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남자가 다가온다. 왼손에서 전해오는 지근지근 쑤시는 통증을 참아가며 어떻게 다쳤느냐는 반복되는 질문에 짜증스런 표정으로 대답한다. 1시 반쯤 농장에서 일하다가 전기톱으로 다친 것이고 혈압 약 외에 특별히 먹는 약은 없다. 알레르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점심은 먹지 않았고, 나이도 이름도 주소도 벌써 서너 차례 다른 간호사에게 이미 말했노라고. 해도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하소연이 전달되기 바라며 의사의 눈을 빤히 쳐다본다.

그는 생긋 웃으며 응급실 담당의사 화이트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X-ray부터 찍자고 한다. 그런 태도쯤은 다반사로 겪는다는 느낌이 묻어나는 웃음인 것 같아 차라리 공손한 태도로 대할 것을 그랬다 싶어진다. 드디어 치료가 시작되나 보다 생각하니 아프게 조여드는 쑤심이 더 심하게 느껴진다. 통증을 참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싶어 늦게나마 메마른 쓴웃음을 짓는다.

응급실에 온 지 두 시간이 넘어가지만 아직까지 상처에 소독약 한 방울 발라주지 않은 상태로 서류를 작성하며 기다리고 있다. 피는 응고되어 새카맣게 굳어 상처의 깊이를 알 수가 없다. 왼손 엄지만이 다치지 않았다. 엄지는 다른 손가락에 비해 짧아서 다행히 화를 면했다. 새끼손가락의 상처는 심한 것 같지 않다. 인지와 중지, 검지의 상처가 심각해 보인다. 인지와 검지의 뼈는 상하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다. 덜렁거리는 마지막 마디를 겨우 붙여 온 중지가 문제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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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른 손잡이다. 태어날 때부터 오른 손이 무슨 일을 하든 힘을 더 쓰고 많은 일을 감당해 주었다. 밥을 먹는 것도 오른 손의 몫이다. 글씨를 쓰는 것도 물론 오른손이다.

오른 손 중지 끝마디 좌측에 굳은살이 있는 것을 내심 자랑한 적도 있다. 중지에 굳은살이 없는 사람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중학교 영어선생 말을 진리인 양 믿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공이를 볼 때마다 나를 나 되게 한 자랑스러운 흔적이란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런 공이에 비해 글씨체는 별로다. 요즈음은 왼손까지 동원하여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수 있어 왼손도 오른손 못지않은 몫을 담당하고 있다.

손을 바라본다. 남자 손 치고는 작고 예쁜 손이다. 한때는 이 손을 남자다운 거친 손으로 만들어 보려고도 했다. 나무에 새끼줄을 감아 쳐보기도 하고 태권도장에 다니며 모래를 채운 군용 더플 백을 수없이 두들겨 댔지만 금방 상처가 아물고 옛 모습으로 돌아와 버렸다. 정권을 단련하는 가혹한 군 훈련에서 망가지나 했더니 용케도 버텨냈다. 어렵고 많은 일을 감당했으면서도 두드러진 흉터 하나 없이 버텨온 것이 항상 잔고가 넉넉한 통장처럼 듬직함이 느껴진다. 아무리 사용해도 마르지 않는 우물 같다고나 할까.

오른손잡이인 나에게 왼손은 보조에 불과했다. 도우미, 조연이나 단역배우의 역할이 전부인 손이다.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서 철저히 제한된 역할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때로 서글픈 일이다. 한 손은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는데 다른 한 손은 그 일에 가려 단순한 노동만을 반복하는 것이다. 악수를 할 때도, 반갑다고 손을 흔들 때도, 헤어질 때 섭섭한 마음도 오른 손이 하는 일이다. 어쩌다 오른 손을 따라 들려졌을 때도 왠지 어색하고 힘이 없다.

왼손이 오른손보다 더 주도적인 일을 하게 되는 경우를 어렵게 기억해 낸다. 트랙터를 운전할 때는 다르다. 오른손은 몸의 중심을 유지하기 위해 통상 트랙터 바퀴 커버에 있는 손잡이를 잡고 왼손으로 핸들을 잡게 된다. 운전 중 후진을 할 때 고개를 돌려 뒤를 살피면서 왼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오른손으로 옆 의자를 잡아 중심을 유지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다른 중장비 운전에서도 왼손이 하는 일은 비슷하다. 왼손은 운전을 담당하고 오른손은 중장비에 부착된 삽이나 굴착기를 조정하게 된다. 오른손과 왼손의 역할 분담이 가장 명확한 경우가 아닌가 싶다.

왼손을 바라본다. 오른손에 비해 약해 보이지만 더 예뻤던 손이 중지 끝이 틀어져 겨우 붙어 있다. 마치 머리에 상처를 입고 죽어 있는 누에고치 같은 모습이다. 인지를 움직여 보려한다. 검지를 굽혀보려 한다. 쑤시고 아릴뿐이다. 중지는 아예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왼손은 내 몸에 붙어 있으면서도 더 이상 내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 따르지 않는다기보다 못하는 것일 게다. 그동안 조연으로 살면서 맺혔던 한을 다 쏟아내려는 듯 심한 아픔을 온몸에 퍼뜨리고 있다.

왼손의 역할에 대해 고마워해 보지 않고 살아왔다는 자책감이 왼손가락으로부터 퍼지는 통증과 함께 스민다. 왼손이 힘을 못 쓰는 지금 오른손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오른손이 아니다. 왼손 때문에 오른손이었던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다니. 왼손은 오른손에 비해 더 성숙한 모습이었다. 평생 나를 만들기 위해 표 나지 않는 일을 무심히 감당하며 지내왔다. 내 나이를 같이 사는 동안 왼손은 상처만을 품고 말없이 살아온 것이다. 조연의 운명을 성실히 살아온 왼손이었다.

그랬었다. 염소를 잡아 뼈를 토막 내려 할 때 오른 손은 왼손에게 큰 실수를 한 적도 있다. 이번에 다친 중지 두 번째 마디를 친 것이다. 다행히 뼈는 비켜갔지만 살점이 떨어져 나갔었다.
낚시에 물린 고기를 왼손이 잡고 오른손이 낚싯바늘을 빼면서 왼손 엄지에 바늘이 깊숙이 박혀 병원까지 간 적도 있다. 못을 박을 때 왼손이 잡아주지 않으면 못을 박을 수 없다. 정성을 다해 못을 잡고 있을 때도 오른손에 쥔 망치가 못 대신, 인지를 두드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이보다도 더 많은 상처를 입은 왼손의 가해자는 대부분 오른손이었다. 가해자이면서 계속 힘을 쓰려는 오른손, 나는 더 이상 오른손의 존엄이나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련다. 왼손이 없는 오른손은 나이 들어 혼자 사는 홀아비 같은 모습일 뿐이다. 아무리 똑바로 걸어도 추레하고, 일을 해보지만 힘 받는 일은 못하고, 씻는다고 해도 여전히 홀아비 냄새가 나는 그런 어정쩡한 모습이다. 오른손이 나를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왼손이 오른손을 앞세워 나를 살게 하고 있었다. <계속>

주경로 작가
미주 <한국일보> 문예공모전 소설 부문 당선, 재외동포문학상 우수상·미주동포문학상 대상·천강문학상 대상 수상, 장편소설 <스터디 그룹><우리들의 교향곡>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