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박사(한일장신대·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제31장 강박증과 향유의 문제

강박증은 심리적 결핍이 그 원인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도 여전히 남아있다. 단순히 채워져야 할 점에서는 사랑이 긍정적 에너지이고 욕구의 문제이지만, 더 깊은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강박증을 올바로 이해하고 치료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여기서는 이와 관련된 문제들을 다루기로 하자. 물론 이런 일은 한계성을 가지는 특성 때문에 일단 몇 가지 판별 기준을 세우고 그에 상응하는 방법을 시도하는 것으로 제한해야 한다.

1. 강박증 원인으로서 향유의 추구

강박증은 향유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그들은 좀처럼 향유하는 것에 서투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향유는 시간 낭비로 생각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특정한 일에 집중하여 일 중독에 이르기도 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향유란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본질적으로 향유를 추구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향유를 즐거움이나 쾌락, 그리고 이완을 가져다 주는 모든 행위들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러다 보니 인간에게 향유를 추구하는 본능은 그 자체가 무엇인지 매우 알기 어려운 때가 있다. 향유는 욕구라는 행위로 나타나 사람들이 그 안에서 기쁨을 얻으려 하거나, 더 은밀한 형태로 평화로운 감정 속에서 즐기려고 한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에게 욕구가 결핍되거나 왜곡됐을 때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거꾸로 그런 감정을 느낀다고 해서 반드시 그들의 욕구적인 삶의 현존을 선물로 받을 수 있도록 자신에게서 벗어나거나 그들의 과거로부터 벗어났다는 것을 보증하지도 않는다. 프로이트가 말했듯이 인간의 감정은 모두 진실하다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감정은 욕구의 원인도 아니고 대상도 아닌 사람에게 옮겨질 수 있다. 그것은 죄책감에 관한 연구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인간 감정의 특징의 하나인 강박증이라는 현상에 대해 우리는 그것을 욕구의 질서 안에서 분석해야 한다. 더욱이 히스테리는 욕구와 정감의 특별한 혼란으로 인간적인 사랑 속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우리는 히스테리와 비슷한 증상들에 대해서도 살펴야 한다. 히스테리는 특별히 강박증이라는 측면에서 인간적 욕구를 담을 수 있는 구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히스테리는 일종의 신경증으로 위험한 욕구를 다른 형태로 계속 이행시키려 하며, 성공시키지 못한 것이 남아 있는 잔여물이기 때문이다.

히스테리 환자들은 자기가 정말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히스테리컬한 아내의 성적이고 정서적인 불만 때문에 상처받은 남편이나, 몸의 병을 고치지 못한다고 몸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를 만나는 의사에게 정서적인 고통을 도와달라고 보채거나, 너무 뽐내거나 조심성 없이 행동하는 강박증 환자들을 생각하면 알 수 있다. 이런 히스테리 환자들은 종종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억지를 부리기 때문에 사람들은 히스테리가 도덕적으로 잘못되었기 때문에 생긴다고 주장하면서 전체적인 의미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사람들은 히스테리 환자들로부터 사랑해 달라거나 도와달라는 요청을 집요하게 받거나, 그들의 거부, 과시, 고통이 계속 옮겨 다니기 때문에 결국 의기소침해져서 그들의 위장(僞裝)이 너무 심하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은 히스테리 환자들이 하는 행동이 때때로 매우 거짓되게 나타날지라도, 그것은 그들의 복잡한 과거사의 고통에서 끊임없이 정교하게 나오는 욕구의 기계장치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면 강박증이 어떻게 히스테리와 관련되는 것일까? 이들의 히스테리에 의한 욕구 병리는 강박신경증보다 분간하거나 분석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강박관념은 방어 전략에 충실하면서 경직된 구조를 갖고 있지만, 히스테리는 이와는 달리 심리적으로 덜 한정돼 있고, 감정에서도 더 변화무쌍한 변화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성적 결핍의 히스테리는 욕구를 형성하고 유지하며 또 실패하는 여러 과정들과 관계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강박증을 욕구 불만의 히스테리에 대한 특성이 집착하려는 행동에 어떤 반향을 일으키는가에 대해 지적하는 것으로 치료적 의미를 찾으려 시도한다. 이런 것은 강박증의 치료에서 향유 충족의 일환으로 이해돼야 할 것이다.

