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박사(한일장신대·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제5장 우울증과 관련되는 문제들

우울증은 밀접하게 관련되는 문제들이 있다. 이는 특성상 우울증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그 증상이 되기도 한다. 가장 직접적 원인은 아니지만 증상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우울증의 원인은 외부로 드러나지 않지만, 증상은 외부로 드러나는 점 때문이다.

1. 우울증과 동기의 문제

동기(動機, motivation)는 심리학에서 행동을 유발하는 내적 동인(動因)이다. 일반적으로 동기심리학에서는 개인의 행동이 일어나는 것을 심리적인 동기에 두고 행동의 근본을 이해하려 한다. 이런 동기는 본능이나 욕구이기도 하고 때로는 충동까지 유사하게 취급된다. 이런 동기의 특성이 우울증과 관련해 우울증 환자들에게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행동과 달리 내적 심리의 작용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증상으로 구분할 수 있다.

1) 동기의 상실과 회피의 증가

우울증은 내면에서 작용하는 동기의 결여를 특징으로 한다. 동기는 행동을 일으키는 내적 동인이라고 했지만 이런 특성이 우울증에서는 현상적으로 심리적 욕구나 동기를 결여하고 있음으로 나타난다. 이는 정신에서 움직일 에너지가 감소된 상태로 볼 수 있다. 흔히 심각한 우울증의 주요 증상은 동기 부족이므로 단순한 과제조차 수행하려는 에너지가 부족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우울증 환자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지만, 그것을 하려는 내적 욕망이나 의욕이 현저하게 감소되어 있다. 대부분 우울증 환자들은 자신이 활동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나 그 활동을 함으로써 만족을 얻을 수 없다고 믿어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려 한다. 내면에서 움직이려는 동기가 결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정적인 동기가 있는 반면, 긍정적인 동기도 있다. 부정적인 동기는 부정적으로 행동하려는데 반해, 긍정적인 동기는 긍정적으로 행동하려 한다. 우울증은 긍정적인 동기를 상실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들이 에너지가 감소되어 의욕이 상실 된 것이나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것도 일종의 부정적인 동기에 해당한다. 긍정적 동기 상실은 오히려 회피 심리를 자극한다. 실제 이들은 건설적 활동을 회피하려는 강한 욕망이 있다. 그들은 동기가 없는데 어떻게 회피 욕구를 가지는지 의아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부정성이 증가되어 거부하거나 회피하려는 현상이다. 이들에게 회피 심리는 과제를 내줄 때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데서 분명해진다. 이런 현상은 물론 부정적인 동기가 극복돼야 함을 의미한다. 이들의 부정적인 동기와 회피 증가는 치료가 된다.

이들에게 부정적인 동기와 회피 증가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 어떤 과제를 거부하려는 것이 일종의 회피라면 그것은 하지 않으려는 부정적인 동기가 바탕이 되는 점에서다. 이와 관련해 그들이 회피했던 활동을 실험적으로 시도하게 하는 방법이 될 수 있지만, 그런다 해도 이들에게 정신에서 긍정성이 회복되지 않으면 그런 시도는 불가능하게 된다. 이는 그들에게는 긍정성이야말로 건설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라는 측면에서다. 이런 과정에서는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수정하고 성공의 경험을 하도록 도울 수 있으며, 분명하고 즉각적인 성공을 통하여 좋은 동기를 유발하여 긍정성을 축적할 수 있다.

문제는 이들에게 또다른 역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삶의 특별한 측면을 통제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면, 다른 면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더 많은 시도를 하게 된다는 점이다. 하나의 과제를 거부하기 위해 다른 여러 가지의 생각을 하거나 회피할 다른 이유들을 들이대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물론 치료자가 그들에게 특정한 지시를 하여 신체로 하여금 행동하도록 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도 그들의 긍정성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려울 수 있다. 그들에게 긍정성은 긍정의지를 작동하게 만드는 힘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다.

예를 들어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데 어려움이 있는 환자라면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하자. "다리야... 움직여라... 마루를 차거라... 근육들아... 움직여라" 등이다. 이런 것이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간단한 것이지만 그들에게는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는 그대로 그들이 정상적인 일상과 의무를 피하거나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요건이 될 것이다. 더욱이 이런 증상의 기저에는 대개 절망감이 자리하여 그들이 행동하고자 하는 요인을 차단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는 우울증을 '희망을 잃어버린 병'으로 불러도 무방힌 근거다. 절망감, 자살 그리고 도피성 등이 우울증의 주된 증상들이라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의존성 증가

의존성은 우울증의 특징이다. 의존성은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있지만 우울증 환자에게는 더 높다. 이는 그들이 기력이 없으므로 힘이 강한 사람을 더 의지하는 원리다. 이런 것의 원인을 따져보면 의존성 증가는 그들이 의욕을 상실하고 긍정적인 동기를 상실한 데서 비롯된다. 우울증이 모두 정신에너지 고갈을 초래한 상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이 바로 의존성 증가가 우울증의 보편적 증상이 되는 이유다. 임상경험에 의하면 우울증 환자는 일상적인 활동을 수행할 때 타인의 도움을 구하려는 강한 충동을 갖는다. 그들이 타인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마음은 어떤 요구나 호소의 형식을 띨 수도 있다. 이때 도움은 대개 실제 필요성보다 과장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 도움이란 그들에게 일시적인 안심을 주지만 오히려 환자의 의존성과 자신감 결여를 강화시킬 수도 있다.

