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나눠야 행복이 온다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한국은 세계경제대국의 모임인 G20의 한 나라입니다. G20는 전 세계 생산 규모의 85%를 차지하는 국가들의 모임이요 회의이니, 그들의 중요성은 대단합니다. 한국은 2010년 G20 대회를 개최함으로써 Radio, 텔레비전, 활자매체를 통해 전 세계의 축복을 받고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인이면 너나없이 G20 국가모임이 건국 이래 최대의 잔치였음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1945년 해방 이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의 29번째 회원국이 되어 인정을 받을 때까지 50년 동안 현재가치로 약 600억 달러, 즉 70조 원이 넘는 금액을 원조 받았습니다. 우리가 해외 부강한 국가로부터 원조를 받은 액수를 들여다보면 입이 딱 벌어지는 것입니다. 70조 원을 원조를 받았어요. 그런데 이렇게 나눔을 받던 나라가 나누어 주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은 기쁘고 자랑스럽기 한이 없는 일입니다.

<본론>
1. 나눔은 행복입니다

나눔은 행복입니다. 이 세상에 참된 행복을 누리려면 나눔 해야 되는 것입니다. 행복하기 때문에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나누기 때문에 행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탐욕은 악입니다. 물질이나 부요 그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돈을 많이 벌고 돈을 많이 저축하고 그렇게 하는 것은 절대로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 탐욕이 생기면 물질이나 부요를 악의 때가 묻도록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욕심이나 탐욕이 들어오면 다 나빠집니다. 예수님께서도 탐심은 곧 우상숭배라고 했던 것입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굉장히 미워하시는 것인데 탐심은 곧 우상숭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탐욕이 생기면 물질이나 부요를 악의 때가 묻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7장 7절에 “탐욕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물질이나 부요는 그것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면 얼마든지 선이 되는 것입니다. 악이 있는 곳에 고통이 있고 슬픔이 있지만 선이 있는 곳에는 행복과 기쁨이 있습니다. 

잠언서 14장 21절에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다”. 잠언서 3장 27절로 28절에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 나눔은 주님을 섬기고 기쁘게 합니다

나눔은 주님을 섬기고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행복을 나누는 것은 바로 안 보이는 주님을 모시고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됩니다. 마태복음 25장 40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잠언서 19장 17절에도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야훼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가난한 사람을 돌보아 주는 것은 주님께 꾸어주는 것이다. 제가 목회 중에 교회로서는 다른 교파에 비교해서 못지않게 많이 원조를 했습니다. 

지금도 우리 이영훈 목사가 많은 원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원조를 하게 된 이유가 잠언서 19장 17절 읽다가 제가 영감을 받아서 원조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야훼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 얼굴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를 도와주는 것은 예수님을 도와주는 것이다. 이 예수님께서 반드시 갚아준다. 참 놀랍게 가난한 사람들 위해서 원조를 많이 하고 주의 영광을 위해서 헌금을 한 사람은 나중에 자기가 부족함에 이르렀을 때, 자기가 도움을 받아야 될 때, 기도가 담대하게 나오고 놀라운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참으로 깜짝 놀랄 만한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해서 주님을 섬기고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갖고 있는 것을 가지고 나누면 주님이 뛸 듯이 기뻐하시고 우리들을 보답해주시는 것입니다. 

사랑과 행복을 이웃과 나누지 않는 것은 주님을 박대하고 멸시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을 못 본체 하고 지나가는 것은 주님을 박대하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열심을 다해서 이웃을 섬기고 있는 것을 볼 때 굉장히 마음이 즐겁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성도들이 주님의 도우심을 받을 터전을 마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 여러분께서 필요한 도움을 기도할 때 주님이 언제나 허락해 주실 줄 알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45절로 46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반드시 도와줄 수 있는데 불구하고 도와주지 않는 것은 범죄에 속한 것입니다. 잠언서 14장 31절에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도와주던 안 도와주던 상관할 것 뭐냐?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일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잘 사는 사람에게 잘 살도록 만들어주신 것은 잘 못사는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그런 나라가…,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1945년 8월 15일날 해방되었을 때, 그때에 우리 한국은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였었습니다. 저는 해방 이후, 또 6.25사변을 지내온 사람이었기에 가난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엄청나게 우리 가난했습니다. 참 우리가 우리를 봐도 불쌍합니다. 