2. 억압이나 좌절된 욕구의 해소

강박증은 성격적으로 너무나 철저한 나머지 심리 내면에서는 억압돼 있거나 욕구적으로도 좌절된 측면을 상정해야 한다. 전술한 대로 그들이 향유 문제는 소홀하고 생산적인 것만 지향하는 특성이 그런 결과를 초래한 측면으로 보아야 한다. 그들이 지나친 도덕적 완전주의나 타의 모범이 되려는 이상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한 것도 스스로 자신을 억압하고 욕구의 좌절을 가져오는 원인이라고 보아야 한다.

물론 인간은 누구나 이상화를 추구하는 본능이 있다. 이런 이상화는 곧잘 현실과 대조되는 개념이다. 어려운 현실을 살면서도 아름다운 꿈을 꾸며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넉넉한 현실을 살면서도 아무런 이상 없이 사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강박증 환자를 지나친 이상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프로이트는 이상화를 “대상과 관계되는 과정으로, 그 속에서 대상의 본성은 변화되지 않으면서 심리적으로 확장되고 찬양되는 과정”이라 말한다. 이런 이상화는 일면 현실을 탈피하려는 성격을 가졌는데, 승화와는 조금 다르다. 승화는 성(性) 본능에서 나왔지만,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것으로 변환시켜 성적이지 않은 목적을 향해 발전적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억압이나 좌절된 욕구에서 강박증 환자를 이해하는 작업은 치료의 중요한 기초에 해당한다. 그들에게 유달리 욕구의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성적인 측면과 관련하여 생각해볼 수 있다. 이는 강박증이 전술한 히스테리 환자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해를 정확하게 하기 위해 우리는 히스테리에 대해 더 기술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대상의 특징을 찬양하지만, 히스테리 환자들의 문제는 이상화하려는 그들의 지배적 욕구가 파괴되지 않을 때 생긴다. 여기서 ‘히스테리’는 ‘자궁’이라는 뜻으로 정신의학에서 성적 욕구불만이 정신 특유의 질병이 되는 것을 지칭하게 됐다. 그러면 강박증 환자들이 혹시 욕구 불만족이 그들의 행동을 유발시키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하자는 것이다.

이런 일은 상담치료의 장면에서 곧잘 발견된다. 그들은 욕구 불만족을 가질 때 더 많이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적 측면에 욕구불만을 느낄수록 무엇인가에 집착하는 일에 더욱 고착된다. 이제 그들은 무엇인가에 집착하는 일이야말로 절대적이라 믿고, 거기 참여하여 전적으로 수고를 바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이끌리기 때문에 고통스럽다. 이런 현상은 그들이 히스테리컬한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실망의 수렁 속으로 들어가는 열정 때문에 관심을 기울이지, 보통 때는 무시하기 쉽다. 이는 강박증 환자들의 상담치료에서 히스테리컬한 연구에도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흠이 없고 결점이 없는 남성을 꿈꾼다. 그러나 남성들은 언제나 거만한 듯한 외모 속에 나약함을 숨기고 있다. 남성들이 만약 겸손하게 보인다면, 그것은 방어를 위한 무기일지 모른다. 우리는 종종 능력이 있지만, 그들에게 다가오는 욕구에 원칙적으로 닫혀 있는 남성에게 히스테리 환자들이 유혹하면서 집착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의사, 목회자, 정신 치료자들은 흔히 그런 대상이 된다. 그 집착은 성적 욕구불만 때문에 생긴 것이고, 우리는 거기서 성적 욕구의 본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이 처한 입장은 그들에게 그 욕구에 응답하지 못하게 하면서, 거기 머물러 그들이 흠이 없는 남성이라는 멋진 모습이 파괴되지 않도록 베일에 가려 있을 뿐이다. 히스테리적 특성의 역설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이상화는 타자에게 욕구를 불러일으키지만, 자기를 통제하려는 의지는 타자가 흠이 없고, 그럼으로 아무 욕구도 없게 되려는 타자의 비밀스러운 희망 때문에 유지된다. 다시 말해 히스테리 환자는 그들에게 아무 욕구도 표현할 줄 모르는 욕구 대상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면 강박증 환자가 개인적 삶에 대해 사랑의 결핍이 존재함을 상정해야 한다. 이는 강박증이 히스테리 환자와 너무나 닮았다는 것을 생각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히스테리 환자는 아직 얻지 못한 그 사람과의 내밀한 삶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한다. 그러면서 알 수 없는 감정을 탐색하고, 언젠가 선택받기를 바라지만 그들이 버리면 어떻게 하나 두려워하면서 미리 실망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여성 히스테리 환자에게 욕구의 대상은 ‘이상화된 남근’이라 할 수 있다. 오로지 그녀들에게는 성적 관심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때 ’남근‘은 상징적 실재인데, 그것의 실제적 기호이고, 그 기관은 남성의 성기다. 그런데 이상화된 남근은 히스테리 환자들이 바라는 힘을 잃지만 않았더라면, 그녀들에게 완전한 향유를 줄 수 있으리라 기대되는 존재의 상상적인 표상이다.

