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Q)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성령 집회도 많고 부흥회도 많이 열리는데 왜 이렇게 한국교회 안에는 온갖 죄악이 가득 합니까? 기도해서 성령 받으면 거룩해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A) 그렇습니다.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잘못된 영성집회가 정말 많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올바른 복음으로 인도하지 않고 특정 인물의 신성화나 지나친 육감주의(肉感主義)를 강조하거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되는 집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 한 분 한 분이 정말 조심하면서 올바르게 분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 모두는 잘못된 영성에 미혹될 위험이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며, 따라서 복음적인 성령론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그 어느 때보다도 요청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올바른 성령론을 확인할 수 있는 분별법 중에 중요한 한 가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참된 성령론이란 언제나 그리스도 중심적이어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기 때문이며(롬 8:9-11),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성령께서는 우리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시고 또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길로 우리를 인도하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혼 속에 영접한 이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감을 통해 예수님의 뒤를 따를 수 있습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는 말씀과도 같이,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리스도께 순종함을 통해 값진 은혜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20세기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본훼퍼(Dietrich Bonhoeffer)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값싼 은혜와 값진 은혜로 구분하였습니다. 값싼 은혜는 교회의 치명적인 적으로서, 아무데서나 마구 남용되기 쉬운 은혜이며, 회개가 없는 용서의 설교요, 교회의 교육이 없는 세례요, 참회가 없는 성찬식이요, 개인적인 고백이 없는 사죄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값싼 은혜는 그리스도께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문을 닫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값진 은혜는 마치 밭에 숨겨진 보물과도 같은 것으로서, 그것은 제자로의 부르심의 음성을 듣고 따라나서는 신앙을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마태를 부르셨을 때 그는 곧 일어나 예수님을 좇았습니다(마 9:9). 예수께서 어부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를 부르셨을 때 그들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막 1:16-18). 진정으로 값진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행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기에 더욱 고귀한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기 원한다면, 우리는 말씀을 가까이 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즐겨 순종해야 합니다. 부르심을 따르는 가장 근본적인 단계는 세상적인 존재로서의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전부 포기하는 것입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6-27). 제자의 마음은 세상이나 정욕을 향해서가 아니라 언제나 그리스도께만 고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 대한 충성으로 우리의 목숨까지도 버릴 자세로 십자가를 지고 간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십자가의 죽음뿐 아니라 부활의 영광 또한 얻게 될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4-25). 그러므로 크리스천이 고난 받도록 부르심을 받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기쁨이며 은혜의 증거입니다(벧전 4:14). 십자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만이 성령 안에서 부활의 능력을 만끽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영혼에 거하신다고 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세상에서의 예수님의 삶이 끝나지 않은 이유는, 그분은 그를 따르는 자들의 삶 속에서 계속 살아가시기 때문입니다. 제자 된 우리들의 목표는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으로서, 우리 안에서의 성령의 사역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당신의 형상을 완성시키실 때까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전 존재를 주님 앞에 복종시키고 순간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주님과 동행할 때, 주님의 품성은 우리의 삶의 순간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나타날 것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사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 속에서 마침내 신자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엡 4:13) 이르게 하시는, 성화의 궁극적 목표로서의 ‘그리스도 닮기’(Christlikeness)를 우리의 삶 속에 이루어 가십니다. 기독교 영성의 핵심은 신자들의 경건한 성품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와 그리스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인격적 교제를 증진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에 일치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곧 성결의 영(Spirit of holiness, 롬 1:4, NIV)이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