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수술 후 회복이 더디다. 엄마는 의사가 수술하다가 요로를 건드렸음에 틀림이 없다고 우긴다. 그렇지 않고서야 수술 후 한 달이 다 되 가도록 이렇게 소변을 누기가 힘들 리가 없다는 것이다. 젊은 의사는 엄마의 자발없는 말투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러기에 내가 수술 경험이 많은 최 박사님으로 바꿔달라고 했잖아요.”

그래도 젊은 의사는 ‘곧 나을 겁니다.’ 하고 엄마의 투정을 받아 준다. 나는 민망해 의사가 회진을 돌 때쯤이면 나가 버렸다.

병원, 특히 많은 사람이 하루 밤사이 죽어나가는 암 병동엔 종교인들이 유난히 많이 드나든다. 그 중에 기독교가 제일 많은 것 같다. 이 병원에서 가까이 있는 교회에서는 암 환자들을 위해 호박죽이나 전복죽을 가져와 나눠 준다. 엄마는 그것은 맛있게 받아먹고 전도가 시작되면 모로 돌아누워 자는 척한다.

“할머니. 예수 믿고 천당 가야지요.”

전도자들이 나를 본다.

“딸인가 본데. 예수 믿으세요.”

나는 그들에게 엄마의 호박죽에 대한 감사까지 포함해 활짝 웃으며 말해 준다.

“저도 교회에 나가요.”
“어머, 그러세요. 그럼 어머니 위해 기도 많이 하세요.”
“네.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전도자들이 나가자 엄마가 일어나 앉는다.

“에유. 지겨워. 그냥 죽이나 주고 가면 좋잖아, 꼭 설교야.”

엄마는 납작해진 정수리의 머리가 신경 쓰이는지 손으로 윗머리를 만진다.

“얘. 은정아. 너 정말 교횔 믿는 거냐?”
“교횔 믿는 게 아니고 예수를 믿는 거래”
“글쎄, 믿냐구?”
“믿고 싶어.”
“……”
“벌써 몇 달 됐네. 교회 다닌 지. 교회 가면 마음이 편해.”
“늙었구나, 너두,”
“늙으면 그러는 거야. 그러면 엄만 뭐야?”
“엄마 걸구 넘어지지 마. 신은정…… 더 늙기 전에 결혼해라.”
“누구랑?”
“남자랑!”

엄마와 나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 웃음은 금방 훑어졌다. 엄마는 링거 줄을 살폈고 나는 침대 아래 쓰레기를 주었다.

“엄마, 재호 형 죽었대.”
“누구? 대학 때 그 재호 말이냐?”
“대학 동창한테 들었어, 결혼하고 얼마 안돼서 교통사고로 죽었대. 남은 부인은 전도사래. 중학생 딸도 하나 있구……”
“전도사?”
“응”
“뭐든 운명이려니 생각하면 쉽다.”

엄마는 누우면서 긴 한숨과 함께 말했다.

엄마가 병원에 있은 지 벌써 2달이 넘는다. 그동안 혜자 언니는 병원 반찬은 맛없다며 동치미부터 암에 좋다는 모든 버섯과 채소 종류를 망라하여 갖은 요리를 해가지고 사흘에 한 번씩 어김없이 왔다. 전라도에서 혜자 언니네 부모님도 다녀가셨다. 그들은 병실에 들어오자마자 엄마의 마른 손을 잡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혜자 아줌마가 울기 시작하자 혜자 언니도 울었다. 엄마는 혜자 아줌마의 기도가 길었음에도 두 눈을 꼬옥 감고 잠잠히 기다렸다.

엄마가 입원한 지 89일째 되는 날 아침, 병원 마당 뜰을 산책하고 있는 나를 간호사가 급히 불렀다. 엄마가 돌아가셨다. 수술이 잘 됐다고 해서, 회복되고 있다고 해서…… 바로 나오려고 했는데…… 오빠는 가슴을 치며 괴로워했다.

“뭐든 운명이려니 생각하래. 엄마가. 그러면 쉬울 테니.”

봄이 왔다. 그동안 한 줄의 소설도 쓰지 않았다. 잡지사도 그만 뒀다.

앞집 여자는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내 인사를 징검다리삼아 퐁당퐁당 자주 건너 왔다. 방글방글 웃으며 바로 구운 맛있고 향기로운 빵을 들고 찾아왔다. 이제 나도 그녀가 기다려진다. 나는 커피 열매를 갈아 남국의 정열을 담은 진한 커피를 만들고 그녀와 버터의 풍미 가득한 빵을 찢어 커피에 찍어 먹는다.

냅뜰성 가득해 보이는 발랄한 외모와는 다르게 그녀는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다. 나보다 세 살 어린 그 여자는 미주알고주알 남편 흉을 보고 나는 흥흥 웃으며 듣는다. 남편을 가져 본 적이 없는 나는 얘기를 그저 들어줄 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