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제 목사.
일반적으로 한국교회는 이단에 대해 병적 증세라 할 만큼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통신앙이 아니라고 보는 이단에 대한 혐오와 단죄에 아주 혹독하다. 이단에 대한 공포증은 물론이요, 현혹되는 것을 막기 위한 개교회나 교단간의 연합운동 역시 주목할 만하다. 그 예로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주요 보수 교단들이 공동으로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를 결성하여 이단 퇴치에 강력 대응하면서 상호 협조적이다.

이토록 한국교회가 신학의 순결을 지키기 위하여 신학교와 교회 강단에서 분명하고 단호하게 진리를 선포하는 동시에, 이단타파 운동에 전심전력하는 의지와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로서의 정확무오한 성경을 바탕으로,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자는 교단연합 운동이 참으로 자랑스럽다. 이는 한국 기독교의 자산이요 자랑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영특하게 왜곡시키거나 잘못 해석하고 잘못 적용하는 사람들이 허다한 이 시대에, 기독교의 근본 도리를 순수한 신앙으로 지키려는 한국교회이기에 마음이 든든하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살고 있는 필자가 한국 기독교계를 생각할 때마다 의문이 떠나지 않는 사실 하나가 있다. 한국교회가 사이비·이단과의 논쟁과 공방에는 전투적인 자세로 임하면서, 자유주의 신학의 대표격인 세계적 교회단체인 WCC에 대하여는 선별적이고 관용적인 것 같다는 점이다. 비(非)성서적이거나 비교리적인 기미를 보이는 개인이나 교회나 단체에 대해 무차별하게 재단하고 정죄를 한다면, 역시 성경적 신앙이 아닌 자유주의 신학에 속한 개인이나 교회나 단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강력 대응하여야 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반대는커녕 사안에 따라 그들과 긴밀한 연합관계를 유지함은 물론, 더 나아가 단체장이나 임원으로까지 실질적인 참여를 하는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필자가 오래 전 읽었던 어느 기사 중 “WCC, 교리적 문제 있지만 총회 개최는 환영해야” 한다는, 일부는 동참까지 하고 있는 상황을 보고 혼란스러웠다.

일반적으로 미국 또는 한국의 보수 교단들이 사이비 이단이나 자유주의 교단들에 대한 경계심을 갖는 이유는, 성경의 근본 진리를 왜곡하기 때문이다. 이단의 경우 하나님으로부터 자신들만이 특별한 계시를 받았다면서, 그 계시를 성경보다 우선시하고 유사 기독교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WCC는 수사적(Rhetorical) 기교로 자신들의 원래 모습을 숨긴다. 즉 기독교 정통신앙의 본질인 성경이나 교리, 그리고 규범으로 공인된 신앙고백서를 거부하면서 외향적으로는 순수한 기독교 단체인 양 왜곡·분칠한다.

한국의 WCC 소속 교단들과 달리 유럽이나 미국에서 WCC에 속한 교단들은 성경의 근본 진리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장로교회(PCUSA), 미국연합감리교회(UMC), 미국성공회(ECA), 미국루터란교회(ELCA), 미국연합그리스도의교회(UCC)를 보자. 그들은 성경의 무오성을 부정한다.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속죄사역, 육체 부활, 초자연적 기적, 전통 신앙고백 등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이비 이단의 특징과는 다르지만, 성경의 권위와 절대성에 대한 부인은 오히려 차원이 다른 고단수다. 인간의 이성을 앞세워 성경의 권위와 가르침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십자가 대속의 은총은 안중에도 없다. 전통 기독교 신앙을 거부하면서 종교 다원주의 하에, 오히려 복음적인 교회들에 냉소적이요 시대에 뒤떨어진 아주 소견 좁은 낙후자로 본다.

어찌 이 뿐인가? 인본주의적 기독교 단체인 WCC 소속 교단들의 선교관은, 그리스도의 대속을 중심으로 하는 죄 사함이나 영혼 구원이 아니다. 세속화된 사회 속에서 복음적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기독교의 기본 주제에는 관심 밖이다. 이들 교단 신학교와 교회 강단에서는 진정한 초대교회의 메시지였던 하나님 나라는 없다. 종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혼합시켜 기독교의 독특성을 약화시키면서 현실참여 운동을 사명으로 여긴다.

정통성 예수운동에서의 회심이나 회개가 아닌, 사회정의, 인간평등, 사회악 타파, 경제불평등, 지상에서의 평화 등에 역점을 두면서 현 세상 모든 체제를 변혁시키려는 일반 시민운동 단체에 불과하다. 어떤 이의 말대로 WCC는 복음화보다 현실문화, 신자화보다 인간화, 교회화보다 사회화에 치중하면서 성서의 가르침과 기독교의 정통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로 보아 복음주의 입장에서 WCC는 사이비 이단 못지 않게 경계의 대상이다. 유럽이나 미국의 일반사회에서도 WCC는 순수 기독교 단체라기보다 인본주의 기독교 단체로, 세상 여느 인권단체와 같은 류로 본다. WCC 스스로도 복음주의 교회와는 불편한 관계임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복음주의의 여러 교단들이 WCC와 함께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특히 필자에게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소속 교단들에 대한 의구심을 떨칠 수 없는 것이 있다. 자칭 복음주의라는 이들이 왜 사이비 이단은 No이고, WCC는 Yes인가? 신학적인 면에서 WCC를 어떠한 단체로 보기에 이단에 대해서는 “아니요”이고, WCC는 “예”이냐 말이다. 사이비 이단은 극구 반대하면서, 비성경적 단체인 WCC는 대환영하며 손에 손을 잡고 발에 발을 맞추어 힘차게 행진하면서 개혁전통 신앙 동지들과는 엇박자의 길을 가고 있는가? 분명 NCCK 회원 교회들에게 사이비 이단은 자신들 교회를 혼란케 하는 비성경적 적대 상대이다. 그렇다면 WCC는 성경적인 동료 신앙단체란 말인가?

