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악취를 풍기는 건 도저히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몰골이었다. 이시가와였다.

엄마는 그 자리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토록 악랄하던 일본 놈, 이시가와가 분명하였다. 시신과 진배없는 몰골은 걸레처럼 불결하고 남루하였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행색이었다.

아악! 어이쿠, 아악---아악---!

신애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비명을 토해내는 엄마를 끌어안았다. 기어코 병든 아버지를 땅굴에서 끌어내어 수갑을 채우고만 일본 놈. 하루에도 몇 차례씩 각혈을 하는 아버지를 끝내 징용으로 내보내고야만 악독한 이시가와 놈!

입술을 깨문 엄마의 입술에서 피가 뚝뚝 돋았다. 엄마의 오열은 피를 토하는 최후적인 울부짖음이었다. 비탄과 비통함에 찬 엄마의 절망적인 통곡은 그칠 줄 몰랐다. 미친 여자처럼 억억, 끅끅, 흐느끼며 벌떡 일어난 엄마는 처참한 몰골의 이시가와를 정신없이 발길질을 해대었다. 엄마의 원한과 증오가 사무친 울분의 불길은 점점 타올랐다.

으음- 음-- 오까아-상 (어머-니이---)
오-까아-상 (어-머-니이---)
쿠륵 쿠륵 쿠르륵--끄으응 끄으응--끙 끙--.

끊길 듯이 끊길 듯이 헐떡이는 이시가와의 숨은 훅-멈추었다가 간헐적으로 이어지고 다시 끊기기를 거듭하였다. 눈 부릅뜨고 보면 다시 처절한 괴성을 토해내곤 하였다.

애간장이 녹아내리는 엄마의 오열은 도무지 그칠 줄 몰랐다. 신애는 끝끝내 엄마를 괴롭히던 나쁜 이시가와의 모습이 너무도 참혹하여 무섭기만 하였다. 틀어쥐고 있던 원한에마저 배신을 당한 엄마가 한없이 불쌍하여 신애는 소리 없는 울음을 깨물고 있어야만 했다. 엄마를 붙들고 돌처럼 굳어있었다.

오--카아--상 (어 머니--) 오--카아--사앙 (어--머--니)
으음---으으음---끄으윽 끄으윽---끅!

저주받은 이시가와는 순사를 데리러 간 과수원지기가 돌아오기 전에, 불길처럼 타는 엄마의 분한의 울분이 채 잦아들기 전에, 간댕간댕하던 숨이 끊기고 말았다. 마지막 초불처럼.

신애는 능금빛으로 물든 동구 밖의 해넘이를 아련히 바라보고 있었다. 신비한 석양갈피로 하얀 토끼풀꽃을 든 가즈오의 얼굴이 설핏 스치었다.

‘쇼아이, 너에게 올 거야. 이 세상 어디에 있어도, 꼭!’

울음을 문 어린 목소리는 실바람에 실려 흐르고, 영롱하고 애달픈 신애의 유년기는 아슴아슴 먼 지평선으로 스러져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신애가 초경을 맞은 다음 해 봄, 기적처럼 귀환하셨다.

꽃샘바람에 벚꽃들이 흩날리고 목련꽃 봉우리가 아기의 옹알이처럼 방긋거리는 즈음이었다. 엄마가 왈칵 울음을 터트린 건, 아버지 옷에서 때가 꼬질꼬질 낀 센닌바리가 나온 것이었다. 엄마는 수(繡)가 상하지 않도록 빨래비누로 살살 센닌바리 수건을 빨면서도 눈물을 흘리고, 곱게 햇볕에 말려 다림질을 하면서도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의리 깊은 고진의아저씨는 웃음 진 얼굴로 차근차근 설명을 하셨다.

이십여 명의 징용 부상자를 실은 화물선이 부산항에 도착할 것이란 외신을 접하자마자 화살처럼 달려갔던 거야. 그렇다고 명단을 본 것도 아니고, 오직 실낱같은 마지막 기대를 걸었던 거지.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애초에 명단 같은 건 있지도 않았다네. 허허허---!

자네, 진의의 진정한 우정이 하늘에 닿았던가 보네.

자리에 누운 아버지가 두 손으로 아저씨의 손을 잡으셨다.

아버지의 생환이 가능했던 것은, 섬에서 대피소용의 굴을 파는 작업 중에 졸도한 아버지를 게이오대학에서 같이 공부한 노무소장이 알아봤던 것이다. 노무소장은 중국학생으로 전쟁말기에 학도병으로 차출되어 남양군도로 배치되었다. 그의 성과 아버지의 성이 같은 림(林)씨 ‘하야시’라 재학 중에도 친밀감을 느끼던 것이 생명을 구한 큰 힘이 된 것이라고 아버지는 가슴을 쓸어내리신다. 정녕 사람의 생명은 하늘에 있는 법이라고 기쁨에 겨운 할머니는 아암, 아암, 하시며 거듭거듭 탄복을 하셨다.

