 일이 소속이 다른 사람이 되어서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3차원 물질세상에서 4차원 영계의 일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거듭나 4차원의 영적인 인간이 되어야만 신령한 세상, 즉 4차원의 세계를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거듭난다”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정치인들도 새로운 정치로 거듭나겠다고 공약하고, 기업도 새롭게 거듭나겠다고 홍보를 합니다. 또 악하게 살던 사람이 선하게 살면 거듭났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아무리 새롭게 바꾼다고 해도 그것은 ‘육으로 난 것은 육’입니다. 잡초에다 물을 주고 비료를 주고 아무리 정성을 다해서 가꾼다 해도 잡초가 장미로 변하지는 않습니다. 잡초를 뽑고, 장미를 다시 심어야 장미꽃이 피는 장미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죄인으로 태어난 인간은 아무리 애를 써도 4차원의 영적 세계를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요 3:6)’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죽었던 영이 살아나서 영적인 세계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 성령님의 세계

성령님의 세계에 들어온 사람만이 성령의 세계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죄 사함을 받았고, 성령이 여러분 속에 임재하심으로 성령의 세계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두 세계 속에 살고 있지요. 이 세상에 육으로 태어났으니까 육신의 세계, 3차원의 세계에 대해서 잘 압니다. 대화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하나 다른 것은, 또 여러분 예수님을 믿어 영적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영의 세계 일도 잘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육을 통해서는 육의 세계와 접하고 있고, 속에 계신 성령은 성령을 통하여 영적인 세계도 알고 있는 희한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과도 소외될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 세상 말을 하고 세상을 나누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이 절대 모르는 영적인 일도 여러분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 4,000년은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의 시대로 아들 예수님과 성령께서는 아버지 안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의 예수님은 천사모습으로 나타나서 일하셨으며 우리 하나님 아버지 뒤에 서서 늘 일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써 일을 하셨지, 단독적인 일은 하지 않았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로 2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가 처참하게 파괴되어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게 됐다. 다 파괴됐으니까 혼돈하고 공허하게 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오직 하나님의 성령은 수면에 운행하고 있었습니다. 운행한다는 것은 일을 할 준비를 하고 계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도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은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인데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으로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 4000년 동안에는 야훼 하나님, 그리고 성령은 하나님의 영, 야훼의 영, 아들은 하나님의 말씀,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 4000년이 지나고 예수님이 세상에 태어나서 3년 동안 공생애 시대에 들어가자 아버지와 성령께서는 아들의 뒤에 서서 일하신 것입니다. 아들의 시댑니다. 이제는.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시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시고 하나님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선포한 다음에 3년 반 동안 예수님이 정면에 나타나서 역사하셨고 아버지와 성령은 예수님 배후에 서서 예수님을 도우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행 10:38)’. 하나님이 함께 예수님 배후에서 일을 하셨지 정면에 나오시지 않은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4절에 보면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아버지와 성령은 예수님 배후에서 증언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2000년 시대는 성령께서 선두에서 일하시고 아버지와 아들은 성령 안에서 일하시는 때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어 장사지냈다가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고 오순절 날에 성령이 강림하셨을 때, 그 때부터는 성령시대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시대는 성령시대인 것입니다. 성령시대가 2000년동안 계속되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2.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

이제는 아들을 계승한 성령님 다른 보혜사가 우리를 다스리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누구냐? 예수님의 일을 계승하신 다른 보혜사인 것입니다. 구약 시대가 아닙니다. 아버지 시대가 아닙니다. 아버지는 일 마치셨습니다. 신약시대, 아들의 시대, 예수님의 시대는 예수님이 다 이루셨습니다. 이제는 삼위일체 중에 성령의 시대에 와서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을 대변해서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세 분 하나님이 한 분 하나님으로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학적으로 깨닫기가 퍽 어려운 것입니다. 세 분이 한 분이고, 한 분이 세 분으로 나와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전적으로 하나로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 세 분 다 따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영적 진리는 그냥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성으로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 속에 아들이 있고, 성령이 계시고, 성령 속에 아들이 계시고, 아버지가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시대적으로 보면 구약에는 아버지 하나님이 주장하셨고, 신약 초기에는 아들 하나님이 책임지고 일하셨고, 오늘은 성령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일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아버지를 알고 아들 예수님을 믿고 아는 것입니다.

