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이 목사(술람미상담소 연구원).

부부는 연령에 따라 함께 사는 이유가 다르다고 한다. 10대에는 서로가 멋모르고 살고, 20대는 서로가 신나서 살고, 30대에는 서로가 한눈 팔며 살고, 40대에는 서로가 마지못해 살고, 50대에는 서로가 가여워서 살고, 60대에는 서로가 필요해서 살고, 70대에는 서로가 고마워서 산다고 한다. 어쨌든 부부는 이래저래 애증의 상향곡선과 하향곡선을 그리며 인생의 여정을 동행하는 것 같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사역을 할 때 아내와 동행하였다. 결혼을 하지 않았던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편지하면서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고전 9:5)라고 사도권을 주장하면서 입증한 사실이다. 베드로는 아내를 특별히 사랑한 듯하다.

베드로는 부부들에게 권면하였다. 먼저 아내들에게 권면하였다. “아내된 자들아 남편에게 순복하라. 남편은 아내의 말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내의 선하고 착한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된다. 머리를 단장하게 꾸미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라. 금은보석으로 치장하거나 아름다운 옷으로 외모를 꾸미는 것보다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 더욱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다.”(벧전 3:1-5) 아내들에게 부드러운 마음으로 남편을 잘 섬기라고 한다.

그리고 남편들에게 권면하였다. “남편된 자들아 여자는 연약한 그릇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아내는 생명의 유업을 함께 받을 자이니 아내를 귀히 여기고 함께 기도에 힘쓰라. 항상 마음을 같이 하고 서로 불쌍히 여기라.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축복하라.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여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을 사모하라”(벧전 3:7-9) 남편들에게 아내를 귀하게 여기라고 강조한다.

베드로의 권면의 실천은 부부간 대화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베드로와 그 아내는 어떤 대화를 했을까?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 부인했으나 예수님이 용서하신 일, 예수님이 승천하신 일, 오순절 설교 때 3천 명이나 전도된 일, 성전 미문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를 일으킨 일, 고넬료 집에서 설교한 일 등을 서로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 아내는 베드로가 한 일을 듣고 보고 함께한 가운데 느낀 점들을 공감하며, 자기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을 나누었을 것이다. 앙드레 모로아는 “결혼은 약혼 때부터 죽을 때까지의, 결코 지루하지 않은 긴 대화이다”라고 하였다. 부부간의 대화는 남편과 아내를 이어주는 아름답고 든든한 다리이며, 두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통로이다. 부부는 다른 어떤 인간관계보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다. 그런데 실제 결혼 생활은 어떨까? 많은 부부들이 대화의 단절로 갈등을 겪고 있다. 대화의 단절은 관계의 종말을 의미한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툭툭 내뱉고, 아무리 화가 나도 절대 해서는 안 될 말까지 하기도 한다. 무시, 험담, 잔소리, 불만이 쳇바퀴처럼 돈다. 그러면 잠자리도 흔히 말하듯이 이렇게 변한다. 부부가 20대에는 포개 자고, 30대에는 마주 보고 자고, 40대에는 나란히 천장 보고 자고, 50대엔 등 돌리고 자고, 60대에는 다른 방에서 각자 자고, 70대에는 어디서 자는지 모르는 일이 발생한다.

대화를 하지 않는 부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는 부부, 장기간 떨어져 있는 부부는 인생의 동반자가 아니다. 그들은 무늬만 부부이며 부부관계에 적신호가 감지되는 경우이다. 요즘 늘어나는 황혼이혼은, 젊었을 때부터 쌓이고 쌓인 진정한 소통의 부재가 낸 결과라 할 수 있다. 인생의 동반자인 아내와 남편은 일부러 바쁜 시간을 내서라도 대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어떤 말과 행동으로 나의 동반자를 기분 좋게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며 따뜻한 말, 그윽한 미소, 부드러운 눈길, 귀 기울여 들어주기, 포옹하기, 어깨 감싸주기, 손잡기 등을 실천하는 것이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신앙적인 부부는 세상의 풍조를 따라 서로를 파괴하는 부정적인 언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권면처럼 항상 마음을 같이 하여 부드러운 마음으로 서로 축복하는 긍정적 언행을 하는 것이다. 부부는 생명의 유업을 함께 받을 동반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