이들의 의존성은 성격적으로 "건설적 의존성"과 "퇴행적 의존성"으로 구분해야 한다. 건설적 의존성은 자신에게 타인의 도움이 필요할 때 요구된다면, 퇴행적 의존성은 덮어놓고 타인에게 기대려는 마음이다. 이때 성격상 건설적 의존성은 때로 우울증에 대처하는 방법이 되는 점에서 반드시 해로운 것만은 아니다. 한 예로 어떤 도움 없이는 풀 수 없는 문제가 있을 때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는 경우다. 그들이 문제 해결을 위하여 전문가에게 도움을 구하는 태도는 성격적으로 일종의 독립성에 해당한다. 이런 독립성에서는 그들이 새로운 사고방법과 문제대처 기술을 배움으로써 덜 의존하게 되는 결과를 산출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이 이런 안전장치를 갖고 있지 않다면 그들의 건설적 의존성은 언젠가는 파괴적 의존성으로 퇴락될 수 있다.

이와 달리 퇴행적 의존성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도 타인의 도움을 구하는 격이다. 이런 것이 우울증을 더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는데, 이들은 퇴행적 의존성을 보임으로써 자신이 부적절하다는 생각을 강화하게 된다는 점이다. 치료 장면에서 이들은 치료자에게 너무 의존하는 경우도 있는데, 치료 목적이 그들을 더 독립적으로 하는데 대해 더 거리가 멀어지는 꼴이다. 이러한 경향은 대개 그들이 우울증을 견디는 방법을 치료에서 배우면서도 치료자가 자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계속 주장하는 환자에게서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들의 의존성 증가는 긍정적 동기의 결여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비롯된다. 바로 자기신뢰 결여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특성이 심각하게 결여돼 있다. 그리하여 증상이 심한 경우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들의 자기신뢰 결여는 심리적으로 자신감 저하 현상으로 나타난다. 자신의 생각에 대해 현실의 벽이 크다는 절망감의 결과로 볼 수 있는데, 여기에는 신뢰감이 결여돼 결국 자신감이 확립되지 못한 원인이라 보아야 한다. 그 결과 이들은 자신의 활동을 주도하고 정서적 반응을 수정하는 데 책임감을 증가시키기 어려운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의존성이 자신감을 확립하는데 방해적인 특성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생각할 수 있다.

특히 이들에게는 부정적인 감정이 대상과의 관계에 스며들 경우, 소속감이나 중요한 대상과의 의미 있게 관련되어 있다는 느낌이 손상된다. 이들의 삶의 경험에서 의미있는 인간적인 관련됨(relatedness)의 느낌은 분노, 증오, 실망, 그리고 상실에 의해 왜곡된다. 그 결과 이들에게는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대상 세계와의 의미있는 연결이 깨어지고 만다. 이는 자기신뢰와 자신감 왜곡으로 인한 결과로 현저한 자기가치 저하 현상이다. 이로 인해 그들은 자신을 무가치하고, 굴욕적이며, 약하고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로, 궁극적으로는 가학적인 복종과 잔인한 속박을 받아야 마땅한 존재로 여기는 손상된 존재감을 갖는 것이다.

2. 우울증과 인지의 문제

인지(認知)는 심리학에서 감각을 통한 지각을 거친 과정이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등 다섯가지 감각을 통한 정보가 뇌로 유입되면 뇌에서는 그 사물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지각을 실행한다. 이런 지각 실행에서 개인의 생각 가미를 인지의 과정, 즉 뇌의 정보처리 과정이라 부른다. 이런 인지 과정이 우울증에서는 대개는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게다가 이런 부정적인 인지가 우울증 유지와 악화에 작용하게 된다. 그러면 이런 인지의 중요성은 우울증의 생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는 근거가 된다. 이는 인지의 문제가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 더욱 이해가 된다. 이런 인지 문제에는 우울증에서 사고와 관련돼 이해되기도 하고, 생각이나 행동이 취해지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인지의 증상에서는 그 대표적인 것만을 들기로 하자.