아들을 계승하신 성령님은 예수님이 영으로 오신 것과 꼭 같습니다. 예수님과 너무 똑같기 때문에 예수님이 육으로 가고 영으로 오신 것과 꼭 같은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라’.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나는 가지만 하나님이 또 보낸다. 다른 보혜사. 나와 꼭 같은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낸다.

이게 예수님이 말씀하신 다른 보혜사의 이름을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다르다는 헬라어는 ‘알로스’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알로스” 이것은 하나 다른 것. 두 개가 있는데 다르지만은 꼭 같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서로 섞여버리면 너가 너고 내가 내고. 꼭 같은 다른 것입니다. 쌍둥이도 꼭 같진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성령님은 꼭 같습니다. 하나님이 또 보내신 분이 다른 보혜사, ‘알로스 파라클레토스’ 영 다른 것은 ‘헤테루스’ 라고 말합니다. 그건 두 개가 영 다릅니다. 그러나 알로스는 똑같은 다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사이 과학이 발달되어서 대량생산하는데 가보면 똑같은 것이 쫙 만들어져 나오지 않습니까? 똑같은 것. 그러므로 예수님을 알려면 성령님을 알면 되고, 성령님을 알고자 하면 예수님을 보면 안다고. 예수님과 성령님은 꼭 같은 것입니다. 파라클레토스란 말은 뭐냐면 보혜사란 말인데 예수님께서 나는 첫 보혜사다. 성령님은 다른 보혜사를 또 보내신다. 보혜사는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셔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 자를 보혜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와 항상 함께 있다. 여러분이 같이 있어 달라고 사정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책임지고 우리를 돌보기 위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서 우리와 항상 같이 계신다. 그 분이 보혜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똑같은 돕는 하나님이 예수님의 복음을 조금도 차이가 없이 전하면서 우리에게 돕는 자가 되시는 것이 성령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로 14절에 보면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성령님은 예수님에 대해서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예수님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지 예수님 밖의 일은 절대로 말씀 안하시는 것입니다.

요사이 훌륭한 주의 종이라고 자부하면서 자기가 성령이라고 하는 사람이 다 나옵니다. 그것은 성령이 아니라 미친 영인 것입니다. 거기에 따라가면 큰일 납니다. 이단과 사설은 성령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귀신의 말을 듣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이단 사설인 것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과 꼭 같은 영으로써 예수님의 것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첫 보혜삽니다. 성령님은 똑같은 다른 보혜사인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십시오. “처음 보혜사 예수님.”

그 다음에 성령은 “다른 보혜사 성령님.” 그런데 예수님과 성령님은 똑같은 보혜사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이 하실 사명을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려 다 이루어놓으시고 승천하시는데 성령님은 이 예수님이 이루어놓으신 일을 상속받아서 온 천하에 알리는 것이 성령님이 하시는 역사인 것입니다. 성령님은 그 이외 성도들에게 용기와 힘, 담대함과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로 27절에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위로를 주시는데 성령은 우리들에게 특별한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8절로 11절에 보면, 예수를 믿고 하나님 백성 된 우리에게 지혜의 은사를 주셔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지식의 은사를 주셔서 하나님의 감추인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고, 믿음의 은사를 주시고, 병 고치는 은사를 주시고, 능력 행함의 은사를 주시고, 예언의 은사를 주시고, 영 분별함의 은사를 주시고, 방언의 은사를 주시고, 방언 통역의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은사를 성령께서 필요할 때 필요한 사람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6절로 8절에 보면 섬기는 은사도 주시고, 가르치는 은사도 주시고, 위로의 은사도 주시고, 구제하는 은사도 주시고, 다스리는 은사도 주시고, 긍휼을 베푸는 은사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로써 사명을 받아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 때,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특별한 능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특별한 능력이 즉, 은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 앞에 “하나님 내가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은사를 주시옵소서.”

