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동북아공동체연구회 회장 이승률
1. 동북아 패권경쟁
 
2013 계사년 새해 벽두부터 동북아 지역 패권 경쟁이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남북한 뿐만 아니라 한반도 주변 4대국 모두 새 지도부가 들어선 만큼 어느 정도의 혼란은 예상된 터였지만, 자국의 이익에 따라 신질서 구축을 위한 기선싸움이 대단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는 한 치 양보도 없는 중일 간의 갈등이다. 아베 신조 총리는 지난 1일 신년사를 통해 ‘강한 일본을 되찾을 것’이라 강조한 데 이어 실제로 중국을 정면으로 겨냥한 군사전략을 추진하고 있으며, 중국 역시 지난 11월 시진핑 총서기 취임 연설시 밝힌 ‘중화 부흥과 군사력 강화’라는 국정목표대로 동아시아 해양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일본 견제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여기에 한일관계는 독도와 위안부로 대표되는 영토분쟁과 역사문제 등 여전히 풀지 못한 갈등이 산재해 있으며, 덧붙여 최근에는 한중일 3국간 동중국해 해저대륙붕 구획문제로 본격적인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미 오바마 1기 정부에서부터 천명한 ‘아시아 중시(pivot to asia) 전략’을 이어가는 미국은 아시아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고 있으며, ‘강한 러시아 부활’을 내걸고 재집권한 푸틴 3기 체제는 극동개발에 대한 야심을 보이며 동진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한 EU의 재정위기와 장기적인 경기침체의 여파는 세계 전역에 활력을 잃게 했고, 마땅한 대책이 세워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수 년간 계속 세계 경제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 가운데 새해를 맞이했다.
 
그런 가운데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핵 개발은 물론 장거리 미사일 실험까지 강행해가며 끊임없이 긴장을 조성하고 있는 북한문제까지 덧씌워진 동북아 정세는 그야말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오리무중(五里霧中)과 암운 속에 빠져 있는 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새로 등장한 각국의 리더십들이 이 지역에서 보다 큰 결정권을 가지려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며 동북아 지역 ‘새판짜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 혼란한 시대상황 속에서, 다음달 새로이 태동하는 한국의 신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대국(大局)적이고 포용력 있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때라고 본다.
 
2. 중심축 국가(pivot state)로서의 한국
 
누누이 강조했듯이 한국의 신정부는 좀 더 과감하고 진취적인 태도로 동북아미래사회를 선제(先制)하는, 창의적이면서도 합목적적인 대안을 기획할 수 있어야 될 것이다. 여기서 신정부에 정책적 논거(論據)로 제시해 보고자 하는 점은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이 제안한 경제적 외교술(economic statecraft) 활용 방안이다.
 
미국은 그동안 지정학적 영향력 확대 관점에서 국방비 등 상당한 국가자원을 투입했지만 (아시아에서의) 경제적 역할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아시아 영향력 확대 도구가 군사·안보 측면보다 경제정책으로 변했음을 깨달아, 경제를 아시아 외교 정책의 중심으로 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언 브레머 회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2013.1.8)를 통해 한국은 어느 한 쪽도 과도하게 기대지 않고 파트너의 저변을 넓히는 중심축 국가(pivot state)가 되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다시 말해 현재 한국은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이를 벗어나 미국 혹은 중국이라는 특정 국가나 그룹에 과도하게 기대지 말고 더 많은 파트너를 찾는 데 열심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한국은 어느 나라와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피버팅(pivotting·선회축과 같은 중심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역내 국가와 일정부분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측면을 잘 활용한다면 한국에게 어렵지 않은 일이라 본다.
 
현재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막기 위해 일본과 동맹을 강화하면서도 예전 같지 않은 일본의 경제력과 국제적 영향력을 감안해 보다 탄탄한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절실히 기대하고 있으며, 중국은 최대 무역 파트너로써 상호 중요한 관계일 뿐만 아니라 미국 견제를 위해 한국을 전략적 가치지역으로 여기고 있고, 또한 러시아는 극동개발에 한국과의 협력이 필수적임을 인식하여 계속적으로 협력의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다. 이러한 상호이해와 상호의존의 긍정적인 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시점에 한국이 미중일러 등 한반도 주변 국가 간에 얽혀있는 복잡한 문제를 해소하는 데 있어서 중심축 국가(pivot state)로서의 기능을 발휘하여 서로의 합의점을 찾아내 갈등을 해소하고 상호협조를 통해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유도하는 데 중심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면 이는 곧 역사 발전의 새 장(章)을 여는 길이라 여긴다.
 
3. 평양과기대를 활용한 ‘열린 정책’ 기대
 
또한 동북아 국제협력에는 기본적으로 외교·안보적 평화가 전제되어야 하는 만큼 남북한 우호 증진과 한반도의 안정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 신정부가 국제 환경의 변화에 맞춰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의 안정을 위한 새로운 외교·안보전략, 특히 대북전략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여 한미동맹의 굳건한 기초 위에 ‘제3의 지평’을 모색하는 ‘열린 정책’을 펴주기를 기대한다.
 
