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머리말

역사적 예수는 다시 오실 자신을 표현하는 데 “인자”(人子, the Son of Man, ὁ υίός του άνθρώπου, ho huios tou anthropou) 칭호를 사용하였다. “인자” 용어는 이미 구약에 예언되어 있다. 미래에 오실 “인자”에 대한 용어는 구약 다니엘서에서 묵시록적 인자로 예시되어 있으며, 그리고 신약성경에는 역사적 예수께서 이 용어를 자신의 메시아적 사역과 관련하여 사용하고 있다. 공관복음서에는 인자의 오심에 대하여 “파루시아”(parousia, παρουσία)라는 단어로 표현되어 있다. 파루시아는 단지 미래에 오심만이 아니라 현재에 계심을 내포하고 있으며, 현재의 계심이 완성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도래(Ankunft), 강림(Adventus)으로 번역되며, 현재(Gegenwart)와 더불어 ‘오심’(zukommen)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의 종말에 비로소 ‘다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영으로 공동체에 현존하며, 종말에 완전하게 현존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파루시아는 과거에 역사적 예수로 오셨고 지금은 영으로 존재하는 분이 미래에 완전히 나타나는 사건이다. 그는 오고 계시며, 미래에 그의 모습을 가시적으로 완전히 나타내실 것이다.

I. 구약 다니엘서의 증언: 영원한 나라와 권세를 얻을 묵시록적 인자

“묵시록적 인자”는 다니엘이 환상 중에 본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인자 같은 이”에서 나타난다. 이 묵시록적 인자는 하나님에게 나아가 권세와 영광과 나라와 백성을 인계받고 영원한 권세로 다스리고 그 나라는 영원하다.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 7:13-14). 이 묵시록적 인자는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로서 성도(聖徒)를 위하여 나라를 얻으신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단 7:22). 묵시록적 인자는 “지극히 거룩한 자”로서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권세가 그에게 복종하고 그의 나라는 영원하며,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다. 다니엘은 다음같이 기록하고 있다.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가 다 그를 섬겨 복종하리라”(단 7:27).

II. 신약의 증언: 역사적 예수와 묵시록적 인자와 동일시

공관복음서는 역사적 예수가 묵시록적인 인자로서 미래에 다시 오실 것을 예언하고 있다.

1. 마가의 증언: 예수는 자신을 종말에 오시는 인자와 동일시. 종말에 오는 묵시록적 인자

마가복음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역사적 인물인 자신과 묵시록적 인자로 오시는 자를 동일시하여 말씀하신다. 나사렛 예수를 부끄러워하는 자에 대해서는 종말 때 아버지의 영광으로 오는 인자도 그를 부끄러워하리라고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막 8:38). 예수는 자신이 종말에 큰 권능과 영광을 지닌 인자로서 와서 택한 자들을 구원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또 그 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막 13:26-27). 대제사장 앞에 끌려가서 심문을 받은 예수는 “네가 찬송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막 14:61)라는 대제사장의 질문에 침묵을 깨뜨리시고 자기가 그리스도요 종말 때 하나님의 우편에 앉은 자요,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묵시록적 인자라고  명확하게 대답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막 14:62).

2. 누가의 증언:  예수는 자신을 ‘오시는 인자’와 동일시, 예기치 않은 때에 오시는 인자

누가의 증언에서도 역사적 예수는 자신을 종말에 오시는 묵시록적 인자와 동일시하신다. 예수를 부인하는 자에 대해 오시는 인자(ho huios tou anthropou)도 그를 부인할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는 자에 대해 인자도 그를 시인할 것이다.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받으리라”(눅 12:8-9). 인자는 예기치 않은 때 오신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눅 12:40). 나사렛 예수는 자신을 오시는 인자와 동일시하면서 인자의 오심이 번개가 동서와 번뜻함 같이 우주적 사건으로 일어날 것을 말씀하신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좇지도 말라.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눅 17:23-24).

나사렛 예수는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나 롯이 살던 때 소돔 고모라 주민 같이, 사람들이 오시는 인자를 맞이할 예비를 전혀 하지 않고 세상의 풍조에 따라 향락 속에 사는 때에 인자가 올 것을 말씀하신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눅 17:26-30). 오늘날 포스트모던 시대는 예수께서 예언하신 그러한 사회적 풍조가 만연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예수는 인자가 오는 종말의 때에 세상의 믿음이 약해질 것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 18:8하). 예수가 말씀하시는 믿음이란 역사적 예수에 대한 믿음을 말한다. 종교다원화 시대에는 기독교 신자라고 할지라도 역사적 예수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고 있다. 1980년대 미국 예수 세미나에서 그려낸 예수는 전혀 역사적 예수가 아니며,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종교다원주의자들의 예수도 역사적 예수의 진정한 모습이 아니다. 우리는 사도와 교부와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이 전해준 역사적 예수에 대한 신앙을 확고히 가져야 할 것이다.

