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엘 포럼에 참석한 미주 지역 신학자들.

미주의 한인신학자들이 성경에 나오는 ‘땅’을 주제로 6월 9일(이하 현지시각)부터 4일간에 걸쳐 발제하고 토론하며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포럼의 주제는 “고엘(기업 무를 자)”이며 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개최됐다.

한국의 세월호 사건 이후, 교회의 대사회적 사명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거세게 일고 있는 가운데, 이 포럼은 성경 텍스트 그 자체에서 시작해 이를 신학적으로 발전시키고 현대 사회에 적용했다는 점에서 신학의 전 영역을 아울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평소 구약 성경에 나오는 땅, 기업 무를 자, 토지 개혁과 경제 정의 등에 관심을 갖고 있던 고승희·민종기 목사와 백신종 선교사가 이를 주제로 신학적 담론을 이어가던 중, 이상명 미주장신대 총장이 협력하면서 이번 포럼이 기획됐다. 이번 포럼을 계기로 이들은 미주한인복음주의신학회(Korean-American Society of Evangelical Theology)를 창립하고 다양한 신학적 스펙트럼에서 목회와 선교에 관해 연구한다.

이번 포럼에는 소위 미주 지역의 ‘땅’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아름다운교회 고승희 목사는 LA 지역의 대표적 선교 지도자로, 특별히 이슬람권에 조예가 깊다.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후, 미시시피주립대 경영학 박사를 마치고 풀러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그는, 전략적인 면에서 영적 전쟁을 다루는 ‘땅’ 전문가다.

충현선교교회 민종기 목사는 USC에서 정치학 박사 과정을 밟던 중 풀러신학교로 진학해 기독교 윤리학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민 목사는 이번 포럼에서 요셉 당시 이집트 정치 체제를 분석하며, 윤리적 측면에서 경제 정의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연결시켜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외에도 구약학자인 총신대 김지찬 교수, 미주장신대 김수정 교수, 신약학자인 미주장신대 이상명 총장, 요한계시록연구소 이필찬 원장, 조직신학자인 미주장신대 조진성 교수가 발제하며 논의의 폭을 넓혔다. 또 현장 선교 전문가인 시드선교회의 백신종 선교사, 신진 구약학자인 정진명 목사도 참여했다.

▲고승희 목사가 ‘땅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주제로 강의하며 전체 포럼의 기초를 놓았다. ⓒ김준형 기자

첫날 포럼에서 가장 먼저 발제한 고승희 목사는 역대하 7장 14절에 나온 내용인 “겸손히 회개하면 땅이 고쳐질 것”이라는 구절에서부터 시작해 땅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그는 “땅은 복의 터전이며 동시에 타락으로 인한 저주의 공간”이라 말하며 “땅의 개념을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목사는 “토지 무르기의 개념은 땅의 회복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방식의 회복”이라며 “땅의 소유권은 곧 통치권이며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권이 회복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고 목사는 “이 땅의 풍요에만 집착하지 말고 이 땅을 회복시키는 자로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통치 회복을 추구하자”고 말했다.

강의를 이어받은 민종기 목사는 “모든 땅은 하나님의 것이며 인간은 나그네로서 그 땅을 경작한다”는 토지 개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토지를 다 자신의 소유로 선언하시고 인간에게는 경작할 권리만을 주셨고,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에게 배분된 토지를 팔지 못하게 하셨다. 당시 경제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던 토지에 대한 공개념은, 곧 약자를 위한 경제 정의이기도 했다. 특히 희년이나 토지 무르기에서는 약자를 보호하고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난다.

민 목사는 “하나님의 종인 요셉의 토지 개혁은 토지 공개념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요셉이 대기근 때에 모든 농민들의 땅을 사들여 소작농으로 만들고 소출의 20%를 세금으로 바치게 한 사건”을 들며 “요셉이 백성의 노예화와 토지 국유화를 주도한 것일까”라고 물었다. 그러나 당시 20% 세금은 매우 낮은 비율이다. 예를 들어, 기원전 750년 그리스는 소작농의 세금이 무려 6분의 5나 되었다. 20%는 역사상 유례가 없을 만큼 낮은 비율이란 것이다. 민 목사는 “이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른, 지배 구조의 변화다. 귀족들의 높은 세금으로 고통받던 농민들이 토지공개념 하에 생존권을 보장받게 됐다”고 해석했다.

그는 “요셉의 토지 개혁은 토지 공개념에 있어서 희년의 정신과 일치한다”며 “실패로 인해 자유로운 신분과 토지를 잃어버린 사람이 하나님이 주시는 회복의 기회를 누린다”고 설명했다.

정진명 목사의 세 번째 강의로 넘어가면서 이 포럼의 목적은 더욱 분명해졌다. 고승희 목사가 땅의 의미와 중요성을, 민종기 목사가 구약의 토지 개념에서 회복의 정의를 찾아낸 후, 정진명 목사는 “땅을 무를 자, 몸을 무를 자, 피를 무를 자”에 대한 구약의 율법을 하나하나 들며, 이를 곧 “이집트에서 땅 없이 사는 유대인들을 무르는 하나님, 노예된 유대인을 무르는 하나님, 바로로부터 생명을 구해 주시는 하나님”과 연관시키며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기업을 무르시는 분이심”을 강조했다. 정 목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약자와 빈자를 찾아가 육적, 영적 빈곤을 보듬어주는 고엘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둘째날부터는 논의가 좀 더 심화되었다. 김지찬 교수는 도피성의 개념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조명했다. 그는 “한국교회는 양적 성장만을 지향하며 폭력을 양산해 냈다”고 비판한 뒤, “폭력의 악순환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교회는 도피성처럼 사회안전망으로써 기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신종 선교사는 고엘의 관점에서 선교적 사명을 조명했다. 그는 “영원한 구속자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우시고 남은 사역을 감당하게 하셨다”며 “교회는 ‘열방의 기업 무를 자’라는 이름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 모든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구속과 회복 사역을 대신하는 기업 무를 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상명 총장은 고엘의 개념과 교회의 개념을 연결시키며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신앙공동체이자 이웃과 사회와 인류를 복음으로 섬기는 고엘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이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이자 사명”이라고 단언했다.

한편 모든 발제 후 마지막 날에는 시카고 휄로쉽교회의 김형균 목사가 총평을 했고 백신종 선교사가 질의응답의 시간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