1) 우유부단

우울증 환자는 어떤 일을 결정하는데 머뭇거리는 행동을 보인다. 이런 현상을 우유부단(優柔不斷)이라고 일컫는다. 확고하게 결단을 내리거나 결정하지 못하는 심리적 현상이다. 우울증 환자는 자신의 직업, 가족, 다른 외부 상황 등이 우울증의 원인이며, 문제 상황을 떠나면 우울증은 없어질 것이라 믿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자신의 믿음이나 결정이 어느 정도 현명한지 전혀 확신할 수 없는 편이다.

다른 일반적인 형태의 문제는 대개 그들이 어떤 사건이나 일에 만족해하지 않을 때 일어난다. 그들은 이 변화를 되돌릴 수만 있다면 자신은 더 이상 우울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때 치료자는 그들에게 우울할 때 주요한 결정을 하는 것은 권할만한 것이 못된다고 말한다. 이런 경우 거의 모든 주요한 결정들은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지 않게 지연시킬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우울증 환자는 정상적인 측면에서 그들의 정신이 능력 이하로 기능하고 있을 때, 우울하지 않을 때만큼 장기적인 결정을 할 수는 없다. 이는 우울에서 벗어났을 때 그의 생활상황을 다르게 볼 수도 있기 때문인데, 대개 우울증 환자의 우유부단함은 심리 내적 경험의 부정적 인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주된 원인은 물론 그들의 부정적 인지의 작용이다.

이런 부정적 인지는 유입되는 자극을 처리할 때, 지각적 경험의 흐름을 통합, 조절, 조직하는 능력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다르게 말하면 이런 현상은 그들에게 지각적 자료를 조직하지 못하는 무능력이다. 이러한 지각적 조직은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에 관한 신뢰적 도식을 조직하지 못하는 무능력인 측면도 있다. 전술한 지각된 경험을 개념적으로 조직화하지 못하는 무능력이 자기 확신을 조직하거나 통합하지 못하는 무능력의 부산물인지 혹은 이 확인할 수 있는 결함들이 모두 더 깊은 곳으로부터의 결함 상태로부터 비롯되는 것인지는 분명하지는 않다. 여기서는 단지 우울증 환자의 일관되고 통합적이며 잘 분화된 자기신뢰와 자기 확신을 형성하고 유지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강조하기보다는, 구조적 준거 틀을 강조할 뿐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들의 증상에서 중심적인 결함은 자기신뢰와 자기 확신의 해체에 있으며, 그것은 자기신뢰와 자기 확신의 근저에 있는 구조 안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문제에 압도당함

앞에서 우리는 우울증에서 인지의 문제를 고찰하였다. 이들의 인지에는 3가지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이루어진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은 외부세계, 자신,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이다. 이들에게 나타나는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은 절망감으로서 우울증에서 크게 작용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들에게 부정적인 관점은 절망감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작용하면서 '문제에 압도당함'의 현상을 유발한다. 그러면 이들이 문제에 압도당함은 그들이 실제로 행동하는 것보다는 단순히 생각을 부정적으로 앞세우는 데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어떤 일을 시작하면 할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므로 도저히 해낼 수 없으리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한다. 이는 마치 밭을 가는 농부가 '이 넓은 밭을 언제 갈 수 있을까'하고 생각할 때, 이는 행동하지 않고 생각을 앞세우는 것으로서 "눈이 게으르다"는 말에 상응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점이다.

이들에게는 부정적인 관점이 습관화된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이런 부정적 관점이 그들에게는 일의 수행에서 몇 번 반복되면 정상적인 행동에서도 부정적으로 습관화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이들의 정신 에너지가 저하되는 현상은 그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에도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 결과 이들은 우울하지 않은 시점에서도 명백했던 해결책들을 생각해내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런 문제와 관련하여 아론 백(A. T. Beck)은 어떤 사업가를 예로 든다. 그 사업가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의 양(量)에 대한 압박을 느끼면서도 전화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치료자는 자동응답기를 구입할 것을 권유했다. 이 단순한 개입으로 그의 딜레마는 해결되었다. 그런가 하면 우울증 환자들은 실제로 자신이 해야 할 것보다 더 많은 일을 떠맡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실제보다는 다르게 더 많은 일을 맡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잘못 지각하고 있다.

한 주부는 전일제 자원봉사 자리를 승낙하고, 커다란 조직의 회장이 되었다. 그리고도 정당 사무국원으로 입후보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참여를 줄여나가거나 철회는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다. 이런 환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요구를 줄이는 데 있어서 더 주장적이 되어야 할 필요도 있는 것과 비교되는 점이다. 그런 시각에서는 이들이 문제에 압도당함은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지 않음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우울증 환자들은 어려운 점들을 실제보다도 과장하고 교정적 활동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때문에 자신의 문제에 압도당한다. 그로 인해 그들은 어떤 행동도 전혀 취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고야 만다. 이때 환자에게는 거기에 대처할 능력이 필요한데, 어떤 상황에서도 문제들을 상세히 나열해보고, 가능성들을 탐색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때로 환자들은 자신이 아는 것보다도 실제로는 더 많은 것을 해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이 해낸 일들을 차근하게 기록하도록 함으로써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게 함은 물론 이런 과정을 통하여 간단한 인지적 왜곡을 교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들이 무언가를 하려고 단순히 노력한 것이나 방법들에 대해 생각한 것만으로도 부분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점이다.

