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세계교회협의회)와 마리아 월경잉태론 등의 문제로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두 교단인 예장 합동(총회장 이기창 목사)과 예장 통합(총회장 박위근 목사)간의 해묵은 교권 싸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자칫 50여년 전 WCC 가입 문제에 반대했던 합동측과 찬성했던 통합측이 대분열을 겪던 당시와 같은, 엄청난 교권 싸움이 우려되고 있다.

통합측은 12월 26일 오전 임시 임원회를 갖고 통합총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가 제출한 ‘한기총 이단 연루자들에 대한 보고서’를 채택했다. 이 보고서에는 홍재철 목사(예장 합동), 박중선 목사(예장 합동진리), 조경대 목사(예장 개혁) 등 세 사람이 이단을 옹호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당초 이대위의 조사 대상에는 한기총 대표회장인 길자연 목사와, 통합측 인사인 이정환 목사까지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통합측의 이번 조치는 사실상 합동측 홍재철 목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 교계 안팎의 시각이다. 합동측은 보수 교계를 대표하는 교단이며, 홍 목사는 WCC대책위원장으로서 WCC 반대에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홍재철 목사는 최근 합동측 실행위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아 교단을 대표하는 후보로 피선되는 등 차기 한기총 대표회장 후보로 강력히 거론되고 있어, WCC를 적극적으로 유치 및 준비하고 있는 통합측으로서는 홍 목사의 대세를 꺾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삼신론과 마리아 월경잉태론으로 한기총에서 ‘이단·신성모독’ 규정된 최삼경 목사를 비호하기 위한 의도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번 조사는 최삼경 목사가 소속돼 있는 서울동노회에서 헌의했으며, 역시 최 목사가 위원장으로 있는 이대위에서 맡아 진행했다.

통합측 사무총장인 조성기 목사는 최근 한기총에 대한 비판 여론에 편승해 최삼경 이단 해지를 시도했으나 거센 저항에 부딪혔었다. 결국 위험 부담이 큰 삼신론과 월경잉태론을 옹호하기보다, 한기총 지도부를 흠집내서 최삼경 목사에 대한 제재 자체를 정치적으로 무력화시키겠다는 계산이 있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한편 통합측 임원회의 이번 결의는 절차상으로도 월권이며 위법적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교단법에 능통한 한 통합측 인사는 “총회 규칙에 따르면 임원회는 총회가 결의하거나 위임한 사항만 처리할 수 있다”며 “이단 규정은 교단 명의로 되는 것이지 총회 임원들의 명의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임원회가 이단과 관련된 문제를 마음대로 결의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전례도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통합측의 통상적인 이단 규정 절차는 노회에서 조사를 헌의한 뒤, 총회에서 조사 여부를 결의하고, 조사 결의가 이뤄지면 해당 위원회에 맡겨 조사토록 하며, 해당 위원회는 사안에 대해 연구한 뒤 다음 회기 총회에서 보고하여 채택 여부를 가리는 식이었다. 그러나 통합측의 이번 조사는 그 모든 절차들이 생략됐을 뿐 아니라, 당사자들에게 소명 기회도 전혀 주지 않은 채 황급히 처리됐다. 단순히 이대위 보고서를 받기로만 한 것인지, 보고서에 나온대로 해당 인사들에 대한 조치를 취하기로 한 것인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내용 면에서도 이미 일단락된 사안을 다시 거론하거나, 직접적 연관이 없는 사안에 책임을 넘긴 경우도 있었다. 이에 홍재철 목사 등은 이번 통합측 임원회에 참석한 인사 전원을 대상으로 고소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한기총과 합동측도 이 문제에 대해 강경 대처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