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는 아이들 앞에서 귀신이 없다고 큰소리를 쳐놓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주저주저했지만 아이들 앞에서 큰 소리를 쳤으니 무서운 것을 참고 억지로 굴 속 깊숙이 들어가 보았습니다.

코가 큰 불란서 사람들이 자기네들이 믿는 종교를 퍼트리기 위해서 군함을 타고 이곳까지 들어 왔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겁에 질려서 그들이 타고 온 군함을 불태우고 그 사람들을 잡아다가 죽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게 되자 나라에서는 불란서 사람들이 덜머리까지 쳐들어 온 것은 가톨릭 신자들이 불란서 사람들과 내통하여 우리나라를 침범케 한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가톨릭 신자들을 모두 잡아 죽이라는 나라의 명령이 내려져, 교도들을 잡아다가 나루터에서 목을 베고 그 시체들을 덜머리 바위 굴 속에 처넣었다고 합니다.

내가 굴 속에 들어가 보았을 때는 그 시체들은 한 구도 없고, 박쥐들만 굴 천장에 여러 마리 붙어 있었습니다. 그 중에 몇 마리가 푸드덕하고 천장에서 날아 내 머리 위로 스쳐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귀신이 있다는 친구들의 말은 허무맹랑한 거짓말이었습니다. 내 친구들이 그렇게 무서워하는 귀신이 그 굴 속에는 없었습니다.

얼마 후 덜머리 위에는 성당이 세워졌습니다. 가톨릭 신자들끼리 돈을 모아서 죄 없이 목숨을 빼앗긴 가톨릭 신자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성당이라고 합니다. 덜머리는 온통 꽃밭으로 변했습니다. 여기 저기 피어 있는 갯버들꽃은 물론이거니와 진달래, 철쭉꽃, 영산홍 등 여러 가지 꽃들이 예쁘게 피어나 성당 주변을 아름답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불란서 사람들과 내통한 죄가 있다고 목숨을 빼앗긴 사람들이 오히려 순교자라는 이름으로 추앙을 받게 된 일입니다. 그 이유는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신앙을 지켰다는 겁니다. 아마도 어느 때는 죄가 되고 어느 때는 죄가 안 되는 어른들의 잘못된 생각이 사람을 죽인 원인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세계의 여러 나라 사람들이 덜머리를 구경하러 몰려들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불란서 사람들도 있습니다. 순교자가 한두 명도 아니고 백 명이 넘는다며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장한 일이라고들 말합니다. 그런데 뱃사공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뱃사공 아저씨네는 그런 일을 다 겪은 집안이라고 합니다.

“그때도 내가 어릴 때였지, 우리 아버지가 나처럼 뱃사공이었는데 나루터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지. 포승줄에 꽁꽁 묶인 죄수들을 끌고 온 것을 배에다 태워서 건너다 주었다는 거야, 그들은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빨리 죽여라.’ 하고 대들기도 했다는 거야. ‘그렇지만 난 죄가 없다. 하느님을 믿는 것도 죄가 된다더냐?’면서 그 죄인들은 죽음 앞에서도 겁을 먹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거야. 그때 우리 아버지께서도 ‘저 사람들은 아마도 다른 세상에서 사는 모양이다.’ 했다는 거야. 나도 들은 이야기고 아마도 자네 할아버지께서도 아실 테지만 말야. 그 끔직한 일들을 당했으니. 쯧쯧쯧…”

뱃사공 아저씨가 훗날 내게 들려 준 이야기는 좀처럼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나도 그 사람들처럼 한 가지 일을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는 용감한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얼마 후에 한강 다리가 완공되었습니다. 그 다리 위로 여러 사람들이 건너다니게 되었습니다. 마차도 자동차도 상여도 오고 갔습니다.

그렇게 되니 자연히 나룻배는 텅 빈 채로 강가에 떠 있게 되었고 뱃사공 아저씨는 하루 종일 강가에서 앉아서 담배만 피우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힘이 붙여 놀이 배를 하겠다는 결심을 버린 것 같았습니다.

나는 나룻배가 강 위에 그대로 한가롭게 떠 있는 것보다 그 전에 사람들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던 기억들…… 그 고마운 사실을 잊고 있다는 게 더 슬펐습니다. <끝>

김학준 작가
월간 《창조문예》 동화 부문 등단, 《문학21》 소설 부문 등단, 장로회 신학대학원, 미국 훼이스 신학대학원 종교교육학 박사 과정, 계간 농민문학 편집국장, 한국문협·펜·소설가협회·한국 크리스천문학가협회 등 회원, 동화집 『행복파이』 외 작품집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