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머리말

“하나님의 아들” 칭호는 신구약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하나님에 대한 독특한 관계를 묘사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자신의 깊은 곳에서 드러난 하나님 자신이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나사렛 예수는 인간의 형체 안에 오신 하나님이시다. 그가 취하신 인간의 형체는 그의 하나님 되심을 숨기면서, 또 그로 하여금 성부께 순종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가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것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그는 부활하심으로 인류 역사상 죽은 자들 가운데 살아나신 유일한 사람이 되신 것이다.

I. 구약의 이해

1) 창세기 6장: 하나님의 아들들로서의 네피림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일반적인 용어가 사용되었다. 이 용어는 천상적인 존재들에 관하여 사용되었다. 창세기 6장 노아 홍수 이전 세대에 관한 이야기에 나온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창 6:2).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하늘에 있는 신적 종류의 존재들이다. 이들은 모든 민족의 신앙에서 신들로 나타난다. 이들이 사람 아내들과 결합하여 반신들 또는 용사들이 태어났다 함은 많은 민족들의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4절이 그 내용을 말해주고 있다.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창 6:4).

2) 출애굽기와 신명기: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들에 관하여 사용되었다: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놓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출 4:22-23).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내 아들, 내 장자”라 칭하신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장자 된 신분과 바로의 장자된 신분을 같이 취급하신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을 놓아주지 아니할 때에 바로의 장자를 죽이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신 14:1).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는 사곡한 종류로다”(신 32:5).

3) 욥기: “하나님의 아들들”

욥기에서도 천상 궁정회의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자신 아래 있는 하늘 존재들을 불러 모으시는 하늘 보좌회의이다(욥 15:8, 왕상 22:9, 시 82:1):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욥 1:6).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천상의 존재들이다. 욥기 38장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기쁘게 노래한 사실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그 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욥 38:7).

4) 역사서: “나의 아들”

다윗 왕과 그의 왕가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동일한 내용이 역대상에서 나온다: “저는 나를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니 나의 자비를 그에게서 빼앗지 아니하기를 내가 네 전에 있던 자에게서 빼앗음과 같이 하지 않을 것이며”(대상 17:12-13). 여호와 하나님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에 대하여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니”라는 말씀으로 다윗의 앞의 사울 왕과 같이 은총을 빼앗지 않고 그 위를 견고하게 세우실 것을 약속하고 있다.

4) 이사야: “내 아들들”

이사야 선지를 통하여 하나님은 고향에서 쫓겨간 자기 백성을 다시 고향으로 돌아 오게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사 43:6).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북방 바벨론에서뿐만 아니라 상부 메소포다미아(왕하 17:6)와 남방 이집트(렘 43:4-7)에서 돌아오게 하신다: 여기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내 아들들”이라고 칭하고 있다.

이 용어는 나단 선지를 통하여 다윗가의 왕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표명하는 데 사용되었다. 다윗 왕의 하나님에 대한 관계가 아들과 아버지 관계로 묘사되었다: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삼하 7:12-14). 하나님은 다윗 왕의 권좌를 견고하게 하시고 그의 아들이 그를 이어 왕이 될 것이며,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고 그 나라가 견고히 설 것을 약속하신다. 그리고 다윗의 자식에게 하나님은 그 아비가 되고 자식은 “내 아들” 될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다.

5) 예레미아: 하나님의 아들

예레미아 선지는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귀향하게 될 것을 예언하면서,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호칭하고 있다: “울며 올 것이며 그들이 나의 인도함을 입고 간구할 때에 내가 그들로 넘어지지 아니하고 하숫가의 바른 길로 행하게 하리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비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렘 31:9). 하나님은 에브라임을 “나의 장자”라고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은 더욱 간절히 그의 백성을 호칭한다: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마음이 측은한즉 내가 반드시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31:20). 에브라임은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큰 지파여서 북왕국 전체를 대표한다. 그래서 에브라임이란 표현은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한다.