얼마 전 예장통합측 소속으로 이단 연구에 몰두하는 어느 목회자는, 범교단적 차원에서 이단 문제에 대처하기 위하여 NCCK 같은 기구와 함께 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WCC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였을까? NCCK는 WCC와 상호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공동 사업을 추진하는 단체이다. NCCK는 WCC의 수족과 같은 존재로, 신신학적 방향과 사업노선에 대해 공동운명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분리할 래야 분리할 수 없는 상하 관계임을 세상이 다 알고 있다. 미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USA)도 한국의 NCCK와 똑같은 신학 사상의 위치와 범위 내에서 WCC를 중심으로 연합사업을 해오고 있기에, 보수와 복음적 교회들은 그들을 일심동체로 보고 있다.

2009년 9월 예장통합 전국장로회연합회는 NCCK의 신앙 및 신학방향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WCC 세계 총회 개최지를 한국의 부산으로 확정한 것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선언서에서 전장련은 “NCCK의 신학과 신앙 입장을 차제에 밝히고 성경을 벗어난 신앙과 신학은 성경에로 다시 돌아올 것을 우리는 간곡히 촉구하면서, 성경적 기독교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그 어떤 형태도 용납하지 않을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했다. 이 경고문이 뜻하는 것은 NCCK가 WCC와 유기적인 연대(상호의존이 긴밀한) 관계에 있다는 것이요, WCC의 신학노선과 선교 방향이 기독교 정통 신앙과 배치되듯, NCCK도 역시 다를 바 없다는 표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이비 이단의 해결을 위하여 한국교회가 NCCK에 기대를 거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다. 이에 못지 않게 우리를 더욱 서글프게 하는 것은, 자칭 정통신앙 복음주의라는 교단이 사이비 이단은 척결해야 하고 자유주의 신학의 주체인 WCC와는 공동사역을 해야 한다는 항변이다. 어디서 이와 같은 발상이 나왔을까? 이는 모순(Contradiction)이다. 신앙의 반칙(Foul play)이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지키려는 이들에게는 헷갈리는 말장난이다.

진정 이단을, 그리고 자유주의 신학을 구별하는 잣대가 성경이라면, 그 답은 일치해야 한다. 거짓 선생, 다른 복음 전파자, 그릇된 교훈으로 순수한 성도를 미혹케 하는 자들을 검증하는 도구가 오직 성경이라면 그 답은 하나여야 한다. 그런데 왜 둘인가? 왜 이건 안 되고 저것은 되는가?

여기서 우리가 거듭 명심할 것은, 이단은 이단대로 자유주의 신학은 자유주의 신학대로 정통 기독교 신학과 교회에 대치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수 교단 실무자들이 이단에게만이 아닌, 자유신학 교회나 단체에 대해서도 분명한 지적과 경계가 있어야 한다. 그리 하는 신앙의 용사들이 있기는 하지만, 한편에서는 사이비 이단에는 공격적이면서 비성서적인 자유주의 교회나 단체에는 협조와 동조로 이중성을 보이는 것 같아 서글프다. 강단이나 교단에서는 복음의 순수성으로 십자가의 도리를 외치면서 돌아서서는 자유주의 단체와 손을 잡고 소박한 성도의 헌금으로 선심을 베푸는 것은 아닌가 싶어 가슴 아프다.

WCC는 사이비 이단보다는 품위가 있어서인가? 덩치가 커서인가? 세계적이라서인가? 혹은 사이비 이단보다 외관상 성경적 기독교 단체라서인가? 어린 양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이단 단체도 경계해야지만, 그보다 더 파괴력을 갖고 양의 탈을 쓴 인본주의 단체 역시 철저히 대적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미국이나 서구 교회를 함몰시킨 자유주의 신학의 핵심 모체인 WCC의 전략을 무시하다가 뒤늦게 통탄할 때가 올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동시에 바라는 것은 WCC가 자신의 신학과 행동강령에 대해 솔직히 드러내 한국교회가 WCC에 대한 정체를 바로 알게 하기를 바란다. WCC여, 이제는 커밍아웃(Coming Out)할 때다. 분명히 자신의 참 모습을 밝히라. 무엇이 두려운가? 대명천지에 눈 가리고 아웅한다고 될 일인가?

우리 말에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어가 있다. 이는 잘못을 위압으로 짓눌러 사람을 바보로 만들거나, 바른 것을 그르다 하고 그른 것을 바르다며 밀고 나가는 경우에 쓰이는 말이라 한다. 한국교회가 이 말을 되새기며 사이비 이단이나 WCC에 대한 혼동으로 주님의 교회를 더럽히지 않아야 한다. 감사하게도 한국교회는 몰락해가는 유럽과 미국의 자유주의 교회들로부터 얻는 교훈이 있다. 그것은 곧,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전능자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답이라는 것.

2013년 2월 17일
이홍제 목사, Ph.D.(The University of Glasgow, Scotland)

부산신학교(현 경성 대학교 신학부) 졸업
Southwestern College B.A.
PCUSA 소속 San Francisco Presbyterian Theological Seminary M.Div.
Western Conservative Baptist Seminary Th.M. 과목 이수
The University of KentM.A.
The University of Glasgow Ph.D.(The Christology in Latin American Liberation Theology and Korean Minjung Theology)
예일대 신학부 객원연구원(A Research Fellow)
미국 장로교 소속 캔사스노회(The Presbytery of Southern Kansas)에서 목사 안수
위치타 한인장로교회(Wichita Korean Church) 2년 담임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 시온장로교회에서 16년 담임 후 은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