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꿈이라는 말, 학창시절, 그리고 이삼십대의 우리는 늘 이 말을 꿈꾸듯이 떠올렸습니다. “꿈이 없는 인생은 창문이 없는 집과 같다”고 크게 써서 책상 앞에 붙여놓은 적도 있었고 우리의 후배들에겐 큰 꿈을 지니는 자가 되라고 격려해주었습니다. 내가 선생이 되었을 때는 늘 아침에 학생들에게 “인생은 꿈꾸는 대로 이루어진다. 꿈꾸는 자가 되라”고 희망을 불어넣어 주곤 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이처럼 꿈을 꾸면서 살아가고, 또 그 꿈이 이루어지는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은총을 베푸신 하나님을 먼저 찬양합니다.

이처럼 의미를 지녔던 꿈이라는 낱말이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우리의 삶에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아직도 그 젊은 열정으로 꿈을 꾸고 있는것일까. 오늘은 이같은 물음을 우리에게 던져보려 합니다. 왜냐하면 이 나이의 우리들에게는 아무도 당신의 꿈이 무엇이냐고 더 이상 물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원하는 만큼 공부를 하였고 꿈꾸어왔던 일터에서 직장인이 되어있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또 이미 가정을 가지고 있으며 뿐만 아니라 자녀들을 잘 키우고 이따금 문화적 취미를 즐길 만큼 여유를 지니고 살고 있습니다.

또 여러분 중에 어떤 이는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미쳐가는 공인으로서의 위치에 서 있을런지 모릅니다. 이 모든 일들은 젊은 시절 당신이 꿈꾸며 바라본 이상향이었고, 지금 당신은 그 이상향에서 이미 살고 있기에 아무도 당신의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 자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게도 젊은 시절 그토록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던 꿈이라는 낱말이 이미 빛이 바랜 언어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왜일까요. 어떤 심리학자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첫째는 그토록 열망하며 꿈꾸었던 인생의 모든 목표를 이미 이루었기 때문에 더 이상 꿈꿀 필요가 없게 된 것이며 이는 나이가 들었음을 의미한다고 하였습니다. 또 하나는 꿈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인식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꿈에 대한 바른 이해란, 진실로 꿈꾸는 자는 꿈이 자기 자신, 즉 존재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꿈꾸고 이루어놓은 것들, 지금 지니고 있는 물질적인 부나 명성이나 권력은 엄밀히 말하면 진정으로 내게 속해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환경이 변하면 내게서 달아나 버릴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전도서의 기자는 꿈이 다 이루어진 상태를 헛된 것이라 하였고, 동양의 현자는 물거품 같은 것이라 하였습니다.

자신에게 속해 있지 않은 것들에 대하여 소유권을 지나치게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겠지요. 우리는 꿈이란 소유의 개념이 아니고 존재의 차원이란걸 인식해야 합니다. 꿈은 결코 나이를 먹는다고, 또 인생에서 얻고 싶은 것을 모두 얻었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나이에 대한 두려움이 절대로 꿈꾸는 자유를 박탈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꿈을 꾸는 사람은 인생에서 자기 자신의 나이를 경영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발달심리학에서는 나이가 든 연령층을 일컫는 신조어가 있습니다. ‘Vantage Years(벤티지 이어즈)’입니다. 이 어휘는 한 발달심리학자가 중년이라는 낱말 대신에 쓰고 싶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제 생각에도 꽤 근거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왠지 중년이라고 하면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살았다는 느낌이 들어 꿈을 꿀 여지가 없는 것 같아지지요. 심하게는 젊음을 상실했다는 뜻 같기도 하고 일거리도 줄어들고 육체적으로도 나약해진 부정적 이미지가 되지요.

그런데 ‘Vantage Years’라는 말은 모든 것을 이루기에 가장 좋은 때, 어떤 연령층보다 우세한 조건들을 모두 갖추고 있는 세대라는 뜻입니다.

우리 다시 한번 꿈을 생각합시다. 먼저 젊은 시절 우리가 꿈꾸었던 것보다 더 많이, 더 좋은 것으로 이루어주신 우리 주 하나님, 여호와께 감사를 드림으로 시작합시다. 우리가 어제까지도 그러하였듯이 우리는 그분의 약속을 믿습니다. 그 옛날 예레미야 선지를 통해 주신 약속 말입니다. “너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노니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이며 미래를 주려는 것이니라.” 미래가 있고 소망이 있기에 또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에 우리 이렇게 반응하면 어떨까요. “네, 하나님. 저는 복음서의 말씀대로 생명의 풍요의 최상위 단계에서 살고 싶습니다. 당신의 빛으로 빛나 다른 사람의 삶을 빛나게 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아름다움으로 눈부신 아름다움을 지니며 독특한 향기를 흘러보내어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고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짐에 대하여 외면하지 않을 수 있는 따스한 맘으로 살아 당신의 선하심을 펼쳐 보이고 싶습니다. 아 하나님, 이렇게 당신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