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한 다음 해 나는 얼굴에 2도 화상을 입고 세 번의 성형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다행이 시력이나 얼굴의 윤곽은 다치지 않았으나 여러 번의 성형으로 쌍꺼풀을 만들어야 했고 코도 건드려야 했다. 사람들은 이전의 청순한 이미지가 사라졌다고 노골적으로 혀를 끌끌거렸으나 병원 문이 닳도록 간호해 주던 혜자 언니만은 아주 독특한 분위기의 예술가 얼굴이 나왔다며 거울을 들이밀어 주곤 했다.

내가 나의 얼굴을 보았을 때 나는 처음에 견딜 수 없는 수치감에 떨었다. 눈썹이 밀려났고 쌍꺼풀로 당겨진 두 눈도 잘 감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곧 ‘괜찮아질 거야. 염려 마. 여기 성형은 우리나라에서 제일인거 너 알지. 걱정 마.’ 혜자 언니는 ‘잘 될 거야’를 마치 주문처럼 외우며 나를 위로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언닌 그때 나를 위해 많은 기도를 해줬다.

그러나 자기 연민에 사로잡힌 나에게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행동들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의미 없는 것들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인가. 지금 이 순간 나를 위해 기도해 주던 언니의 모습이 마치 어제처럼 너무나 또렷하게 기억의 흐름 속에 힘차게 역류하고 있는 것이다.

“어서 여기 와 앉아, 단호박죽 대령했습니다.”

나는 죽 그릇을 반도 비우지 못한다. 갑자기 엄마가 생각났다.

“언니, 나 이거, 내가 먹던 거 그릇째 가져갈게. 지금 못 먹겠어.”
“아니 배고프다고 난리더니 왜 그래? 어디 갔다 온 거야? 무슨 일 있어?”
“엄마가……”
“아니 엄마가 왜 어디 아프셔?”

나는 엄마가 자궁암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아무리 가족같이 지내는 사이일지라도 혜자 언니에게 우울한 소식을 전하기는 싫었다. 나중에 수술 날짜가 잡히면 그때 말해도 늦지 않을 테니까.

“아니야, 그런 거. 그냥 엄마네 다녀왔어. 엄마랑 만나면 나 만날 싸우잖아. 잘 알면서.”

나는 언니의 편안한 동그란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야, 뭘 그렇게 쳐다보니?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언니. 나 이번 주만 언니 교회 따라갈게.”
“진짜야. 웬일이니. 할렐루야. 이런 감사한 일이.”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나는 언니의 동그란 얼굴을 보며 교회에 관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말해 버리고 말았다. 이제 와서 실수라며 발뺌을 하는 건 저 기뻐하고 감사하는 언니에게 할 짓이 아니다.

“언니. 가긴 가는데 딱 한 번이야. 거긴 너무 멀어, 구리에도 교회가 많던데 강남역까지 뭐 하러 가.”

“알았어, 알았어, 한 번만 가. 가고 나서 나중에 말하자. 다음 일은,.. 이 세상이 우리 뜻대로 사는 것 같지만 아니거든 나중에 돌아보면, 하하하. 기분 좋은 저녁이네. 우리 은정이가 교회를 간다니. 너 마음 바꾸면 안 돼.”

‘언니의 간절한 부탁인데 한 번쯤 가 주자, 그렇다고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지진 않을테니까. 혹시 그 뒤로도 신앙을 가지고 싶다면 가까운 교회를 찾아 봐야지.’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자 언니에게 꼭 간다고 새끼손가락까지 걸어가면 흔쾌히 약속에 약속을 거듭해 줄 수 있었고 엄마에게도 무언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까지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교회라는 곳이 이렇게 큰 곳인 줄 몰랐다. 교회 근처는 성경책을 든 수많은 선남선녀들로 붐볐다. 주변이 어둠과 함께 네온이 일제히 살아나는 유흥가라는데 일요일 아침은 이렇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들로 가득하다니 놀라울 지경이다.

혜자 언니의 남편은 말은 별로 없지만 웃음소리는 언니와 똑같아 하하하, 목젖이 보이도록 웃는다. 차를 주차시키자마자 그는 주차 안내 봉사라며 어디론가 뛰어간다. 언니의 건강하고 밝은 두 아이는 학생부예배라며 ‘이모, 갈 때는 못 봐요. 우린 따로 가요. 은혜 많이 받으세요’ 하고 다른 건물로 들어간다. 아이들의 입으로부터 ‘은혜’라는 말을 듣자 가슴이 촉촉해진다. 좋은 기분이다. 그리고 이상한 감동이 일었다.

한 시간이 좀 넘는 예배 동안 나는 그런대로 지루하지 않게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워낙 큰 교회라 이것저것 구경하기에도 바쁘다. 다 같이 기도하는 시간에 나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우리 엄마를 20년 만 더 살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했다. 언니는 목사님의 설교시간에 내가 어떻게 하고 있나 살피느라 수시로 옆을 흘깃거렸다.

“언니. 아까 아이들이 은혜받으라는데. 그렇게 나만 흘깃거리면 어떻게 은혜를 받겠어?”

내가 언니의 귀에 대고 소곤대자 언니는 터지려는 웃음을 참느라고 얼굴이 붉어지며 씨근거렸다.

성가대도 수준급이다. 목사님은 전형적인 성직자의 고상함이 가득해 보이고 여기저기 안내를 맡고 있는 이들도 연방 벙긋거리며 친절했다. 대체로 영혼의 교양을 위해서 다녀도 손해 볼 건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너무 멀다. 구리에도 이보다는 못해도 중형정도 되는 교회는 있으리라. 예배가 끝나고 나오며 언니는 궁금해 견딜 수 없는 표정으로 달라붙으며 팔짱을 낀다.

“그냥 가지 말고 교회 좀 둘러보고 가.”

언니는 어떻게 해서든 교회에 나를 안착시키기 위해 팔짱을 낀 채 나를 이끌고 어디론가 들어갔다. 아마 사랑방 같은 곳인 듯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김 집사, 이 집사, 권사니임’ 하고 부르는 소리들, ‘은혜 많이 받으셨습니까 핫핫하하……’ 나는 그들의 목소리가 공통적으로 크다는 것을 발견한다.

물론 이곳이 소란스러운 탓일 수도 있지만 은혜와 사랑을 말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꺼릴 것 없는 투명함으로 거칠 것 없이 서로에게 외치는 것 같았다.

서로를 호명하며 반가워하는 소리 가운데 낯익은 이름 하나가 내 귀에 와 닿았다. ‘이강희 전도사님! 이강희!’ 나는 소스라치듯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계속>