3. 마태의 증언: 예수는 자신을 ‘종말 박해 시 영광 속에 오시는 인자’와 동일시

예수는 종말 박해 시에 인자(ho huios tou anthropou)가 오실 것을 말씀하신다. 이 인자는 역사적 예수 자신이다.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마 10:23). 예수는 종말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아서 제자들과 함께 이스라엘을 심판할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 19:28). 인자는 번개가 번쩍이고 하늘의 권능이 흔들리는 우주적 사건 속에서 능력과 영광 속에서 오셔서 택한 자들을 모으실 것이다.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 24:27-31). 재림하시는 예수는 자기 영광 속의 인자로 오시고 천사를 대동하고 오시며 자기 영광의 보좌에서 세상 나라를 심판하실 것이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마 25:31).
 
인자가 영광으로 오실 때에 모든 민족들을 심판하고 저주 받을 자와 의인을 분별하여, 저주 받을 자는 영원한 불에 던짐을 받는 영벌에 그리고 지극히 작은 자에게 선(善)을 행한 의인들을 영생으로 들어가게 할 것이다. 마태복음에서 역사적 예수는 자신을 인자와 동일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 25:31-46). 인자의 오심에는 두 가지 사건, 심판과 구원, 영벌과 영생의 사건이 일어난다. 그것을 수행하는 자가 바로 인자인 역사적 예수다.

4. 사도행전의 증언: 예수 재림 방식과 하나님 우편에 서신 인자

누가는 부활하신 예수가 승천하는 사실을 기록하면서 그의 재림 방식에 관하여 말한다. 예수는 그가 하늘로 올라간 것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신다. 그는 예수의 재림이 가시적이라는 것을 명백히 한다. 사도행전에서 누가는 다음같이 증언한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 그러므로 안식교, 통일교나 여호와의증인 등이 말하는 예수의 영적 재림이란 잘못된 가르침이다.

누가는 스데반의 순교 사건을 기록하면서 스데반이 예수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본 것을 증언, 예수를 인자와 동일시하고 있다. 하나님 우편에 서신 인자는 앞으로 재림하실 예수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행 7:55-56). 이 기록은 예수의 재림이 천상에서 준비되었다는 것을 뜻한다(Guthrie, 『신약신학』, 907).

5. 바울 서신

1) 재림을 뜻하는 용어 파루시아(parousia)

바울은 예수의 재림을 뜻하는 강림(parousia)이라는 용어를 데살로니가서에 여러 번 사용하고 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살전 2:19). “그가 강림 하실 때”란 인자이신 예수가 재림하실 때를 말한다. 바울은 별세한 자들에 대하여 불신자들처럼 슬퍼하지 말 것을 권면하면서 예수의 강림 때에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위로하고 있다.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 4:15-16).

여기서 강림하시는 주는 인자(人子, ho huios tou anthropou)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하늘로부터, 즉 하나님 우편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강림하신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주 예수의 강림에 대비하여 성도들이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을 권면한다.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전 3:13). 그리스도의 재림은 밤에 도둑이 오듯이 홀연히 임하신다.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살전 5:2). 바울은 종말 때에 불법한 자들. 즉 멸망(apoleia)의 아들이 나타나 배도(背道, hẽ apostasia)를 행할 때에 주 예수께서 강림하시어 그를 죽이실 것을 예언한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살후 2:1-8). 인자의 강림은 배도자의 심판으로 연결된다.

2) 재림의 임박성

빌립보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바울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허물 없이 살아야 할 것을 권면한다.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빌 1:10). 그리고 생명의 말씀, 즉 복음을 밝힘으로써 그리스도의 날에 바울이 신자들에 대해 자랑하도록 하라고 권면한다.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빌 2:16). “그리스도의 날”이란 그리스도의 오심, 즉 재림을 말한다. 바울은 주의 재림이 가깝다고 말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풀어라고 권면한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 4:5).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함을 말하고 있다.

6. 베드로서

베드로도 그의 전서(前書)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하면서 신자들에게 믿음을 확실하게 할 것을 권면한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 1:7).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하면서 근신한 삶을 살 것을 권면한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벧전 1:13).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έπιφανέια)이란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한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하면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즐거워하라고 권면한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3). 바울은 장로들이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 되면 그의 재림 시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위로한다.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벧전 5:1-4).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 “나타날 영광”이란 그리스도 재림의 때와 영광을 말하고 있다.