반면 남성 강박증 환자에게 어머니는 이상화된 대상의 모습을 나타낼 수 있다. 그의 자리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런 모습을 취하는데, 하나는 어린 남자아이에게 비친 어머니의 위치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어머니와 그를 분리시키는 금지 때문이다. 그런 상황적 이유는 어머니를 더 이상화시킨다. 강박증 환자들이 집착을 찾는 행위가 모성애를 그리워하는 행동이라면 때때로 그들이 아내로부터 유혹을 느끼면, 아주 두려운 성적 퇴행이 일어나고, 그것은 반동에 의해 이상화를 더 발전시킨다.

그러나 이상화를 강화시키는 상황이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욕구의 대상에 대한 이상화는 욕구의 형성 과정에 반드시 필요하고, 그들이 효과적인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욕구를 통해 향유를 누리려면 이상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특이한 사실은 성적 불만의 현실이란 그것이 아무리 방어적이라 할지라도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만 내면에서 꿈틀대는 초기의 애착과 금지를 유지하지만 억압에 의해 억눌려질 뿐이다. 이런 것이 현실에서 자유롭게 행사되지 못하면 정신적인 것, 즉 플라토닉한 사랑으로 변화되기도 한다. 치료자가 이런 성적 욕구불만을 간과하고 그들의 문제에 대해 모든 것을 이해한다고 하거나 치료하려 한다면 모순일지 모른다.

3. 무엇인가에 집착하는 행동과 욕구의 상관성

강박증은 어떤 유형이든지 욕구 결핍에서 생각해야 한다. 정신에너지 측면에서 긍정적 특성이 결핍되어 지나치게 긴장된 증상이라 볼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는 자기도 모르게 무엇엔가 집착하는 증상을 유발하고, 내면의 자유롭지 못한 점이 억압을 통해 외적으로도 여유와 안정을 갖게 만들기 어렵게 한다. 이런 요인이 바로 무엇인가에 집착하는 특성을 초래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강박증 환자의 행동은 비단 집착만이 아닌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무엇인가에 집착하는 행위는 그들의 대체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욕구가 대체 대상을 더욱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해된다. 실제로 그들이 특별한 대상을 선택하고 바라는 것은 선택된 대상이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면서 자존심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 이렇게 상상 속에서 자기를 확장시키는 것은 그들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욕구를 펼치면서 내면에 숨기고 있는 과대적 요소를 품고 있다. 그것들은 그런 생각을 말하면서 체면 때문에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버릇이나 특별한 것을 찾으러 다니는 태도에서, 그리고 일상적인 일에서도 특이한 것에 집착하며 자기방어적 행동을 보인다는 데서 드러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정작 자기가 하는 행동에 대해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점을 치료자는 알아야 한다. 때로 이런 경우 남성 강박증은 자신도 모르게 여성을 이상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때 욕구 대상이 되는 여성에 대한 이상화는 동정녀나 소공녀에 대한 찬양, 혹은 플라토닉한 사랑의 대상이나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숭배로 이어지거나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열정을 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에서 작용하는 불만족에 대해서 일어나는 욕구는 결코 만족되기 어렵다. 그것은 욕구를 위한 욕구, 채워질 수 없는 욕구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욕구 불만족의 문제는 사랑의 열정과 같이 있지만, 그 열정은 자신의 미래를 파괴하고 만다. 이런 현상에는 본래 현실적 상황이 요청하면 욕구 불만족은 신앙적 사랑으로 나아가게 하는 절대적 열정이 내포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중세 궁정의 사랑을 읊었던 수많은 시인들이 욕구에 대한 숭배를 사랑의 신비주의로 바꾸면서 수도사적 삶으로 나아갔는지 모른다.

