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즉흥시인 안데르센의 고향은 덴마크의 옛 수도 핀섬의 오덴세이다. 오덴세란 북유럽의 신화에 나오는, 문화와 예술의 신 오덴이 사는 사당이라는 뜻이다. 안데르센이 세상을 떠난 지 100년도 지난 어느 날, 나는 시인의 고향 마을을 찾게 되었다. 동화처럼 한 바다로 나가니 물은 가장 아름다운 제비꽃잎처럼 파랗고, 이를 데 없는 맑은 유리와도 같았다.

바다와 꽃과 유리처럼 천진한 세상, 바닷물은 1년 내내 수레국화처럼 파랗고 푸른 들판에는 황새가 노닐고 백조가 둥우리를 트는 호숫가와 요정이 사는 요정의 늪, 그렇다. 안데르센의 동화에 나오는 덴마크의 모습이다.

안데르센은 가난한 집안 신기루의 아들로 태어나 11살 때 아버지를 잃는다. 아버지보다 10년 위인 어머니는 매우 가난한 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글을 읽지도 쓸 줄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어린 안데르센은 세탁부로 생계를 유지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유년을 보낸다.

그랬음에도 소년은 겨울이 오면 레이스처럼 자란 자작나무 숲에 가는 눈이 내리는 것을 본다. 율레 칼레네르(크리스마스 캘린더)를 본떠 만든 달력에 1일부터 24일까지의 눈금을 새겨 놓고 매일 밤 한 개씩 마음의 불을 밝히면서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어머니가 오덴세 강가에서 빨래를 하는 동안 어린 안데르센은 강둑 언덕에 올라가서 노래를 불렀다.

그는 춤도 잘 추었지만 목소리가 무척 고와서, 사람들은 그를 오덴세의 나이팅게일이라 불렀다. 가수가 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강변에는 부잣집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그 부자들 속에 혹시 중국 나라 임금님이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의 동화 나이팅게일에서 들려준 것처럼 중국 임금님이 자기 목소리를 듣고 데리고 가 주길 바랐다.

오덴세에는 시인 안데르센을 신(神)처럼 모시고 있다. 마을에 들어서니 기념공원의 야생 백조는 조각처럼 날고 있다. 기념관 정문에는 어린 안데르센이 종이오리개로 만든 그림을 확대하여 걸어놓았다. 방에는 구둣방집 아들의 추억의 물건들이 세계 문학사에 한 이름을 남긴 그의 영광을 대신해 놓여 있다.

기념관 도서실에서 수화기를 드니 그의 동화가 영어로 나온다. 한국말을 비롯하여 수백 언어로 번역된 그의 동화를 듣고 있노라면, 오리떼가 헤엄쳐 다니는 연못이 보인다. 그 옆으로 오덴세 강물이 흐른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소년의 유일한 즐거움은 책을 읽는 일이었다. 책을 빌릴 수 있는 만큼 힘껏 빌려 읽으면서 시와 극의 흉내내었다. 점멸하는 꼬마 전구와 화분이 심긴 수십 만 그루의 꽃들이 있는 공원길을 따라서. 콘서트 홀로, 판토마임 극장으로 야외 스테이지로 유쾌하게 돌아다니다 드디어 어느 날 보따리 한 개를 싸들고 코펜하겐으로 떠난다.

주정뱅이 괴짜 아버지가 들려준 <아라비안 나이트>, 덴마크의 대문호 홀베르크의 희극이 안데르센의 유랑 무대를 넓혀준 것이다. 그 때가 바로 성당에서 견진성사를 받은 직후였다. 구교회의 견진성사 영어 표현은 ‘the Scrament of confirmation’이다.

성당의 일곱 개 성사 중 하나로, 세례 성사를 받은 신자에게 성령과 그의 선물을 주어 신앙을 성숙시키고 증거케 하는 성사이다. 잘은 모르겠으나, 신교의 세례 의식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세례를 받은 후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이 성령강림절에 받은 성령의 은혜를 전 교회와 모든 성원에게 전달하여 세상과 이웃과 교회에 봉사하며 살아가도록 하는 성사이다.

어찌 되었거나 그리스도인은 견진을 받음으로서 자신으로부터 탈피하여 용기를 가지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살아가므로 그리스도인 성숙의 성사라 이해된다. 기독교 신앙적으로 어른이 된다는 뜻이다. 나는 이 견진성사가 안데르센 작품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기독 사상의 근간을 이룬 것으로 생각한다.

코펜하겐에 도착한 그는 마치 오늘날 스트로이어트의 무명 악사 같았다. 그 거리의 이름 없는 춤꾼이었고 가난한 그림쟁이였다. 그러면서 꿈이 현실로 올 세상을 꿈꾸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