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실락원 제3권에서 우리의 묵상은 어디로 향해 가는가. 오직 그 분 안에서는 만족하지 아니함이 없으니. 그 분은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이시니. 근원을 알지 못하는 빛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은 어디인가.

하나님께서는 천국 보좌로부터 사탄이 지구로 다가오는 것을 보신다. 그리고 사탄이 정녕 인간을 타락시킬 것임을 아신다. 그 때문에 독생자를 보내시어 인간의 죄에 대한 처벌을 대신할 대속자가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잘 알고 이에 순종한 성자 예수께서 그분의 뜻을 받들어 순종하기로 결심하고 제사를 드리자, 하나님이 이를 수락하신다. 온 천군천사는 성자의 영광과 인간의 궁극적 승리를 송축한다.

그러나 우리의 묵상이 이곳에 머무를 때 뒤따르는 사탄의 등장을 보라. 사탄은 세계 극외권의 뾰족하게 나온 부분에 내려 방황하다 ‘허영과 변방(Limbo if Vanity)’이라는 곳을 발견하고, 하늘의 대문을 지나 태양이 있는 곳으로 나아간다. 태양의 통치자는 우리엘이다. 사탄은 우리엘을 만나기 위하여 자신을 미천한 천사로 변신시켜 인간을 파멸로 이끌고자 하는 자신의 의도를 숨긴다. 그리고 우리엘로부터 지구로 가는 방향을 알아낸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계략을 실행하기 위해 니파테산에 내린다. 제3권의 스토리는 이렇게 진행되는 것이다.

한 가지 생각나는 일이 있다. 사탄이 인간 세계의 극외권에 내려 방황하다 찾아낸 곳이 ‘허영의 변방’이라 일컫는 곳인데, 영어 표현은 ‘the Limbo of Vanity ’이다. 언젠가 아프리카 여행길에서 한 마사이 마을을 찾아갔을 때 일이다. 마을 앞 작은 공터에 부족민들이 모여 원을 그리듯 둥들게 둘러서서 마사이 특유의 리듬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나는 호기심이 생겨 가까이 갔다.

유난히 긴 다리를 가진 마사이 청년들이 원 안에서 림보 춤을 추고 있었다. 차츰 차츰 낮아지는 막대기 밑으로 몸을 뒤로 뻗어 빠져나가는 춤이다. 장대 같은 긴 다리를 가지고, 바싹 마른 장대같은 몸으로, 낮게 허리를 젖히는 것이 묘기에 가까웠다. 춤꾼들이 몸을 뒤로 젖혀 땅바닥 가까이 낮게 닿은 막대기 밑으로 들어갈 때, 사람들은 박수를 쳤고 춤꾼들은 리듬을 타면서 장대 밑을 기어나왔다.

나는 그때 춤꾼들이 작대기를 건드리거나 몸이 부러져 그 밑을  빠져나오지 못하면 그대로 땅 속으로 묻혀버릴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그렇게 묻히면 그들 영혼은 어디로 갈까. 그 순간 밀턴 작품 속에서 사탄이 찾아간 곳에 림보가 연상되었던 것이다.

림보(Limbo)란 종종 지옥의 변방을 말한다. 지옥과 천당 사이에 있는 것으로, 세례를 받지 않은 아이나 그리스도가 오기 전 죽은 착한 사람들의 넋이 머문다고 하는 곳이다. 그리고 때때로 사람이나 물건이 잊혀진 상태를 말하기도 하고, 교도소처럼 감금된 상태를 표현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밀턴을 공부할 당시 ‘the Limbo of Vanity’, 허영과 변방이라는 장소가 참으로 사탄의 성격을 잘 표현한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고, 타종교에서 말하는 그 중간지대에 대하여 성경은 어떻게 답을 주고 있는지 매우 궁금하였다.

그러나 3권에서의 가장 큰 관심은 작가가 한 인간으로서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하고 믿으며, 그가 하나님께 구한 것이 무엇인가? 어떤 은혜를 그는 갈망하였는가? 밀턴을 읽는 오늘의 우리 모두에게도 이는 역시 큰 관심이다. 그래서 “그대 하늘의 빛이여/ 더욱 나의 내부를 비추이소서”, 이 기도는 여전히 도전을 느끼게 하고 용기를 더해 준다.

밀턴은 육체의 눈이 실명된 만큼 자신의 내면을 밝혀줄 빛을 찾는다. 정신적 또는 모든 내면의 능력을 밝혀줄 빛이, 광명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눈이 밝은 사람도 볼 수 없는 좀더 깊은 진리를 눈이 먼 자기가 밝힐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밀턴의 <실락원> 제3권은 다른 어떤 책보다 내 속에서 지금까지도 가장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