극도로 쇠약한 아버지는 각혈이 멎지 않았다. 약물치료와 정성을 다하시는 큰엄마의 음식 시중과 입안이 다 헐도록 병구완에 매달리는 엄마의 노력에도 아버지의 병세는 별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여자도 교육을 받아야한다는 신념을 지닌 아버지는 신애의 여중입학을 위해 증조부 때부터 삶의 뿌리를 내린, 할머니가 계신 고향을 떠나 S로 이사할 결단을 내리셨다. 고향에는 없는 여자중고교가 엄마의 고향인 S에는 있었던 것이다.

중학생이 된 신애는 일요일을 맞아 팔달산교회의 벤치에서 바이블을 읽다가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흐르는 구름결에 이시가와의 마지막 모습이 내비쳤다. 자기 나라로 가기는커녕 그는 무더운 여름, 아버지가 징용을 피해 숨어있던 차디찬 땅굴에서 참혹하게 굶어죽고, 금년 정월에 엄마가 새 사내동생을 낳은 건, 생의 엄혹한 비밀이리라.

쌩하고 나타난 쌕쌔기(제트기)가 세상을 박살낼 듯이 폭탄을 퍼부어 대고 있다. 병아리를 낚아채려는 솔개처럼 순식간에 마을을 낮게 돌며 마구 폭격을 가하였다. 공포에 질린 신애는 미처 지하실에 숨을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뒤란에는 감나무와 앵두나무 세 그루가 있고 아버지의 서재 뒤쪽에 곡간으로 사용하는 꽤 큰 광 밑에 지하실이 있다. 지하실은 3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온 후에 특별히 아버지가 인부를 사서 판 것이었다. 아이들이 여럿인 식구들의 겨울부식 저장용의 광을 짓고 그 밑을 파서 만든 것으로 전쟁이 난 후엔 방공호로 쓰게 되었다.

쌕쌔기는 계속 지붕위로 낮게 휘돌면서 폭음을 토해내었다.

공포에 몰려 신애는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동생들에게 솜이불을 들씌워 주었다. 사냥꾼을 피해 머리만을 땅에 처박은 꿩같이 숨 조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단말마적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폭격기가 사라진 게 느껴지자 동생들은 살판난 듯 이불을 박차고 푸다닥 푸다닥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역전께의 하늘에서 검붉은 화염이 치솟았다. 역 앞 광장에는 인민군 부대가 주둔해 있었다. 장마철의 비구름처럼 시커먼 연기가 바람을 타고 점차 이쪽 하늘로 밀려오고 있었다.

며칠 전, 은애가 동네 사내애들과 역전에 갔다는 말을 듣고 신애가 한달음에 뛰어갔을 때였다. 인민군부대 주변에는 얼굴이 노르무레하고 까까머리에 기계총 난 코흘리개 사내애들이 파리 떼처럼 모여 있었다. 배고픈 얼굴인 남루한 어른들은 감히 다가서지 못하고 멀찌감치 바라보고만 있었다. 인민군들은 누런 군복에 빨간 견장이 위협적인 느낌을 주었으나, 아이들과 노닥거리는 앳된 얼굴엔 샐샐 웃음기가 흘렀다. 조무래기들에게 건빵을 던져주며 나이랑 이름 같은 걸 물으면서 장난질을 치기도 하였다. 거의가 앳된 소년병들로 보였다.

겁 없이 은애는 사내애처럼 신이 나서 인민군들에게 복숭아를 하나씩 던져주고 있었다. 과수원에서 몰래 빼내온 복숭아를 해해거리며 공 던지기를 하듯이 손 내민 인민군들에게 던져주었다. 복숭아를 받은 소년티가 가시지 않은 인민군이 무언 갈 던져주는 걸 은애가 웃으며 건네받는 게 신애의 눈에 띄었다.

시도 때도 없이 살상의 폭격기가 하늘을 나는 전쟁은 간 곳 없는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신애에게 어깻부들기를 잡혀 끌려오면서 키가 신애와 맞먹는 은애는 죽는 소리를 질렀다.<계속>

김녕희 작가
<현대문학>으로 등단, 한국소설문학상·조연현문학상·만우문학상·PEN문학상 등 수상, 단편소설집 <고독한 축제> 등, 장편소설 <에덴의 강>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