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Q) 성경에 보면 ‘옛사람이 죽었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어떻게 옛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건가요? 만일 옛사람이 죽으면 죄를 짓지 않게 된다는 말일텐데, 우리 안의 죄성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남아 있는 것 아닙니까?

A) 예, 물론 경험적으로 볼 때 우리는 죽을 때까지 우리 안에서 죄를 향한 경향성 또는 유혹을 의식하면서 살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는 평생 우리 안의 죄성과의 싸움을 겪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혹 조차 없는 삶이란 기대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문제를 어떻게 완전히 처리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는 로마서 6장을 통해, 주님 앞에서 죄인이 의롭다함 받는다는 것이 단순한 법적 개념만이 아니라 생명의 연합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게 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셨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함께 연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우리가 그분의 부활 사건과 연합되었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그것은 오직 성령의 매개(媒介)를 통해 가능합니다. 성령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믿는 우리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경험이 연합되어지도록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 이 본문에 나타나는 ‘세례’라는 말은 물세례를 말함이 아니요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경험과 우리가 하나로 세례 되어지는 일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은 성령의 매개를 통해 우리에게 성결의 능력으로 경험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은 성령의 매개를 통해 우리에게 부활의 능력으로 경험됩니다.

크리스천이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주님과의 생명력 있는 관계 속에 들어가 있지 못할 때는 언제나 또 다른 율법주의와 외식(外飾)이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경건의 능력은 없고 경건의 모양만 남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주님을 알되 생명의 관계로서 아는 일입니다. 이것이 변화된 삶의 비결입니다. 계속해서 로마서 6장을 보시면, 3절의 ‘알지 못하느뇨’는 예수 그리스도와 신자와의 연합의 관계를 알지 못하느냐는 질문입니다. 그 복음의 진리는 곧 예수 믿는 자는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는 사실이며, 그 연합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3절) 장사와(4절) 부활하심(5절)과의 연합이라는 점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와의 연합 사건을 믿고 고백할 때 우리는 죄악의 유혹을 이기는 성결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처럼 우리도 마찬가지로 못 박혔습니다(6절). 예수께서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함을 받으신 것처럼 우리도 마찬가지로 의롭다함 받았습니다(7절).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으니 또한 그와 함께 삽니다(8절).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역시 주장치 못합니다(9절). 그분이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시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가심처럼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대하여 살아갑니다(10절).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은 사실에 대해 6절을 통하여 좀더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6절). 이 구절에서 예수와 함께 죽은 것은 나의 자아(自我)가 아니라 나의 옛사람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나의 옛사람이 죽고 이젠 새사람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멸한다’는 말은 쓸모없게 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다시는 우리 몸이 죄에 의해 종노릇하지 않을 목적 때문입니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라는 말씀에서, 원어 성경에는 ‘예수와 함께’라고 명시되어 있지는 않고 다만 누군가와 함께 못 박혔다는 것만이 나타납니다. 마찬가지로 영어성경(NIV)에는 ‘그와 함께’(with him)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옛사람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가 과연 누구일까요? 우리말 성경에는 ‘예수와 함께’라고 번역이 첨가되어 있는데,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옛사람과 연합하여 십자가에서 죽음을 겪으셨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11절에서 나타나는 ‘여길찌어다’라는 말씀은 예수님과 함께한 옛사람의 죽음과 부활의 능력을 그렇게 그대로 믿고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이 ‘여기라’는 말씀은 추측하라 또는 상상하라는 것이 아니고 마치 돈을 세듯이 정확하게 계산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동사는 명령형입니다. 그러므로 다만 그렇다고 이해하거나 느끼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되고, 이 영적 사실을 확실히 믿고 고백하고 또 이러한 믿음을 행동에 옮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이 동사는 현재형으로서, 이 진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적용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12절부터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중요한 단어들 중에 종종 구별되기 힘든 자신, 죄 그리고 몸(지체)의 관계성을 설명하겠습니다. ‘자신’은 진정한 나, 즉 자아를 말합니다. ‘죄’는 역시 내 안에서 활동하지만 ‘자신’은 아닙니다. 죄는 원래 나 자신이 아니지만, 내가 너무나 죄와 친숙해져 있기에 마치 죄가 나 자신인 줄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몸’은 원래 자체가 선하거나 악하거나 한 것이 아닌 중립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죄에 매이게 되면 몸은 죄악의 통로가 되고 자신이 하나님께 붙잡히면 몸은 선한 도구가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은 나의 몸이 나의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드려진 의의 병기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이제는 아담의 세력 안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임을 고백하며 그렇게 몸을 사용하며 살아야 합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13절)는 말씀에서 ‘드리라’는 동사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 몸을 죄에게 계속적으로 드리지 말고(παριστανετε; 현재 명령형) 하나님께 단번에 드리라(παραστησατε; 부정과거 명령형). 그러므로 우리의 온전한 헌신을 하나님께 드려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의로운 병기로서 사용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