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는 공원에 자주 가십니다. 큰 병원 옆에 있는 동네 공원입니다. 할머니는 “넘어져서 팔을 쭉 뻗으면 닿을 곳에 공원이 있으니 나가서 운동을 좀 해라” 하십니다. 그렇게 가까운 거리입니다. 날씨가 몹시 더운 날이면 할머니께서는 “아이 덥다, 공원에나 올라가야겠다.”라고 하십니다.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집안의 구석구석의 청소를 마치신 할머니께서는 공원으로 나가십니다. 공원에 오르는 데는 돌층계가 모두 200개나 됩니다. 그 계단을 할머니께서는 한 번도 쉬지 않고 올라가십니다. 다른 할머니들은 공원에 오르다가 숨이 차서 중간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한 번은 쉬고 올라가시는데도 우리 할머니께서는 꼭대기에 있는 팔각정까지 한 번에 올라가십니다.

그러시면서 “얼른 자리를 잡아야겠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 와 있으면 우리가 차지하기가 어렵지” 하십니다. 할머니가 팔각정에 오르면 하시는 일이 있어서입니다. 가방에 넣어 둔 쑥짐기를 꺼내어 양쪽 손바닥에 올려놓고 약쑥에다 불을 붙여서 쑥뜸을 하는 일입니다.

“할머니 왜 이런 일을 여기서 하세요?”하고 내가 물으면 할머니께서는 “집에서는 공기도 잘 통하지 않아서 냄새도 많이 나고 온 집안에 냄새가 퍼지니까 여기가 좋지, 쑥뜸을 하기에는 제일 좋아요.” 하시면서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으셔서 쑥뜸을 시작하십니다.

팔각정 마루위에는 할머니께서 준비해 가지고 와서 꺼내놓은 여러 가지 음식물들이 있습니다. 곶감, 잣, 음료수, 인절미, 콩떡, 도마도 주스, 그리고 호랑이가 그려진 가죽 보자기, 또 집 열쇄 꾸러미를 가지런히 놔두었습니다.

할머니는 양손바닥을 하늘을 향하게 하고 그 위에다 동그란 쑥짐기를 두 개나 올려놓고 쑥이 타들어가는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흥얼거리십니다.

“할머니 이 건 왜 해?”
“응 이건 할미가 소화가 잘 안돼서… 위가 나쁘거든 참외 씨가 위 벽에 붙어 있어서 그 걸 떼려구.” “응 그렇구나!”

할머니께서는 사방을 두리번 거리시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기가 참 좋다. 바람도 시원하구나. 공기도 맑고 참 좋다.”

그런 말씀을 연거푸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할머니께서는 “나무가 참 좋다. 나무가 참 좋아. 저 푸른 잎이 없다면 세상이 얼마나 삭막할까?”

나도 나무가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할머니 나무가 나보다 더 좋아요?”
“너보다 나무가 더 좋으냐고? 아니다. 너도 좋고 나무도 좋으나 비교도 안 되리만치 네가 더 좋아.”
“나도 전에는 저 나무들처럼 싱싱했는데…” 하고 말씀을 하십니다.

아마도 할머니께서는 젊은 시절이 생각나시는 모양입니다. 할머니께서는 할아버지가 안 계시고 혼자 사십니다. 아직 시집을 가지 않은 막내 고모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할머니 집에는 강아지가 일곱 마리나 되고 새로 분양받은 희귀한 품종의 고양이 새끼가 두 마리입니다. 그 동물들을 기르면서 할머니는 쓸쓸하게 살아가십니다.

나는 가끔 할머니가 쓸쓸해 보여서 어느 날은 그림을 하나 그려서 할머니 화장대 위에다 올려놓고 옵니다. 할머니가 그 그림을 보고 쓸쓸하지 않았으면 하고 그려 놓았습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빠 말로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하고 엄마는 먼 데 가 계시다고 하는데 할머니는 대답을 안 하시고 그냥 웃기만 하십니다. 그러나 나는 압니다. 할아버지의 얘기를 하는 것을 식구들이 모두 싫어하는 것 같아서 묻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올해 아홉 살인데 내가 태어나기 전이었다고 합니다. 어른이 되면 알게 될 테니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우리 아빠를 결혼시키고 고모와 둘이 사는 할머니는 성격이 꼬장꼬장하십니다. 우리 집과 합치는 것도 싫다 하시고 따로 사시는 할머니는 서울 사대문 안의 토박이로 남부럽지 않게 살아 온 분입니다. 성격이 매우 까다롭기는 하지만 경우가 반듯한 분이라고 엄마가 얘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얼마 전 일입니다. 우리 할머니가 쑥뜸을 하고 있는데 씩씩하게 생긴 할아버지 한 분이 올라 오셨습니다. 할머니께서 쑥뜸을 하고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어 쑥뜸을 하고 계시는군요, 옛날에는 그 쑥에다 부싯돌로 불을 붙였습니다. 허허” 하시면서 웃으셨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할머니께서 “네 그래요”하고 호호 웃으시면서 대답을 하셨습니다. 나는 요즈음 우리 할머니께서 그렇게 환한 얼굴의 표정을 짓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조금은 수줍음을 타는 할머니의 모습을 처음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또 이야기를 계속하셨습니다.

“옛날에는 불이 없을 때 이 쑥을 불씨로 사용했지요. 이 쑥을 바싹 말려서 보드럽게 새끼처럼 꽈서 불을 붙여서 하루 종일 들판에다 놔두었지요, 그러다가 저녁때가 되어 밥을 짓거나 어둠을 밝히려고 불을 사용하게 될 때는 다시 쑥으로 만들어 놓은 불씨에다 불을 붙여 사용했지요.”
“고향이 어디신지요?”
“네 시골이었지요. 충청도 산골이요.”
“그러니까 그렇지요, 성냥도 귀했으니까 라이터도 없었구요.”

아마도 그 할아버지께서는 시골에서 태어나서 자라오면서 보신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불씨로 사용했다는 말과 부싯돌이란 말을 나는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여쭈어 보았습니다.

“할머니 부싯돌은 뭐에요, 불씨는 뭐구요?”
“응. 부싯돌이란 불씨를 내려는 돌멩이인데 차돌을 말한단다. 차돌멩이끼리 서로 부딪치면 불씨가 튀거든. 그 불씨를 말한단다.”
“왜 그런 걸로 해요, 라이터로 키지요.”
“라이터가 없었고 성냥도 귀하던 시절이었거든… 그러니까 그 할아버지의 말씀은 옛날에는 성냥이 귀하니까 불을 붙이기 위해서 쑥을 사용했다는 말이지.”
“응. 그랬구나” <계속>

김학준 작가
월간 《창조문예》 동화 부문 등단, 《문학21》 소설 부문 등단, 장로회 신학대학원, 미국 훼이스 신학대학원 종교교육학 박사 과정, 계간 농민문학 편집국장, 한국문협·펜·소설가협회·한국 크리스천문학가협회 등 회원, 동화집 『행복파이』 외 작품집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