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다음 주 월요일로 예약하고 병원을 나왔다. 엄마는 병원에서 내내 말이 없더니 병원 문을 나서고서야 입을 열었다.

“겨울 하늘이 이렇게 파랗고 높냐. 사뭇 가을 하늘 같다.”
“엄마, 절대 마음 약해지면 안 돼. 엄마 옆에 내가 항상 그림자처럼 붙어 있을게. 나 잡지사 당분간 그만 둘래. 그리구 나 혜자 언니에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어.”

“혜자 등살에 드디어 넘어갔구나. 너, 교회 다녀봐라. 다녀서 손해 볼 것 없겠지.”
“엄마는?”
“나?”
“응, 엄마도 동네 교회에 다녀보는 게 어때. 신도들이 엄마를 위해 기도도 해 줄 거 아니야.”
“일 없어, 다니려면 건강할 때 나갔어야지. 병들고 늙어서 찾아가냐. 하나님도 무슨 쓸모가 있어야 이뻐해 줄 거 아니냐, 그리고 나는 불교다. 니 외할머니가 얼마나 공을 들여 놨는데,”
“그래. 그럼 절에라도 나가든지.”
“……”

나는 아파트 입구로 들어가는 엄마의 등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이제 엄마는 죽음을 향해 아주 가깝게 다가서고 있는 노인인 것이다. 문득 정말 문득, ‘맑고 밝은 집’의 노인들은 어떤 모습들일까 궁금해졌다. 내가 치즈 케이크를 사들고 혜자 언니네 문을 들어서자 언니는 ‘참말 오래 살고 볼 일이다’를 세 번이나 말하며 하하하 웃었다. 언니네 애들, 현지와 현수는 언니를 닮아 정직하고 성실하다.

“와. 멋쟁이 이모가 제일 좋아. 우리 엄마는 생전 치즈 케이크 같은 거 구경도 안 시켜준대요.”
중학생인 현지를 보자 강희 딸이 생각났다.
“현지야. 너 교회 이강희 전도사님 딸 알어?”
“이름이 뭔데요?”
“얘들은 이강희 전도사가 누군지 모를 걸, 학생부 전담이 아니라서.”

나는 강희에 대해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궁금했지만 아이들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사과를 먹고 귤을 가지고 공중으로 던지며 받는 묘기를 자랑하고 그렇게 혜자 언니네 가족과 웃으며 2시간을 보냈다.

“은정아. 니가 이렇게 태평하게 놀고 있으니 내가 불안하다. 너 무슨 일 있니? 왜 안하던 짓 하냐?”
“아니. 뭘 그러세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좀 노닥노닥 거린다고 누가 뭐래? 뭐라는 사람 있으면 데리고 와 봐. 기냥 엎어치기로 얍!”

내가 현지를 때리는 코믹한 시늉을 하자 혜자 언니와 현지, 현수가 와그르르 깔깔깔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린다.

‘아. 좋다. 정말 좋다. 이 깨끗한 웃음소리들…’ 그들은 웃는데 나는 눈물이 나왔다.

지난 주 교회를 갔을 때 나는 슬쩍 강희를 찾았다. 그러나 교회에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런데 뜻밖에 교회 영상뉴스 시간에 대만 선교라는 소식에 그녀가 나타났다. 강희는 청년들과 일주일 단기 선교 여행 중이었다. 작업복에 모자를 쓴 화장기 없는 그 여자 강희가 대만 어린이들 사이에서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었다.

만약 하나님이 정말 지금도 살아 있다면 왜 나로 하여금 이 시간 강희를 다시 만나게 하신 것 일까… 용서… 재호 형은 강희에 대한 책임감과 연민으로 떠나갔으므로 내가 그를 용서해야 할 아무 것도 없다.

내가 재호 형을 놓아 버린 것은 열등감으로 인한 자존심 때문이었다. 화상으로 인한 흉터가 3번의 수술로 거의 사라졌지만 변해버린 이미지에 자신의 혼을 길들여야 했다. 거울을 볼 때마다 번번이 어긋난 퍼즐 조각 같은 얼굴에 심한 열패감을 느꼈다. 나는 웃는 데 얼굴은 경직되어 우는 듯 어그러졌고 정작 울어야 할 땐 비웃는 듯한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 그래서 나는 얼굴에서 표정을 지워 버리는 연습을 했다. 모든 희로애락 일체를 모나리자 같은 애매한 얼굴로 일관해 버렸다. 사람들은 신비한 매력을 가진 얼굴이라고 했고 혜자 언니는 진정 예술가의 오묘한 얼굴이라고 부추겼으나 그것은 단지 위로의 말일뿐이라고 열등감에 사로잡힌 자아가 말했다.

재호 형은 나의 일관된 표정의 미세한 변화를 읽어 줄 수 있는 첫 남자였고 나의 단단하게 닫힌 입술을 열어버린 첫 남자였다. 그가 나에게 연민을 가지고 다가와 사랑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강희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날 수 있는 충분한 개연성이 있는 일이었다. 재호 형과 나는 결혼을 약속한 바도 없고 내가 그에게 처녀를 준 일도 없었다. 단지 씨씨라고 불리는 흔하디흔한 캠퍼스 커플 반년 차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강희는, 강희는… 정말 그렇게 하면 안 되었다. 강희에 대한 멸시와 저주는 내게 일종의 고단한 인생에 일종의 항체와도 같은 것이었는데. 독기로 돌고 돌아 슬픔의 실을 자아내던 허무한 물레질과 같던 소설 쓰기의 근원… 이강희.

그녀의 딸이 중학생이라면 15살 정도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1993년 즈음, 내가 화상 흉터로 살을 깎아내는 수술의 고통 속에 진저리 칠 때 그들은 결혼을 한 것이다. 그리고 1년 후 그가 죽었다…. 나의 첫사랑 재호 형은 죽고 그를 빼앗아간 이강희는 지금 내 눈앞에서 새로운 행복의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다. 비평가들은 여전히 내 소설 속의 슬픔들을 골라내어 진부한 슬픔의 파노라마라고 혹평하는 데, 나는 아직도 나의 웃음소리가 생경스럽기만 한데 그녀는 대만 어린이들과 어울려 너무나 천진스럽게 웃고 있는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