그런 나라가 잘 사는 사람들로부터 70조 원을 도움 받았다. 70조 원이 얼만지 머리도 안 돌아가는데 계산이 됩니까? 70조 원의 원조를 받아서 그 원조가 온전히 우리 국민 경제 발전에 사용되지 못한 것도 더러 있었습니다. 부패 부정으로 말미암아 잘못된데 사용되기도 했지만은 그러나 그 도움 전체가 우리 한국 산업의 기반을 닦고 우리 삶의 길을 닦아서 오늘날 이렇게 잘 살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잘 살게 되어야 밖에 나가도 대접을 받습니다. 어깨에 힘도 들어가고요. 못 살게 되면 어디에 가도 어깨가 이렇게 수그러지는 게 얼굴을 내밀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날에 세계 어느 곳에 가도 어깨 쭉 펴고 살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자를 도와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돈을 사용하는 데는 3대 원리가 있습니다. 탐심으로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은 악한 것이지만, 돈을 올바로 벌고 올바로 사용하면 많은 이들에게 행복과 기쁨을 줄 수 있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 목사님은 성도들에게 돈을 사용하는 3대 원리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열심히 돈을 벌어라. 돈 못 벌면 사람대우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열심히 돈 벌어라. 둘째는 할 수 있는 대로 돈을 많이 저축하라. 벌었다고 다 써버리면 안되니까 저축하라. 셋째는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나누어 주라. 

주를 믿지 않는 사람이 요한 웨슬레 목사님의 집회에 참석해서 요한 웨슬레 선생이 “열심히 돈을 벌어라.” 그러니까 “아~ 이 올바른 목사 만났다. 그래야지. 돈이 나쁘다고 하는 건 뭣도 모르는 놈이 하는 것이다. 이 목사 참된 목사다.” 둘째, “할 수 있는 대로 돈을 많이 저축하라.” “진짜로 좋은 목사네. 돈 도와달라고 손 내밀 때 마다 돈을 주면 안 되지 않느냐? 모아야지.” 

그 다음 셋째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주어라” 하니까 “뭐라? 많이 주라고? 잘 나가다가 그만 잘못 가네. 에이 이 교회 와서 설교 들을 이유 없다”고 떠나갔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원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는데 열심히 벌고 저축해서 나누는 생활을 사는 것이 물질에 대한 우리의 관계가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돈은 잘 벌어질 때 있고, 잘 못 벌 때도 있습니다. 열심히 돈 벌어서 저축했다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함께 서로 도와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3. 나눔은 더 큰 축복을 누리게 되는 씨앗입니다

나눔은 더 큰 축복을 누리게 되는 씨앗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조건하고 너 포켓에 있는 것 다 내주고 너는 빈손 들고 고생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심고 거두는 법칙을 반드시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에 누가복음 6장 38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주라 그리하면 돌려줄 것이다. 

여러분 우리가 조그마한 그릇에 담아서 주면 거기에 담아서 돌려줄 때도 조그만큼 들어올 것 아닙니까? 아예 그릇이 커야 돼요. 구약성경에 보면 한 과부가 남편이 세상을 떠서 살길이 막연했습니다. 빚을 많이 졌는데 빚쟁이들이 와서 자식들을 전부 종으로 팔아서 빚을 청산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여인이 엘리사를 찾아가서 “당신의 종이 착하고 좋은 사람인줄 당신이 잘 알지 않습니까? 모아놓은 돈 없이 죽어서 빚이 태산 같은데 자식들을 팔아서 갚으라고 하니 이 일을 어떻게 합니까?” 

그러니까 엘리사가 이 부인을 자세히 보시더니 “집에 돌아가서 이웃에서 그릇을 빌리십시오.” 아, 그 전에 “집에 무엇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고 병에 기름이 조금 있을 따름입니다.” “아 그러면 가서 그릇을 빌리되 빌릴 수 있는 한도 내에 많이 빌려서 문을 닫고 그 병에 기름을 그 그릇에 부으세요.” 그래서 집에 돌아와서 애들에게 “얘야 이웃에 가서 그릇을 빌려라.” 그 옛날에는 플라스틱 그릇도 없었기 때문에 그릇이 많지 않았어요. 있는 힘을 다해서 그릇을 빌려서 집 마당에 가득하게 해놓고 난 다음에 그다음에 병에 있는 기름으로 부으니까 아무리 부어도 기름은 졸졸졸졸졸~ 늘 나오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게 하는 전문입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 먹이고 열두 바구니 남게 했지 않았습니까? 주를 믿고 섬기는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잘못 믿으면 그렇게 되지만은 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은 언제나 부족함이 없이 공급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부인이 그래서 기름을 붓는데, 기름이 기름에 가득차면 “또 옮겨라. 또 가져오너라. 또 가져오너라. 나중엔 또 기름병을 옮겨 놓고 그릇 가져오너라.” 하니까 “어머니, 이제 그릇이 없습니다.” 아주 그냥 그릇마다 기름이 철철 넘칩니다. 

