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저곳에 사람이 갇혀 있는 게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몇 사람이나 붙들려 왔는지, 알 수 없는 신애는 딱딱 마주치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그리고 빗물 고인 땅에 무릎을 꺾고 몸을 굽혔다.

죽으면 죽으리라. 용기를 내어 유리창을 똑, 똑, 쳐 보았다. 빗소리 뿐, 아무 소리가 없어 신애는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조금 더 세게 똑, 똑, 똑, 두드려 보았다. 조금 후에 “누구요?” 하는 숨죽인 남자의 소리가 들려왔다. 언뜻 듣기에 아버지 음성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쪼그리고 앉아 목소리를 안으로 끌어들이며 신애는 “아버지이-” 하고 불러 보았다. 지하실에서는 기적처럼 “신애냐?” 하는 목 쉰 소리가 올라왔다. 자기가 지닌 애정의 전부를 바쳐 신애는 “아버지” 하고 불러본다. 조금 후, 연이어 터진 기침소리 끝에 지하실에서 웅얼웅얼 울리는 소리가 올라왔다.

“신애야……, 너 혼자 왔냐?”
“네. 엄마는 지금…….”

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오래도록 계속 되었다. 신애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신애는 지하실에 고개를 박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엄마는 지금, 이사가와에게 아버지를 빼달라고 애원하고 있어요.”

신애의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아버지의 기침은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아버지이…… 아프세요?”
“열이 나고, ……기침이 더 심하구나.”
“아버지이, 조금만 참으세요. 엄마가 병원에서 약 타 왔어요. 금방 엄마 오실 거예요.”

이시가와의 숙직실로 끌려간 엄마의 참담한 모습을 떠올리자, 신애는 칼로 살점을 저미는 것 같은 분한의 통증이 일었다.

쇠창살은 그리 촘촘하지 않았다. 신애가 손을 들이밀어 보았더니 손이 창살 사이로 들어갔다. 기적처럼 유리문이 한 뼘쯤 옆으로 밀어졌다. 빗물 고인 땅에 무릎을 꿇고 새우 등처럼 고개를 땅에 박고 신애는 지하실 속을 내려다보았다.

희미하게나마 아버지의 얼굴 모습이 눈에 잡히었다. 아버지는 혼자뿐이니 겁내지 말라고 부은 음성으로 말하셨다.

유리창 아래의 지하실은 너무 깊고, 신애를 올려다보는 아버지의 얼굴은 너무 말라서 무서울 정도였다. 아버지의 입술이 터지고 피 묻은 뺨이 보였다. 신애는 경악하였다.

“아버지, 이시가와가 아버지를 때렸군요? 그렇지요?”
“신애야, 몹시 배가 고프구나-”.

배가 고프다고 어린 딸에게 애원하는 아버지가 앉은 가마니 옆에는 물이 고여 있었다. 아버지는 잠잘 때도 혼자 주무시고, 식사 때도 시끄러운 동생들을 피해 신애하고만 겸상을 하시는 분이었다.

그렇게 호젓한 걸 좋아하는 아버지가 빗물 고인 지하실 바닥에서 그것도 빗물이 스미는 습기 찬 가마니에서 어떻게 잠드신단 말인가.

밥을 굶기고 잠을 못 자게 짐승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빗물 고인 지하실 바닥의 젖은 가마니에다 병이 깊은 아버지를 내동댕이친 이시가와는 일본인인 것이었다.

그렇게 악랄한 일본인인 이시가와의 조카인 가즈오도 일본인이란 생각이 번개처럼 신애의 뇌리를 가로질렀다.

엄마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이시가와도 그 누구도 오지 않는다. 신애는 벌떡 일어났다. 엄마한테 가보고 오겠다고 지하실에 대고 아버지에게 목소리를 크게 내어 말한 신애는 급히 사무실 쪽으로 뛰어갔다.

강풍에 지우산의 대나무 살이 몇 개나 부러지며 찌그러진 낙하산처럼 푹 꺾이고 말았다. 날개 꺾인 우산을 접어 담장 밑에다 버렸다. 그때, 현관 쪽에서 다투는 것 같은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약속이 틀리지 않아요?”

강한 어조로 항의하는 엄마의 목소리엔 분노와 울음이 배어 있었다.

“언제 내가 오늘밤에 가네모도를 면회시켜 준다고 했소? 내가 조헤이에 나가지 않게 해 준다고 했지.”

거짓말을 하는 이시가와의 음성은 당당하였다. 신애는 울타리 가장자리의 키 큰 해바라기에 바짝 붙어 서 있었다. 항의하는 엄마의 화난 목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지금, 남편에게 이 약을 줘야 한단 말이에요. 이 약만 줄 거니까 부디, 만나게 해 주세요. 잠깐만이라도”

더는 견딜 수 없어 신애는 엄마! 하고 소리치며 비속을 뚫고 그들 앞으로 뛰어갔다. 두 사람은 놀랐고 특히 엄마는 눈을 크게 뜨고 기함을 했다.

“에잇. 옥상은 가시오. 내일 다시 오시오.”

침을 찍 뱉고 돌아선 이시가와는 현관문을 안에서 찰칵 잠갔다.

어떻게 집으로 왔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아버지가 입술이 터지고 얼굴에 피가 묻었다는 말보다도, 아버지가 배고프다고 했다는 말에 정신이 나가버렸다.

엄마는 한동안 정신이 나가서 멍한 눈으로 대청에 주저앉아 있었다. 뭔가 불길한 생각이 들어 신애가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엄마는 대답도 아무 반응도 없다. 다시 신애는 엄마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엄마!” 하고 불렀다.

“그래. 알았어. 신애야.”

그 말을 한 엄마는 공이 튀듯 일어나 발에 고무신을 꿰고 정지로 들어갔다. 아버지 주발에 떠 놓았던 밥에 참기름과 깨소금으로 허둥지둥 주먹밥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베보자기에 싼 주먹밥이 든 주발을 가슴에 보듬고 장대 비 속으로 우산 없이 뛰쳐나갔다. 흡사 미친 여자처럼.<계속>

김녕희 작가
<현대문학>으로 등단, 한국소설문학상·조연현문학상·만우문학상·PEN문학상 등 수상, 단편소설집 <고독한 축제> 등, 장편소설 <에덴의 강>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