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서균석 목사(한국히브리신학원 학장).

맥(잣대)에 의한 번역:
‘그들의 마음에 대하여 기록된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율법을 행함으로 그들의 넷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목표로 있는 것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들의 첫째 시기에서 셋째 시기의 지식이 그들 안에서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로 증거하느니라 그들의 안에 그들의 넷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목표로 있는 계획들이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인 이것의 본체인 넷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목표로 있는 것의 빚을 갚아야 할 의무가 있는 자들이거나 또는 넷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목표로 있는 것을 깨끗하게 깨트린 자들이거나가 되느니라’

한글성경에서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는 번역상 왜곡됐다. 롬 2:14에 본성이라고 번역됐는데 여기에서는 양심이라고 번역됐다. 롬 2:14에서는 마음이라고 바로 세워서 설명을 하였다.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일관성이 없다. 생각하기에 편리한 대로 개념 없이 번역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나 양심이나 마음을 동일한 범주에 넣어서 말하고 있다.

전 절에서도 말하였듯이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인 자연 현상의 세계를 창조하시듯 인간을 단 1회적 사건으로 창조하셨다. 1회적인 창조로 완벽한 창조를 완성하신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문제다. 인간은 혈과 육으로 된 겉사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속사람이 또 존재하고 있다. 이 속사람 속에는 본래적으로 혼돈과 공허와 어두움인 무지의 무저갱의 얼굴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 무저갱의 얼굴들을 그대로 놓아 두고는 인간을 창조하신 궁극의 목표를 이루실 수 없으셨다. 이 속사람 속에 자리잡고 있는 무저갱의 얼굴들을 깨트려 죽여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아나는 존재가 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결과가 일어나지 않게 된다면 하나님의 창조의 원대한 계획은 무위로 돌아가 버리게 된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인간의 마음땅이 하나님의 영의 생명의 존재로 살아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아무 일도 진행해 나가실 수 없으시다. 그래서 창세기 1장에서 아담의 속사람을 양육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끌어 올리시는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잣대를 세우시고, 인간을 본래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무저갱의 얼굴들을 깨트려 죽이시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아나도록 완성해 나가시고 계시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본성이, 마음이, 양심이 하나님의 율법을 대신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하나님의 율법이 인간의 육의 속성을 깨트려서 죽이는 사역을 하는 것인데, 깨져야 할 대상이 깨져 죽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깨트려 죽이는 율법의 자리에 올라와 앉아 있을 수 있느냐는 말이다. 이는 분명 인간의 마음땅에 본래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무저갱의 얼굴들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오류를 범한 것이다.

마음판에 기록된 율법에 의해서 넷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를 익히고 적용해 나간다고 할 것 같으면, 그 마음에 계획하는 생각들이 서로 갈라져 마음땅의 어두움인 무지가 깨트려지지 않고 하나님께 깨트려져야 할 의무를 그대로 갖고 있으면서 빚을 진 상태로 존재할 수 있게 되거나, 아니면 마음의 어두움이 완전히 깨트려지고 소멸되어 깨끗한 자가 존재할 수 있게 되거나 하였다는 말씀이다. 그 마음에 새겨진 율법의 상태가 어떠한지에 따라서 그 결과가 나타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양심이 증거하는 내용은 불완전한 상태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기 전에는 양심에 따라서 양심이 증거하는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는 것이라는 말씀은 옳지 않은 것이다. 양심이 율법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서균석 목사는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하늘교회(통합) 담임목사 은퇴
한국히브리신학원 학장

문의: 010-3728-0245
홈페이지: http://www.koreahebre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