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기적소리

담청색 하늘이 아기의 얼굴처럼 해맑은 8월의 아침.

아버지는 전보다는 한결 힘을 얻고 있는 듯했다. 큰엄마가 줄곧 인삼 영계백숙과 깨죽을 날라다 주셨고, 징용에 나가기로 마음을 굳힌 아버지가 수면제로 제대로 잠을 주무신 덕인 것 같았다. 동생 둘만을 남겨두고 아버지와 엄마를 따라 신애는 종종걸음으로 할머니 댁으로 갔다.

여느 때처럼 할머니는 정갈한 모습이셨다. 겨자 물들인 노리끼리한 모시 한복을 입으시고 동백기름으로 말끔하게 빗은 쪽머리엔 옥비녀가 돋보였다. 아버지는 대청으로 올라가서 대나무 그림이 있는 화문석에 근엄하게 앉아계신 할머니께 큰절을 올리었다.

“어머니 잘 다녀오겠습니다. 염려하지 마세요.”

할머니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시며 긴말 없이 부디 몸조심을 하라고만, 작별 인사를 하시었다. 늠름한 양복차림인 큰아버지가 두툼한 봉투를 아버지에게 건네주시었다. 봉투를 받아들면서 아버지는 이 돈을 남양군도에서 쓸 일이 없을 것이란 사실을 마음속으로 뇌이었다. 연로하신 어머님을 생각해서 부디 몸조심을 하고 엽서라도 자주 띄우도록 하고. 큰아버지는 모처럼 당당하게 형님다운 말을 하신다.

아침 7시.

역전엔 징용 나가는 남자들과 배웅 나온 식구들로 아수라장을 이루고 있었다. 아주 노인을 뺀 이 고장 남자들이 거의 다 뽑혀온 셈이었다. 전황이 워낙 위급하기 때문에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환자와 머리가 좀 모자라는 남자까지 모조리 징집되었던 것이다. 국방색 옷에 憲兵(헌병)완장을 찬 군인들은 처컥처컥 허리에 찬 긴 칼 소리를 내며 다급하게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었다. 삼엄한 분위기를 몰고 다니었다. 눈여겨봐도 이시가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신애가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저쪽 무리에서 큰소리로 한 남자를 다그치고 있는 이시가와가 눈에 띄었다. 엄마에게 보이지 않도록 신애가 막아섰다.

큰아버지가 다시 한 번 할머니 앞에서 한 당부의 말을 되풀이하시었다. “연로하신 어머님과 어린 애들을 생각해서 부디 몸조심을 해.” “네, 형님.” 하고, 뭐라고 더 말을 할 듯하다가 아버지는 코언저리에 죽은 깨가 송송 박힌 큰엄마에게 간곡한 부탁의 말을 하신다.

“어머님과 신애 엄마를 부탁합니다. ……형수님만 믿고 갑니다.”

조신한 큰엄마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안타까운 어조로 말하신다. “서방님 이곳 걱정은 조금도 마세요.” 신애도 엄마처럼 눈에 힘을 주고 잔뜩 입을 오므리고 아버지 옆에 서 있었다. 흡사 아버질 놓칠세라 붙들려는 듯.

갑자기 사방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홱홱 날아왔다. 흠칫 어깨를 떤 아버지가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신애는 사내동생을 업은 엄마 옆에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집합 호각소리가 난, 징용군 남자들이 밀려가고 있는 쪽으로 한 발 한 발 전장으로 끌려가듯이.

징용 나가는 남자들을 배웅 나온 아낙네들은 찔끔 찔끔 울기도 하고, 목 놓아 통곡하는 나이 든 아주머니도 있다. 애고 애고 소리치며 흐느껴 우는 파파 할머니도 있다. 어디에 비길 데 없이 억울하고 비탄에 찬 비극의 장소였다. 헌병들이 대열을 지휘하고 있는 앞에까지 오자, 걸음을 멈추고 기침을 하고 난 아버지가 목을 가다듬고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신다. 아까 큰아버지가 주신 돈 봉투를 아기 업은 엄마의 포대기 속에 찔러주고, 엄마에게 당부의 말을 하시었다.

“신애 엄마, 걱정한다고 될 일이 아니니, 애들 잘 건사하고 있어요.”

돈 봉투를 앞가슴 저고리 속에다 잘 넣으며 엄마가 말했다.

“집 걱정일랑 말고 당신 건강을 잘 간수하셔야 해요. 약 떨어지면 거기서도 준다니까, 꼭 시간 맞춰 약 먹는 걸 잊지 마시구요.”

신애가 아버지를 올려다보고 말하였다.

“아버지, 여기 걱정은 마세요. 아버지 몸만 잘 챙기셔야 해요.”

아버지가 신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다. 출발 시간이 가까워올수록 아버지의 낯빛은 하얗게 질려간다. 아버지가 신애의 어깨에 손을 얹고, “신애야, 아버지는 꼭 돌아온다. 꼭 그렇게 믿고 있어야 한다.” 두려운 아버지는 한 마디 한 마디 끊어서 힘을 주었다. 지금, 아버지가 아버지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는 걸 신애는 알고 있다.

“아버지, 꼭 돌아오셔야 해요. 건강해지셔서요. 꼭요!”

아버지에게 약속과 같은 다짐의 말을 한 신애는 어젯밤 늦도록 쓴 편지와 아버지가 좋아하는 자주색 비로드 같은 작은 맨드라미꽃 묶음을 드렸다. 닭의 붉은 벼슬을 닮은 맨드라미꽃을 이윽히 들여다보며 잠깐 동안 아버지는 덧니가 보이는 미소를 지으셨다.

“일요일 날 엄마하고 예배당에 가거라. 계속 긴장하게 될 테니까, 긴장하면 아버지 병은 빨리 나을지도 모른다. 동생들 공부 잘 돌봐주고, 너는 큰언니니까, 엄마 잘 도와드려야 한다.” 하시고 아버지는 신애의 단정하게 빗은 단발머리를 쓰다듬어 주신다. 그리고는 엄마 등에 잠들어 있는 사내동생의 얼굴을 애원이 담긴 눈빛으로 어루만져 주시었다.

청명한 하늘가를 한 번 올려다본 아버지는 큰아버지와 큰엄마에게 공손히 고개 숙여 작별 인사를 드렸다. 또 다시 짐승의 비명소리 같은 호루라기 소리가 홱홱 숨 가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센닌바리 다마요께! -千人針 彈避(천인침 탄피)”
“센닌바리 다마요께! -千人針 彈避(천인침 탄피)”

귀청을 뚫는 군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눈을 부릅뜬 헌병들이 일사천리로 징용군들을 양 떼 몰듯이 통솔하고 있었다. 엄마는 대열 속으로 들어가다가 멈춰 서서 아버지를 붙잡고 목에 두른 센닌바리 수건을 끌러서 아버지 머리에 질끈 동여매 주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 짧은 순간, 아버지의 눈이 그렁해지는 걸 놓치지 않고 신애는 또렷이 보았다.

“보라 동해 하늘 열리니
아침 해 높이 빛나고
하늘 땅의 정기 거침없으니
……………….
우리 일본의 자랑이어라.
……………….”

김녕희 작가
<현대문학>으로 등단, 한국소설문학상·조연현문학상·만우문학상·PEN문학상 등 수상, 단편소설집 <고독한 축제> 등, 장편소설 <에덴의 강>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