상담치료적 관찰에서 볼 때 강박증의 욕구결핍 문제는 그들이 집착한 대로 욕구에 불만을 느끼는 현상으로 중요한 아동기 자리의 표시라고 보아야 한다. 아동기 자리의 특징은 병적 허기와 식욕부진이 교대로 나타나는 데서 보듯 섭식행위와 관계되는 증상으로 나타난다. 아동기 자리는 기본적으로 내적 공허감을 없앨 수 있는 사랑의 애착 대상을 탐욕적으로 추구한다. 욕구 불만족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발견되는 양가성은 강박신경증 환자들처럼 사랑과 미움의 양가감정이 아니라, 탐욕 때문에 어떤 대상에 집착했다가 실망과 무관심 때문에 돌아서기가 교대로 나타난다. 그것은 다른 모습으로 어떤 것을 빨아들였다가 거부하거나, 뜨거웠다가 차가워지거나, 가득하게 찼다가 비우는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확실한 것은 욕구 불만족의 원천이 강박증 원인이 된다는 점이다. 그런 욕구로 인해 선택되는 행동은 집착을 추구, 자신의 허탈한 부분을 채우려는 자기애와 이상화를 거치면서 어려운 길로 나아가지 않는 한 자신에게 평화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이런 행동은 대개 의식의 통제를 벗어난 상태에서 억압이 역동적으로 작용하여 만드는 욕구적인 표상의 무의식적 고집이기 때문이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강박증은 사랑의 욕구로부터 나왔으며, 동시에 사랑의 욕구에 대한 방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들은 욕구의 대상을 이상화하면, 비록 일시적이지만 욕구로부터 무한하게 벗어나게 만들고, 그렇게 내면의 욕구를 달래고 있는 점에서다.

이런 설명이 때로는 무모하거나 자의적인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욕구와 강박증 및 집착, 욕구 불만과 강박증 사이의 상관성은 치료자들이 그들의 내면 의도를 정신의 지하에서 싹트는 것과 분리시키려 하기 때문에 더 불확실하게 되고 마는 점에서다. 그러나 상담치료에서 선입관을 갖지 않고 그들에게서 진실하게 들은 것을 경험적으로 실험해 보지 않은 치료자들에게는 그들의 증상이 아직은 환상적이라 생각될지 모른다. 그것인 너무 지엽적인 것이라 생각되는 치료자들이 불편해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구체적 자료가 없으면 결코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의 내용을 의미하는 예를 충분히 제시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전문적인 일에 성공적으로 종사했던 재능있는 여성의 경우를 예로 들고자 한다. 그녀는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강박증과 불안 때문에 무엇엔가 집착하다 강박증 환자가 되었다. 그녀는 상담분석을 받으면서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지만 나중에는 매순간 놀라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실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그것은 그녀가 사춘기와 청소년기 동안 이성과의 에로틱한 관계에 빠지는 환상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처음 그녀는 그녀가 아직 아이였을 때, 침대에 누워 그녀의 옆에 누워 있는 남자를 상상하곤 했는데 그때 그녀는 남성의 손을 자기 가슴에 가져다 댔다. 그때의 상상은 그녀에게 아주 따뜻한 느낌을 가지게 하였다.