방언의 은사, 방언 통역의 은사, 예언의 은사, 지혜로운 말 하는 지혜의 은사, 지식의 은사, 영분별의 은사. 귀신인지 성령인지 분별하는 영분별의 은사, 그 다음 기적의 은사. 굉장한 기도를 해서 기적이 일어나게 하는 기적의 은사, 방언 말하는 은사, 방언 통역의 은사, 섬기는 은사, 남에게 가르치는 은사, 위로의 은사, 구제하는 은사, 다스리시는 은사, 긍휼을 베푸는 은사. 이런 은사를 주님께 구하면 우리가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이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17절로 19절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좌우간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 약한 것 같으나 하나님의 은사가 있기 때문에 말할 수 없이 강한 것입니다.

3. 성령님과 우리의 관계

성령님과 우리의 관계를 우리가 반드시 꼭 알고 믿어야 되는데, 예수님과 꼭 같은 인격자를 성령님이라고 합니다. 성령은 지식이 있고, 감정이 있고, 의지가 있기 때문에 인격자인 것입니다. 그냥 살아있는 영이 아닙니다. 인격자인 것입니다. 우리와 같이 지식이 있고, 감정이 있고, 의지와 결단력이 있는 성령님, 성령님을 우리가 성령님 인정합니다. 환영합니다. 모셔 들입니다. 의지합니다. 극진히 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격자이기 때문에 손님이 우리 집에 오면 “올라오십시오. 이리 앉으십시오. 무슨 차를 마시겠습니까?” 대화가 되는 것입니다. 인격적으로 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우리에게 손님이 왔는데 “너 누구야? 저 구석에 앉아. 목마르거든 우물에 가서 두레박으로 물 퍼서 마셔.” 그러면 인격자로써 대우를 하지 않기 때문에 거기에 있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극히 사랑의 정성을 다하여 성령님을 인격자로 모셔 들이면 성령이 기쁘게 우리와 같이 계신 것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모시면 성령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모든 것을 기억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를 하면 성령이 운행을 하십니다. 창세기 1장 2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운행한다는 것은 일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신 것은 우리 생애에 운행하셔서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면 성령이 운행을 하시는데 어떻게 운행을 하시느냐? 성령은 여러분의 생각을 통해서 운행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에 하나님이 꼭 해주셔야 할 일을 생각나게 하는 것입니다.

생각이 달라지면 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말이 달라지면 행동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행동이 달라지면 환경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생각이 달라진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지요.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하고 교제할 때, 우리에게 운행하신다. 생각을 가지고 운행하십니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길로 가도 운행하시는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고, 병 고침을 받고, 축복을 받고, 하나님을 섬기고 나갈 수 있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을 여러분에게 주셔서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이여, 하나님 생각을 내게 부어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생각을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그렇게 해야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여러분에게 꿈을 통해서 운행하시는 것입니다. 큰 꿈도 있고, 적은 꿈도 있는 것입니다. 적은 꿈은 계속 이루어져가고 있고 계속 하나님 주시고 이 세상에서 살면서 많은 꿈을 갖고 많은 꿈을 이루고 살 때, 보람차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백성을 망한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꿈이 없으면 성령이 운행하지 않습니다. 꿈이 있을 때 성령이 꿈이 있는데서 운행하여 그것이 이루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팔렸어도 성령이 요셉이 꿈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 꿈을 통해서 운행하셔서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게 만들어 주지 않습니까? 꿈이 있으면 성령이 꿈을 가지고 운행을 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세계 최대의 교회를 세워주실 것을 꿈꾸고 있었는데 성령이 그 꿈을 가지고 운행을 하신 것입니다. 그 꿈이 없었으면 성령이 일 안하셔요. 그 꿈을 가지고 있으니까 성령이 운행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모 대학 교수님께서 간증한 것을 읽고 내가 감격을 느꼈는데, 시골 조그마한 농촌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고등학교 졸업 맞고 은행원이 되어서 월급 받아 아버지 고생하는데 보태드려서 아버지가 동생들 교육비로 사용하도록 해야 되겠다.” 그것이 꿈이었습니다. 시골 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원이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하계 수련회 가서 수련회 강사가, “요셉의 아들들이여, 큰 꿈을 가져라!” 거기에 마음이 탁 붙었습니다. 은행 직원이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그것 아니고 큰 꿈을 가져라. 그래가지고 꿈을 바꾸었습니다. 꿈을 바꾼다는 것은 운명이 바꾸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에라, 나도 대학교를 가야되겠다. 대학을 갈 바에는 서울대학을 가야겠다.”