그래서 엘리사에게 가서 기름이 모든 그릇에 넘쳐난다고 하니까 엘리사가 그걸 팔아가지고서 그 돈으로 빚을 갚고 나머지는 생활비에 사용하라고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돌려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 주는데 여기에서도 우리가 주고받는 법칙에 의해서 빌려주고 마음속에 하나님께 돌려받을 때 큰 그릇에 돌려받을 것을 꿈꾸어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꿈꾸는 것이 우리의 삶에 안내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과 꿈은 여러분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인 꿈을 꾸면 생각과 꿈이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여러분을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 우리 힘으로 산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성경을 읽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은총을 생각하고 꿈은 생각보다 더 구체적인 것입니다. 꿈을 바라보면 생각과 꿈이 손을 잡고 이리 오시오. 으싸으싸~ 여러분을 이끌고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냥 가만히 있지 마세요. 여러분이 인생을 사는 것도 있지만은 여러분이 기도하고 꿈꾸는 사람은 생각과 꿈이 여러분을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가만 보면 희한합니다. 희한하게 이끌어가요.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안 보이는 것이 보이게 하시고 갖고 있지 않은 것을 갖게 꿈이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우리가 꿈이 없으면 여러분을 이끌어갈 곳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 자리에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개인도 집안도 국가도 꿈이 있으면 꿈이 여러분에게 와서 이리 오십시오. 따라오십시오. 안내해서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앞으로 희한한 일을 경험하고 살려거든 꿈을 꼭 꾸십시오. 그러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꿈이 여러분을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희한한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 35절에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주는 분이 받는 분보다 복이 있는 것은 사실 아닙니까?