어린아이들은 살아있는 사람이 왜 부재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이 부를 때 왜 대답하지 못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나이에 그와 같은 ‘환상’을 가지곤 한다. 그때 아이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지금 있지 않은 사람의 음성을 듣거나 보는 등 ‘환각’ 체험을 하곤 한다. 이 특별한 경우 그녀가 물리적으로 접촉했다는 인상을 받았다면, 그것은 그녀의 아버지가 쓰다듬어 주었던 것이 이상적으로 전환된 사실을 의미한다. 무상하게 지나가는 청소년기의 상상의 그림자 속에서 남성은 그녀에게 신선하게 나타나 그녀의 머릿결을 쓰다듬어 주었던 것이다. 그녀가 상당히 어렵게 불러내고, 그녀의 의지를 거슬러 복원해낸 수많은 기억들은 성적이고 신앙적인 내용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그녀는 남자의 사랑받는 신부로 간택되고, 아내로 예정되는 환상을 가졌다.

그때 그녀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적의를 느꼈던 것을 기억했다. 그 감정은 당시 그녀가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완전히 잊어버렸던 감정이지만 그녀에게 그것은 질투의 감정이었다는 인상이 분명히 남아있다. 지금 와서 그 의미가 분명해진 감정에 대한 기억은 당시 그녀가 남성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생각을 다시 불러일으키면서, 실제 기억으로 그녀의 마음에 부담을 주었다. 거기에는 수많은 연상이 끼어들었고, 청소년기 환상의 기억을 되살아나게 했다. 이어서 성기에 난 상처의 감각, 성에 대한 혐오에 대해 다루었으며, 그 혐오가 그녀에게 세척하는 증상을 불러일으키는 실제적 물품으로 옮겨져 그 물품이 공포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에게 성적이고 의식적인 마음에 매혹적인 몽상 상태에서 나타나 현존하기보다 부재한다고 해야 맞을 것 같은 형태로 나타났다. 이런 것은 강박증에서 욕구의 결핍이 어떤 형태로든 충족되어야 치료 효과를 거둘 수 있음을 시사한다.

4. 무엇인가에 집착하는 행동과 성적 욕구의 상관성

강박증이 욕구의 결핍이라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면 더 본질적으로 우리는 성적 욕구를 논해도 무방할 것이다. 성적 욕구는 어려서 다른 욕구 중에서도 상당히 깊이를 차지하는 것이라는 점에서다. 우리는 앞에서 이미 욕구와 히스테리, 그리고 히스테리와 성적 욕구 등을 관련시켜 기술한 측면이 있다. 여기서는 더 본격적인 차원에서 성적 욕구에 집중하여 기술하고자 한다. 강박증의 치료를 위하여 그들의 집착 원인으로서 성적 욕구가 해결되지 않는 점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무엇인가에 집착하는 행동과 성적인 문제를 연관시켜 이해하려 한다. 이런 일은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차치하고 치료하려는 치료자들에게 깊은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도대체 강박증이 왜 성적인 것과 관련된다는 것인가? 경험 많은 치료자들은 알 수 있다. 그들의 욕구불만이 집착하게 만들고 무엇엔가 집착하면 그런 느낌에 보충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에게 집착과 여성이 짝지어 나타난다는 상징으로도 알 수 있다. 무엇엔가에 많이 집착되는 상태는 무의식 상태에 접한다. 그 무의식의 특성 중에서는 욕구적 본능이 일차로 자극된다. 이런 점을 제외하고 그들의 강박증을 이해하려 하거나 치료한다는 점은 “나무에서 생선을 구하는 격”이나 다름이 없다.