6) 호세아: “내 아들”

호세아 선지의 글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한 그의 거룩한 사랑에 관하여 말씀하실 때 에브라임을 “내 아들”이라고 호칭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 내었거늘”(호 11:1).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종 되었던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던 것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은 천사들, “하나님의 자녀들” “하나님의 아들” 등의 칭호는 하나님의 선택된 자들이라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이 용어들은 하나님의 약속으로서 다가오는 신약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칭을 예비하고 있다.
 
II. 신약의 이해

‘하나님의 아들’과 관련하여 나타난 것들이 이 칭호의 의미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이 칭호는 다니엘서의 묵시적인 인물인 인자(the son of man)와 성령의 임함(눅 24:49, 행 2:33, 요 20:21-22) 그리고 세례와 관련되어 있다. 신약에서는 나사렛 예수가 사용한 이 칭호는 성부와의 친밀한 관계를 함의하는 아바(Abba)의 용어 사용과 연관되어 있다(눅 10:22, 마 11:27, 눅 22:29 ). 이것은 구약적인 하나님의 아들들이나 하나님의 아들이나 하나님의 자녀와는 질적으로 다른, 나사롓 예수의 독특성과 유일성과 관계되어 있다. “압바”의 호칭은 나사렛 예수만이 사용한, 그와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드러낸다. 이 칭호는 그 자신이 이 칭호를 사용하신 일은 적었으나 예수 자신에게서 기원한다(마 11:27, 눅 10:22).

1. 사복음서의 증언

1) 마가의 증언: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세례받으실 때 예수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하나님께 인정받고 있다.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막 1:11). 마귀가 예수의 정체를 알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리지른다.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막 3:11). 회당의 귀신 들린 자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그 정체를 밝힌다.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막 5:7).

변화산에서 변화되셨을 때, 예수는 다시 하나님으로부터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인정받고 있다. “마침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막 9:7). 대제사장의 심문을 받으면서 예수는 자신이 “찬송받을 자의 아들”이라고 시인한다. “잠잠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가로되 네가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막 14:61).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막 14:62). 백부장은 예수의 운명을 보고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증언한다.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운명하심을 보고 가로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막 15:39).

2) 마태의 증언: 하나님을 “아바”라고 호칭

유혹받으실 때 사단이 예수에게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시험을 한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 4:3).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마 4:6).

예수는 당시 어느 유대 종교인도 사용하지 아니하고 구약에서 유례가 없는, 그의 독특한 호칭 압바(Abba)의 용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부른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7). 변화산에서 예수가 홀연히 변화되셨을 때 하늘의 음성은 예수를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확인한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마 17:5).

3) 누가의 증언: 하나님을 “압바”로 호칭

예수께서 광야에서 시험받으실 때 사단은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에 관하여 시험한다.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눅 4:9).

요단강에서 세례받으실 때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인정받는다.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눅3:22).

변화산에서 변화되셨을 때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의 아들”이라는 인정을 받는다.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고”(눅 9:35).

예수는 독특하게 하나님 아버지에게 그의 독특한 “압바”(Abba)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눅 10:22).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눅 22:29).

성령의 임함을 약속하시면서 예수는 하나님을 “아바”라고 칭한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눅 24:49).

4) 요한의 증언: 예수의 “선재”

(1) 성자의 선재

하나님의 아들은 ‘위’에 거하시는 이로서 ‘아래’에 내려오신 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요 8:23). 예수는 하나님의 세키나(Shechinah) 영광을 소유하신 분이다. 이 영광에 관하여는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에서 드러난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 17:24). 그는 하나님으로서의 영광을 인간 육체 가운데 감추고 계시는 분이다.

(2) 예수는 하나님의 “독생자”

요한은 역사적 예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예수는 하나님이 이 세상에 보내신 아들이요, 구원자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7).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를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요 3:35).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3) 예수는 대속자

예수는 세상의 구원자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7). 대속자인 예수의 모습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리는 그의 대제사장적 기도에서 나타난다. 예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자리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요 17:1). 하나님이 아들에게 주신 자들이 예수를 아들이라고 믿는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요 17:9–10).

