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도 우리들은 쑥뜸을 하려고 팔각정이 있는 공원으로 올라갔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어제처럼 다시 쑥뜸을 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손바닥에는 다시 쑥뜸을 할 수 있는데 배꼽에다는 혼자서 쉽게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할아버지와 이혼을 하셔서 할머니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을 하고 나시자마자 부싯돌 할아버지께서 오셨습니다.

“또 쑥뜸을 하시는군요.” “네.”

나는 이때다 싶었습니다. 방금 할머니가 들려주신 말씀을 했습니다.

“할아버지, 부탁이 있는데요.” “무슨 부탁?”
“우리 할머니가요. 배꼽에다 쑥뜸을 해야 하는데 우리 할아버지가 안계셔서요, 혼자서는 못하신다고 하니까 우리 할머니 배꼽에다 쑥뜸을 좀 해 주세요.”

내가 그 말을 하자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부싯돌 할아버지는 좋다는 듯이 껄껄거리며 소리 내어 웃으셨고 우리 할머니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발갛게 되어서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그래. 그렇게 할 수 있지.”
“아니에요, 얘가 별소리를 다하는구나. 아니다, 내 참.”

할머니는 허둥지둥 쑥짐기를 챙기어 가방에다 넣고 나서 공원을 내려왔습니다. 할머니는 얼른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에 우리 할머니께서는 한동안 공원에 나가시지 않고 집안에만 계셨습니다. 그러면서 나에게 일렀습니다.

“얘, 내가 너에게 한 말을 아무 사람들한테 그렇게 불쑥불쑥해서는 못쓴다. 그런 소리는 내가 너한테만 할 수 있는 소리란다 알겠니?”

나는 할머니가 하신 말씀의 뜻을 몰라서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응 네가 아직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구나. 배꼽에다 뜸을 뜨면 몸에 좋다는 말 말이다.”
“네, 부싯돌 할아버지에게 한 말 말예요?”
“그래.”
“할머니 우리 내일 또 공원에 가요, 현충일이라서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거든요.”

이튿날 나는 할머니와 함께 공원에 놀러 갔습니다. 팔각정에 올라가서 할머니의 양손에다 쑥뜸을 해 드렸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주위를 자주 두리번거리시며 가고 오는 사람들을 모두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면서 혼자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은 안 오시나?” “누구요?”
“응, 아니다.”

나는 할머니의 표정을 보았습니다. 내 눈치로 보아서 아마도 할머니께서는 그 부싯돌 할아버지를 기다리고 계시는 게 틀림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 그 부싯돌 할아버지 기다리시지요?”
“예끼! 아니다. 부싯돌 할아버지는… 흉측 맞게.”

그러면서 할머니는 알지 못할 웃음을 입가에 떠올리셨습니다. 잠시 후에 쑥 냄새가 좋다며 공원 저쪽에서 부싯돌 할아버지가 올라 오셨습니다.

“쑥 냄새가 좋아서 멀리서도 알 수 있는데요.”
“바람에 실려서 쑥 냄새가 멀리까지 가지요, 그래 잘 계셨우? 그런데 어디 편찮으셨나요? 한동안 안 보이시던데요? 걱정했어요.”
“왜요?”
“나는 병원에서 사람들 시체만 만져서 안 보이면 죽은 줄 알거든요.”

부싯돌도 아저씨는 갑자기 눈자위가 허옇게 되어 가지고 말을 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시는데요?”
“염사예요.”
“염사가 뭐예요, 요즘도 염색을 하나요?”
“아니요, 사람이 죽으면 내가 잘 모셔 드리지요. 죽은 사람을 묶는 일 말예요.”

할머니는 부싯돌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힐끗 얼굴을 한 번 쳐다보시더니 갑자기 다시 물건들을 주섬주섬 싸기 시작했습니다.

“가자! 집으로….”
“할머니! 쑥뜸하러 온 시간이 한 시간도 안 되었는데요.”
“아니다. 가자 어서!”

할머니는 나의 손을 잡고 재빠르게 계단을 내려오셨습니다. 부싯돌 할아버지는 팔각정에 서서 할머니의 뒷모습만을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계셨습니다. 며칠 후였습니다. 우리는 부싯돌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입에 담지도 않았습니다. 어쩌다가 내가 부싯돌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려면 할머니께서는 “그 이야기는 입에 담지도 말아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갑자기 변한 할머니의 알 수 없는 태도에 의문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공원에 가서 할머니가 사방을 두리번거리시면 부싯돌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공원에 가 있는 동안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을 했습니다. 공원에 바람을 쐬러 올라왔던 사람들은 모두 비를 피하려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할머니께서는 내려갈 생각은 하지 않고 쑥뜸만 뜨고 계셨습니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쑥뜸기 안에서 쑥이 연기를 내면서 파란 색깔의 불꽃을 피워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뜨겁다는 소리도 하지 않고 비를 흠뻑 맞고 서 있는 나무들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부싯돌할아버지 기다려요?”
“아니다. 이놈!”

할머니는 오늘은 비가 오는 까닭인지 웬일인지 몹시 마음이 불편하신 것같이 보였습니다.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을 했습니다.

“가자! 비가 더 오기 전에.”

할머니는 다시 쑥뜸기를 가방에다 넣었습니다.

“우산이 없잖아? 할머니.”
“괜찮다. 이걸 뒤집어쓰면 돼.”

할머니는 호랑이가 그려진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나를 품안에 안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층계를 내려왔습니다. 비가 더욱 세차게 쏟아지자 우리들은 비를 피하기 위해서 공원 옆에 있는 병원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침 영안실 문이 열려있어서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출입구 안쪽으로 몇 발작 더 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부싯돌 할아버지가 흰 가운을 입고 서 계셨습니다. 마침 일을 마치고 나온 것 같았습니다. 손에는 흰 장갑을 끼고 있고 얼굴에는 아직 땀방울이 맺혀 있었습니다. 부싯돌 할아버지가 할머니 앞으로 다가서더니 인사를 했습니다.

“쑥 할머니 여전하시군요, 오늘도 공원에 가셨어요? 내가 오늘은 일이 있어서 못 나갔습니다.”

할머니는 웬일인지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가늘게 입 밖으로 소리를 내었습니다.

“그 주제에 꼴값 떠네….”

할머니가 입속으로 하시는 말씀을 분명히 들었을 터인데도 부싯돌 할아버지는 얼굴에 웃음을 띠우며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의사가 아니라서. 그러나 마찬가지지요. 의사들은 환자들을 돌보고 저는 죽은 사람들을 돕는 거지요, 뭐 허허.”

부싯돌 할아버지의 입에서는 술 냄새가 확 풍겨 나왔습니다. 얼굴 한 가운데 붙어 있는 딸기처럼 빨갛게 된 주먹코가 더욱 빨갛게 되어져 있었습니다. 소낙비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주룩주룩 내렸습니다. <끝>

김학준 작가
월간 《창조문예》 동화 부문 등단, 《문학21》 소설 부문 등단, 장로회 신학대학원, 미국 훼이스 신학대학원 종교교육학 박사 과정, 계간 농민문학 편집국장, 한국문협·펜·소설가협회·한국 크리스천문학가협회 등 회원, 동화집 『행복파이』 외 작품집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