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들녘

가을이 되면
가지위에서 대지의 품으로
미련 없이 떠나가는
낙엽의 순리를 배우리

아름다운 결실을 위해
여름날 뜨거웠던 태양의 쓰라림도
긴 외로움의 어둠도
아픈 배리(背理)의 찬 서리도

숭고한 성숙을 위해
눈물의 기도로
아름다운 채색으로 물들인
단풍처럼,
떠나갈 날을 위하여
이 순간을
당신의 말씀과 보혈로 물들이리

낙엽은
떨어짐조차 아름답지 아니한가

가을의 조락 앞에
모든 것 다 바치고
빈 들녘처럼 누워 있나니
신이여
이 허막의 공간에
당신의 종소리로 울리소서
당신의 겸허로 넉넉히 채우소서
 
김소엽 시인
대전대석좌교수. 한국기독교문화예술총연합회장
저서[사막에서 길을 찾네][하나님의 편지]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