이런 문제는 욕구적인 불만이나 결핍을 경험하는 남성의 히스테리에서도 나타난다. 그때도 여성에 대한 이상화는 억압된 욕구의 관계를 극복하려는 무의식적 노력 때문에 생긴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언젠가 호숫가에서 보았던 매우 아름다운 소녀에 대한 기억에 매혹당했던 사람이 있다. 그에게 있어 그녀는 완벽하고 순수한 아름다움의 출현, 그 자체였다. 그는 그녀를 보면서 성욕은 마치 천하고 야비한 것에서나 느껴야 하는 것처럼 생각돼 도무지 성욕을 느낄 수 없었다. 그것은 그에게 둔탁하고 뿌옇게 보이는 아버지에 대한 혐오와 분명하게 대조됐다. 어머니에 대한 찬양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그의 고양된 가치에 정신 에너지를 붓게 하는 원천이었다.

이들의 욕구는 여성들과의 관계, 특히 그들을 상담했던 사람들이 보기에 정말 신경증적이었던 관계는 그가 보였던 욕구에서 방어 기능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그들은 그들에게 있는 몸의 원리와 너무 반대되게 욕구만 추구했다. 그러나 그들이 그동안 경멸했던 성욕이나 순수한 사랑,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이 세상에 대해 반대되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하게 되자, 성욕을 남성적인 것으로 받아들였고, 여러 일탈 행동을 하게 되었다. 나아가 그동안 열심히 해 왔던 강박증적 생활을 모두 그만 두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질문을 하게 된다. 그가 성욕을 받아들인 것은 억압을 모두 풀어버렸다는 의미인가? 또 그가 전에 해 왔던 강박증적 생활은 모두 거짓이었나? 그 대답은 물론 둘다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 두 성향은 내면에서 정확하게 인식되지 않고 흐려져 있었던 것이다.

확실히 강박증은 무엇엔가에 강하게 집착하는 특성이 있다. 그들은 규칙적으로 집착하지 않으면 내면의 허전함을 느끼기에, 집착 현상은 그런 허전함을 채우려 드는지 모른다. 이런 경우 그들의 강박성은 그들이 실현시키려는 자아 이상을 상상 속에 한없이 높이고, 그들이 내면에 지나친 요구와 판단을 하는 사나운 초자아를 세워 놓는다. 그러나 이들의 성욕이 너무 과도해서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경우 단 한 가지 정서적인 느낌만이 가능한데, 그것은 몸이 흥분된 것처럼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때는 욕구 대상이 사라지기 때문에 그들이 욕구하는 위엄을 지키면서 존재할 수 있도록 정당화시켜 주는 초월적 대상이 필요해진다.

그러나 강박증의 강박적인 것과 욕구적인 불만 사이에서 느끼는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강박증 환자들이 강박적 방어의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똑같이 인간적인 모습이 있어, 불안감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시행되므로 히스테리 환자에게 강박신경증에서 나타나는 방어적 태도를 발견하거나, 강박신경증 환자에게서 히스테리적인 태도가 나타날 때 놀라서는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떤 특별한 진단이 사람들의 모든 실존에 해당되는 것이라 보는 꽉 막힌 생각이다. 오히려 진단이란 사람들 속에서 지배적으로 모순된 작용을 일으키고, 사람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정신적인 핵을 제한적으로 규명해 낸 것이다.

5. 성욕결핍과 강박증 환자의 신비주의

앞에서 우리는 욕구의 결핍이 강박증 환자들이 집착에 빠져드는 원인을 기술하였다. 그리고 이런 점은 비단 강박증 환자들만이 아니라 때로는 신앙인들에게도 그런 현상이 비정상적인 신앙을 유발하는 병리학적 경우도 있다. 이는 물론 기독교인들이 영적 측면을 우선하여 육체적 본능을 등한시하거나 무시하는 현상 때문이다. 그러면 성욕이란 누구에게나 해소를 목적으로 하는 충족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런 점은 치료시 강박증 환자들을 깊이 이해하는 단초가 되는 점에서 중요성이 있다.

