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석 칼럼] 평통기연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습니다

류재광 기자 입력 : 2011.08.22 06:37

“‘인권 있는 평화’의 편에 서야 합니다”

▲서경석 목사(기독교사회책임 공동대표).
1.

참다 못해 절규하는 심경으로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독인 연대>에 대한 비판의 글을 올립니다. <평통기연> 활동에 앞장서신 분들이 다 한국교회의 어른들이신데 이렇게 감히 글을 올리는 것이 너무 죄송스럽습니다. 그동안은 계속 염려와 걱정을 가지고 지켜만 보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무례를 무릅쓰게 되었습니다.

지금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독인 연대>는 잘못된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번 “평화와 통일을 위한 한국교회 8.15선언”에서 이 점이 너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평통기연>의 8.15 선언은 평화와 통일만 말할 뿐 북한 인권에 대한 언급은 단 한 군데도 없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이라면 평화와 통일을 말하기 전에 인권을 말해야 합니다. 평화와 통일은 인권을 핵심가치로 생각할 때에만 의미가 있습니다.

요즈음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뉴스 중에 “신숙자 모녀의 슬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재독 경제학자 오길남 씨가 북한의 꼬임에 빠져 아내 신숙자 씨와 딸 혜원, 규원이와 함께 북한으로 들어갔다가 북한의 실상을 알고 절망합니다. 그런데 오길남 씨가 또 다른 유학생을 포섭해서 입북시키라는 지시를 받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용기 있는 여성 신숙자 씨는 내가 여기서 죽어도 좋으니 당신은 도망치라고 말합니다. 또 다른 무고한 젊은이들을 북한으로 꼬여 대남공작의 제물이 되게 하는 것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오길남 씨는 유럽에서 탈출해서 지금 서울에서 통한의 눈물을 쏟으며 살고 있고 용감한 여성 신숙자 씨와 어린 혜원, 규원이는 요덕 정치범수용소에 갇혔고 그 후에 소식이 끊겼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말할 때마다 눈물을 흘리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이 신숙자 씨의 슬픈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 세상에 인권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통일이 되면 정말 좋겠지만 저는 통일이 안 되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미국과 캐나다가 형제국으로 평화롭게 살듯 남북도 그렇게 살면 됩니다. 그러나 인권은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반드시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평통기연>은 북한의 참혹한 인권유린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평화, 화해, 통일, 대화, 교류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북한의 인권유린을 외면한 대가로 북의 김정일로부터 남한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과 안전을 보장받겠다는 극도의 이기주의적 태도입니다. 기독교인은 이러한 입장에 서면 안 됩니다. 김정일이 3대 세습을 하든 말든, 기독교인을 전부 정치범수용소로 보내든 말든 무조건 평화만 말한다면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아가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괜찮다, 괜찮다, 평강이오, 평강이오를 반복했던 거짓 선지자들과 다를 바가 없게 될 것입니다.

북한 인권을 말하는 것은 아주 손해 보는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 북한과의 긴장이 격화되면 제2, 제3의 천안함 폭침사태, 연평도 포격사태가 다시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 한나라당이 북한 인권을 말하면 좌파들은 다시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전쟁 난다’고 불안심리를 부채질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피해를 보지 않으려고 동족의 고통을 외면한다면 아주 비겁하고 부끄러운 사람이 됩니다. 바로 이런 모습을 보고 예수님께서 “내가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지 말라”고 말하셨다고 저는 믿습니다. 인권이 없는 평화는 가짜 평화, 사이비 평화입니다. 저는 인권이 없는 평화를 택하느니 차라리 평화 없는 인권을 택하겠습니다. 김정일 체제를 향해 인권을 이야기하면 틀림없이 한반도 평화가 위협받을 텐데 그렇다고 우리가 굴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7, 80년대에 교회는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감옥에 간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군사독재정권과 대화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평통기연>은 군사독재보다 백 배는 더 독재인 북한의 수령독재를 한 마디도 비판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그들과 대화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북과 대화해야 할 필요를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북에 대해 바른 말을 하는 것입니다. <평통기연>의 지도자들은 한국교회 전체를 대표하는 지도자들입니다. 그렇다면 교인들을 향해 왜 한반도의 평화가 위협받고, 왜 북한이 경제난을 겪는지, 왜 인권유린이 혹심한지에 대해 바르게 말해야 합니다. 교회가 바르게 말하지 않는데 어떻게 6.25가 북침이라고 생각하고 천안함 폭침은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고 말하는 젊은이들이 사라질 수 있겠습니까?

