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하나님 없는 민족의 신화를 만든 샤토프

<악령>에서 스타브로긴과 함께 신앙사상을 가진 또 하나의 인물은 샤토프이다. 국민과 국가와 종교의 관계로 본 샤토프의 신앙사상의 원류는 스타브로긴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신앙사상은 어떤 면으로는 극단적 대조를 보이고 있다.

먼저 스타브로긴이 샤토프에게 한 신앙 고백을 보자. “진리가 그리스도 밖에 있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자가 있다 하더리도 나는 진리와 더불어 있기보다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있을 것이다.” 이같이 스타브로긴의 신앙사상은 그리스도 중핵적 신앙관이다.

스타브로긴의 영향을 받은 초기에는 샤토프 역시 그리스도 중핵적 신앙관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나라의 국민은 그리스도의 몸인 성당을 통해 생명의 흐름을 공급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 생명의 흐름 속에서 국민 각자는 근원에 닿는 스스로의 신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샤토프의 신관은 유일신 하나님이 아닌 “인간이 스스로 만든 각자의 신”이라는 개념이다.

하나님이 유일신이 아니라면 그리스도역시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일 수 없다. 우리가 샤토프의 신관에서 놓지지 말아야 할 것은 도스또옙스끼는 오늘날 지성적 인간이 범할 수 있는 신앙적 오류를 이미 1백여년 전 사토프를 통해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좀더 구체적인 샤토프의 고백을 통해 도스또엡스끼 문학의 기독성을 이해해 보자.

“신은 한 민족의 발생부터 종멸에 이르기까지 전부를 포함하는 종합적 인격이다. 모든 민족 다수의 민족 사이에 공통적인 신이 있은 예는 없었지만 민족은 각기 자기들 만의 독특한 신들을 가지고 있다. 신들이 공통적으로 된다는 것은 국민성이 소멸된다는 얘기다. 그렇게 되면 신에 대한 신앙도 국민과 더불어 사멸한다. 국민이 강성할수록 그 신은 특수하다.“

이렇듯 스타브로긴의 유일신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중핵으로 한 신관이 그의 사상을 이어받은 샤토프에게서 변질이 되는데 이를 통해 도스토옙스끼는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중심 신관이 인류의 역사 속에서 수학적으로 설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예를 들면 잉카인들은 잉카의 신을 섬기있다. 마야인들은 그들의 신에게 복을 빈다. 이집트엔 이집트의 신이있다. 이것이 그들 민족의 역사이고 보면 신앙은 믿음이지 과학이나 수학으로 또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한편 우리는 스타브로긴과 샤토프의 다음 대화를 통해 도스또옙스끼의 신앙적 편력을 볼 수 있다.

“자넨 신을 국민의 속성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았나…” 라고 스타브로긴이 말했다. 그러나 샤토프는 그의 말을 막았다.

“전연 정반대다. 국민을 신으로 높인 거야.”

“헌데 자네 자신은 신을 믿고 있나?”

“나는 러시아를 믿는다. 러시아의 정교회를 믿는다. 나는 그리스도와 육체를 믿는다. … 나는 구세주의 재림이 러시아에서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나는 믿는다. …믿구 말구.”

하고 샤토프는 흥분했다.

“신을 믿느냐. 안 믿는냐. 나는 그걸 묻고 있는 거야.”

스타브로긴의 추궁은 맹렬했다. 샤토프는 가까스로 대답했다.

“… 나는, 나는 꼭 신을 믿을 거야.”

이 대화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가 샤토프처럼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믿지 않으면서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신앙하고 교회를 신앙하고 있지는 아니한지. 러시아를 위대하게 하기 위해선 러시아의 독특한 종교인 그리스정교를 믿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샤토프처럼 우리 민족을 위대하게 하기 위해 신을 믿어야 하고 그 신은 유일신 하나님이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건 아닌지….

<악령>의 샤토프는 오늘날 기독교가 불확실한 시대의 구원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으면서도 신의 존재와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