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1805-1875)의 세계 여행은 유럽과 소아시아,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지구를 서른 바퀴 돌 정도의 열정으로 이루어진다. 그 중에서도 덴마크를 출발해 터키와 흑해를 거쳐 체르나보다에서 빈, 그리고 다뉴브강을 거슬러 올라간 지중해 여행은 아홉 달 이상 계속되었다. 지구를 떠돌아 다녀보고 싶은 욕망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욕망 가운데 가장 강렬한 것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세계지도를 펴 놓고 어디로 갈까, 어느 하늘 아래부터 먼저 볼까, 크고 작은 나라들을 훑어볼 때마다 우리는 그 옛날 하렘성의 궁녀를 선택하던 군주처럼 조급하고 탐욕스러워진다. 나도 그랬다. 작은 지도 위에서 모양새가 다르고 향기도 독특한 나라들이 손짓해 부르면, 일일이 그들의 체취를 맡아보았다.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드는 향기를 선택해 찾아다닌 곳이 70여 나라. 그래서 나의 여행을 기행 수필집의 제목처럼 ‘해지는 곳에서 해 뜨는 곳까지’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홀로 걸어 광활한 세계의 새로운 땅과 바다와 가없는 인간의 삶과 예술을 보고 만질 때마다, 그들은 본래  그들 속에 지니고 있는 본체보다 더 깊고 심오해져서 의식세계로 침투해 들어온다. 아름다움은 눈 앞에서 매번 다시 출렁이고 속에서 늘 새로워지는 것, 어쩌면 이러한 본체의 거듭남이 여행의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안데르센의 세계여행 동기는 비평가들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오덴세의 가난한 구두수선공인 아버지로부터 시적 공상의 세계를 물려받아 글을 썼지만, 당시의 엄격한 계급구조를 타파하지 못한 채 그의 글은 비평가들로부터 혹평을 받는다. 불행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그들의 아픔을 노래했지만, 그 자신은 늘 사회의 아웃사이더로 살아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호기심은 끊임없이 그를 자극했고, 어머니로부터 이어받은 경건한 신앙심은 고개를 높이 들고 두려움 없이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도록 그에게 용기를 준다. 1842년 그의 여행기 <시인의 시장(En Digters Bazar)> 초판에 실려 있는 글을 보자.

“우리 함께 일상 속의 시장을 돌아다녀 보자
그 풍요로움을 내가 보여줄 테니
코펜하겐에서 동방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그 아치 주량들을”

안데르센의 시대로부터 한 세기 반이 지난 어느 날, 나는 그의 작품 세계를 찾아 길을 떠났다. 그의 고향 하늘 아래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동화 속 인물일 거야. 황새가 노닐고 있는 푸른 들판이 있고 들의 백조가 둥우리를 트는 호숫가와 요정이 살고 있는 요정의 늪이 있을 거야. 아마도 란게리니에 부둣가에서면 맑은 강물이 보이고 가을 숲에는  낙엽 밟는 소리가 들려올 거야. 그래야만 내가 멜로디를 그려가며 노래처럼 불러보던 그의 이름이 순은의 종소리로 들려올 것이기에. 이 본체의 거듭남을 즐기리라.

나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덴마크 셀란섬 동쪽에 위치한 수도 코펜하겐에 들어서니, 도시는 가히 안데르센의 도시라 불리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그의 자취가 살아있었다. 200여편의 동화와 시, 희곡, 소설 등이 코펜하겐을 세계적 명성의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도시로 만들었다. 특히 그가 집필 활동을 한 이곳 니하운(Nyhavn)은 곳곳마다 안데르센의 숨길로 가득했다. 운하를 앞에 두고 서 있는 예쁜 색깔의 오래된 집들과 건물들조차 그 동화 세계의 우화처럼 느껴진다.

생각해 보라. 구두공인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찢어질 듯한 가난 속에서 빨래로 생계를 이어가던 어머니와 살면서, 못생긴 외모에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여 늘 놀림을 받았던 그 소년은, 이제 북쪽의 베네치아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니하운에서 별같이 빛나고 있다. 연극배우의 꿈을 키웠으나 가난한 시골뜨기 출신인 탓에 어디서도 인정받지 못했던 소년이, 이제는 알록달록한 건물들과 멋진 레스토랑이 있는 화려한 거리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서 있다.

니하운은 샌프란시스코의 피셔맨스 워프에 비견할 만한 곳이다. 오늘도 유람선은 안데르센 애호가들을 싣고 운하를 가로지른다. 노천 카페의 햇살도 눈에 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