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두 번째 지구로 돌아오는 ‘죽음의 별’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은데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두 개의 붉은 색 별이 떠 있다. 하나는 지구에서 640광년이나 떨어진 오리온자리 1등급 항성 ‘베텔게우스(Betelgeuse)’이고 다른 하나는 태양에서 네번째 궤도를 도는 행성 ‘화성’ 마르스(Mars)이다. 마르스는 사막과 황무지로 덮여 있어 그동안 ‘죽음의 땅’으로만 여겨져 왔다. 그러나 최근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이 지구 다음으로 높다고 알려지면서 태양계 내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별이 되었다. 게다가 ‘제 2의 지구’로서 인간이 정착해 살아갈 최적의 후보지로도 꼽힌다고 한다.

화성(火星, Mars)은 태양계의 네 번째 행성이다. 붉은색을 띠기 때문에 동양권에서는 불을 뜻하는 화(火)를 써서 화성 또는 형혹성(熒惑星)이라 부르고, 서양권에서는 로마 신화의 전쟁의 신 마르스의 이름을 따 Mars라 부른다. 오늘날 영어에서 3월을 뜻하는 March도 여기서 생겼다.

지난해 11월에 미항공우주국(NASA)은 대형 탐사로봇을 탑재한 화성탐사선 ‘큐리오시티(Curiosity)’호를 발사했다. 첨단장비를 탑재한 큐리오시티가 화성의 대기권 외곽에 도달하는 예정 시간은 오는 8월 5일이다. 큐리오시티 뿐 아니고 인간은 그동안 화성의 물과 생명체를 발견하고자 하는 기대를 가지고 많은 탐사선들을 쏘아 올렸다. 우주선에는 미생물을 찾기 위한 센서들이 탑재되어 화성에 보내졌다.

그 결과 화성의 자전주기와 계절의 변화주기는 지구와 매우 비슷한 화성에 수천년 후에는 지구처럼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할 수 있고 사람도 화성으로 이사를 가서 살 수 있게 될 것이라 기대하게 되었다. 이제 큐리오스티는 화성에서 과거 생명체의 흔적을 찾고 인간의 거주 가능성을 점검할 것이다. 토양과 대기를 분석하는 큐리오시티의 임무가 2018년에 끝나면, 채취된 토양 샘플을 지구로 가져오는 또 다른 탐사선이 발사될 예정이다.

그러나 화성이라는 별이 우주 과학자가 아닌 우리 보통 사람들의 생각 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미항공우주국(NASA)이 발사한 탐사선 ‘큐리오시티(Curiosity)’ 때문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일반 독자들이 접한 존 그레이 박사의 책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때문이 아니었을까. 저자인 그레이 박사는 인간관계 세미나 및 부부관계 상담센터 운영을 통해 수많은 남녀의 갈등을 치유하고 있는데, 그는 이 책에서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의 감정을 풀어주고 그들의 관계를 개선하는 방법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서두는 화성의 남자들이 금성에 살고 있는 여자들을 발견하고 금성으로 날아갔는데 그곳에서 사는 것이 아니고 함께 지구로 날아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시간이 흘러 자신들의 과거의 기억은 잊혀지고 마치 처음부터 지구에 살고 있었던 것으로 착각하면서 서로는 충돌하기 시작한다는 내용이다.

많은 사람들이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남녀의 차이점을, 인간의 서로 다름, 그 differences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존 그레이 박사가 책의 서두에 제시한 상황은 화성의 탐사 진행과 화성에서 살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인간의 욕망과 무관하지 않다.

존 그레이 박사는 이미 <추악한 동맹>을 통하여 서양 문명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보여 준 적이 있는데 ‘화성남자 금성여자’ 역시 그의 기독교적 신앙과 그로 인한 기독교적 종말론의 관점에서 쓰여 문학적 상징을 지닌 것이다. 때문에 ‘화성남자 금성여자’ 라는 이미지는 서로 다른 별에 설혹 인간이 살았고 또 탐사에 의해서 화성은 인간이 살 수 있는 제2의 지구가 될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는 인간의 터전을 지구에 둔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죽음의 별 화성이 아름다운 별이 되어 두 번째의 지구로 인간의 품에 돌아온다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일까. 인간의 수명은 더 많이 연장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의 우주탐사 영역과 그 발전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섭리에 일치하는 것인지 나는 매우 궁금하다. 우주를 향한 인간의 도전을 성서에서 무엇이라 하고 있는지, 우주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강대국 간의 전쟁, 미국과 러시아의 보이지 않는 치열한 암투를 말이다.

인간의 삶의 영역을 넓혀 인간의 생명이 연장된다는 것은 우리의 오랜 꿈이었다. 그래서 나도 이 눈부신 우주과학의 발전을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며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런데 잘 모르겠다. 스스로에게 ‘과학은 과학이고 신앙은 신앙이다’고 결코 말하지 못할 것이기에…^^

/송영옥 박사(영문학 박사, 영남신학대학교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