3) 자기비난

우울증 환자들은 자기를 비난하는 행동이 심한 편이다. 이들의 자기비난은 어떤 사건이나 조건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부정적인 생각에 근거한 것이다. 이들의 부정적인 생각이 객관성을 무시하고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에 근거하여 판단한 결과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자기의 비난에서는 문제의 원인을 자기에게로 돌리려는 경향이 특징적인 것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문제의 원인을 자기에게로 돌리는 현상이 결과적으로는 자기비난을 초래한 것이다. 그들은 문제의 원인을 모두 자기에게로 돌리면서 자신의 못남과 무능함, 적절하지 못한 판단과 대응 등에 문제를 느끼게 된다. 이때 우울증 환자들은 인과론적 지각에 있어서, 자신에게 있는 수치스러운 결함을 심리적 장애의 근원으로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이런 경향은 때때로 환자에게 중요한 사람이 "좋아지려고만 한다면 좋아질 것이다"라고 말하는 데서 지지될 수 있는데도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울증이 심한 환자는 터무니없이 극단적으로 자기 탓을 한다. 이들의 자기 탓은 객관성이 결여된 것으로 극단적인 현실성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들의 극단적인 현실성이란 비현실적인 것을 의미한다. 우울증으로 입원한 어느 환자는 복도를 지나다가 다른 환자가 코를 고는 소리를 듣고는 자동적으로 '내 탓이야. 내가 병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전염시켰어!'라고 생각했다. 이런 비현실적인 자기비난에 의해 환자는 더 기분이 나빠진다. 이때 치료자가 환자의 자기비난을 직접적으로 논박하면, '치료자가 나의 약점을 이해하지 못해!'라고 생각할 수 있으므로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이들은 자기비난이 부적응적이라는 치료자의 말에 오히려 "자신을 비난한다"고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러면 우울증 환자의 자기비난은 반복적이고 상투적인 성질이라고 보아야 한다.

게다가 우울증 환자의 자기비난은 편집증 환자와는 매우 대조적인 측면이 있어 흥미롭다. 우울증 환자는 자기비난을 자신에게로 돌리는데 반해, 편집증은 타인에게로 돌린다는 점에서다. 게다가 편집증은 자기비난을 타인에게로 돌리면서 거의 지배적인 특성을 표출한다. 이런 것은 편집증이 자신의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는 경향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는 우울증 환자가 타인의 책임까지도 자신에게 돌리는 경향과는 매우 대조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현상은 자신의 불행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우울증 환자는 자신의 불행에 대해서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반면, 편집증 환자는 타인들을 비난한다. 그러면 편집증 환자는 왜 이런 현상을 보이는 것일까? 그것은 편집증 환자가 자신의 불행에 대해서 자신의 내적인 갈등이나 내적인 부적절함 때문이 아니라 외부적인 힘과 외부의 영향 때문에 자신이 겪고 있다고 생각한 결과이다. 실제로 편집증 환자는 이러한 수단을 통해서 너무나 고통스럽고 위협적인 자기 비난을 회피하며, 동시에 어느 정도의 자기 정당화를 유지한다. 그 반면에 우울증 환자는 자신에게 문제의 원인을 돌림으로써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우울증 환자의 자기비난은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과 느낌, 그리고 신념이 옳지 못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그들은 자신의 현실에 대한 인식, 그의 견해는 잘못되었고, 어리석으며, 옳지 않고, 심지어 악의도 있다고 간주한다. 그야말로 그들은 ‘모든 것이 내 탓이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큰 문제인 것이다.

