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해외에서 한국의 골프선수들이 수 년째 선전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골프 팬들에게 희소식이 있다. 미국프로골프협회(PGA) 2015년 프레지던츠컵 골프대회가 아시아 최초로 인천 송도에서 개최되는 것이다.

이 대회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우리나라가 아시아에서 처음 이를 개최하는 국가이며 박근혜 대통령이 명예대회장을 맡게 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1년 호주의 줄리아 길러드 총리 이후 두 번째로 대회장을 맡는 여성 지도자가 되는 셈이다. 역대 대회에 출전한 한국인 선수로는 최경주, 양용은, 김경태 등이 있다.

이를 계기로 연초에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나라에도 골프 인구의 저변이 확대되는 것이 바람직하고, 성숙한 골프 문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골프는 나와 관계 없는 운동’으로 생각해 온 사람들도 이 일을 계기로 새로운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 사회적으로도 골프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고, 국민들도 골프를 좀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운동으로 느끼는 계기가 되면 좋을 것 같다.

라운딩을 할 때 경기를 보조해서 진행을 도와주는 사람을 ‘캐디’라고 한다. 캐디는 원래 프랑스어로 사관생도라는 의미의 cadet에서 유래되었다. 골퍼들은 경기를 할 때 어떤 부분이든 캐디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때문에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골퍼들의 배후엔 그 못지 않은 캐디가 함께 있었다.

캐디 하면 늘 생각나는 이름이 있다. 미국 아마골프 챔피언 프란시스 위멧의 캐디, 에디 로리이다. 그의 이야기는 2005년 빌 펙스톤 감독이 만든 영화 ‘The greatest game ever played’로 대중에게 매우 잘 알려져 있다. 이 이야기는 잠시 접어 두고.

지난 2월 초 한 달간의 외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 나는 라운딩을 하게 되었다. 시차와 기후에 전혀 적응할 시간도 없었고 여독을 풀지도 못한 상태였으나, 이미 여행 전에 약속이 된 일이라 무리해서 운동을 하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첫 홀에서 티샷 에러를 내고 다시 드라이브삿을 하였으나 거리는 보통 때의 1/3 정도밖에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힘겹게 전반 라운딩을 마치고 후반 파3에서 포기하고 친 샷이 핀 근처에 떨어져 버디를 잡게 되었다. 이때 J 캐디는 동반자들보다 더 큰 함성을 지르며 나를 껴안았다. 그리고 버디 기념으로 노란색 실로 뜬, 장미꽃 문양의 티 액세서리를 나에게 주었다. 나의 노란색 모자에 맞추어 준 꽃잎 문양이었다. 나는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내면에서 에너지가 넘쳐나는 듯하였다. 작지만 센스 있는 그녀의 배려가 내 감성을 열었던 것이다.

J 캐디는 자신이 일하기 전에 늘 뜨개질을 하여 소품을 만들고 손님을 맞는다고 했다. 버디를 잡으면 나에게 준 것 같은 꽃잎 문양의 티 엑세서리를, 홀인원을 하면 볼 커버를, 이글을 하면 한손 장갑을 선물하는데, 이 때문에 늘 틈만 나면 뜨개질을 한다고 했다.

“나는 골프에서 모든 경기자들이 날리는 샷과 퍼팅을 중요하게 여긴다. 어떤 골퍼가 버디나 홀인원을 하는 경우, 그의 성취감이 자신의 것으로 느껴진다. 그 순간은 마치 내 인생의 모든 가능성이 열린 듯 느껴져 너무나 기쁘다. 나의 작은 선물은 그 기쁨을 함께 나눈다는 표시이다.” 이것이 J 캐디의 말이다.

많은 캐디들이 골퍼들을 도와 경기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하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간적 관심을 가지고 기쁘게 헌신하는 캐디는 흔치 않다. 더구나 J처럼 프로다운 실력과 미모와 지성 넘치는, 유머와 재치와 민첩성을 가진 캐디가 되기는 쉽지 않다.

자기가 맡은 일에 애정을 가지고 자기가 만나는 사람에게 진정성을 가지고 대하는 사람은, 그가 크리스천이든 아니든 신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다. 무슨 일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자신의 일에 사랑과 열정을 가지고 자신 최대의 것을 사람에게, 사회에 돌려주려는 것, 이것이 삶의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그 일을 통해 만지며 맛보게 되기 때문이다.

골프 인구의 저변이 확대되면서, 골퍼들과 캐디와의 인간적 관계가 함께 성숙해 가면 정말 좋은 골프 문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지금도 J 캐디를 생각하면 마음이 따스해진다.

/송영옥 박사(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