최근 북한은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지만, 박근혜 차기 정부에 대해서는 잇따라 유화적인 메시지를 선보이고 있다. 특히 북한 관료들은 차기 박근혜 정부와의 경협을 활성화하는 것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흐름을 활용하여 우리 신정부가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적기라고 본다. 이럴 때,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한 번도 논의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히든카드를 하나 소개함으로써 ‘제3의 지평’을 모색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한다. 다름 아니라 신정부가 대북정책을 수립할 때, 남북한 합작교육특구로 승인, 설립한 평양과학기술대학(2009.9.16 개교)을 적극 활용할 것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최근 주변국가의 학자, 전직 고관들 및 기업인들이 평양과기대를 통해 북한과 소통하는 기회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상징적인 예가 바로 1월 7일 방북한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 일행의 평양과기대 방문이다. 슈미트 회장은 ‘개인적이고 인도적 차원의 방북’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의도야 어찌되었던 이번 방북을 통해 북한이 바깥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어떠한 성과를 거두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런 기대를 갖게 하는 이번 방북 기간에 평양과기대를 방문한 것은 그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의 국제화를 위한 경제기술관료 육성의 장(場)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평양과기대에서 북한 내 IT 인재 육성 현황을 소개받고, 이를 징검다리로 하여 북한과 구글 간 IT분야의 교류가 이어지도록 하는 등 직간접적인 지원 방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는 점이 주목해 볼 만하다.
 
더불어 북중 경제협력프로젝트인 나선경제특구의 핵심지역인 훈춘에 ‘포스코현대국제물류단지’를 작넌 9월에 착공하며 북중경협에 한국기업이 참여하는 일이 가시화되고 있는데, 이 프로젝트 착공식에 김진경 연변/평양과기대 총장이 VIP로 초대받아 간 것은 북중경협과 북한 내수경제 발전에 필요한 차세대 경영 인력과 산학협동 연구인력을 육성한다는 측면에서 크게 주목받을 만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덧붙여 나진·선봉경제특구의 물류, 유통, 금융 및 무역 전반에 필요한 실무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올해(2013년) 3월 개학을 앞두고 있는 평양과기대 나진분교의 설립은 이 지역의 특수성(북중러 접경지역 국제도시형 경제특구)을 고려할 때, 앞으로 중국 동북지역, 러시아 극동지역, 북한 북부지역이 연합하는 북방경제개발지구로 발전하게 될 전망이고, 여기에 한국(기업)이 참여하게 됨으로써 초국경 경제협력의 새로운 장(신북방경제협력체제)을 구축하는 기반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이런 과정에 새로 설립되는 평양과기대 나진분교가 3+1(북중러+한국) 신북방경제협력에 필요한 실무인력을 육성·공급하게 된다는 일은 환동해를 중심으로 동북아 국제협력시대를 새롭게 열어가는 중요한 관건을 제공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또한 2011년 10월에 북한 당국의 관심을 받으며 해외 석학들을 초대해 열린 ‘제1회 과학기술국제학술회의’가 평양과기대에서 성공적으로 개최되었는데, 올해 안으로 북한의 경제개발 협력 방향을 모색하는 또 다른 국제학술회의를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행경제(transition economy) 전문가들이 자문단을 구성하여 올해 상반기 중에 평양과기대를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일련의 이슈들을 상기해 볼 때 평양과기대가 국제관계의 새로운 대안을 만들고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이끄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지난 1월 1일 발표한 신년사를 통해 과학기술의 힘으로 경제강국 건설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놓아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향후 몇 년 이내에 북한이 정보화시대 경제체제로 전환하고, 경제기술관료집단이 전면에 등장하는 등 격변의 시대를 지날 것임을 전망할 때, 그러한 변화를 견인하는 차세대 지도자를 육성함과 동시에 남북간 대화 및 인력교류의 창구로서 북한 사회와 외부세계를 상호 연결, 우호 증진시키는 매체기관으로 평양과기대가 갖고 있는 존재 가치와 역할이 지대하다고 볼 수 있고, 앞으로의 그 사명과 책무가 막중하다 할 수 있다.
 
2013년 태동하는 박근혜 정부가 새로운 국가 비전을 찾을 때, 이언 브레머 회장이 제시한 중심축 국가(pivot state) 이론을 원용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남과 북이 서로 신뢰를 쌓고 이를 바탕으로 주변 국가들과의 우호관계를 넓혀가는 방안으로 북한의 차세대 경영인과 기술인력을 배출하는 일을 목적으로 설립되었고, 개교한지 벌써 4년차에 접어들고 있는 평양과기대를 국가차원에서 최대한 지원, 협조함으로써 북한의 국제화를 견인하고 나아가 북한 인력개발 및 남북한경제공동체 구축을 위한 실질적인 산학협력기구로 활용하는 ‘열린 정책’을 펴나가기를 기대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남북문제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고 나아가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공동 발전에 기여하는 미래지향적인 기회(“새로운 시작”)를 창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이것이 또한 신아시아시대를 이끌어 가는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승률 회장 
(사)동북아공동체연구회 회장 / 연변·평양과기대 대외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