성경에 보면 이방인 장교가 있었습니다. 이방인 장교 이름은 고넬룐데, 자기 밑에 100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있으며 백부장이라고 말합니다. 이 사람은 유대인이 아닌데 마음에 종교심이 있었어요. 열심히 기도하고 구제를 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그 근처에 오게 됐는데, 하루는 정오에 이 백부장이 기도를 하고 있는데 천사가 탁 나타났어요.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해서 찾아오셨습니까?”, “네가 기도를 열심히 하고 구제를 많이 해서 하나님 앞에 기억한바가 되었다.”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인데 기도하고 구제한 것이 하나님 앞에 올라가서 하나님이 기억한바 되어서..“그 베드로를 불러라 너에게 구원의 길을 가르쳐줄 것이다.” 그래 병사를 보내서 베드로 묵는 집에 가서 베드로를 모시고 왔습니다. 사도행전 10장 1절로 5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니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하여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바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을 욥바로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하나님이 온 우주를 다스리고 온 지구를 다스리는데, 이방인 군대 육군 대위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기도하고 구제하는 것을 기억하신다. 그러니 하나님은 우리 머리털 하나도 헤아리고 계신다! 여러분께서 화장하실 때 머리카락이 떨어지거든 “하나님 계산에 넣으세요. 머리카락이 다 떨어졌습니다.” 그만큼 하나님 우리를 살피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서 구원 받고, 성령 받고, 침례 받아 하나님 백성이 되도록 만들어준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침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리라” 하나님께서 기도하고 구제하는 고넬료를 이쁘게 보시고, 베드로를 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구원 받고, 성령 충만히 받는 은총을 얻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뭐 이렇게 한다고 누가 알아주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기도드리는 것 다 듣고 계십니다. 구제하는 것 다 기억한바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심고 거두는 법칙에 의해서, 여러분 심어 놓은 것이 필요할 때는 다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전기를 생산하는 축구공을 여러분 본 적이 없지요? 아직도 전 세계 네 사람 중 한 명은 전기기계 없이 등유를 사용하고, 호롱불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매년 160만 명이 호롱불을 사용하는데 등유에서 연기가 나와서 그 연기에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160만 명이 등유를 쓰고 거기에 나오는 그슬음을 마시고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특히 등유 램프에서 나오는 연기는 어린이들에게 매우 치명적인데 이 사실을 알게 된 두 명의 하버드 대학 여학생 줄리아 실버만과 제시카 매튜스가 ‘어떻게 하면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에게 전기를 공급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기도하고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남을 도우려하는 그들의 간절한 마음은 몇 년 후 기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바로 전기를 만들어 내는 축구공을 발명한 것입니다. 축구공에 센서와 발전기를 넣어서 30분 동안 축구를 하면 3시간 동안 쓸 수 있는 전기가 충전되는 것입니다. 그 여학생 두 사람이 만들은 축구공인데, 축구공을 가지고 놀면 축구공 안에 있는 센서가 자극을 받아서 전기를 생산해서 그 전기를 저녁에 집에 가지고 가서 불도 밝히고, 라디오도 듣고, 요샌 테레비도 볼 수 있어..희한한 것을 발명했습니다. 그래서 낮에는 축구하며 놀고 밤이 되면 그 축구공이 집안일을 환하게 밝히는 램프가 됩니다. 그 불빛 아래서 밥도 먹고 책도 읽고 간단한 전자제품도 사용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현재 이 축구공을 만들어 보급하는 일에 많은 사람이 후원하고 있는데, 도움을 주는 이 외에도 받는 이도 모두 행복합니다. 자기가 가진 재능의 물질로 하나님 이웃을 섬기면 이처럼 많은 사람이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역시 내 기술과 내 노력으로 이웃을 편하게 하고 잘 살게 하려 하면 도움을 받는 자도 행복하고 도우는 자도 행복한 것입니다. 평생 인도의 빈민가에서 봉사했던 테레사 수녀는 그처럼 힘든 봉사를 평생 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들 얼굴 속에 예수님을 보이기 때문에 그가 인도에서 봉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돌아봄으로써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40절에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주님께서 여러분 집에 심방 오신다면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대접할 것입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주님께 냉수 한 그릇 드리지 못할 집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심방을 오시지 않아도 주님께 냉수 한 그릇 대접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주변에 가난한 이웃을 찾아가서 예수의 이름으로 냉수 한 그릇 대접하면 예수님이 직접 대접받은 거와 같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운 이웃들을 돌아보고, 나누고, 베푸는 삶을 통해 우리 주님을 대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전도사로 일할 때부터 시작해서 우리교회 50년 동안 목회하는 동안에 신은 구두가 많아요. 그래서 신은 구두도 한 50켤레 돼요. 옷도 그때부터 입은 양복이 수십 벌 있어요. 신이 필요한 사람들이요 오세요~ 그리고 양복이 필요한 사람 오세요. 그거 다 정리하고 싶습니다. 더구나 오늘 이 설교를 하고 난 다음에, 이 설교가 여러분이 들으라고 한 것이 아니라 날 들으라고 한 것이기 때문에 벽장에 걸려있는 것 좋지 않습니다. 옷이 필요한 사람 오십시오! 여러분에게 드리고 저는 주님께 받아 입으면 되는 것입니다. 탐욕은 개인의 삶을 부패시키고, 사회와 국가를 부정부패하게 하고, 사람들의 삶을 불행하게 합니다. 사랑과 행복을 나누면 선과 기쁨과 행복이 나타납니다. 우리 한국이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세계 속에서 환영을 받고 복의 근원이 되기 위해서는 항상 있는 것을 감사하고, 고난당하는 사람과 사랑과 도움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면 행복과 기쁨과 보람을 갖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주는 사람이 성공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보통 남에게 주기만 하는 사람은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 교수는 <베푸는 사람이 성공한다>라는 책을 통해서 베푸는 삶의 성공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는 수많은 사례들을 분석했는데, 남에게 주는 사람은 어렵게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로 잘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남에게 주면서도 잘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다른 사람의 이익과 자신의 이익 둘 다 관심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즉, 나도 잘 살고 너도 잘 사는 윈윈(win-win)을 통해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는 