4) 흑백논리의 편견

우울증은 어느 한 쪽을 구분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이런 현상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다’는 것이므로 이들에게 중간지대나 회색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우울증의 사고에는 반드시 둘 중의 하나만이 존재한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현실을 조직화하는데 있어서도 미숙성 아니면 성숙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것은 ‘까만 것 아니면 하얀 것’이라는 이른바 흑백논리의 편견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런 흑백논리의 편견에서 우울증 환자들은 포괄적인 판단을 하거나 경험에 대해 극단적이고 일차원적이고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에게 있어서 포괄적이고 극단적이고 일차원적이란 그 성격상 미숙성의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이런 특성은 성숙성을 비교적으로 논하면 이해가 쉬워진다. 성숙한 사고는 생활상황을 여러 차원이나 속성으로 보고, 질적인 용어보다는 양적인 용어를 사용하거나 상황의 필요에 따라서는 질과 양을 동시에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점은 성숙성에서 절대적 기준보다는 상대적 기준을 사용하여 개념화하는 것과는 비교되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그들에게는 어느 한 쪽이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일 수 있고, 때로는 양쪽 모두를 선택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도 이들의 흑백논리에서는 개선이나 재시도는 불가능한 편이다. 그러면 이들의 흑백논리의 특성이 무엇 때문에 그러는 것인가? 이런 것에는 여러 가지의 요인을 들 수 있지만 일단은 그들의 부정성을 들어야 한다. 이들의 흑백논리는 부정적인 시각에 근거한 것으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편견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의 편견은 심리 내적, 사회적, 심지어 문화적인 것 등과 관련되는 것으로 많은 결정요인을 갖는 복합적인 현상에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는 점이다.

더욱이 그들의 편견은 대개 내부로부터 오는 반감을 수반하는데, 그것은 근저에 있는 공포 및 분노와도 관련되어 있으며, 이때 나타나는 적대감과 거부는 근저의 무의식적 욕구를 암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면 이들의 편견과 분노 그리고 원한은 서로 간에 연관성을 갖는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것은 모두 그들이 사건이나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결과로 나타나는 감정적 반응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편견은 특히 그 바탕에 왜곡된 인식과 해석의 원인이 되는 투사적 기재도 존재한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우울증 환자의 편견이 그들의 우울함과 낮은 자기 존중감을 방어하는 중요한 기제로 작용한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하여 트라우브 베르너(Traub-Werner)의 연구는 참고할 만하다. 그는 우울증 및 심리 생리적 징후로 인해 고통을 받는 퇴역 군인에 대한 연구에서, 그들이 외국인이거나 백인이 아닌 모든 사람에 대해 적대적인 증오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리고 그는 이런 형태의 편견을 “촉진적 방어”(facilitating defence)로 불렀다. 이런 연구의 결과는 더 연구되어야 한다는 점도 있지만 일단은 그들의 분노와 원한은 상당한 연결적인 특성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때 그들의 분노와 원한은 편집증 환자에 비하면 적극적이거나 강하지 않고 소극적이거나 약한 편이라는 점에서다. 이들의 분노와 원한은 자신에게 가해진 잘못을 방어하거나 아니면 공개적으로 비난해야 된다고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분노와 원한의 대상을 회피하는 소극적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더 깊은 원한이라는 상실에 대한 이차적인 고통 및 분노와 연관되는 자존감의 상처라는 점이 특이하다. 그 결과로 이들은 용서하지 않으려 하거나 경직되어 있는 현상을 드러내고 있다.

3. 우울증과 행동의 문제

우울증에서 행동의 문제는 또 하나의 증상이라고 할 수 있다. 행동은 심리의 구체적인 표현이라는 점 때문인데, 이 행동이 그들의 부정적인 사고와 관련되어 나타난다. 이는 우울증상에서는 그 행동이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점이다. 그러면 이런 점을 고려하여 우울증만이 갖는 행동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볼 수 있다.

1) 수동성과 비활동성

우울증에서 가급적이면 활동하지 않으려 하거나 어쩔 수 없이 움직이게 되는 수동성은 일차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그들에게 자발성이 결여된 결과로 볼 수 있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비활동성과 수동성은 치료되어야 할 주요한 목표가 된다. 실제로 우울증에서 보이는 수동성과 비활동성은 병리학에서는 일종의 신경생리학적 억제인 정신운동지체로 간주되어 왔다. 이는 치료에서 이들의 비활동성에 대하여 활동계획을 세우고 이에 따른 명백한 수동성과 지체를 해결하는 대처행동을 중요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우울증 환자는 그들의 비활동성에 대하여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고집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런 시각에 대하여 불합리하거나, 또는 적어도 역기능적이라고 여기지 않는 편이다. 그러면 이들의 이런 생각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그들의 수동성과 비활동성은 의지력과 무력성이라는 것에 기초한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의 수동성은 의지의 결여에, 비활동성은 무력성에 근거해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우울증 환자는 의지가 심각하게 약화되어 있는 편이다. 그들이 무엇을 하려는 의욕도 약화되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들의 의지가 현격하게 약화되어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다.

그러면 의지는 행동을 유발하는 원천이라는 점에서 보면 그들의 무력감은 그대로 비활동성으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그들은 약화된 의지력으로 인해 의지력이 강한 사람이 강하게 이끌 수 있다면 끌려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무력성으로 의지력과 상관성이 있다면 그들의 의지력의 강화는 그대로 치료의 요건이 될 것이다. 그들에게 의지력이 강하면 강한 활동성을 유발하는데 반해서 무력성은 비활동적이게 만든다는 점에서다.