<평통기연>은 이번 8.15 성명에서 북한이 민주화되지 않고 경제난이 심한 이유가 남북 대치 상황과 분단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남북 대치 때문이라면 남한도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이루지 못해야 합니다. 전쟁은 북한이 일으키고 남한은 응전한 것밖에 없는데 왜 전쟁을 일으킨 북한은 독재와 경제난으로 신음하고, 공격당한 남한은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이룬단 말입니까? 교회는 그 이유가 김일성-김정일 독재 때문이라고 정직하게 말해야 합니다. 과거 우리가 전두환 독재정권 하에서 신음할 때 한동안 모든 것이 분단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북한을 잘 몰랐고 또 워낙 전두환 정권의 압제 하에서 고통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그런 낡은 생각에 갇혀 있으면 안 됩니다.

또 <평통기연> 지도자들은 민족 통일이 되어야 8.15가 완성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틀린 말은 아니더라도 정확한 말은 아닙니다. 우리 민족이 완전히 해방되지 않은 이유는 통일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지금까지도 북한 주민들이 수령독재 하에서 신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8.15 해방은 반쪽 해방입니다.

<평통기연> 지도자들은 기독교가 左右를 아울러야 하고 생산의 효율성과 분배의 정당성을 다같이 강조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과거 임시정부의 이상을 계승하자고 말합니다. 이 점도 절대 찬성입니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과 분배의 정당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좌와 우를 아우르는 일은 국내의 보수-진보간의 문제이지, 김정일 독재세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한국 기독교가 남과 북을 넘어서는 제3의 길로 가야 한다는 말은 국내의 진보세력을 김정일 정권의 추종세력으로 간주한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으면 전혀 맞지 않는 말입니다. 역사에는 청산되어야 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친일파와 군사독재세력이 그러합니다. 그들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있지만 세력으로서의 친일파, 세력으로서의 군사독재세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김정일 세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그들과 같이 살겠지만 세력으로서의 수령독재세력은 반드시 청산되어야 합니다.

또 <평통기연>은 남북이 합의한 것을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북한이 비핵화 선언을 지키지 않는 상황에서 이 말은 공허하게만 들립니다. 6.15 선언도 좋은 선언이고 햇볕정책도 좋은 정책입니다. 그러나 북한 인권 문제를 말하는 순간 그대로 깨져 버리는 선언과 정책은 아무런 의미도, 지킬 만한 가치도 없습니다.

2.

<평통기연>은 대북 인도적 지원을 위해 교회와 개인이 수입의 1%를 쓸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 원칙적으로 동의하면서도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국민은 1998년에 3.1운동 이후 최대의 민족운동이라고 평할 만큼 엄청난 규모로 북한 돕기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왜 냉담한가? 물론 이명박 정부가 소극적인 것이 큰 이유겠지만 그것은 정답이 아닙니다. 98년에도 김영삼 정부가 북돕기를 은근히 탄압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돕기운동은 열화와 같이 번졌습니다. 그래서 국민의 생각이 중요합니다.

지금 국민의 생각은 과거와 다릅니다. 북한이 천안함을 폭침시켰다고 해서 우리도 북한 함정을 폭침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도 없습니다. 무력 보복은 안 하더라도 북이 뼈저리게 후회하도록 응징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대북 인도적 지원을 일정 기간 중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탈북자들의 증언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탈북자들의 한결같은 보고는 남에서 보낸 식량이 주민들에게 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북한 체제가 붕괴직전에 몰렸을 때 벼랑 끝에 선 북한을 구해낸 것이 한국 정부의 막대한 대북지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모든 부정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북한 동포들이 또다시 굶고 있다면 우리는 이를 방치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인은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생명을 구하는 일을 북에 대한 응징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교회의 입장을 사람들에게 충분히 납득시킴과 동시에 모두를 만족시키는 대안을 찾아가야 합니다. 저는 북한 당국에게 식량을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두만강변이나 압록강변에서 조선족을 통해 주민에게 직접 지원하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이 방안이 김정일체제를 돕지 않으면서도 주민에게 확실히 식량이 전달되는 방안입니다. 그런데 끝내 북한 당국을 통해 줄 수밖에 없다면 쌀이나 밀가루 대신 옥수수 가루를 보내야 합니다. 옥수수가루는 두주일 이상 저장할 수 없기 때문에 밑바닥 주민에게 갈 수밖에 없습니다.

