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교수, 신학도들에게 인문학을 말하다

이대웅 기자 입력 : 2011.03.12 07:50

서울신대 인문학 강좌서 제2기 첫 강사로

▲인문학 강좌에서 강의하고 있는 이어령 박사. ⓒ이대웅 기자

“이제부터 수단으로 살지 말고, 삶의 목적으로 사십시오. 그게 인문학이고, 그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날개가 창조력입니다.”

이 시대 최고의 지성 이어령 박사가 100주년을 맞은 서울신학대학교(총장 유석성 박사) 캠퍼스를 달아오르게 했다. 지난해 첫 시도돼 성공리에 마무리된 서울신대 인문학 강좌에서 2011년 제2기 첫 강사로 이어령 박사를 초빙한 것.

강좌가 열린 대강당은 그야말로 ‘초만원’이었다. 전체 학생에다 교수진과 직원들, 지역 주민들까지 이어령 박사를 보기 위해 학교를 찾아, 중층까지 모두 들어찬 것도 모자라 일부 학생들은 통로에 쭈그려 앉거나 밖에 서서 강의를 들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평 하나 없이 숨죽여 이 박사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뜨거운 반응을 나타냈다. 이 박사도 혼신을 다한 강의로 청중들의 감탄을 여러 차례 자아냈다.

이어령 박사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로부터 ‘인문학과 창조적 상상력’ 강연을 시작했다.

인문학자는 아마추어… 측정 불가능한 학문

“스티브 잡스는 대학을 중퇴했습니다. 돈이 없어 남들 하는 정상 코스대로 밟지 못했죠. 하지만 대학 졸업식에서 자주 강의를 합니다. 그는 대학을 나오지 못했지만, 교수들이 말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의 연설은 절대 학문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학생들 피를 끓게 했지요.”

그리곤 잡스가 스탠포드대학 졸업식에서 말했던 그 유명한 ‘Stay Hungry, Stay Foolish’를 인용했다. “제가 인문학을 이야기하는 건 이런 거에요. 스티브 잡스가 보통의 CEO였다면 옛날과 다른 새로운 사이버 세계를 만들지 못했을 겁니다. 그는 인문학자였어요. 사람을 연구했지, 디지털을 연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상품을 만든 게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움을 탐구하는 인문학적 열정을 가졌습니다.”

그가 말하는 인문학은 논리적인 설명도, 측정도 불가능하다. 마치 ‘사랑’에 대해 얘기하는 것처럼 통계나 숫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나 시장주의에선 어쩌면 ‘불필요한 이야기’다. 세상은 돈이 안 생기는 일은 ‘안 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모두 ‘프로’가 돼야 한다.

하지만 인문학자들은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들이다. 골프를 예로 들면, 골프 치는 재미로 골프를 치면 아마추어다. 하지만 내기골프나 프로골퍼가 돼 타이거 우즈처럼 상금을 탄다면, 이미 골프는 수단이 되고 거기서 얻는 돈이 목적이다. ‘아마추어’는 사실 라틴어로 ‘사랑한다’에 명사형을 붙인 단어다. 그런 면에서 예수를 믿어도 ‘예수쟁이’가 돼선 안 된다. ‘쟁이’는 프로다. 아마추어가 돼야 한다. 그런 게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초라해 보이고 보잘 것 없고 경쟁력도 없어 보이나 오랜 시간을 놓고 보면 다르다. 세상을 호령하던 제왕들의 무덤에는 지금 아무도 가질 않지만, 형편없이 작아 보이는 보들레르나 랭보, 모차르트의 묘지에는 꽃이 끊일 날이 없다.

교환가치·사용가치 없지만 생명가치는 최고

변하지 않는 언어·선(善)·진리 등은 시장주의에선 값어치가 별로 없다. 교환가치도, 사용가치도 없지만 생명가치는 최고다. 그래서 의학, 법학 하는 사람들과 달리 100세가 돼도, 죽고 난 뒤에도 문·사·철 등의 학문하는 사람들은 남는다. 금이 귀한 이유는 변하지 않기 때문 아닌가. 돈이 없어도 된다는 게 아니라, 돈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말이다. 공자가 말했듯, 지지자는 불여호지자(知之者 不如好之者)이고, 호지자는 불여낙지자(好之者 不如樂之者)다.

