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흔 목사(엘림코뮤니오).
예수 그리스도가 미래 교회를 이끌어 나갈 사도로 선택하신 12명의 제자 중 한 사람인 디두모 도마(Thomas)는 ‘쌍둥이’ 라는 의미의 헬라어 이름을 가진 인물이다. 가룟 유다를 제외한 다른 10명의 제자들과 같이 디두도 도마도 가난한 시골 갈릴리 지역 출신이었다. 선택받은 제자들 모두가 우둔하고 어리석었지만, 디두모 도마는 다른 10명의 제자들보다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유난히도 우둔한 존재로 성경에 그려진다.

어느 날 예수 그리스도는 예루살렘 근처 베다니에 살고 있는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빠 나사로가 죽을 병에 들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산헤드린 공의회를 비롯한 대적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돌로 때려 죽이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친구 나사로를 살리기 위해 베다니로 들어가려고 결정했다(요 11:7,8). 제자들의 반대에 스승 예수 그리스도는 사악한 세상을 살리는 구속 주로서의 필연적인 죽음이라고 설명했다.

우둔한 제자 디두모 도마는 스승 입에서 나온 말씀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죽음이라는 슬픈 감정에만 사로 잡혔다.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바치고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라고 친구들에게 용기 있는 권고를 했다(요 11:16). 우둔한 제자였지만, 스승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용기와 헌신을 가슴에 지닌 인물 상을 보여줬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의 이별을 앞두고, 그들을 위해 하늘에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는 사실을 말씀했다(요 14:4). 다른 제자들은 모두 잠잠히 있었지만, 도마는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라면서 전혀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묻게 됐다. 스승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룹 과외를 통해 참된 복음을 3년 동안 배운 제자로서,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가장 기초적인 신학 내용을 디두모 도마는 모르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은 신학의 초보(ABCD)에 해당되는 사항이었다. 여느 사람들 같으면 자신이 그것을 모른다고 할지라도 너무나 부끄러워서 입을 다물고 있었을텐데, 자신의 우둔함을 제자들 앞에서 소상하게 드러내는 순수하고 진실한 인물이었다. 그의 우둔한 질문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대답했다(요 14:1-6).

부활하신 주께서 처음으로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 우둔한 도마는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말했다(요 20:24, 25). 디두모 도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말씀대로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다는 말씀에 전혀 유의하지 않았다(요 20:25). 우둔한 도마는 자신의 실증적 경험만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려고 시도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둔한 도마의 의심을 다른 제자들에게 공동체적으로 유익이 되도록 사용하셨다. ‘우리가 의심하지 않도록 도마가 대신해서 의심했다’고 말씀하시면서, 8일 후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셨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제자 도마에게 주님은 사랑으로 훈계 했다. 그는 비로소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굳게 믿었다.

사실은 그곳에 함께 있었던 다른 제자들도 도마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을 온전하게 신뢰하지 못했다. 주님은 디두모 도마의 우둔한 질문을 사용해서, 모르면서도 체면상 가만히 앉아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에 대한 진리를 명확하게 가르치셨다.

한때 영적으로 우둔하여 의심이 많았던 디두모 도마는 주후 27-90년까지 이 땅에서 성실하게 복음사역을 수행했다. 로마황제 티베리우스(14-37년), 칼리굴라(37-41년), 글라디우스(41-54년) 및 네로(54-68년) 등의 정권을 몸으로 겪으면서 고난 중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며 열정적으로 전도를 수행했다. 말년에는 페르시아와 인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역동적으로 전하다가 죽었다고 전한다.

현대 사회는 여우처럼 순발력이 있는 사람도 공동체를 위해서 필요할 때도 있다. 여우 같은 성향을 지닌 사람들은 공동체가 어려워지고,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불이익이 생길 것 같으면 미련 없이 떠난다. 공동체의 유익보다 자신과 가족의 안위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곰 같은 사람들이 현대사회의 공동체 안에 있으면, 때때로 답답하고 불편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곰 같은 우직한 유형의 사람들은 큰 어려움이 닥치고 개인적으로 힘들어도 끝까지 공동체에 남아 목숨을 거는 경우가 많다. 업무에 대한 순발력은 다소 떨어져도, 공동체를 위해서 끝까지 남아 헌신하는 도마 같은 사람들이 오늘날 많이 필요하다. 사익에 날렵하여 이리저리 움직이는 여우 같은 사람들을 통해서 공동체의 성장은 이뤄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