베드로는 그의 후서(後書)에서 주의 재림이 더디다고 실망하거나 조급해 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주의 악속은 더딘 것이 아니라 죄인에 대해 오래 참으심에 기인하며, 하나님에게는 하루와 천 년이 같음을 알아야 한다고 권면한다.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4-9).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오실 그리스도는 도둑이 오듯이 홀연히 오며, 묵시록적 사건으로 오게 될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 3:10). 재림은 자연계의 재난 사건을 동반하는 우주적 격변 사건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성경의 예언은 생태계의 파괴와 위기가 점증하는 오늘날 더욱 실감있게 다가오는 말씀이다.

7. 요한계시록

요한은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άποκάλυΨις)를 전하고 있다(계 1:4).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은 환상 속에 본 사건들과 그 해석을 통하여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보다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1) 재림의 임박성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기록하는 목적이 하나님이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을 그의 종들에게 보이시고자 함이라고 말한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기록하면서 읽고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며,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가 임박했음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άποκάλυΨις)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1-3).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속히 오신다”고  반복적으로 그에게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 3:11). 재림의 임박에 직면하여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계 22:7). 속히 오실 그리스도께서는 각자의 행실대로 갚아 주실 것이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 사도 요한은 속히 오신다고 약속하신 주님에게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소망의 기도를 하면서 그의 계시록을 마치고 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2) 재림의 묘사

예수 그리스도는 현재, 과거, 미래를 통하여 있는 존재이시다. 그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계 1:4)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름을 타고 오시며 모든 사람들이 그를 보게 되는 가시적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 1:7). 그러면서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ὁ Κΰριος) 하나님”이라고 호칭하면서  “장차 오실 전능한 자”라고 소개하고 있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 1:8).

8. 역사와 우주의 소망으로서의 재림주 예수

우리는 다가오는 역사와 우주의 과정에 대하여 절망 가운데서도 소망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분이 오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인간 역사에 대해서는 비판적 전망을, 그리스도의 오심(Zukommen)에 대해서는 낙관적 소망을 가져야 한다. 인간 사회는 과학적으로 경제적으로 물질적으로는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윤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인간 문화(성의 타락, 동성애 풍조 심화 등)는 앞으로 퇴폐의 정도가 심해질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 역사를 그냥 버려두시지 않는다. 그는 오늘날 생태계의 파괴를 그냥 버려두시지 않는다. 그는 인간 역사의 불의를 심판하시고 인간에 의하여 파괴된 생태계의 회복을 위하여 다시 오신다. 그는 오늘날 인간 개개인의 삶의 과정을 섭리하시고, 사회와 국가의 미래를 섭리하시고 자연환경의 미래를 주관하신다. 그는 세상의 불의에 대한 심판자와 믿는 자에 대한 구원자로 오신다.

그의 재림 시에 세상사(world history)는 구속사(salvation history)에 편입한다. 여태까지 역사 가운데서 구속사는 세속사의 한 부분이었으나 역사 종말에서 세속사는 구속사에 병합한다. 그리하여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단 2:45)이 온 천하를 가득 채우는 환상인 다니엘의 예언이 성취되어 인자의 나라인 그리스도의 나라가 역사를 지배한다.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단 2:44). 중국이나 미국이나 소련이나 어떤 지상의 강대국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하나님의 나라가 수립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통치하실 것이다. 역사적 예수를 믿는 신자들은 이러한 소망 가운데서 오늘날 세상을 살며 우주와 역사를 바라보아야 한다.

맺음말

역사적 예수는 다가오는 미래에 속히 오시는 주시다. 그는 이제 부활하여 승천하심으로 역사라는 시공간의 제약을 벗어나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역사와 우주를 통치하시며 그의 오실 날을 결정하신다. 오시는 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 전부터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앞으로 오실 분이시다. 그리고 그는 지금 오시고 계신다. 그는 하나님 우편에서 그냥 앉아 계시는 분이 아니라, 역사와 우주를 경영하시고 역사 종말의 사건을 섭리하시고 경영하시고 계신다. 그는 인간 역사를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으시고, 인간의 고통과 혼란의 역사를 그의 영원한 섭리와 경륜 가운데서 다스리고 계신다. 그는 인간과 우주의 역사가 기진맥진하여 스스로 파멸하기 전에 이것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다. 그는 속히 오실 것이다(계 22:20). 그는 오늘날 고통받고 있는 인간 역사와 자연과 우주의 소망이시다. 오시는 주로서 역사적 예수는 그를 기대하는 오늘날 각 신자와 교회와 인류와 우주의 소망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