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사 말대로 살아왔나 생각해 본다. 그의 설명대로 살아온 듯하기도 하고 전혀 그런 것 같지 않기도 하다. 생각해 보니 일반적인 말 아닌가? 누구의 인생에서도 그럴 것 같다. 그래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40대 중반에 들어서 무슨 사고를 당하여 건강을 해칠지 모르니 주의해야 한다는 말이다. 혹 그 운명적 사고가 이번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손이 운명을 창조해 가는 것이 아니라 운명에 순응하는 도구일 뿐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손은 분명 생각을 구체화하고 보여주는 창조적 기능을 갖추고 있기는 하다. 손으로 음식물을 섭취하는 동물일수록 고등동물이다. 인간의 생각을 형태와 모양을 보여주어 의도하는 바를 표현할 수 있도록 한다. 손만이 사람의 의도를 완성한다. 우리가 먹는 것도 손의 활동을 돕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인간을 자기 형상대로 만들었다는 성경의 말은 신에게도 손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인간은 신의 손에 의해 창조된 작품이라는 말일 게다. 신은 인간에게 손을 주어 자신의 자유의지와 창조성을 표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래서 삶과 죽음은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 인간의 의도를 수행하는 손이 곧 예술이요 역사인 것이다. 이 와중에 무슨 개똥철학인가 하는 생각이 밀려드는데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진다.

평상복 차림의 백인 중년 여성이다. 금발에 얼굴과 상반신이 눈에 띄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통증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지우지는 못하고 있다. 상반신에 비해 엉덩이가 비만이고 장단지가 굵어 걸어 들어오는 모습이 기우뚱거린다. 가능하면 하반신을 보지 않는 것이 그녀를 처음 대하는 사람으로서 예의일 거라 생각한다. 환한 웃음에 드러난 치아가 아름답다. 내 얼굴에도 반사적으로 웃음이 지어진다. 쓴웃음이 아닌 애교기가 섞어진 것 같아 싫다.

남자 의사에게는 쓴웃음을 짓고 여자 의사에게는 간사함이 배인 미소를 짓는 것에 역겨움이 느껴진다. 왼손을 무시하고 살아온 마음의 근원이 이러한 차별이었던 같다. 같은 모습으로 흑인 의사가 다가왔다면 어떤 미소를 지었을까 생각하니 멋쩍다. 분명 같은 미소가 아니었을 것 같아서다. 차별당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차별하며 사는 모습을 느끼며 미소를 지운다.

그녀는 수술을 위해 응급호출을 받고 온 외과의사다. 버지니아라고 자기 이름을 소개하며 곧 수술실로 옮겨 수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간호사에게 수술 준비를 하라고 지시한다. 여의사의 손이 내 손을 만진다. 내 손이 그녀의 손에 맡겨진다. 그녀의 손놀림에 따라 내 왼손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왼손 중지 끝이 살아날 수도 있고 없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수술 전에도 여러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X-ray 사진을 다시 여러 장 찍고, 수술이 잘못되어 일어나는 어쩔 수 없는 일에 병원과 의사가 책임이 없다는 서류에 동의하는 서명도 해야 했다. 아무래도 인지 끝에는 플라스틱 지지대를 박아야 할 것 같다는 의사의 말에는 손끝을 잃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수술대의 눕혀진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다. 전신마취 주사가 따끔하다. 따끔한 느낌이 군에서 몽둥이로 두드려 맞을 때보다 싫다. 작은 아픔이 큰 아픔보다 싫은 순간이다. 아니면 작은 통증과 큰 통증을 더 이상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간호사들이 마취를 확인하려는 듯 이름과 나이를 자꾸 묻는다. 간호사의 질문은 들리는데 말을 할 수 없다. 손을 움직여 보려 하지만 생각뿐이다. 생각대로 행동할 수 없는 이 순간이 죽음에 가까운 지점일 게다. 모든 것이 아득해지며 먼 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느낀다.

*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기 시작한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몸이 날 듯 가볍다. 생각이란 것 때문에 몸이 무거웠던 것 같다고 믿는다. 생각 없이 걷는 길은 갈림길이 없다. 뒤돌아갈 수 없는 길, 앞으로만 가야하는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길 외에는 나무 하나 들꽃 하나가 없는 길, 바람소리도 새들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순간 저승을 향해 걷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섬뜩해진다.

동행이 있나 주위를 살핀다. 몇 사람이 앞에서 걷고 있다. 걸음을 재촉하여 그들 곁에서 걷는다. 무표정한 얼굴에 말하는 사람이 없다. 어디로 가는 거냐고 물어본다.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 백발을 어깨 밑까지 늘어뜨린 노인을 본다. 이 길에 익숙한 노인이란 생각이 든다. 그에게 이 길을 계속 가게 되면 어디에 당도하느냐고 묻는다.

내 말을 들은 그는 참으로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한심하다는 표정이면서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튀어 나온다.

“한 번 믿은 것에 집착하며 살아왔구먼. 그러다보니 반성하고 고치기보다 후회만 하며 살아온 거지. 이 길은 후회스럽게 살아온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걷는 길이지. 자기 한 일에 자책하며 그렇다고 새롭게 살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가는 길이라네.”

그 말을 듣는 순간 지금까지 한 모든 후회는 유죄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후회가 유죄가 아니라 후회만 했을 뿐 반성하고 고치지 않은 생각과 행동이 유죄였다. 후회는 새로운 행동을 요구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무시하며 자책만 하며 산 것이 문제였다. 나는 후회하며 지내온 일들을 애써 지우려 하지만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지 기억하지 못해 애를 쓰며 걷고 있다.

나는 내색은 하지 못하면서 노인에게 그래도 그런 후회로만 살아온 것 같지 않다고 변명하고 싶어 한다. 내가 이 길을 왜 걷게 되었는지 알 수 없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혹시 나도 모르게 그렇게 살아 왔는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노인이 걷던 길을 멈추더니 나중에 또 후회하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보라고 한다. 나는 그 말에 가벼운 충격을 받으며 당황한다. 무감각하던 다친 왼손에 어떤 느낌이 연결되는 것 같다. 나는 아무 느낌이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묻는 것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연다. 내가 한 후회로 인해 다른 사람이 상처를 받은 일은 없는 것 같다고 한다. 노인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나를 빤히 바라본다. 노인의 얼굴이 서서히 다른 사람의 얼굴로 변해 간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