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진 교수(웰빙코칭아카데미 대표, http://blog.daum.net/k-d-h).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것이 도덕적이냐 비도덕적이냐의 문제는 상관 없이 말이다. 가치관은 삶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조건이 된다. 그리고 가치관에 따라 정신적 혹은 육체적 질병이나 회복도 증감할 수 있다. 그래서 필자가 말기암 환자들을 만나 웰빙 코칭을 하기 전에 필자 나름대로 파악하는 작업이 있는데 그것은 그 환자가 갖고 있는 가치관에 대한 분석이다.

필자가 파악한 가치관의 종류는 참으로 다양하다. 어떤 환자는 정직한 가치관을 갖고 있는가 하면, 어떤 환자는 왜곡된 가치관에 의해 자학하는 경우도 발견한다. 정직한 가치관을 가진 환자는 자신의 현재 질병에 대해 일시적으로 분노하기도 하지만 치유의 희망도 역시 크게 가지고 있다. 그러나 왜곡된 가치관을 가진 환자는 열등감과 자괴감에서 쉽게 벗어나지를 못하고 스스로 병을 키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그에게는 희망이 빛을 잃고 마는 것이다.

가치관과 관련된 일화를 한 가지 소개해 볼까? 어떤 부자 아빠가 교육적인 목적으로 아들을 데리고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그런데 부자 아빠가 목적지로 삼은 교육 현장은 아주 초라하고 가난한 무명 농부의 허름한 집이었다. 부자 아빠는 아들에게 가난한 것이 얼마나 고달픈 것인가를 깨닫게 해주려는 목적으로 아들을 그곳에 데리고 간 것이다. 그 허름하고 불편한 집에서 그들은 며칠을 묵은 후 그곳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고 부자 아빠는 아들에게 그곳에서의 삶이 어떠했느냐고 물었다.

내심 부자 아빠는 아들의 입에서 가난한 것은 고달프고 초라한 삶이라는 대답과 함께 자신이 가난해지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아들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부자 아빠의 생각을 뒤엎어 버렸다. 아들의 생각은 사실적이었고 낭만적이었으며 희망적이었다. 아들은 아빠에게 어떻게 대답했을까?

아들은 자신의 집에는 개가 한 마리 뿐이지만 그 집에는 여러 마리나 있었음을 발견했다. 자기 집 정원에 있는 수영장은 작고 답답한데 그 집에는 깨끗한 물이 끝없이 흘러가는 개울이 있음을 발견했다. 자신의 집에는 전깃불로 밝히는 인위적이고 흐릿한 조명 등이 있지만 그곳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매일밤 더 찬란하고 멋지게 세상을 반짝이고 있음을 보았다. 이처럼 가난한 농부의 삶에 대해 아들은 부자 아빠가 보지 못했던 긍정적인 면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아들은 자신들은 하인들의 노력으로 살고 있지만 농부는 구슬땀을 흘리는 노동력으로 자신만 아니라 남들에게도 좋은 먹거리를 제공하는 봉사자임을 발견했다. 그리고 부자인 자신들은 생명을 지키기 위해 안전 장치를 겹겹이 만들어 놓고서도 불안해하지만 가난한 농부는 자물쇠가 필요없이 이웃과 문을 열어 놓고 자연스럽고도 편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아빠에게 상기시켰다. 마지막으로 아들은 아빠에게 이 소중한 체험을 통해 오히려 자신들이 얼마나 가난하고 초라하고 딱하게 살고 있는가를 깨닫게 해 주어 고맙다고 하였다.

아들의 이러한 대답으로 인해서 부자 아빠가 충격을 받은 것은 당연하다. 왜 그런 차이점이 발생한 것일까? 그것은 가치관의 차이 때문이다. 부자 아빠는 물질주의에 물들어 자신의 소유가치로 행복을 판단하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다. 반면에 아들은 물질적 소유가치 너머에 있는 그 대상들과의 관계에서 얻는 존재가치로서 행복을 판단하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소유가치를 가진 사람은 결탄코 존재가치로 살아가는 사람의 행복을 따라갈 수 없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40명당 1명이 암환자인 불행한 한국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가져야 할까? 그동안 물질만능주의가 이끄는 성공신화를 좇아가다가 만신창이가 되어져 가는 우리들의 피폐화된 영혼과 신체를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 약이나 주사,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에 희망을 걸 수 있을까?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의 면역학자 아보 도오루박사의 견해에 의하면 그 방법은 희망이 아닌 절망 뿐이다. 필자도 자연치유학자로서 역시 아보 박사의 견해와 뜻을 같이 한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우리에게도 어떤 희망이 남아 있을까? 분명 희망은 남아있다. 불편하더라도 창조주가 설계해 놓으신 설계도의 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싫더라도 유전자가 하고 싶어하는 방법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동안 몸에게 함부로 대하던 잘못을 던져 버리고 항상성을 요구하는 몸의 순리를 지켜주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과로, 과욕, 과민, 허영 등과 같은 일탈적 욕심을 내어 버리는 것이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가 되고 결국 사망에 도달하고 만다는 성경의 말씀이 진리임을 어찌 부정할 수 있을까? 당신이 순수한 마음으로 매사에 감사와 기쁨을 느낄 때 그 순간 유전자는 생기를 세포들에게 나누어 준다는 이 놀라운 사실을 기억하라. 이 순간 나는 당신에게 당신의 가치관은 웰빙적인가를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