우울증 환자들의 비활동성은 무력감과 연결되어 능력부족, 주의집중 곤란, 기억력 감퇴 등으로 나타난다. 이로 인해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거리감을 느끼며, 전체 지각세계, 자기 자신의 행동, 모든 감정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끼고 비현실적이고 허구처럼 느낀다. 그들의 부정적인 느낌은 그들이 일상에서 결함하는 소외적인 체험으로 인해 대수롭지 않은 좌절에도 마음이 불안해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점차 소심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영향은 그들이 자기통제에도 소극적이거나 소심한 특성을 보이게 되는 요인이 된다. 이런 점에서 그들에게는 심리적 작업과 작용이 자연스럽게, 진실하게 수행되기 위해서는 일종의 천진난만성이 요구된다고 보는 이유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며, 주변의 상황이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의 습관화 된 부정적 시각의 왜곡으로 인하여 정상적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수용하려는데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2) 사회성 결여

우울증에 걸리면 그들은 사람을 마나려 하지 않는다. 외부의 단절을 선언하고 집밖을 나서지 않으려는 두문불출(杜門不出)의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그들의 사회성에 대한 부족으로 보아야 한다. 물론 이들의 사회성의 부족은 우울증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것일 수 있다는 점에서는 결과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본래부터 사람을 관계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보면 어느 정도 그들의 증상과 관련되는 경우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우울증에 잘 걸리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점이다. 이는 이들의 사회성의 부족이 우울증의 특징적인 증상이라고 볼 수 있는 점이다.

이런 논의는 원인이야 어떻든 우울증 환자는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갖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들은 특히 자기 세계에 갇혀 있어서 사람을 관계하는데 어려움을 갖는데, 여기에는 그 극단적인 예로 대인공포증을 들 수 있다. 그들은 대체로 우울한 생각에 지배되어 성격적으로 활력이 보이지 않으므로 생기도 없고 활달한 기분이나 분위기를 보이기 어렵다. 이로 인해 그들은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부정적으로 되는 편인데, 이때의 부정적인 사고는 부정적인 행동을 산출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음이 어둡고 혼자 있어도 편치 못하므로 어두운 마음과 생각으로 사람을 관계하는 일에 자연히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특히 그들은 대인관계의 폭이 제한되거나 대인관계의 상황에서 자기중심적으로 되어 전체적인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는 이들에게 가장 부러운 존재는 사람을 자유롭게 대하는 외향형이 될지 모른다.

우울증 환자는 사회성의 문제가 극단화 되면 사회생활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정상적인 수준으로 기능하지 못한다. 그 결과로 그들은 타인을 적극적으로 회피하거나 다른 사람의 기대에 너무 쉽게 따르기도 한다. 특이한 사실은 그들이 본래 인간관계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적절한 사회적 기술을 갖고 있기만 할뿐 활용하지 않게 된다. 이런 점에서 치료자는 이들이 사회적 상황에 밀접하게 관련해서 사회생활에 문제를 발생시킨다는 점에 주목해야만 한다. 이는 사람과의 관계가 원만치 못하고 사회생활에 기능이 현저하게 약화되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집중력과도 관련되는 것으로 정신이 다른 곳, 주로 과거에 집중되므로 눈앞에 있는 현재의 일에 집중하기 어려워진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우울증은 과거지향적인 증상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들은 지나간 과거에 매달려 현재의 일에 열심을 내지 못하는 현상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현상은 우울증은 노이로제와는 대립적인 측면이라고 할 수 있는데, 노이로제가 대개 미래지향적이라면 우울증은 과거지향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년의 변호사는 좋은 사례일 것이다. 이 변호사는 아내와 별거하고 싶다는 이유로 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그는 무력감, 자살소망, 사회적 철수, 만족의 상실, 죄책감, 동기의 상실, 우유부단, 자기비난, 자기원망 등 광범위한 증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 실제로 그의 증상들은 서로 관련되어 있고, 사회적 맥락에서 분명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는 자신이 지루한 사람이며 실패자이기 때문에 남들에게 부담만 준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급기야는 회사 동료나 친구들로부터 철수했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더 친절하지 못하고 직장에서나 가정에서의 책임을 피한다는 이유로 자신을 스스로 비난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일을 잘못할 것이라고 믿기에 어떠한 일을 수행할 동기도 없었고, 책임 있는 일이라면 모두 피했다.