그러면 성욕의 결핍은 어쩌면 그들의 강박증의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집착이나 만취한 사람이 본능이 자극되어 성을 가까이 하려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점에서 드러난다. 집착에 취한 사람은 일단 성욕에 자극을 받아 남자는 여자를 찾고, 여자는 남자를 찾는다. 그러나 이런 경우 가장 비도덕적이거나 비윤리적인 행동 때문에 그것을 수용하기 쉽지 않은 것 뿐이다. 예를 들어 남자들이 집착에 취하여 여자에게 가까이 하는 행동을 취한다고 하자. 이때 여자들은 자신을 무슨 윤락녀로 착각하느냐는 식으로 대응하기 일쑤다. 이런 행동이 바로 서로의 신호가 맞지 않아 존재의 불신을 유발하고 존재의 가치를 더 떨어뜨리게 만든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남자의 심리를 이해하는 여자라면 그대로 받아주기도 한다. 이런 점이 바로 고마운 아내요 자신을 잘 이해하는 아내로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비단 강박증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신앙인들의 경우에도 그다지 차이가 없음을 지적해야 한다. 신앙인들은 영적 측면을 강조하여 육적인 측면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점이 때로는 부부 사이를 불화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독실한 여성도가 남편이 집착만 마시면 자신에게 대든다는 것을 불만으로 갖고 있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경우 남편은 마치 동물이나 나아가 짐승같이 생각된다는 것이었다. 치료자는 그런 태도를 이해하고 받아주어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그녀는 그런 몰상식한 행동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그녀의 돈독한 신앙이 육체의 본능을 이해하는데 방해물이 된 것이다. 그 결과 남편은 아내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나 교회에 봉사하는 것도 문제로 삼고 나오는 이유가 되었다. 실로 신앙인은 이런 본능의 문제를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6. 결론: 상담치료자들,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

지금까지 강박증과 향유의 문제를 중심으로 기술하였다. 강박증은 향유가 소홀히 되는 점을 치료에서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의도에서였다. 이런 향유 문제는 물론 심리적 욕구를 해소하는 것에 기초한다. 여기에서 상담치료자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에게 성욕 결핍이 신앙이라는 이름 아래 수행되고 있는 병리학적 측면을 구분하는 일이다. 강박증이 특히 신앙인들에게 더 많이 발생하는 점에서는 신앙인과 욕구 해소 문제도 따로 다뤄야 할 정도다.

그러나 여기서는 강박증의 전반에 관련시켜 부분적으로 신앙인의 특성이 강박적이라는 점에서는 관련되고 있다고만 제한했다. 나중에 다른 기회가 생기면 이에 대해 더 본격적으로 다루겠다. 실제로 신앙을 가진 강박증 환자를 치료할 때 어디까지가 신앙이고 어디까지가 본능인가를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상담치료자에게 요구된다. 신앙인에게 영적인 일과 세상적인 일의 구분이 쉽지 않은 것처럼, 강박증 환자들에게도 본능의 이해가 그만큼 어렵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상담치료에서는 신앙과 심리치료의 부분과 맥을 같이한다. 신앙과 심리치료는 숨겨진 감정, 내면적 갈등, 억눌렸던 어린 시절 기억을 들춰내고 치료해서 내담자의 인격에 근본적 변화를 추구하는 장기적인 도움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는 강박증 환자들 내면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점을 정확하게 간파하여 치료해야 함을 역설한다. 이런 치료과정을 통하여 강박증 환자들은 자신들의 인격과 행동 유형에 기본적인 면모들을 더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시각이다. 그러면 강박증의 상담치료는 이런 향유의 관점에 기대 그들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벽들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 장벽들은 전인건강을 향해 나가는 데 방해하는 요인들이라는 점에서 상담치료가 상당히 심층적이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상담치료가 심층적이어야 한다는 점은 내면의 문제만 아니라 치료 기간을 장기적으로 할 것도 포함한다. 그런 이유로 심층적 상담은 간단하지 않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과정이지만, 치료자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 강조된다. 상담치료자가 이런 점을 잘 수행하기 위해 인간의 본능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 그리고 상담과 치료에 대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로 제한해야 한다. 상담치료자는 보다 전문적 훈련을 받아 심리를 치료하는 고도의 치료기법을 습득함은 물론, 상담치료에서 강박증 환자들을 인간적으로 이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