▲서울신대 성결인의 집 대강당에는 인문학 강좌를 듣기 위해 학생은 물론 교수와 직원, 지역 주민들까지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대웅 기자

“저를 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문학, 그 중에서도 제일 재미없는 평론 했다고 굶어 죽었습니까? 제 나이가 올해 79인데, 이렇게 돌아다닙니다. 79살 먹은 의사가 아직까지 의사 할 수 있겠습니까(웃음), 뭘 걱정하세요 여러분?”

인문학은 머리로 계속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어릴 때 동네에서 천자문을 배우는데, 천지현황(天地玄黃), 하늘은 까맣고 땅은 누렇다는 말에 이런 질문을 했다. ‘선생님, 하늘이 왜 까매요?’ 묻는 게 당연한 거다. 딱히 창조적이라 그랬던 게 아니라 정상적인 물음이었다. 쫓겨났다.

“제가 뭘 해도 호락호락 믿지 않았어요. 지금에서야 왜 하늘이 까맣다고 했는지 알았지요. 노자가 말씀하신 이 현(玄)을 서당 쫓겨나고 50년 후에야 알았어요. 하늘이 우리 손에 닿지 않고 신비하고 멀리 있으니 이를 표현할 때 색깔로는 검다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검을 현을 ‘가물 현’이라고도 해요. 그때 서당에서 그렇게 가르쳤더라면 노벨상은 아마 한국이 싹쓸이했을텐데(웃음).”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이 시로 인문학을 짧은 시간 안에 얘기해 보면, 아빠와 형은 왜 없는지. 갈잎은 무엇인지, ‘살자’는 말에서 찾는 한글의 신비함은 무엇인지, 시에서 나타나는 배산임수의 지형은 화자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을 찾으면서 인문학을 알아갈 수 있다(해설은 전문 참조).

아까 사랑을 얘기했는데, 사랑한다는 건 궁극적으로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네가 내 몸 속으로, 내가 네 몸 속으로 들어오는 게 그 완성이다. 인간들 사이에는 유리통 안에서 외치듯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거리가 있다. 너와 나는 아무리 가까워도 사이에 얇은 막이 존재한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그 간극, 아무리 가까이 가도 존재의 막이 있다. 이걸 찢고 싶은데, 하는 게 시와 소설, 역사와 철학이다. 이 거리 때문에 시를 쓰고 소설을 쓰고 인문학이 탄생한다.

한 번도 가지 못한 길 손 잡고 함께 가는 인문학자들

1시간 넘는 강의 끝에 이 박사는 결론을 내린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걸 보이게 하고, 숨은 걸 드러내는 것이 인문학의 창조적 상상력입니다. 그 창조적 상상력이 인류가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길,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한 곳으로 가게 합니다. 그때 손을 잡고 함께 가는 자들이 인문학자입니다. 학교에서 과학을 해도, 가게에서 장사를 해도 인문학적 접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교환가치와 소유가치에서도 모두 최종 목적인 생명가치에 도달합니다. 다른 건 다 수단이잖아요.”

약속했던 12시가 넘었다. “지금 7분 초과했는데, 소설 모모에 나오는 시간도둑이 되고 싶진 않아요(웃음). 이 7분이 70년을 살 수 있는 하나님 말씀과는 턱도 안 맞는 얘기겠지만, 작은 겨자씨 같은 메시지가 된다면 여러분들과의 만남은 행복하고 영원한 만남이 될 것입니다.”

화려한 첫 테이프를 끊은 서울신대 제2기 인문학 강좌는 이후 정운찬 전 국무총리,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 백종현 서울대 교수, 박종화 경동교회 목사, 한승헌 전 감사원장 등 화려한 강사진들과 함께 참가자들의 지성·영성·덕성의 조화를 꾀하게 된다. 서울신대는 이와 함께 오는 15일 100주년 기념예배를 드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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