이제 그의 불만족, 그리고 그가 만족하기 어려운 상황은 직장에서나, 사회에서나, 혼자 일을 할 때도 언제나 항상 자신을 비난하는 것과 관련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실패를 지각하고 실망했기에 스스로 슬픔을 느꼈다. 이로 인해 그는 자신에게 중요한 모든 이들 즉, 아내, 친구, 동업자, 고객들을 실망시켰다고 믿어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현재의 부적절감이 뒤바뀔 수 없기에 무엇을 하든 계속 실패할 것이며, 또한 그 실패로 계속 고통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희망이 없었다. 그의 현재 생활에는 아무런 만족이 없고, 죄책감과 슬픔의 고통스러운 감정만이 짓누르고 있었고, 전혀 개선될 가능성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도피할 길을 찾아 나서게 된 것이다.

이제 그가 생각해 낸 유일한 탈출구는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자살이다. 그에게 자살은 그의 모든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로 생각된 것이었다. 이 환자의 모든 증상들은 핵심적 심리문제로 자신, 미래, 경험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을 공유하기 때문에 서로 부정적으로 관련되어 있었다. 이러한 부정적인 구성은 그에게 의미 있는 모든 관계, 활동, 경험을 부정적으로 둘러싸고 있었던 것이다.

4. 우울증과 신체의 문제

신체와 행동은 반드시 동일한 것만은 아니다. 신체는 단순히 몸의 관한 부분이라면 행동은 모든 심리적인 특성을 포함한다는 점에서다. 물론 신체도 심리적인 부분을 포함하여 나타나기는 하지만 심리학에서는 행동만으로도 심리적인 특성을 드러내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러니까 행동은 신체가 움직이는 동작이라면 신체는 그대로 몸의 존재를 현상적으로 보이는 상태이다. 그러면 행동이 심리학에서 심리적인 것의 구체적인 표현이라면, 신체는 생리적인 측면에서 더 이해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심리의 상태는 일반적으로 신체와 연관되어 표현되기는 하지만 신체는 실제로 행동의 주체는 아닌 것이다. 이런 이유로 신체는 심리적인 특성이 신체에 나타나는 것이지만 생리적인 측면에서 더 이해되어야 할 이유이다. 이런 시각에서 우울증과 관련한 신체의 문제는 다음의 몇 가지 증상들을 들 수 있다.

1) 수면장애

수면장애는 우울증에서 매우 특징적인 증상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이 수면을 쉽게 취하지 못하는 수면곤란은 우울증의 가장 뚜렷한 증상 중 하나로 인정된 것이다. 물론 그들이 지나친 수면을 취하여 일상생활에 문제를 보이는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런 현상은 그들에게 지나친 경우에 해당되지만 모든 우울증 환자가 수면장애를 보이는 것은 아니므로 상당한 우울상태에 있어도 수면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임상의 경험에 의하면 대부분의 우울증 환자들은 어떤 형대로든 수면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된다. 여기에는 잠드는 것의 어려움, 깊이 잠들지 못하는 것, 새벽에 깨는 것 등이 포함된다. 일반적으로 환자는 우울함에서 벗어나면 정상적인 수면양상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러면 우울증 환자들이 수면을 많이 취하는 것을 제외하면 대개는 정상인보다 적게 수면을 취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더 문제는 많은 환자들이 불면의 정도를 과장한다는 사실이다.

다만 그들 중에 밤새 잠을 못 잤다고 말하는 경우라면 아마도 상당한 시간 동안 가벼운 잠을 잔 경우로 볼 수 있다. 이때 그들이 실제적으로 수면시간을 짧게 보고하는 것은, 자신이 실제로 수면을 취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잠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과 종종 관련된다고 보아야 한다. 실제로 어떤 우울증 환자는 수면을 충분히 취하지 못해서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믿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유형의 환자는 오히려 불면을 더 증진시키기 때문에 치료자는 그들에게 못잔 잠은 곧바로 채워질 수 있으므로 '잠을 못 잤다'는 것이 대단한 재앙이 아니라는 것으로 생각을 수정하여야 한다.

우울증 환자의 수면과 관련하여 아론 백은 다른 생활영역에서 향상을 보이면 잠을 더 잘 자게 될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우울증 환자가 대부분의 낮 시간을 의자에 앉아 있거나 소파에 누워있거나 낮잠을 자면서 보낸다면 밤에 잠이 안 올 것이다. 그러나 활동을 보다 많이 하게 되면 특히 신체 운동을 한다면 자연스럽게 밤에 잠을 잘 자게 될 것이다. 이때 물론 그들이 조심해야 할 점도 있다. 이런 점에서 그들에게는 운동이 잠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 하는 운동은 이들을 활성화할 수 있으므로 삼가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우울증 환자에게는 수면의 처리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이들에게 수면조절이 어느 정도 되면 상당히 치료적인 효과를 보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런 것은 임상의 경험을 많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기도 하다.