엄청나게 그때부터 그 꿈을 가지고 공부를 했는데 그 학교에서 졸업할 때 1등을 하고 졸업했어요. 서울대학에 합격이 됐습니다. 그 다음에는 대학을 마치고 나와서 청와대 직원 뽑는데 사무관으로 합격되었었습니다. 그 다음 계속해서 대학교수로 나가게 됐는데 자기가 꿈을 이루니까 동생들이 다 보고서, “우리 형님 반만 되자. 형님같이 못되고 반만이라도 되자. 우리도 꿈을 가지고 나가자.” 그래가지고서 동생 다섯이(가) 형의 꿈을 본떠서 꿈을 갖고 일한 결과에 성령이 역사하셔서 모두다 고등고시에 합격해가지고서 모두 판사와 검사가 됐습니다. 형 한사람이 꿈을 바꿈으로 온 가족의 꿈이 달라진 것입니다. 꿈이 있으니까 성령이 운행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나빠도 내 마음이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지라도 내가 꿈을 가지고 있으면 성령이 그 꿈을 통해서 운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름다운 생애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성령이 운행하시면 나쁜 것이 없습니다. 가정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을 때도 꿈을 가지고 기도하면 성령께서 운행하여주셔서 가정이 아름다운 가정이 되고, 나라도, 세계도, 꿈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성령이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하는 것은 꿈이 없는 백성은 성령이 일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운행할 수가 없습니다. 꿈이 있어야 운행을 하시지. 그러므로 생각을 통해서 함께 일하시는 성령님께서는 꿈과 환상을 통해서 여러분을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성령은 믿음을 통해서 운행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에게, 여러분이 “주님 내가 믿습니다. 성령님, 운행하여 주시옵소서.”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가지고서 기도해(보고) 성령이 그 믿음을 통해서 운행하시는 것입니다. 희한한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없는 것이 있는 것 같이 되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창조적인 선언을 할 때 성령이 운행하시는 것입니다. “건강아 돌아오라!” 창조적으로 명령하지요. 성령이 “그래, 돌아오도록 만들어줄게” 운행하시는 것입니다. “사업은 문이 열릴지어다!” 성령이 “그래, 문이 열려? 내가 만들어주마.” 사업에 문이 열리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의 소원을 이루어주시옵소서.” 그 말을 하면 그 말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는 여러분,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내 속으로만 있으면 안돼요. 내가 입술로 말을 크게 하면 그 입술의 고백이 성령에 이용되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나는 아침마다 일어나서 새벽기도에 간다!” 그렇게 마음을 정해놓으면 성령께서 그 말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새벽기도에 가게 만들어요.

제가 50년 목회생활에 항상 새벽기도에 나갔는데 새벽기도에 나간다는 말을 크게 하기 때문에. 은퇴를 하고 난 다음 지금까지도 새벽기도에는 안 나가더라도 새벽에는 교회에 오거든. 4시면 교회에 오거든. 여러분, 4시에 제 사무실에 와보십시오. 내가 불 켜놓고 일하고 있지. 습관이 되어서 그런데, 그 습관을 그렇게 한다고 말을 하면은 성령이 그때부터 그 말이 이루어지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여러분에게 생각을 통해서 운행하시고, 꿈을 통해서 운행하시고, 믿음을 통해서 운행하시고, 창조적인 선언을 통해서 운행하시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운이 좋다고 할 정도로 성령이 여러분을 운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 103:1-6)’. 이렇게 멋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생각에 받아들여가지고서 그것을 소리 내어 말하면 성령이 그 생각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숨어서 말하지 마십시오. 드러내놓고 말하십시오. 하나님 들을 수 있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그런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은 기도할 때에 뭐 진동이나 하고 방언이나 말하도록 오신 것이 아닙니다. 물론 진동도 하고 방언도 하지만은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생각을 이루어 주시는 것이고, 꿈을 이루어 주시는 것이고, 믿음을 이루어 주시는 것이고, 창조적인 선언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 4차원의 영적 요소를 통해서 여러분과 함께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어디에 계시느냐? 여러분 생각 속에 계시고, 꿈속에 계시고, 믿음 속에 계시고, 선언 속에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날 우리의 보혜사가 되셔서 우리를 돕기 위해서 4차원의 영성을 통해서 항상 함께 일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놀라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성령님께서 운행하셔서 기름부음이 되어 주시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31절에 보면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7)’.

