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진 교수(웰빙코칭아카데미 대표, http://blog.daum.net/k-d-h).
현대인들은 스릴감과 감성을 터치하는 쾌락적 문화를 좋아하고 수용한다. 그러나 조상들이 생활 속에 사용해 오던, 웰빙적인 문화들에 대해서는 매우 비호감적인 경향이 짙다. 현대인들은 옛 전통적 문화들 대부분을 거추장스럽고 무지한 구시대적인 유물로 여기고 역사속 골동품으로 사장시켜 버린다.

매우 안타깝지만 이제는 서양문화에 대한 문화사대주의가 이 시대의 유행 트렌드(trend)로 자리잡은지 오래이다. 사실 우리네 풍습 중에는 일부 미신적이거나 시대정신에 뒤떨어진 것도 있다. 그러니 당연히 시대착오적인, 버려야 할 문화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웰빙의 차원에서 전통 문화를 생각해 보면 조상들의 경험법칙에서 형성된 실생활에 매우 유익한 풍습도 없지 않다. 조상들이 전수해 준 전통이나 관습들이 모두 다 소중하고 유익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정월대보름의 행사가 우리들에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웰빙과 관련시켜 생각해 보자.

보름달은 매달 한 번씩 떠오른다. 그런데 음력으로 1월은 상원, 7월은 중원이라고 하고 10월은 하원이라고 한다. 조상들은 이 세 번의 보름을 합하여 ‘삼원(三元)’이라고 불렀다. 아무튼 정월대보름 하면 땅콩이나 호두를 까먹거나 오곡밥에 산나물들을 반찬으로 푸짐하게 만들어 잔치를 벌인다. 이날만큼은 집집마다 밥과 반찬을 여유있게 만들어 부엌 시렁에 얹어두어 평소 배가 곯았던 사람들이 퍼 가도록 배려한다.

가정에서는 그렇게 각자 배를 채우고 나서 동네 중심지에 함께 모여 큰 놀이판을 벌인다. 지방마다 다양한 이름의 제사도 곁들이지만 제사의 근본 목적은 제사를 빌미로 동민들을 함께 모으고 규합하는 강제력을 얻고자 함이 더 큰 목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추운 겨울 동안에 움추리고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몇 달간 지냈으니 사람들마다 고독감이 쌓여 있을테고, 그 고독이 짙어지면 병이 되므로 서로 풀어주기 위해 제사를 빌미로 사람들을 한 곳으로 불러 모았던 것이다.

정월대보름에는 고도의 심리학적 웰빙 프로그램이 담겨 있다. 정월대보름날 아침 해 뜨기 전에 만난 사람에게 자신의 더위를 사 가라고 하는 ‘더위 팔기’ 행사도 좋은 예이다. ‘더위 팔기’ 행사는 그 해 여름 폭염을 이길 수 있다는 심적 자신감을 미리 심어주는 심리전이다. ‘더위 팔기’를 빌미로 아침에 일찍 만나는 이웃에게 부지런을 떨며 달려가 인사를 건넴으로써 서로가 기분 전환을 하게 되니 말이다.

대보름날 먹는 음식들은 영양학적으로 보아도 정말 대단한 것들이다. 산나물들과 오곡 밥 그리고 부스럼을 예방하고 귀신을 쫓아낸다는 의미로 먹는 호두, 잣, 밤과 같은 것들은 모두 웰빙과 관련된 확실하고도 훌륭한 처방들이다. 겨우내내 몸 속에 비축된 지방이나 단백질을 비롯한 필수 영양소들이 모조리 소비되고 몸이 처지기 시작할 때가 대보름을 지나 우수 경칩 즈음이다.

봄이 오게 될수록 활기를 찾는 자연 앞에서 사람들은 일꾼으로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영양이 떨어지게 되므로서 온몸이 맥없이 축축 쳐지고 기운이 떨어지는 시점이 되었으니 조상들은 그것을 잔치로서 해결한 것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머리만 아니라 온몸에 부스럼같은 피부병을 달고 살았다. 그리고 영양실조로 초학같은 질병 때문에 봄철에 조퇴하거나 결석하는 친구들이 많았던 까닭도 겨우내 부족한 식이영양소가 주범이다. 대보름 음식들은 필수 영양소를 채워주는 매우 과학적인 영양음식이었던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정월대보름 잔치는 우리 조상들의 치료적 보살핌과 나눔이 담겨진 정말 멋진 웰빙 프로그램이다. 귀밝이술 한 잔을 먹고 그 해 귀가 솔깃하게 행복을 안겨 줄 소식이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기분을 업 시킨다. 그러면서 이웃들과 같이 어울려 부족함이 없이 환한 보름달을 바라보며 가슴속 응어리들을 녹여낸다.

그리고 이웃들과 함께 달집을 태우며 논둑과 밭둑에도 불을 지피는 일도 웰빙에 아주 잘 어울리는 풍습들이다. 이 외에도 온 동네가 시끄럽도록 개최되는 쥐불놀이, 지신밟기, 줄다리기, 차전놀이 같은 풍속들은 움추렸던 몸에 활기를 넣어주며 겨우내 얼었던 몸과 땅을 풀어주는 효과를 낸다.

이렇게 정월대보름 잔치는 겨우내 움츠렸던 이웃들과 함께 모여 서로 서로를 격려하며 힘을 복돋아주는 이른바 집단적 웰빙 페스티벌이었던 것이다.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멋진 웰빙 프로그램인 정월대보름 행사! 요즈음에는 영양이 넘쳐서 문제이기 때문이지만, 배고프고 가난해서 춥고 움추렸던 시절에는 아주 좋은 웰빙 나눔 행사였음을 어찌 부인할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