또 <평통기연>은 북한에 대한 응징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토대 위에서 동포 돕기를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을 응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북 돕기에 끌어들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들 중에는 북한 비판을 하면 안 되는 분이 있습니다. 북한동포돕기를 하는 단체의 대표가 그러합니다. 저 자신이 그런 경우였습니다. 저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을 창립하여 열심히 대북지원활동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때에는 일체 북한 비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탈북난민이 북으로 강제송환되어 총살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강제송환 반대운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저의 행동 때문에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실무자들은 한동안 북한에 들어가지 못했고, 저는 결국 이 단체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북 돕기와 북 비판을 같이 할 수 없습니다. 북 돕기 때문에 북한에 대해 일체 말씀하지 않으신 분이 곽선희 목사님이십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북한 주민을 도우셨고, 누구보다 하실 말씀이 많으셨겠지만 일체 북한에 대해 좋다 나쁘다를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평통기연>의 목표가 사람들에게 북한에 대한 바른 입장을 제시하는 것이라면 북 돕기를 하시는 분은 곽선희 목사님처럼 <평통기연>과 같은 단체의 전면에 나서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평통기연>이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그동안 많은 목사님들이 북한을 방문하고 북 돕기를 하도록 유도해 왔습니다. 돕기도 돕기이지만 무엇보다 북을 비판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는 새 모르는 새 많은 목사님들이 이러한 북한의 전략에 말려들었습니다. 기독교의 큰 어른이신 조용기 목사님도 과거에는 북을 비판하셨지만 평양에 병원을 세우시면서부터 북에 대해 침묵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바른 말을 하는 목사님이 너무 적어졌습니다.

또 교회나 개인이나 수입의 1%를 대북지원에 쓰자는 제안에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 그 전에 돈 쓰는 방법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당장 굶어 죽어가는 사람은 무조건 도와야 하겠지만 그 이상의 지원은 조건부여야 합니다. 북과 협상을 해서 조금이라도 인권 개선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는 현실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또 이 돈이 북의 김정일 독재체제를 강화시키는데 쓰여서는 안 됩니다.

3.

저는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냉엄한 현실적인 인식을 가지고 남북 문제에 대해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罪性과 한계를 보지 못하고 나이브하게 원수사랑만을 말한다면 정치 지도자들이나 언론이 교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흔들려는 세력에게 이용만 당할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진정으로 원수를 사랑하기 위해 분투한다면 그럴수록 더 철저하게 현실주의적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북한정권의 실체를 정확히 알아야 하고, 북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의 역학관계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도덕적 힘을 동원해서 북이 평화의 길로 가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북한 인권을 열심히 말하는 이유도 북한을 향한 도덕적 압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남과 북은 인권문제를 놓고 대치하고 있습니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북한 인권에 대한 침묵을 대가로 평화를 도모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 평화는 가짜 평화, 사이비 평화였습니다.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그대로 깨져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인권이 있는 평화”를 말하면서 북의 “인권 없는 평화”와 몇 년째 힘겨루기를 하고 있습니다. 천안함, 연평도 사건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힘겨루기 과정의 하나였고 “한나라당이 승리하면 전쟁 난다”라는 불안심리가 확산되어 한나라당이 참패했던 지난 지방선거도 그 과정의 하나였습니다. 앞으로 북한은 전쟁난다는 불안심리를 더욱 확산시켜 내년 선거에서 좌파가 꼭 집권하도록 획책할 것입니다. 이 점에서 지금 남북의 힘겨루기는 클라이막스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이 힘겨루기에서 이명박 정부의 “인권 있는 평화” 편에 서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를 향해 “더 이상 버티지 말고 김정일의 ‘인권없는 평화’에 굴복하라”고 말하는 것은 교회가 민족 앞에 크나큰 죄를 짓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평통기연>의 지도자들에게 간곡하게 호소합니다. 절대로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로 되돌아가려고 하지 말아 주십시오. 옛날처럼 북한 인권에 대해 침묵하는 대가로 남북평화를 실현하려고 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미 우리는 한국에 함께 살고 있는 2만명의 탈북자들로부터 북한에 대해 너무 많은 진실을 들었습니다. 이제는 인권이 있는 평화를 향해 가야 합니다. 부디 인권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해 주시고 북한 인권법 제정을 위해 노력해 주십시오. 인권을 외면하는 <평통기연>은 존재가치가 없습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한국교회로부터도 외면당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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