앞으로 세상은 남에게 베풀수록 성공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교통과 통신 그리고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미디어가 발달로 사람이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은 금방 들통이 나서 실패하게 되고, 남을 이롭게 하고 베푸는 사람은 성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들뿐 아니라 우리가 나누고 베풀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누는 삶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하버드 의과 대학의 데이비드 맥클라렌 교수는 테레사 효과라는 말을 만들었는데, 남을 도와주면 몸에 좋은 면역의 항체가 50퍼센트 이상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또 미국의 심리학자인 칼 메닝거 박사는 나누는 삶은 우리의 신체뿐 아니라 마음도 건강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입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나누는 삶은 정신건강에 필수적인 요소이며, 관대하게 베푸는 사람은 정신질환에 걸릴 확률이 훨씬 낮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누고 베푸는 삶을 믿는 사람뿐 아니라 주는 사람에게도 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누고 주면 기쁘고 행복해지고 몸에 저항력이 생겨서 사우디아라비아 감기 같은 건 문제없이 물리쳐버릴 수 있는 것이에요.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예수님을 마음속에 섬기고 살면 주님께로부터 의와 진리를 쫓아 풍성한 은혜를 주시는 것인데, 그 예수님이 눈에 안 보이기 때문에 내 주변에 있는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도움을 베풀면 예수님이 도움 받은 것이 되기 때문에 고넬료가 축복받은 것처럼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만리장천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상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산꼭대기에 올라갔는데, 갑자기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거기에 천여 년 전에 세상을 뜬 모세도, 몇 백 년 전에 세상을 뜬 엘리야도 예수님 앞에 그대로 나타났어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보니 기가 막힙니다. 어떻게 해서 수 천 년, 수 백 년 전에 세상을 뜬 사람이 옛날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타나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은 3차원의 세계 속에서 순식간에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4차원의 세계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차원이 필요 없습니다. 1차원, 2차원, 3차원의 세계에서 계시지만 4차원의 영원차원에 들어가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예수님은 물질적인 세계 속에 여기 와 계셔도 우리가 안 보이지만 와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것을 보여주신 것은 주님은 시간과 공간에 차이가 없이 3차원의 세계 속에도 들어와 있고, 4차원의 세계에서도 와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항상 주님 사랑하는 제자들과 같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우리와 같이 있는 이 목적은 죄 사함을 주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을 고치시고, 없는 자를 있게 만들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시고 난 다음 고향땅 나사렛에 가서 성전에서 이사야서를 읽으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임하신 것은 나를 보내서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러 왔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목적이 복된 소식을 전하러 왔다. 여러분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러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서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포로 된 자에게는 자유를 주러 왔다. 마귀에 포로 되고, 죄악에 포로 된 자에게는 자유를 주려고! 눈 먼 자에게는 다시 보게 한다. 육신의 눈이 아닌 영적인 장님이 다 되어 있는데 그 눈을 열어서 영적인 세계를 보게 해준다. 여러분은 눈을 열어서 영적인 세계를 보게 해 주셨기 때문에 예수를 믿고 오늘 교회에 나와 계신 것입니다.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마귀가 와서 누르면 병이 걸리는 것입니다.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러 왔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구원을 얻는 복음을 전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와 계신 곳에는 자유와 해방이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자유와 해방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 앞에 나와서 예수님의 이 축복을 생각하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예수님이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축복을 주러 오셨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것이 이루어져있는 것을 꿈꾸고, 그리고 믿고, 그리고 말해야 돼요. 나는 영혼이 잘되고 있다. 범사에 잘되고 있다. 강건하다. 일이 잘 될지어다. 병은 물러가라. 건강은 다가오라. 행복 하라. 평안 하라. 그렇게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종교적인 의식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데리고 자유와 해방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주님께서 여러분보고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러 내가 왔다!’ 주님 저에게 와 계시니 마음도 몸도 생활도 부요케 하여 주시옵소서. 포로 된 자에게는 자유를 줄테다. 내가 너희에게 자유를 주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렸었으니 믿음에 굳세게 서서 종의 멍에를 매지 마라. 자유인으로 선포하라. 그러므로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함으로 여러분의 생활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꼭 이 말을 마음에 관심을 가져 줘보세요. 보고, 믿고, 말하라!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난 꼭 저렇게 돼야겠다는 것을 보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는 꼭 성공해야 된다는 것을 보고, 생각하고, 그 다음에 본격적으로 그렇게 돼 가는 여러분 자신을 꿈꾸어야 되는 것입니다. 꿈꾸고, 그 다음에는 믿습니다! 주여, 믿습니다! 그러면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하나님 능력이 나타나고 계시다! 너는 기뻐하라!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여러분의 생애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같이 계셔서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바라봅니다. 그렇게 된 줄 믿습니다. 여러분께서 긍정적으로 그렇게 늘 시인을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실 것입니다.
아멘.

/2015. 7. 5. 주일 설교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