우울증 환자의 수면곤란에 대한 일반적인 처치는 이완법으로서 녹음기를 사용해서도 가능할 수 있다. 녹음기를 통하여 표준이완법에 근거하여 잠들려고 노력하는 동안 유쾌한 장면을 상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때 그들은 깊은 숨을 쉬는 것이나 요가로도 이완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이때 그들로 하여금 자연스러운 수면주기를 찾아보고 피곤할 때만 잠자리에 들도록 격려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우유 한잔을 마시는 것 같이 잠들기 바로 전에 정해진 일을 하는 것도 유용할 것이다. 커피나 홍차같이 자극적인 것은 잠들기 전에는 피해야 한다. 그리고 잠이 들 수 없을 때에는 깨어있는 채로 누워서 불쾌한 생각을 하는 것보다는 잠자리에서 나와서 차라리 뭔가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분위기 전환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다.

2) 식욕과 성(性) 장애

우울증은 식욕상실이나 성(性)에 대한 흥미상실이 초래된다. 식욕과 성욕(性慾)의 감소는 우울증에서는 그 첫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것은 식욕과 성욕, 그리고 의욕은 함께 가는 증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서로 비례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다. 그러면 식욕이 강한 사람이 성욕도 강하고, 그리고 의욕도 강하다는 말이 된다. 이는 우울증이 식욕과 성욕에 약함을 보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더욱 반대적 현상을 보일 수도 있는데, 식욕은 약하지만 오히려 성욕은 강한 경우이다.

이 경우의 성욕은 일상의 삶을 도피하려는 성격이 짙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경우에는 그들이 일상의 삶을 회피하려는 출구로서 피상적 쾌락을 추구하는 태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경우에는 대개 이 둘의 상실로 나타난다. 두 증상 모두 활동에서의 전반적인 쾌감의 상실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울함이 사라지면 식욕이나 성욕이 보통 회복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어떤 경우에는 환자에게 이를 단순히 일러주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에도 불구하고 식욕감퇴나 성에 대한 흥미의 감소는 우울증 환자를 크게 괴롭히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이러한 이유로 이런 증상 등이 변화의 표적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증상을 표적으로 삼은 경우에는, 감각의 자각훈련이나 그들로 하여금 "기쁨을 깨는" 생각에 강력히 도전하도록 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는 치료자가 그들에게 과도하게 탐닉하고 있는 감각적 활동이 무엇인가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유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은 감각양상에 과도하게 탐닉하면 다른 양상에서의 쾌감을 상실하게 된다는 점에서다.

어떤 환자는 우울하게 되면 과식하고 몸무게가 늘어나는 반면, 어떤 환자들은 가벼운 우울증에서는 몸무게가 늘고 심한 우울상태에서는 몸무게가 감소하게 된다. 이들은 보통 체중의 증가를 걱정하기도 하는데, 그들에게 체중감소를 위한 식이요법은 너무나 어려운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치료자는 그들에게 현재의 체중을 유지하고 더 이상 늘지 않는 정도를 초기 목표로 하면서 기분이 나아지면 체중감소를 위해 노력하도록 단계적으로 시도할 수 있다.

5. 결론: 우울증은 나을 수 있다

지금까지 우울증과 관련되는 문제들을 그 유형별로 고찰하였다. 그것들은 모두 동기와 인지, 행동과 신체 등에 관련되는 문제들이었다. 이런 문제들은 우울증이 유발되는 원인이 되기도 하고, 증상이 되기도 하는 등의 특성과 관련되는 측면이 있었다. 이런 문제들은 우울증에서 그 증상으로서 나타나는 특성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우울증이 단순하지만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실제로 우울증은 상당히 복합적인 특성의 작용에서 유발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다만 어떤 경우에는 우울증이 결과적으로 하나의 증상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이런 점은 비단 우울증을 판별하는 것에서 단순하게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면서도 더 근원적인 부분까지도 볼 수 있어야 치료가 가능하다는 점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우울증은 단순히 부정적인 인지적 사고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사고와 관련되면서도 정서적인 측면이 상당한 측면에서 작용하고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질병의 증상에 나타나는 우울증상을 보고서 우울증으로 진단을 내리려는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도록 제동을 걸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런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우울증을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노력이 요구됨을 의미한다.

나아가 우울증을 이해하는 과정이 다양함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아울러 치료에서도 다양한 시각을 동원하여 증상이 유발되는 것을 고찰하고 거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않으면 치료는 요원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우울증의 유형과 치료적 대응에는 원리적인 측면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원리에 따라 증상을 구분하고 치료적 대응을 한다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지만 다양한 시각에서 그 원인을 연구한다면 치료가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닐 수 있음을 동시에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우울증의 이해에 있어서 하나의 증상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동기와 인지, 그리고 행동과 신체적인 측면을 수반하여 나타나므로 치료자는 그 모든 증상을 익히 알고 있어야만 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