성령님과 같이 있으면 성령님이 여러분에게 가르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우리를 붙들어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 공로를 무시하고 나오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성령이 같이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루어 놓으신 주권을 이 땅에서 다 사용할 수 있도록 성령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느니라(롬 8:14-15)’. 여러분이 예수를 믿고 보통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양자가 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어요. 이 보통 자리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비하를 하면 안 됩니다. “나는 못 되었다. 못났다. 없다. 안 된다.” 그런 소리 하면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되도록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을 해야지. 그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고 하나님이 기쁘게 그것을 이루는 것이지. 우리 사람들 속에는 두 가지 음성이 들려옵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두 가지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 한 가지 음성은, “아이고 못난 자식. 지혜도 없고, 총명도 없고, 모략도 없고, 재능도 없고 너 같은 인생은 못된 인생이야.” 아 그런 말이 내 속에서 올라오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비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음성도 또 들려옵니다. “아니야, 아니야. 나는 교육은 많이 못 받아도 바보는 아니야. 난 머리가 꽤 좋아. 나는 잘 할 수 있어. 나는 사람들이 좋아해. 성공할 수 있어.” 그 소리도 또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 속에 두 음성이 늘 올라오는데 거기에 자기를 비하하는 음성을 받아들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 모시고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 양자가 되어 있는데 아 여러분 생각을 성령님과 같이 하시고, 꿈을 성령님과 같이 꾸시고, 믿음을 성령님과 같이 하고, 창조적인 생명을 소리 내어서 성령님과 같이 외치면 이거 세상이 깜짝 놀랄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우울증으로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비용이 최근 5년 동안 무려 42%나 증가했습니다. 경제전문가들은 ‘오늘날 한국 사회는 위로가 필요한 사회’라고 말합니다. 일자리도 불안하고, 주거도 불안하고, 노후도 불안해서 힐링이나 상담과 같은 위로 사업이 발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길거리에서 외롭고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프리 허깅, 즉 공짜로 안아주는 이벤트가 열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위로는 사람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견디기 힘든 어려움을 당했을 때, 병이 들어 외롭고 고통스러울 때, 참된 위로를 줄 수 있는 분은 성령이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 31절에 보면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성령이 같이 계시면 성령은 위로하는 영이기 때문에 교회가 성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은 성령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3)’.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이 성령인 것입니다. 그 성령이 여러분에게 와서 운행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성령을 모신 분에게는 생각을 통해서, 꿈을 통해서, 믿음을 통해서, 창조적인 외침을 통해서 여러분과 함께 일해주시고, 성공하게 해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위로를 받으면 상쾌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대행자로서 2000년 동안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마음을 비우고 간구하면 우리 안과 밖에서 운행하시고 우리를 충만하게 하시고, 변화시키시고, 창조적 삶을 살게 해주시는 분이 성령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고아와 같이 버림을 받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그 아들 예수와 더불어 성령의 배후에서 여러분을 도와주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항상 생각을 지키십시오. 부정적인 생각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성령님이 여러분의 생각을 이끌어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항상 성령께 하나님이 원하시는 꿈을 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꿈이 있어야 성령님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성령이여, 내게 믿음 주시옵소서. 나와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님이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령께 의지해서 “할 수 있다. 병은 나아라. 화목 되라. 기쁨이 찾아오라.” 그렇게 외치면 성령이 그 외침소리를 따라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여러분의 삶과 동떨어져서 계신 분이 아니신 것입니다. 여러분과 밀착되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절대로 외롭지 않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만큼 밀착된 것이 어디 있습니까? 바로 그 가운데 성령님이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느 곳에 가나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가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 삶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오늘도 보혜사 성령께서 이 자리에 여러분을 바라보고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아멘. 

/2015. 8. 30. 주일 4부예배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