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의사가 다가오며 웃는 모습을 의아스럽게 여긴다. 상태로 봐선 얼굴을 찌푸려도 모자랄 것 같은데 미소짓는 것을 보니 참을만한 모양이라고.

나는 의사를 편하게 바라보며 그의 손에 들린 X-ray 사진에 관심을 보인다. 의사는 사진 석 장을 벽에 있는 투시상자에 고정시키며 전기 스위치를 올린다. 의사의 전문적인 설명이 이어진다. 인지와 검지는 뼈의 손상이 없는 것 같아 수술이 끝나면 원래 상태로 회복될 것이지만 중지는 보다시피 뼈가 으깨져서 끝부분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고. 그는 수술에 필요한 전문 외과의사와 수술 팀을 소집했으니 준비되는 대로 수술하자고 한다. 나는 진통제를 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제야 간호사에게 진통제를 주라고 한다. 그래도 진통제를 맞으면 곧 통증이 사라질 거라는 기대감이 참는 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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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두 손은 서로 다른 역할을 담당하며 나를 만들어 왔고, 하고자 하는 일을 성실하게 감당해 주었다. 손은 나의 힘이었고 느낌이었다. 열 손가락은 내 충직한 수하였고 보호자이기도 했다. 부드러움도 뜨거움도 손가락으로만 느껴지는 감각이다. 머리가 생각하는 대부분의 일을 감당하지만 세상이 주는 느낌이 눈과 코로 시작되어도 마지막 확인하고 느끼게 하는 것은 손을 통해서다.

손은 생각에 지배를 받지만 생각을 확인해 주고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일도 한다. 무거울 거라고 느껴지는 물체를 손은 그 무게를 직접 느낄 수 있어 구체적 판단의 자료를 제공한다. 숫자를 세는 것도 손의 도움이 절실하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 모든 수의 개념은 열손가락을 의존하여 이해되고 계산되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손은 느끼게 하고 계산하게 하는 역할도 한다. 그런 일을 한 손이 아니라 두 손이 같이 담당하는 것이다. 그런 균형을 서로 다른 역할을 감당하며 완성해 나간다.

손은 표현을 한다. 입의 도움 없이도 사랑한다는 뜻을 전한다. 승리를 표현하기도 하고, 상대가 최고라는 표현도 쉽게 한다. 약속을 확인하기도 하고 이별을 아쉬워하는 마지막 표현도 할 수 있다.

손을 사용하여 표현하지만 같은 의미를 다르게 보여주며 뜻을 전달하기도 한다. 미국 사람은 오라는 표현을 할 때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게 하여 손가락을 몸 쪽으로 구부리는 동작을 반복하지만 나는 땅 쪽으로 손바닥을 향하게 하여 같은 동작으로 오라는 신호를 한다. 미국 사람은 중지를 세워 상대를 폄하하지만 나는 오른손 주먹과 왼손을 이용한 행동으로 욕을 대신한다.

중지 끝을 잃게 되면 미국식으로 욕을 하기는 틀려버렸구나 생각한다. 내 왼손은 더 이상 상대방을 업신여기는 교만을 표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상처를 입더니 더 고상한 품격까지 갖추어가는 왼손이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하던 생각이 흩어지는 것 같아 고개를 저어본다.

손은 다른 세상과 사물의 접촉을 가능하게 한다. 손은 거미줄을 걷어내고 위협이 되는 물건을 옮기기도 한다. 잡아당기는 것이 이로울 때는 잡아당기고 밀어내는 것이 이로울 때는 밀어낼 줄도 안다. 맨주먹이 공격 무기가 되고 방어무기가 되기도 한다. 손에 무기가 쥐어지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소총을 사격하는 군인의 자세를 보면 온몸을 사용하지만 왼손은 총을 견고히 고정하는데 사용되고 오른손 인지의 마지막 마디의 감각으로 사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인지의 감각을 군에서 교관들은 ‘여성의 젖꼭지를 누르는 기분으로 방아쇠를 당기라’라고 강조한다.

전쟁은 손이 한다. 인지의 미세한 감각이 역사를 누르고 있다. 대부분 오른손 인지의 동작으로 세계가 파괴되고 있다. 오른손 인지가 누르는 버튼이 미사일이면 미사일이 발사되고, 핵폭탄이 장전된 버튼이면 핵폭탄을 날려 보낸다. 손이 없으면 전쟁도 없을 것이다.

간호사가 들어와 진통제 주사를 놓으려 한다. 최고로 아픈 상태를 10이라 가정하고 아프지 않은 상태를 0이라 하면 지금 통증은 얼마로 말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애매한 질문이다. 나는 망설이다가 7이나 8정도라고 대답하며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고 물어본다. 간호사는 과도한 진통제를 투입하는 것이 좋지 않아서라고 대답한다. 어차피 수술 전에 마취를 해야 하는데 가능한 한 진통제를 적게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설명이다. 진통제 주사약을 조절하더니 주사를 놓고 간호사가 나간다. 다시 혼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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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오래도록 하기는 처음이다. 통증이 서서히 무뎌가는 왼손을 펴 손바닥을 무심히 바라본다. 손금이 눈에 들어온다. 오른손을 펴 손금을 비교해 본다. 다르다. 왼손의 손금은 손바닥 중간을 가로질러 동양화 대나무처럼 선명한 세 마디가 보이는 선이다. 군에서 파계승이라는 후배는 내 손금을 보고 ‘막 쥔 손금’이라는 표현을 하며 통상 이런 손금을 가진 사람은 화통하고 강직하며 불의를 못 참고 굴하지 않는 성품을 가졌다고 말한 적이 있다. 군인으로서 좋은 말은 다한다는 생각이 들어 한편으로 흐뭇하면서 웃어넘겼었다.

가로지른 손금에 대나무 줄기 같은 세 손금이 굵고 작게, 선명하게, 희미하게 이어지며 원근을 표시하는 듯하다. 문득 가로지른 손금이 강이고 그 작은 손금들은 샛강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 작은 샛강들은 손목을 향해서 흘러내린다. 발원지가 없는 강물이다. 누군가 물을 흘러내려 보내지 않으면 마를 수밖에 없는 강물. 그래서 사람들은 물을 흘려보내는 절대자의 의도를 손금으로 읽어보려 하는 걸까?

오른손의 손금은 왼손과 전혀 다르다. 엄지와 인지 손가락 중앙에서 굵은 선으로 출발하기는 마찬가지만 1센티를 겨우 지나 손목을 향해 방향을 틀어 흘러가면서 또 다른 선명한 손금과 나뉘어 손바닥 가운데로 흘러내리다가 없어진다. 손바닥 중앙에서 시작되는 다른 손금이 새끼손가락 방향으로 힘차게 뻗어 있다. 이 세 손금을 연결하는 엷지만 또렷한 손금이 중지 손가락 밑에서 손목으로 이어져 있다. 자칭 파계승 도사는 오른손 손금을 보면서는 잔금이 많이 없는 것으로 보아 큰 근심이나 걱정거리가 많지 않겠지만 인생의 중요 고비마다 방향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는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