요한서신에서 요한은 대속자인 예수를 다시 증언하고 있다.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요일 4:14) 독생자의 오심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난 바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요일 4:9). 예수의 십자가는 세상을 대속하시는 하나님의 화목제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

대속자로서의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로마 시대의 가장 흉악범에게 가하는 십자가 처형을 받았다. 유대인, 헬라인, 로마인 어느 누구에게나 십자가에 달리신 자가 대속자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주장을 믿으라고 요구할 때에 모순적이며, 모욕적이고, 어리석게 보였다(헹겔, 십자가 처형, 25). 하나님은 자기 아들이 이러한 세상적으로 가장 모욕적인 형벌을 받도록 허용하신 것이다. 세상적으로 버림을 받은 하나님 아들의 십자가의 대속을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얻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음이다. 이것이 세상 지혜와 관습의 미련함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대속경륜의 지혜였다.

(4) 아들의 전권

요한의 증언에 의하면 예수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전권(Vollmacht, 全權)을 위임받았다는 사실을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요 5:19-21). 예수께서 각종 난치병자를 고치시고 각종 기적과 기사를 행하신 것은 하나님의 전권을 위임받으셨기 때문이다.

(5) 성령을 주시는 아들

요한복음에 의하면 부활하신 예수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 20:21-22). 이제 부활하신 예수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신다. 성령은 성부로부터 성자를 통하여 나오신다.
 
(6) 영생을 주시는 아들

요한은 그의 복음서의 의도를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다.

3. 초대교회의 증언

바울서신이 “하나님의 아들” 칭호 사용에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사도 바울은 이 칭호를 주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1)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로마서에서 바울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한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4). 또한 바울은 예수의 복음을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이라고 증언한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롬 1:9). 고린도 교회를 향한 편지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호칭하고 있다.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고후 1:19). 갈라디어서에서도 바울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갈 1:16).

2) 보내신 아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예수를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이라고 증언한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갈 4:4). 아들인 예수를 믿는 신자들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한다고 증언한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 4:5-6).

3) 대속자

로마서에서 바울은 예수를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화목자로 호칭한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 5:10).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호칭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4) 재림하시는 아들

데살로니가전서에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재림하신다고 증언한다.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살전 1:10). 재림하시는 아들은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심판하시는 분이지만 믿는 자들에게 구원자가 되신다.

5) 만유를 성부께 드릴 자

고린도교회를 향한 서신에서 바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언하면서 그가 재림하신 후에는이 만유를 하나님에게 바칠 것을 말한다.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 15:24). 바울은 역사의 종말에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을 통치할 것을 증언한다.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고전 15:28). 아들이 만유를 하나님에게 복종하게 하신 후에는 하나님은 비로소 만유의 통치자요 회복자로 자신을 드러내신다.

맺음말: “하나님의 아들”은 나사렛 예수의 특성을 드러내는 가장 적합한 칭호

신약의 그 어떤 칭호보다 “하나님의 아들” 칭호가 나사렛 예수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칭호다. 이 칭호는 역사적 예수를 그의 영원한 원천인 하나님과 더 잘 연관시킨다. 요한과 바울이 증언하기를 나사렛 예수는 그가 성자로 선재하시던 아버지의 품으로부터 오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시고 지상에 계실 때에도 그 어떤 인간이 가지지 못한 친밀한 관계를 성부와 가지셨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압바”(abba)라고 불렀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나사렛 예수는 죄, 죽음, 마귀를 정복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하실 수 있었다. 인간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이 일을 영광의 메시아로 하신 것이 아니라 고난의 종으로서 십자가를 지시는 일을 통하여 하신 것이다. 그리고 부활절 새벽에 그는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그를 믿는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다. 부활의 사건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권세나 명예와 지식의 욕구에 취한 자들에게는 닫혀 있으나, 믿음의 눈을 가지고 그 마음이 가난하고 청결하며 겸허한 자들에게만 열려 있다. 그러므로 역사적 예수의 메시아적 정체성은 이 세상의 눈에는 거리끼는 일이요 스칸달론의 사건(걸려 넘어지는 장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